카미아소/합작

[ 그겨울, 드림합작] 토토사유

サユラ (사유라) 2018. 2. 20. 01:49

드림 [그 겨울, 합작]에 참여한 카미아소(신들의 악희)의 >토트 카도케우스< 드림글입니다

* 오리주(드림주)/오너이입有

* 원래의 표기와 발음은 "토트"이지만 오너에겐 "토토"로 굳어져 글에서는 토토라 적습니다

* 드림주와 최애는 연인이 아닙니다.





아주아주 멋지고 훌륭하신 존잘님들의 작품이 모인 홈페이지는 여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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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절경이다, 아름답다. 그런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의 풍경을 신이 바라보고 있다. 어떠한 건물도, 오염도, 비틀림도 없는... 그럼에도 모든 것이 만들어진 아름다운 세계를 고고한 신이 바라보고 있다. 새하얀 눈으로 덮인 아름다운 세계를 바라보는 신이 입을 연다.

 

 

"망할 제우스 녀석."

 

 

...... 조금은 험학한 말이 신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잘생긴 미간에 한껏 주름을 만들며 그는 다른 신의 이름을 거칠게 꺼낸다. 만약 누군가가 보았다면 분위기를 깬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대사였다. 허나 신의 주위엔 누구도 없어 그런 딴지를 걸지 못한다. 아니, 그전에 위대한 신, 토토에게 그러한 말을 할 수 있는 인물은 그리 없다. 까칠한 그의 성격을 건들일 만큼의 배쨩이나 바보스러움을 지닌 인물은 없다.

그건 그것이고, 토토의 시점으로 상황을 살펴보자. 그는 언제나처럼 또 모습을 보이지 않는 인물을 찾아 나왔다. 이제는 너무도 당연한 일에 그 자신도, 우연히 그를 본 다른 이들도 의문을 품지 못한다. 의문을 품기는 커녕 학원 밖에서 그를 만난 대부분의 학생들이 얘기한다.

 

'오늘은 시와가리 선생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제우스가 만들어낸 학생도, 사랑을 배우기 위해 온 신들도, 인간의 대표로 온 소녀도. 모두 같은 내용의 답을 했었다. 언제나의 일이다. 그가 찾는 인물의 목격담은 없다. 차라리 목격담이 있는 신출귀몰이 훨씬 좋을 정도로 말이다. 어슬렁어슬렁, 휘청휘청이란 단어들을 매달고 모형정원을 돌아다니고 있을 여성에 신은 정신적 피로감을 느낀다. 완벽한 신의 몸도 아닌, 평범한 인간... 아니, 그보다 약한 몸으로 눈이 한가득 내리는 겨울 속을 산책할 여성. 자기 몸 하나 제대로 챙기지 않을 존재에 걱정이 가득해진다. 짜증이 아니라 걱정이 말이다. 평소의 그답지 않은 감정이다.

 

 

"이렇게 눈이 계속 내리니 발자국도 금방 없어지겠군."

 

 

어느새 다다른 들판을 보며 신이 중얼거린다. 그녀가 곧 잘 오는 장소라서 발자국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까 했지만 소용없다. 조금은 큰 솜뭉치와도 같은 눈들은 넓은 들판을 이미 새하얗게 덧칠했다. 어쩌면 있었을지도 모르는 발자국은 쉴 새 없이 내리는 눈들로 덧씌워져 사라졌다. 그만큼 넓은 들판은 어떠한 자국도 없이 깨끗하다. 동시에 그가 인정할 정도로 멋진 경치다. 잿빛하늘을 제외한 모든 것이 새하얀 세상은 그가 사는 이집트 신세계에선 쉽게 볼 수 없는 광경. 자신이 이런 정도면 흔해 빠진 광경에도 홀린 듯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바라보던 여성은 어떨까.

 

 

"...... 그 네코라면 자신의 몸에 눈이 쌓이는 것도 모르고 정신없이 봤겠지."

