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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일 기념글] 보로사유

サユラ (사유라) 2018. 6. 7. 06:54

원펀맨의 >보로스< 드림글입니다

* 오리주(드림주)/오너이입有

* 캐릭에 대한 개인적인 성격파악이나 구성된 부분이 있어 원작과 다를 수 있습니다.












 커다란 빌딩도, 커다란 차도도, 인적도 없는 동네의 밤은 조용하다. 정막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고요한 동네를 밝히는 빛들은 대부분 가로등의 불빛이다. 그런 동네에서도 몇개의 집에 불빛이 들어와 있다. 그리고 그 몇없는 불빛 중 하나인 집 안 또한 조용했다.

 보로스는 벽에 있는 시계를 힐끗 바라본다. 째깍째각, 시계침 소리는 조용한 집 안에 제법 크게 울렸다. 만약 그 혼자였다면 짜증만 나는 소리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관없다. 거기에 신경을 쓸만큼 그는 한가하지 않았기에.



 "......"

 "제법 깊이 잠든건가."



 그는 자신의 품 안에서 곤히 잠든 연인을 내려다 본다. 새액새액, 작은 숨소리가 그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초침의 소리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귀여운 소리. 그에 맞추어 움직이는 상체. 시선을 움직이면 사랑하는 이의 얼굴이 보여왔다. 평온함으로 감싸인, 피곤함이나 불안함 하나 없는 잠든 얼굴은 그에게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그 증거로 한때 마음이란 것을 잘 알지 못하던 존재는 웃고 있다.

 그저 행복해서, 그저 사랑스러워, 그저 평온해서. 


 깨우기는 아까운데...


 보로스는 속으로 고민에 빠진다. 이제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되도록이면 찰나의 순간에 건내고 싶기에.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는 이제 예전과 같이 시간을 지나칠 수 없다. 옛날과 같이 시간을 낭비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시간을 쓸 수 없게 되어버린 옛 패자다.

 허나 그것이 너무도 곤히 잠든 연인을 깨워도 되는 이유가 되는가. 

 팍하고 던져져 온 질문. 확신에 찬 대답이 그의 안에 떠오르지 않는다. 우스운 상황이다. 그는 해답, 아니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선 단숨에 정했었다. 그랬기에 강적을 만나기 위해 20년, 어쩌면 더욱 오래 걸릴지도 모르는 지구에 오기로 결정할 수 있었다. 



 "그 선택이 내 인생에서 가장 옳은 선택이 되었지. 그때의 의도와는 다른 형태지만."



 속으로만 생각하기로 했던 말이 툭하고 나와버린 자신의 입에 보로스는 아차했다. 요즘 들어 입이 느슨해져 감을 자각하고 있다. 필시 품 안의 존재 때문이다. 은근 그녀도 툭하고 생각을 얘기해버리니까. 

 그건 그것대로 귀여워서 상관없지만.

 자, 일단 한 번의 팔불출 대사. 보로스는 연인의 상태를 살핀다. 누가 보면 우스울 모습이다. 깨울까, 말까에 대해 고민한 주제에 막상 깨웠을까에 대해 걱정하다니. 그 커다란 몸에도, 그 힘에도 제법 어울리지 않을 모습. 아니, 예전 그에게 없었던 모습이다. 과거의 그를 아는 자라면 놀랐을 모습은 단 한 존재로 인해 바뀐 거다.



 "보로스?"

 "깨버렸군."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잠에서 제대로 깨지 못한 연인의 부름. 막 수면에서 깨어난 소중한 이의 입에서 나온 단어가 자신의 이름. 그것은 매번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깨운데에 대한 미안함이 보로스의 안에 퍼진다. 모처럼 기분 좋게 자고 있던 그녀였다. 차라리 깨운다면 좀 더 부드러운 방법으로 깨우고 싶었던 그다.

 허나 이미 깨워버린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본래 하고 싶던 일을 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보로스는 팔을 움직인다. 이제는 익숙해진 힘조절로 그녀의 볼을 만진다. 스윽하고 손가락으로 가벼이 훑으니, 후후하고 아주 작은 웃음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너무도 작고 작아 그만이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웃음소리. 그 소리에 맞추어 희미하게 올라간 입꼬리. 


 사랑스럽다.


 오직 그 단어만이 그의 안을 채워간다. 그저 웃을 뿐이었는데. 그저 아주 작은 웃음이었는데, 제 손길에 웃은 연인. 일어나는 것에 약한 그녀는 금방 정신이 맑아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어나 중얼거린 단어가 자신의 이름이다. 그것이 그에게 있어 행복한 순간 중 하나다. 지금의 이 순간이 그렇다. 적어도 900번, 어쩌면 그에 가까운 횟수, 어쩌면 그것보다 더 많은 횟수를 느끼는 순간일 터인데도 행복한 보로스다.거기다 보지도 않고, 제 손길에 웃었다. 행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몇 시에요?"

 


 행복함에 웃는 그에게 아직 잠에 취한 목소리가 묻는다. 보로스는 아까 봤던 시계를 다시 본다. 시침과 분침이 때마침 겹쳐진다. 12라는 숫자가 적힌 곳에 겹쳐진 순간. 이제는 쉽게 시간을 읽게 된 그가 자연스레 대답한다.



 "12시다. 아니, 0시인가."



