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아소/합작

[타로합작] 토토사유 - 달 (정방향)

サユラ (사유라) 2017. 12. 18. 01:17

* 드림 [타로합작]에 참여한 카미아소(신들의 악희)의 >토트 카도케우스< 드림글입니다

* 본래 드림캐 이름의 표기는 '토트' 지만, 오너에겐 '토토'로 굳어져 글에서는 토토라 적습니다.

* 오너가 짠 오리지널 엔딩입니다.

* 드림주(오너이입) 주의

 

 

 



 

 카드 - 달 (정방향)


 의미 - 불안정, 환혹, 현실 도피, 잠재하는 위험, 기만, 유예 없는 선택

 


 

 




 

 

 

(1)

 

선명하고도 깨끗한 푸른 하늘, 눈을 돌리면 쉽게 들어오는 녹색들, 바람이 불면 어디선가 꽃의 내음이 맡아져 왔다. 등 뒤에는 제법 훌륭한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그 날과 같다. 그 나날들과 같다. 함께 있던 그때와 똑같이 만들어 냈다. 하지만...

 

 

"어째서 너는 이곳에 없는 거냐."

 

 

어디를 가도, 아무리 불러도 찾을 수 없다. 모든 것을 똑같이 만들었음에도 보이지 않는다. 너만이 없다. 아아- 그렇군. 그 녀석들이 없군. 그래, 같이 이 세계에서 있던 녀석들이 없어서 너는 나오지 않는 거군. 정말이지, 손이 가는 네코다. 어쩔 수 없지. 사랑스런 너를 위한거니 특별히 불러다 주마.

 




 

 


 

(2)

 

흐음 제대로 전부 모였군. 거부하려고 했던 녀석도 있었지만 어차피 내 앞에서는 소용이 없지.

 

 

"토토님, 왜 모두를 이곳에 부른거죠? 그것도 강제적으로..."

"어차피 처음에도 반강제적이었다. 그러니 두 번째도 네 녀석들의 의견 따위 중요하지 않아."

"그런 말씀 너무하세요!"

"시끄럽다. 쿠사나기, 너와 다른 신들은 다시 이 모형정원의 학생이다. 예전처럼 지내라."

"네? 갑자기 무슨 말씀을... 토토님 이유를 말해주세요. 모두 무사히 졸업했잖아요!"

"나는 시끄럽다고 말했다. 감히 내 말에 거역하려는 거냐. 너희는 얌전히 다시 공부나 하면 되는거다."

"그런... 토토님! 잠깐만요! 토토님!"

 

 

여전히 담력이 큰 인간이군. 아니, 이제는 여신인가. 그래봐야 힘도 그리 없지만. 아직도 뒤에서 부르는 건가... 저러다가 조용해지겠지. 자, 학생들도 모였으니 다시 찾아보도록 할까. 그 네코는 산책을 좋아하니 어딘가에서 느긋하게 돌아다니고 있겠지. 찾아내면 어떻게 할까. 일단 웃는 얼굴을 지어보라고 한 뒤에 잘 했다며 키스해줄까. 그럼 녀석은 당황하겠지. 평소에는 표정관리 잘하면서 생각보다 잘 당황하는 녀석이니까. 아, 얼른 네코가 보고 싶군.

 

 

 

 

"어째서 찾지 못하는 거지."

 

 

오늘 하루 종일 찾았음에도 찾지 못한 결과에 절로 혀를 차버렸다. 제길... 왜 일이 이렇게 풀리지 않는 거지. 아니, 원래 그 녀석과 관련된 일들은 잘 풀리지는 않았지만, 이번엔 지독하다. 아무리 오래 걸려도 3일인데, 그 배는 넘는 기간 동안 한 번도 만날 수 없다니. 설마 그 녀석 또 무슨 일을 저지른 건가. 아니면 어디 다쳐서 숨기려고 다니는 건가. 거기다 남들 앞에서 아픈 기색을 보이지 않는 녀석이니... 어쩔 수 없지. 얼른 찾아내서 내가 봐주는 수밖에... 그리고 울고 있으면 안아줘야 한다. 무너지지 않도록...