 

 

그리고 자신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시선과 마음을 빼앗길 거다. 신은 그리 확신한다. 몇 번이고 그랬기에. 그저 푸른 하늘을 바라보던, 비를 맞는 작은 꽃을 보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지켜보던...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들을 보며, 누군가는 그냥 지나칠 것들에 순수한 애정을 담아 바라보던 그녀. 신은 사랑하게 된 여성의 그런 모습을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자신에게 향해진 적 없기에 더더욱... 몇 번이고 자신 아닌 존재를 바라보던 연갈색의 눈동자를 제 손으로 가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던 신이다. 가린다면 그 눈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될 것이며, 미소 또한 지워질 것이 분명했기에. 그리고 만약 옆에서 찾는 여성이 이 광경을 본다면 눈을 가리지 않을 토토다. 대신 그녀의 모습을 기억에 새기고, 학원으로 끌고 갈 거다. 그로인해 미소가 지워져도 감기에 걸리게 냅두는 것보다 훨씬 나은게 진실이기에.

 

 

"문제는 그 네코의 행방을 모른다는 사실이지."

 

 

신은 짜증과 걱정이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하얀 입김이 생겨났다가 금새 사라진다. 신의 머리와 어깨에는 이미 꽤나 눈이 쌓여있다. 흰 머리카락 위에도, 푸른 제복 위에도... 허나 신은 그것에 신경쓰지 않고 생각에 잠긴다. 다음의 목적지를 골라낸다. 동시에 이미 몇 번이고 반복되고 있는 이 숨박꼭질에 쓸 효율좋은 방법을 고안해낸다. 곧 두 가지에 대해 생각을 마친 토토는 발을 옮기려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신은 무언가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껴 발을 떼지 않았다. 대신 시선을 느낀 곳으로 고개를 움직인다.

 

 

"착각인가."

 

 

들판. 토토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무엇도 없는 들판, 아니 눈밭이다. 그가 보지 않은 들판의 일부분이다. 찾는 인물이 없다면 신에게 어찌되든 상관없는 곳이다. 그럼에도 그곳 또한 절경이다. 겨울에서만 볼 수 있는 절경을 가진 곳이다. 토토는 시간낭비를 했다며 혀를 찼고, 시선을 돌린다. 그때 무언가 위화감을 느낀다. 시선을 돌리던 그 짧은 시간, 스치는 광경 속에서 그는 위화감을 느낀다. 화악하고 고개를 돌린 신은 위화감을 느낀 곳으로 발을 움직인다. 무엇의 발자취도, 흔적도 없던 눈 위의 그의 발자국들이 생겨난다. 곧 토토가 멈춘 곳은 미약하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하게 평평하지 않고 볼록하다. 들판이었던 곳은 모두 깔끔하도록, 누군가가 편 것 마냥 평평하다. 허나 짙은 푸른눈이 내려다 보는 곳은 그러지 못했다. 무언가가... 두껍게 쌓인 눈 아래에 있다는 것을 알리듯 미세하게 볼록했다. 고고한 신은 직접 그 두 손으로 눈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차가운 눈에 감촉이 손에 닿았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이윽고 눈 속에서 드러난 존재에 신은 일순 숨을 멈추게 된다.

 

 

 

 

 

(2)

 

간지럽고 따스하다. 잠이 깨어나는 그 짧은 시간 속에서 느낀 감각이자 생각. 사유라는 깊은 꿈속에서 겨우 깨어난다. 어둠으로 덮여있던 세계는 곧 새햐안 세상으로 바뀐다. 일순 그게 눈으로 덮인 세상인가하고 생각한다.

 

 

"네코."

 

 

정적으로 덮인 새하얗고 몽롱한 세계가 누군가의 목소리로 깨진다. 아니, 본래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깨운다. 완벽하게 깨어나지 못했던 정신이 제대로 깨어나게 된다. 알고 있는 목소리, 익숙한 호칭... 의식적으로 눈을 감는다. '아아, 또인가.' 하고 소리없이, 입을 움직이지 않고 중얼거린다. 그녀는 이 상황을 이제는 일상으로 느껴지게 된 자신을 비웃으며, 천천히 눈을 뜬다. 보여올 세상과 존재에 흔들리지 않도록 마음을 잡으며...