 기다리던 순간. 입으로 꺼내서야 자각한 시간. 말해야만 할 것이 있다라는 사실을 보로스는 떠올린다. 이때 말하고 싶었던, 전하고 싶었던 말이 그에게 있다. 그렇기에 입을 연다. 누구도 아닌 그녀에게, 어느 때도 아닌 이 순간에 전하고 싶었다.



 "900일 동안 고마웠어요."

 "900일 동안 고마웠다."



 보로스는 제 귀를 의심했다. 인간의 귀보다 월등한 청각을 지닌 그가 잘못 들었을리가 없음에도 일순 의심했다. 자신이 잘못 들은게 아닐까하고. 너무도 똑같은 타이밍에, 똑같은 내용을 꺼낸 연인을 그는 바라본다. 

 그때 가는 팔이 뻗어왔다. 제법 더워진 날씨에 반팔을 입은 그녀의 새하얀 팔이 눈에 띄었다. 이윽고 그 팔은 그의 목에 둘러지더니 꼬옥하고 안는다. 그는 제 목을 감싸는 온기와 간지러움을 막지 않는다. 전부 보였음에도 인외의 존재는 움직이지 못했다. 더불어 작은 입술이 움직여 무언가를 속삭이는 것도 막지 못했다. 그저 들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너에게 평생 이기지 못하겠군."



 잠깐의 시간이 지나서야 보로스는 입을 연다. 기운이 쏙 빠진 듯한 웃음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오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그저 자신의 연인을 고쳐 안더니 자리에서 일어난다. 저벅저벅, 그 발걸음은 제법 묵직하고도 컸다. 그럼에도 신기할 정도로 소리가 나지 않았다. 더불어 흔들림도 없었다. 오로지 연인만을 위해 그도 모르게 터득한 발걸음이었다.


 또 깨우고 싶군.


 솔직한 심정이 그의 안에서 문장이 된다. 품 안에서 다시 조용한 연인을 깨우고 싶은 보로스다. 깨우고, 그대로 침대로 가서 사랑을 쏟아붓고 싶었다. 언어, 몸짓, 체온 전할 수 있는 수단을 모두 써서. 가슴 안에서 터질듯이 부푸는 감정을 전하고 싶은 보로스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다시 곤히 잠든 연인을 깨우기는 아무리 그라도 너무 미안하다. 비록 그는 쉽게 잠들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해도 말이다. 참는건 제법 잘한다고 생각했던 그인데, 품 안의 연인에 자주 이성을 시험받는다.


 

"오늘은 일도 없으니 푹 재워야지."



 금방 침실로 들어온 보로스는 연인을 제일 먼저 눕힌다. 최대한 조심히, 흔들림 없이 매트 위에 눕히자 그도 자연스레 그 옆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는 지긋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다. 닳을 정도라고, 아니 닳았다면 닳았다 할 정도로 보아온 얼굴일텐데도 마냥 좋은 그다. 너무 좋고도 소중해서 가끔 손대기가 아까울 정도였다.



 "이런 나날이 벌써 900일인가."



 900일... 짧다. 그의 솔직한 심정이 또 가슴 안에 퍼진다. 보로스가 살아온 세월에 비하면, 지구로 오는데 걸린 시간에 비하면 짧은 시간. 그럼에도 그 어느 시간들보다 소중하고도 행복했던 시간들. 단 한 존재만으로 채워져 온 시간들. 

 손을 다시 뻗는다. 무방비한 볼을 다시 손가락을 가벼이 훑는다. 이번엔 웃음소리도, 미소도 없다. 아무런 반응없이 숨소리만이 그의 귓가에 닿아왔다. 그럼에도 보로스는 또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는 팔을 뻗어 연인의 몸을 감싼다. 가까워진 거리에 그는 더욱 무방비한 작은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친다. 그저 닿을 뿐인 입맞춤은 제법 길었다. 겨우 그가 입술을 떼는 순간에도 여성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 모습 또한 사랑스러워 그는 미소를 유지한채 연인을 끌어안는다.

 두근두근. 귀를 기울이면 그녀의 고동소리가 그에게 들려왔다. 매일 체크하고, 잠들기 전 꼭 듣는 소리. 자신의 연인이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생명의 소리. 그녀가 자신의 곁에 있다는 증거. 그 증거를 들으며 보로스는 눈을 감는다. 분명 잠에 들지 못할 것을 앎에도 그는 눈을 감는다. 귓가에 연인의 고동소리가 울렸다. 거기에 아까의 연인의 말을 겹친다. 


 사랑해요. 보로스.


 몇 번을 들어도 행복함과 사랑스러움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아주 짧은 문장. 아니, 본래라면 문장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만큼의 구성이 아닐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의문. 그에게는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저 행복했다. 행복하다. 오로지 그뿐이다. 

 그리고 사랑스럽다. 품 안의 존재가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 어느 존재도 느끼게 해주지 못한 감정을 보로스는 억누른다. 온 힘을 다해 끌어안고 싶은 욕구를 참아낸다. 이때만큼 자신의 힘을 불편하다고 느끼지 못했던 그다. 그렇기에 대신 토해낸다. 아니, 속삭인다. 최대한 꾹꾹 눌러 담아서 품 안의 연인에게 속삭인다. 



 나도 사랑한다. 사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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