 

 

 

 




(3)

 

"자습이다. 알아서 공부하도록."

"토토님 잠깐만요."

 

 

쯧. 그 녀석을 찾으러 가야하는데 방해하다니. 최근은 좀 조용하다 싶더니... 쿠사나기 유이. 이 녀석은 가끔 다른 녀석들보다 귀찮아. 올곧은 눈동자와 포기하지 않는 강함. 인간치고는 괜찮은 인간이었지. 지금은 여신이 되었지만... 그리고 녀석이 아끼던 소녀. 어쩔 수 없군. 한 번 무슨 내용인지 정도는 들어줄까.

 

 

"뭐냐."

"도대체 토토님은 이곳에서 무엇을 하시는 거죠?"

"네 녀석, 겨우 그걸 묻기 위해 내 시간을 허비하게 한 거냐?"

"겨우라니..."

 

 

시답지 않은거라 예상하기는 했으나 정말 바보 같은 질문이다. 들어준 내가 손해를 봤다. 이 녀석들은 내가 평소하고 있는 일이나 건내는 질문으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건가? 거기다 네코를 찾지도 않는 것 같고. 그렇게 녀석에게 잘 따르는 것 같더니 박정한 녀석들 같으니... 내 수업보다 즐겁게 듣던 수업이었으면서 이제는 흥미가 떨어진 거냐.

 

 

"네코를 찾고 있다."

"네?"

"두 번은 말하지 않는다."

 

 

얼빵한 표정을 짓는 쿠사나기와 신들을 냅두고 교실을 나온다. 오늘도 녀석을 찾아야 하는데... 도대체 뭐하고 다니는 건지. 찾아내면 체벌 확정이다. 그리고 한동안 떨어지지 말라고도 해야겠군.

 

 

 



 


(4)

 

빗소리인가... 그리 강하게 내리지 않는 모양이군. 근데 왠지 뭔가 허전한데...

 

 

"아, 혹시 깨신 걸까?"

 

 

익숙한 목소리. 아, 이건 녀석의 목소리군. 쯧, 피곤했던 건가. 눈 뜨기도 귀찮군. 그리고 좀 더 이 녀석의 혼잣말도 듣고 싶으니.

 

 

"안 깨시네... 그럼 더 볼 수 있겠다. 주무시는 얼굴."

"......"

"역시 잘 생기셨어. 신이라서 일까."

 

 

내가 자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어서 그런가. 언제나와는 조금 틀린 목소리 톤으로 얘기하는군. 더 부드럽고도 감정이 짙은 목소리다. 이대로 눈을 뜨지 않고 귀여운 수다를 들어야겠군.

 

 

"나 정말로 이 분이 좋은가봐.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해. 아픈데도 행복해."

 

 

절로 눈이 떠져 버렸다. 아프다는 말에 눈을 뜨지 않을 수 없다. 그 어느 존재보다 특별한 존재가 걱정되어서... 눈을 뜨니 눈앞에는 살짝 커진 눈동자가 보여온다. 달빛으로 밝혀진 시야 속에 그녀가 있다. 잠시 서로가 바라보고 있었을까, 네코는 내게 미소를 지어보인다.

 

 

"좋은 새벽이에요. 토토씨."

"왜 이런 시간에 일어나 있는 거냐."

"왠지 모르게 눈이 떠졌어요."

"내게 거짓말을 하려 하다니 배짱이 두둑하군."

 

 

마치 아침인사를 하듯이 건내져 오는 목소리는 부드럽다. 허나 내 질문에 답하는 목소리에 깃든 것은 미약한 거짓. 이 녀석은 내가 한 두 번 일어날 때의 모습을 본 줄 아는 건지. 거기다 눈이 살짝 붉게 충혈 되어서는... 울기까지 했나보군. 이 네코는 눈을 떼면 다치거나 울고 있으니 혼자 두기 싫어진다. 사실은 누군가의 온기를 원하는 주제에 그걸 부정해서 아파하고, 타인에겐 무른데도 스스로에겐 용서가 없는 녀석. 그래서 더더욱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바보 같은 인간. 아니 신이 되는 존재.