 

 

"죄송합니다."

 

 

그녀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말은 상대방의 이름도 아닌 사과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뻔뻔하고도 바보같은, 역겨운 행동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직은 기억이 흐릿하다. 하지만 분명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했고, 자신을 부른 존재에게 민폐를 드렸다. 그것만은 확실하고도 진실이다. 그렇기에 사과한다. 죄송함에도 변하지 않을 자신이라 생각하며, 마치 거짓말을 하는 듯한 기분으로 사유라는 조금은 갈라진 목소리로 사과한다. 토토는 잠시 아무런 말없이 그녀를 바라본다. 푸른눈의 시선에 연갈색의 눈동자는 피한다. 정적이 이어지던 가운데 끼익하고 신은 의자에서 일어난다. 그것에 미세하게 어깨를 떤 그녀를 봤음에도 그는 말 없이 어디론가로 간다.

사유라는 조심히 고개를 움직여 그를 살펴본다. 방의 한 켠에서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는 듯 했으나 등을 돌려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정적 속에서 어떠한 물건들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울렸다. 완전한 정적보다는 나은 상황이지만, 사고를 저지른 인물은 속으로 안절부절하지 못한다. 차라리 언제나와 같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자신을 물아 붙이는게 낫다고 생각해버린다. 그게 더욱 대처하기 쉬운 상황이기에. 그게 더욱 자신을 짓눌리게 만들 수 있기에. 허나 신은 어째서인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게 익숙하지 않고도 숨을 조이는 감각을 느끼게 한다.

 

 

"저기..."

"조용히 해라."

"......"

 

 

침묵이 더욱 괴로워 먼저 입을 연 그녀에게 신은 조용히 시킨다. 단호하고도 어떠한 감정도 담기지 않은 듯한 목소리에 사유라는 그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거둔다. 속으로 멋대로 신의 기분을 추측한다. 화가 난거다, 자신에게 이제 완전히 질린 거다. 지끈하고 가슴에 아픔이 퍼져옴에 그녀는 미미한 미소를 짓는다. 차라리 잘 된 일이다 하고 생각하게 된다. 이게 옳다, 이제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다 라고 안도한다. 그때 볼에 스치는 희미한 찬바람. 베개에 묻힌 머리를 움직여 간지럽혀진 볼 쪽을 본다. 그러자 거기엔 살짝 열려진 창문이 있다. 창밖은 아직도 굵은 눈들이 쉴 새 없이 내리고 있었다. 작고도 아름다운 세계를 뒤덮고 있었다.

 

'창문을 닫아야...'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한 문장을 중얼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나는 그녀. 목표가 있음에도 창문으로 바라보는 눈동자는 미미하게 흐릿했다. 그런 자신을 자각하지 못한 채 창문 앞에 도달한 사유라는 손을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창문 밖의 세계를 바라본다. 봄, 여름, 가을... 무수한 색들로, 확연한 색들로 가득하던 아름다운 모형정원. 그에 비해 겨울인 지금은 새하얀 색으로 뒤덮여있다. 잿빛의 하늘을 제외하고는 작은 세계는 한가지의 색에 묻혀져 있다. 허나 그것 또한 그녀에게는 아름답게만 보여온다. 순수하게, 어떠한 표현도 없이 그저 아름답고도 사랑스럽게 다가왔다. 영원히 그 광경을 보고 싶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저 속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시 한 번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한 문장을 중얼거리는 그녀. 천천히 하얀 손이 움직여 창문으로 향한다. 닫기 위함이 아닌 열기 위한 움직임. 사유라는 무의식에 가깝게, 무언가에 홀린 듯이 움직인다. 이윽고 그녀의 손가락 끝이 창문에 닿은 순간, 쾅하고 짙은 갈색의 손이 뒤에서 튀어나와 창문을 거칠게 닫는다. 그 찰나의 순간 흔들리는 자신의 머리카락과 방 안으로 들어온 한 송이의 눈을 여성을 본다. 자연스레 눈을 쫓아가려던 시선. 허나 누군가의 목소리에 저지된다.

 

 

"사유라."

 

 

별명이 아닌 이름으로 불렸다. 그것도 무척이나 화가 꾹꾹 눌러 담긴 목소리로... 위화감과 함께 두려움에 눈에 띌 정도로 크게 어깨를 떤 여성은 뒤돌아 그 손의 주인을 바라본다. 그러자 거기엔 언제나와는 틀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신이 있었다. 자신은 모르는 감정이 담긴 눈동자. 그 시선과 감정에 어찌 해야 할지 몰라 뒤로 한 걸음 물러서게 된다.

 

 

"무얼 하려고 한 거냐."

"......"

"설마... 저 눈 속으로 다시 나갈 생각이었던 건 아니겠지."

"......"

 

 

화가 담긴 낮은 목소리. 일순 차갑다고 생각한 목소리는 마치 자신의 속을 들여다 본 듯이 얘기한다. 사유라는 무어라 할 수 없어 시선을 피한다. 그게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인지 신은 미간을 구기더니 그녀의 고개를 잡아 올린다. 사유라는 강제적으로 신과 다시 마주보게 된다.

 

 

"정말로 그딴 생각을 하려 했다면 당장 지워라. 나약한 몸인 주제에 제대로 방한도 하지 않고 나가서 또 눈 속에 파묻히려는 거냐."

"......"

"설령 그러고 싶다 해도 내가 보내주지 않을 거다. 손과 발을 묶어서라도 못가도록 할 거다."

"......"

"내게 다시는 널 찾았을 때의... 그때의 감각을 느끼게 하지마라."

 

 

강압적이고도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 말. 설령 그게 그녀를 위한 이유에서라도, 신은 힘으로 자유를 억압하려 한다. 사유라는 말없이 토토를 올려다 본다. 그는 화가 난 것과 동시에 어딘지 위태로워 보였다. 마치 무언가에 두려워하는, 괴로워하는 듯이... 그게 어떠한 이유인지, 무엇 때문인지 그녀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눈에 뻔히 보이는 이유를 외면한다. 그럼에도 신이 괴로워하는 모습은 가슴이 아파왔다. 그렇기에 입을 연다.

 

 

"알겠습니다. 토토씨의 곁에 있을게요."

 

 

 

 

 

(3)

 

 

신에게 일시적인 맹세를 한 여성은 다시 침대로 돌아가게 된다. 하얀 시트로 감싸인 푹신한 이불 속에서 베개를 등받이 삼아 앉은 그녀는 그제야 주위를 제대로 둘러본다. 보건실이다. 사실 둘러볼 이유도 없다. 아니, 필요가 없다는 말이 정확할 거다. 어차피 어느 정도 잘 아는 장소이자 익숙한 곳이다. 모형정원에서 자주 드나들게 된 장소 중 하나이다. 봄, 여름, 가을 또한 겨울에도... 그리고 그때마다 함께 있던 존재는 대부분 아까 자신이 일시적인 맹세를 한 신. 또 같은 공간에 있다. 언제나와 별 다를게 없었을 터인데, 신이 보인 알 수 없는 모습과 감정에 사유라는 맹세해 버렸다. 언제나와는 다르게...

 

'이곳에 있을게요.'

 

원래의 자신이라면 했을 답을 소리없이 중얼거린 그녀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본다. 여전히 눈이 내린다. 그가 가지 못하게 한 풍경을 바라보며 사유라는 생각을 이어간다. 왜 자신이 아까 그렇게 말했는지에 대해.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가 괴로운게 싫었어.'