 

 

"또 그놈의 악몽인거냐."

"숨겼다고 화나신 건가요?"

"내가 그렇게 쪼잔한 신으로 보이는 거냐."

"네. 속도 은근 좁으시고, 자존심은 세고, 거기다 편식이 꽤 심하죠."

"오늘은 건방짐이 평소보다 심하군. 네코."

 

 

직접적인 내 질문에 대답이 아닌 질문으로 답하는 네코. 그것이 곧 내 짐작이 정답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허나 그 질문이 왠지 날 속 좁은 성격으로 보는 듯 하여 물으니 마치 준비한 듯이 딱딱 답한다. 다른 녀석들은 내겐 하지 못할 말들을 내뱉으면서도 네코는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아아 건방지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 안에는 나를 깔보는 기색은 없다. 역시 이 녀석은 다른 녀석들과 틀리다. 다른 인간들과도 존재들과도 틀리다. 앞으로 이 녀석과 비슷한 존재를 만나지 못하겠지. 이렇게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존재는 나타나지 않겠지.

 

 

"기분에 거슬렸다면 죄송해요."

"곧 바로 사과하는 자세는 좋군. 허나 늦었다."

"......"

 

 

그녀의 눈동자가 미약하게 흔들린다. 멋대로 두려운 상상을 하는 건가. 또 과거에 붙들리려는 건가. 아주 조금 나아졌나 싶었더니 아니었군. 어쩔 수 없는 상처라는 거겠지. 인간이나 신이나 마음의 병은 어찌할 수 없는 거니까.

 

 

"미안하다면 얼른 품안으로 돌아와라. 허전해서 다시 잠들 수 없다."

"......"

"설마 거역하려는 거냐."

"아니요. 오히려 영광이고도 기뻐요."

 

 

네코는 내 말에 아무런 말도 못하더니 이내 웃으면서 품안으로 파고든다. 가녀린 몸이 가슴에 닿자 두 팔로 끌어안는다. 그러자 느껴지는 온기와 희미한 향에 기분이 좋아진다. 어째서 단 한 존재만으로 이렇게 기분이 평온해지는 것인가. 그저 품 안에 끌어안고 있을 뿐인데 미소가 지어지는 것인가. 쓸데없는 의문이군. 내가 이 녀석을 사랑하니까... 란 답을 이미 얻었는데 무슨 의문인가.

 

 

"토토씨."

"뭐냐."

"저는 이곳에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뜬금없군."

"알아요. 하지만 저절로 입에서 나와 버렸어요. 이곳에 와서 모두와 당신을 만나 다행이라고 여겨요."

 

 

품 안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고요한 밤에 잘 어울려 기억에 잘 담아둔다. 네코의 말은 갑작스럽지만 나쁘지 않다.

 

 

"만약 모두와 만나지 않았더라면... 토토씨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당신이 저를 사랑해주지 않았더라면... 저는 계속 방 한 구석에서 울고 있었겠죠."

"......"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진정한 강함도 다정함도 모른 채... 혼자 울고 있었을 거예요."

"....."

 

 

들려온 말들에 가슴이 술렁인다. 어떻게 해야 할까. 품 안의 존재가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워 지금 이 순간을 멈추게 하면 될까. 이 녀석은 어디까지 나를 사랑이란 감정에 깊숙이 빠뜨리려는 걸까. 아니,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겠지. 나는 이렇게 내 자신이 미친게 아닐까 할 정도로 이 녀석에게 마음이 흘러넘치는데...

 

 

"네코, 고개를 들어봐라."

"......"

 

 

품에서 살짝 떨어뜨려 말하니 시킨 대로 고개를 드는 네코. 첫 만남 때보다 혈색이 좋아진 볼을 만지니 볼을 붉힌다. 예전이라면 없었을 반응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가 버린다. 그리고 사랑스럽다는 감정이 넘쳐 작은 입술에 키스한다. 말랑함과 온기를 느낀 후 떨어지자 네코의 눈꺼풀이 떠지는 모습이 보여온다. 그러면서 나를 바라보는데, 그 뿐인데도 수줍음이 느껴진다. 아, 정말 이 녀석은 이 모습도 유혹적이라는 걸 절대로 모를 거다.

 

 

"네 녀석은 나와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함께 할거다."

"......"

"그리고 반드시 네가 행복으로 인해 아프지 않도록 해주마."

"대단한 자신감이시군요."

"그만큼 너를 사랑하고, 각오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나 말고는 너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존재는 없다고 확신하니까다."

"......"

 

 

사랑을 모르면서도 알아서, 누구보다 사랑을 두려워하는 이 녀석을 사랑하게 된건 운명이겠지. 나도 사랑을 가장 알지만 동시에 모르기도 하니까. 사랑으로 얻는 진정한 기쁨도 아픔도 몰랐으니까. 그리고 그걸 알려준 존재는 이 녀석이다. 모순이 가득하며 인간의 약함도 강함도 아는 한 없이 인간다운 존재. 빛만을 찬양하는 녀석들과는 다른 어둠도 받아들일 줄 아는 존재. 비뚤어짐과 순수를 가진 존재. 이 지혜의 신을 홀린 유일한 존재. 사유라, 나의 사랑스러운 존재. 그리고 나 또한 너의 유일한 사랑이겠지. 그러니 나뿐인 거다. 너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존재는...

 

 

"토토씨 자의식 과잉이세요."

"뭐라고?"

"하지만... 맞는 말씀이세요. 당신뿐이죠. 저를 잡은 존재도, 저를 설득한 존재도, 그리고 사랑에 빠지게 만든 존재도..."

"것 봐라. 나뿐이잖나."

"그럼 기대할게요. 언젠가의 그날을..."

 

 

그렇게 말한 사유라는 달빛과 어울리는 미소를 짓는다. 아직 아픔이 남은, 그럼에도 행복이 가득한 미소를 지어낸다. 그 미소가 아름답고도 사랑스러워 가슴이 떨린다. 동시에 찢어지는 듯한 아픔과 무언가 흘러넘치는 듯한 벅참도 느낀다. 아아, 사유라... 너는 이렇게 내게 거짓말을 했었구나.

 

 

 

 




(5)

 

꽤나 커다랗고도 높은 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떤 녀석이...

 

 

"토토! 토토! 아침이야! 아침!!"

"...... 아누비스 내려가라."

"그치만 토토 일어날 시간이 지났는데도 일어나지 않았어! 거기다 아까부터 계속 불렀는데도 안 일어났잖아!"

"바보 같은 소리 하지마라. 이 내가 제 시간에 일어나지 않을 리가..."

 

 

눈을 뜨니 내 가슴 위에서 엎어져 꺙꺙 소리를 지르는 아누비스가 보여 왔다. 아, 이래서 가슴이 답답했던 건가. 거기다 내가 제 시간에 일어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시계를 보면 언제나처럼...

 

 

"아누비스, 네 녀석 시계에 무슨 짓을 한 거냐. 1시간이나 시간이 틀리잖아."

"아누비스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토토가 늦잠 잔거야."

"내가?"

"응응! 거기다 토토 울었어. 자면서 눈물을 흘렸어. 있지, 무서운 꿈 꾼 거야?"

"...... 늦잠은 넘어가더라도 이번에는 진짜 바보 같은 소리인거냐. 내가 무서운 꿈을 꿨을리도, 울리도 없..."

 

 

작은 탁상 시계의 바늘들은 맞춰놓은 시간을 넘어있다. 말도 안 되는군. 이 내가 늦잠이라고? 하아... 그래, 최근 네코를 찾아 다니는데 조금 피곤해진건가. 허나 내가 자면서 울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 거기다 악몽이라니. 그 꿈이 악몽일리 없다. 그 꿈속의 일들은 예전 진짜로 있었던, 네코와 행복한 순간인데 울리가 없잖나. 오히려 행복한 꿈이다.