 

자문자답으로 답을 중얼거린다. 그 대답을 내뱉은 이가 누구인지 내면을 훑는다. '겉'의 누구인지, 아니면 '속'의 누구인지. 그게 아니면 상식에 붙잡혀 만들어진 '가면'인지. 허나 답이 없다.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답답함과 짜증이 스쳐지나간다. 겉과 속, 가면 모두에게 욕하려던 그녀는 그만둔다. 눈이 너무도 예뻐서. 한정된 부분으로 보이는 풍경 또한 아름다워 그만둔다.

 

 

"네코."

"네."

 

 

언제나의 톤으로 돌아온 목소리가 자신을 부름에 사유라는 반응한다. 감정 없이 대답하며 고개를 돌리니 거기엔 머그컵을 하나 든 신이 있다. 창문을 거칠게 닫았던, 눈과 겨울로 향한 길을 차단한 짙은 갈색의 큰 손에 쥐어진 연하늘색의 머그컵. 어울리는지 아닌지 모를 색조합이라고 생각하는 그녀에게 토토는 컵을 건넨다.

 

 

"마셔라."

"... 감사합니다."

 

 

친절이라기엔 꽤나 고압적인 말투에도 사유라는 감사의 말을 하며 컵을 받아낸다. 손바닥에 퍼지는 따스함과 코끝에 닿은 익숙한 향, 곧 신이 준 차가 유자차란걸 알아차린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차를 조심히 호르륵하고 마신 그녀는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린다. 익숙한 맛과 따스함. 상큼함을 덮는 달콤함은 그녀가 제법 좋아하는 맛이다. 다만 단맛이 자신이 마시던 유자차에 비해 강했다. 허나 그것조차 괜찮다고 느껴질 정도로 그리운 느낌이었다.

 

 

"왜 그런 곳에 있던 거지."

"......"

"들판."

"아..."

 

 

뜬금없는 질문에 사유라는 곧 바로 답하지 못한다. 그 반응에 신이 장소를 말했고, 그제서야 임시교사는 자신이 있었던 장소를 떠올려낸다. 서서히 눈으로 덮여가던 녹색의 들판을... 시야 가득 눈이 내리던 아름답던 들판을 그녀는 떠올린다.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을 만큼 아름답던 풍경을 회상한다.

 

 

"산책 중이었습니다."

"그럼 왜 그런 곳에 누워있던 거지."

"누워서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잠이 들어 버렸다. 그런 바보같은 흐름이란 거냐."

"...... 네. 바보 같지만 그렇습니다."

 

 

신의 물음에 아직은 인간에 가까운 여성은 거짓없이 답한다. 신의 비꼼조차도 순순히 받아들이며 답한다. 어차피 그의 앞에선 거짓은 간파당하기 쉽다. 거기다 딱히 거짓을 얘기할 이유도 없었다. 그렇기에 사유라는 담담히 대답한다. 토토는 그런 그녀를 잠시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뱉는다. 신의 무거운 날숨에 인간은 반쯤 눈꺼풀을 내린다. 죄송함과 기대심을 가진다. 이제는 신이 자신에게 제대로 질렸을 거란 생각을 한다.

 

 

"다음부턴 조심해라."

"......."

"대답은?"

"아, 네."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정말로 네 녀석을 묶어서 곁에 둘 것이니 명심하도록."

"네."

 

 

그것 뿐인가요? 이라고 사유라는 속으로 따진다. 자신은 잘못을 저질렀다. 신의 손을 번거롭게 했다. 그렇다면 더한 벌을 받아도, 잔소리라도 받아야 할터다. 헌데도 그 깐깐하고도 신경질적인 지혜의 신은 쉬이 넘어가준다. 아까의 일이 있어서 일까, 아까의 맹세 덕분일까. 혼란함이 그녀의 내면을 뒤흔든다. 속이 뒤집어지는 듯한 감각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무언가가 또 질척하게 내면을 뒤덮는 기분이 되어간다. 무의식적으로 목으로 향하던 하얀손을 짙은 갈색의 손이 쥔다. 그리고 하얀 이마에도 다른 갈색의 손이 덮는다.

 

 

"열은 없군. 목이 아프거나 어지러움, 아니면 불편하거나 아픈 곳이 느껴지나?"