 

 

"토토?! 괜찮아? 괜찮아?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어! 역시 어~~엄청! 무서운 꿈이었구나!"

"시끄럽다. 방에서 나가라."

"그치만 토토 울고 있..."

"아누비스."

"... 응."

 

 

내 말에 몇 번이고 뒤돌아보면서 방을 나간 아누비스. 그제서야 내 눈가를 만져본다.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원하지 않음에도 무언가 잘못된 것처럼 계속해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어째서지? 몸에는 이상이 없다. 괴로운 일 따위 없다. 아니, 네코를 찾고 있지 못한 상황이 조금 괴롭기는 하나 찾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런고로 울 정도의 일도 아니다. 헌데 왜 나는 울고 있는 거지? 왜 이렇게 가슴이 괴로운 거냐. 왜 녀석의 미소를 떠올리는데 이렇게도 아픈 거냐.

 

 

「그럼 기대할게요. 언젠가의 그날을...」

 

 

꿈에서, 그 날의 네코는 내게 그런 말을 했다. 녀석은 나와 같은 마음이라고 해줬었다. 나와 함께하고 싶다고 했었단 말이다. 그것이 너무도 기쁘고도 행복했다. 함께하는 순간순간이 즐겁고, 충족스러웠다. 네코의 행복한 미소를 볼 때마다 사랑한다는 감정이 넘쳐흐르던 나날이었다. 헌데 왜 나는 꿈속에서, 그리고 지금 아픔을 느끼는 거냐. 아픔과 벅참이 너무도 강해 공허하다. 공허하다? 말도 안 되는... 그래, 이건 네코가 내 곁에 없어서다. 녀석을 만나지 못해 초조한 거다. 녀석이 없어서 허전한 거다. 얼른 찾아야 한다. 내가 사랑하는 유일한 존재를...

 

 

 





(6)

 

오늘은 날이 더우니 그늘 쪽을 중심으로 찾는게 좋을 것 같군. 아니, 어쩌면 더위에 약한 녀석이니 도서관으로 피신해올지도 모르겠군.

 

 

"또 네코 찾기인가?"

"음침이냐. 그렇다면?"

 

 

날 불러 세운 음침녀석. 이외군. 이 녀석이 먼저 내게 말을 걸다니. 흐음- 또 화단을 가꾸고 있는 건가. 그러고 보니 네코도 이 녀석이 가꾸는 화단은 예쁘다고 얘기했었지. 라벤더, 장미, 해바라기, 안개꽃, 산수국, 찔레꽃. 여름이라서 전부 여름 꽃인가. 그리고 저건...

 

 

"응? 카렌듈라가 마음에 든 건가? 이외군."

"다른 곳에서는 금잔화라고 부르지. 추억이 있는 꽃이다."

"...... 네 입에서 그런 단어가 나올 줄이야. 우리들을 이곳에 억지로 데려온 남자로는 보이지 않아."

"비꼬는 거냐."

"글쎄. 마음에 든다면 한 송이 줄까?"

"저쪽에 가장 노란 녀석으로 내놓아라."

"이 윗시선은 여전하군."

 

 

음침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꽃을 화분에 심어서 건낸다. 딱히 화분이 없더라도 내 힘이면 유지할 수 있다만... 뭐 상관없나. 그 녀석이라면 이쪽을 더 좋아할 것 같으니. 네코에게 주면 오랜만이라면서 웃겠지. 그리고 내가 준 그 꽃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 있겠지.

 

 

"그렇게 그 꽃에 좋은 추억이 있는 건가?"

"좋은 추억인건 어떻게 안거냐."

"그건 네가 그 꽃을 보며 웃었으니까."

"웃었다?"

"그래. 너답지 않은 부드러운 미소를."

 

 

칫, 음침에게 틈을 보여 버렸군. 하지만 그만큼 내게 이 꽃에 대한 추억은 소중하다는 얘기겠지. 아직 네코와 연인이 되기 전, 그렇게도 내 호의를 거부하던 녀석이 이 꽃에 어울린다는 말에 웃어줬으니까. 비록 내가 줬다는 걸 몰랐다고 하나, 녀석은 그때 제대로 기쁘다는 미소를 지었으니까. 이 꽃은 꽤나 특별한 꽃인거지. 아아, 또 그때의 미소가 보고 싶군.

 

 

"네코가 웃어줬던 꽃이니까다."

"네코가?"

"뭐냐, 그 이외란 얼굴은. 너도 그 녀석이 꽃을 좋아하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

"뭐?"

 

 

한심한 얼굴이군. 설마 이 녀석 네코가 꽃을 좋아하는 것도 몰랐던 건가. 친구라고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더니... 이런, 시간을 너무 지체했어. 네코를 찾아야 하는데 이 녀석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다니.

 

 

"나는 이만 가겠다."

"어,어..."

"그리고 화단 잘 가꾸어 둬라. 네코가 보면 좋아할 거다. 아무리 음침한 너라도 친구의 미소는 좋아하겠지."

"도대체 무슨 소리를..."

 

 

시치미를 떼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어리버리해서 인지 명부의 신이라는 녀석은 바보 같은 얼굴을 짓는다. 나에게는 상관없지만. 내게 지금 중요한 일은 숨어 다니는 네코를 찾아다니는 거다. 모처럼 녀석이 좋아할 꽃도 있으니, 오늘 찾으면 좋겠군.

 

 

 





 

(7)

 

어째서지? 왜냐?! 왜 찾을 수 없는 거냔 말이다!!

 

 

"제우스, 얼른 바른대로 불어라."

"토토. 다짜고짜 찾아와서는 무슨 말이냐."

"네가 또 네코를 숨겨주고 있는걸 알고 있다. 자, 어서 네코가 있는 곳을 말해라."

 

 

모형정원의 관리를 시킨 후, 보지 않았던 제우스를 찾아왔다. 녀석은 내 말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짓는다. 이 녀석 설마 나를 속이려는 건가. 저번처럼 내가 속아 줄거라 여기는 거냐. 건방진... 감히 내게...

 

 

"아픈 꼴을 보기 싫다면 순순히 얘기 하는게 좋을거다. 제 아무리 너라도 내게는 이기기 힘들거란 걸 알텐데?"

"내 힘이 너에게 미치지 못하는 건 잘 안다. 허나 나는 얘기해줄 수 있는게 없다. 나는 무엇도 숨겨주고 있지 않으니까."

"시치미 떼지마라. 이 내가 네코를 찾지 못한다면 이유는 하나뿐이다. 이 모형정원의 관리를 맡고 있는, 힘을 제한 받지 않은 네가 숨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이 녀석이 숨겨주고 있음이 확실하다. 제 아무리 신의 힘을 쓸 수 있는 네코라도 아직 신이 되지 못했다. 나를 상대로 제대로 숨을 수 없을 터다. 그런 녀석이 내 눈과 손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이유는 이 녀석이 숨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일단 진정해라. 너답지 않게 너무 흥분했군."

"나는 지금 진정한 상태다."

"아니, 너는 지금 언제나의 네가 아니다. 대체 무엇이 너를 그렇게 초조하게 만든 거냐."

 

 

제우스 녀석... 시치미를 떼다 못해 같잖은 연기를 하는군. 마치 네코를 모르는 듯한 태도를 짓다니. 그런다고 나는 속지 않는다. 반드시 찾아 낼 거다. 녀석이 없는 시간은 이제 진절머리가 난단 말이다. 녀석의 얼굴이 보고 싶고, 목소리가 듣고 싶고, 그 온기를 확인하고 싶은데... 아아 제길. 어쩔 수 없군.

 

 

"네 녀석이 계속 그런 태도라면 내게도 생각이 있다."

"...?!"

"이제 한계다. 네코 녀석은 계속 숨어 다녀 보이지 않고, 너는 같잖은 연기까지 하면서 네코를 숨기고, 다른 녀석들은 네코를 찾지도 않으며 태평하게 지낸다. 나를 분노하게 만들고 싶어서 작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그렇다면 나는 힘을 쓸 수밖에."