"아니요."

"방심은 좋지 않으니 한동안은 여기서 자라. 온도랑 습도는 이미 완벽하게 조정했다. 감기도 걸리지 않을 거다."

"...... 네."

 

 

따스함. 손과 이마로 전해져 오는 온기에 사유라는 놀란다. 이번에도 놀라 크게 떤 몸인데도 신은 딱히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뚝뚝하면서도 어딘지 자상한 목소리로 몸상태를 물어왔다. 아까와는 다른 혼란함을 애써 눌러 답한 그녀. 이마에 있던 손이 스르르 옆얼굴을 따라 훑어 내려간다. 그 간지러움에 미약하게 움찔한 사유라는 신을 올려다본다. 토토는 자신을 올려다 보는 연갈색의 눈동자를 말없이 내려다 본다. 짙은 푸른 눈동자 속에 자신이 비치고 있었다. 그게 무어라 정할 수 없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그리고 보여 온 미소와 들려온 목소리에 일순 숨이 멎는다. 안도감과 부드러움, 그리고 이름 모를 감정이 섞인 미소와 목소리에 사유라는 생각이 멈춘다. 의문도, 두려움도, 놀람도 모든게 날라가 머릿속이 새하얗게 덮인다. 창문 밖의 새하얀 세상보다 더욱 완벽하도록 새하얗게 덧칠된다. 착각일까, 그녀는 신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허나 피하지 못한다. 피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저 홀린 듯이 그를 바라본다. 좁혀지는 거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토토 선생님!! 살려줘! 살려줘!!"

"하데스씨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미안하다... 내 불행으로 이런..."

 

 

문이 쾅하고 열리며 쏟아져 들어오는 목소리들에 정적이 깨진다. 사유라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뒤로 뺀다. 귓가에 익숙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손이 허전해진다. 인식하지 못했던 그림자도 물러간다. 그가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걸 그녀는 생생하게 느낀다. 또각또각, 빠른 굽소리가 보건실 문 쪽으로 향하는 걸 따라 사유라도 시선을 움직인다. 거기엔 힘없는 하데스를 짊어지고 온 아폴론과 걱정하는 유이가 있다. 대충 무슨 상황인지 유추할 수 있었다.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신이 치료해줄 거라 생각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신의 분노한 목소리와 소녀와 청년의 애원이 들려와도 신경 쓸 여유는 그녀에게 없었다.

 

창밖은 여전히 눈의 나라다. 부드러운 눈들이 세상을 전부 묻어버릴 듯이 가득 내리고 있다. 들판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린다. 자신의 위로 내리던 눈의 차가움과 부드러움, 눈이 쌓이는 소리만이 들리던 조용한 세상. 그게 전부 사랑스러워 무언가를 잊으려고 했던, 눈으로 전부 덮으려던 자신을 떠올린다. 우연히 본, 눈이 내리던 아름다운 세상 속에 있던 신. 그런 신을 멍하니 본, 그 옆에 가고 싶다고 생각해버린 자신. 그랬던 자신과 그때 가슴에 퍼졌던 이름 모를 감정을 지우기 위해, 덮기 위해 눈이 내리는 아름다운 세상 속에서 잠들었던 사유라였다.

그리고 방금까지의 일을 잊기 위해 또 다시 눈을 바라본다. 들판에서 잠들었을 때와 같이 도망치려 한다. 창밖의 사랑스러운 세계로 도망치고만 싶었다. 허나 안 된다. 신에게 맹세해버렸기에. 그의 곁에 있겠다고 답해버렸기에 사유라는 바라볼 뿐이다. 다시 가슴에 퍼지는 이름 모를 감정을 식히기 위해, 덮기 위해 하염없이 눈을 바라본다. 아직 남은 손의 열기와 볼의 간지러움을 필사적으로 잊는다. 숨을 잊게 만들 정도로 자신을 흔든 신의 미소와 목소리를 그녀는 필사적으로 겨울의 눈으로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