"토토 잠깐. 진정해라. 나는 정말로 그 네코란 존재가 어딨는지 모른단 말이다."

"끈질기군. 그리스 신화의 최고의 신이란 자가 그런 모습이라니. 네코가 어떻게 말한 건지 모르겠으나, 이런 상황에서도 숨기려는 거냐."

"나는 정말 모른다!"

"...... 나는 너에게 기회를 줬다. 제우스. 허나 너는 그 기회를 내친 거다."

 

 

신의 모습으로 돌아온 나를 본 제우스는 당황한 기색이 뚜렷하다. 헌데도 아직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 한심하고도 어리석은 녀석. 내 앞에서 감히 아직도 거짓을 고하다니. 좋다, 감히 나에게 내 사랑하는 존재를 못 찾게 한 벌을 주도록 하지. 그리고 그 녀석이 잘 해줬음에도 찾기는커녕 원래 세계로 보내라고 시끄럽게 구는 녀석들에게도... 아아, 그래. 이 간단한 방법이 있었군. 나와 네코만을 제외한 모든 것을 소멸시키면 되겠군. 나중에 그 녀석이 불평할지... 아니, 소멸하면 어차피 네코도 다른 녀석들을 기억하지 못 할테니 상관없나.

 

 

"토토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소멸이다. 진작에 이 방법을 썼으면 됐던 거다. 나와 네코를 제외한 모든 것을 소멸시키면... 그 녀석을 단번에 찾을 수 있겠지."

"바보 같은! 겨우 그런 이유로 세계를 소멸시키려는 거냐!"

"겨우...? 입 조심해라. 그 녀석이 내게 있어 무슨 존재인지는 너도 알 터다. 헌데 겨우라니... 네 녀석 고통스러운 끝을 바라는 거냐?"

 

 

어리석은 신 같으니. 한 마디의 잘못된 말로 고통을 받는 길로 들어섰군. 제우스, 나는 네 녀석이 이토록 어리석은 선택을 할 줄은 몰랐다. 너는 태평하고도 바보스러운 다른 신들과 조금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나 보군.

 

 

"토토... 몇 번이고 나는 이렇게 답할 거다. 네가 찾는 네코란 존재를 숨겨주고 있지 않다."

"...... 그럼 이 내가 백보는 양보해서 그건 믿어주마. 하지만 그 네코를 모른다는 태도는 뭐냐. 그것도 일종에 연기냐?"

"연기? 아니다. 나는 정말로 모른다. 그리고 아마 이 모형정원과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가 모를거다."

"웃기지도 않는 농담은 집어 치워라."

 

 

제우스, 기껏 이 내가 재미없는 얘기를 들어줬는데 최악의 농담을 얘기하는 거냐. 아무도 네코를 모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이 내가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네 녀석도, 그 녀석들도 기억할 터다. 1년이란 기간 동안 모형정원에서 함께 지냈으면서 모른다? 이렇게 재미없는 농담은 처음이군.

 

 

"농담이 아니다. 토토..."

"......"

"계속 생각했다. 네가 말하는 네코가 누구인지, 네가 다른 녀석들에게 물으며 찾는 존재에 대해서... 허나 떠오르지 않았다."

"뭐?"

"아니, 정확하게 얘기해야겠군. 나도 곧 잊어버릴 거다. 네가 찾는 존재에 대한 희미한 기억을..."

"제우스, 네 녀석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토토... 너는 어디까지 기억하는거지? 아니, 어디서부터 스스로 기억을 조작한 거냐."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제우스 녀석은 잊어버린다고 하고 있다. 거기다 조작? 이 내가, 지혜의 신이자 기록의 신이 내가 스스로의 기억을 조작했다? 바보 같은... 역사는 바른대로 기억하고도 그 실체를 봐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 역사들을 정확하게 기억해 왔다. 어느 하나 거짓 없이, 비틀림 없이...

 

 

「저는 당신에게 일방적인 이별을 드릴 거니까요」

「토토씨, 고마워요 이런 저를 계속 사랑한다고 해줘서, 붙잡는다고 해주셔서...」

 

 

뭐냐, 방금의 장면은... 사유라? 사유라가 내게 그런 말을 했었다고? 거기다 그 복장은 분명 처음에... 아니, 그것보다 방금건 언제의 기억이지? 아냐, 나는 이런 기억을 가지지 않았다. 이별이라니... 모른다. 이별이라니...

 

 

"무언가 떠올랐나 보군."

"네 녀석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아니면 내가 모르는 것을 아는 거냐."

"나는 너에게 무엇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틀리다. 아마 나는 네가 잊어버린 척하는 것을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희미하지만 기억하는 걸거다."

"제대로 설명해라."

 

 

머리가 미약하지만 아파온다. 이 내가 두통이라니...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내가 잊어버린 척을 한다는 말이 신경 쓰인다. 그럴 리가 없지만, 위화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잠깐의 정적이 지난 후 제우스가 입을 연다.

 

 

"토토, 일단 신들은 모두 졸업을 했다. 그리고 모형정원은 그 역할이 끝나 붕괴했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다."

"헌데 너는 모형정원을 재현했고, 거기에 나를 비롯한 신들을 불러냈다. 어째서지?"

"네코를 찾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 존재를 아직도 찾지 못했다. 이유를 아는가?"

"그건 네코가 또 숨어 다녀서..."

"이상하지 않나? 너만한 신이 이 작은 상자 속에서 하나의 존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확실히 이상하다. 네코가 아무리 애써도 몇 달이고 내게서 도망칠 수 없다. 하지만 운이 좋아서 그런걸 수도 있다. 그럴거다. 이제는 위치추적이 가능한 팔찌도 없으니까, 쉽게 못 찾는 것일 뿐이다.

 

 

"토토, 이런 가설은 세워지지 않는 건가? 그 네코란 존재가 존재하지 않다는..."

"네 녀석... 말을 잘 골라 내뱉어라."

"너야말로 눈을 떠라. 내 희미한 기억과 추측이 맞다면... 그 네코라 불린 존재는 모형정원이 붕괴한 날, 소멸한 거다."

 

 

소멸? 사유라가? 말도 안 되는.... 그럴리가 없다. 그 녀석은 그런 길을 선택할리가 없다. 왜냐하면 나를 사랑한다고 했었다. 나와 연인이 되어 행복하게 웃었다. 그리고 기대한다고 했었단 말이다. 내가 아픔 없이 행복을 느끼게 해줄 날을... 그렇게 말한 녀석이 소멸을 했다. 바보 같은... 바보 같은...

 

 

"제우스, 그건 설명이 안 된다. 소멸은 붕괴와 틀린거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소멸한 존재를 기억하는 존재는 없..."

"그 특별한 경우가 우리 둘일거다. 토토."

"......"

"너는 그 존재와 특별한 관계에다가 네 말대로 너는 기록의 신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너는 기억하는 거다. 그리고 나는 아마 모형정원을 만든 창조주이기 때문일거다."

"......"

"확실하지 않지만, 나는 그 존재와 무언가 계약을 했었던 같다. 그리고 그 존재는 모형정원에 커다란 영향을 줬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아직까지 존재했었다는 것만을 기억하는 거다."

"아직까지란 말은..."

"... 그래, 나도 곧 잊겠지. 그 존재가 존재했단 사실조차도 모르게 되겠지. 소멸은 그런 거니까. 그 존재가 있었단 사실조차 사라지는 잔인한 현상. 무엇하나 남지 않는 무서운 힘이지."

 

 

부정하고 싶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있을 수 있는 가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게 그 녀석이 소멸했다는 걸 인정하란 거냐. 내게 있어 소중하고도 사랑하는 존재가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라는 거냐.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녀석은 이곳에 있다. 이 모형정원에... 그러니 얼른 찾아야....

 

 

"토토! 토토!"

"아누비스! 노크 없이 들어가면 안 돼!"

"네 녀석들 중요한 얘기 중이다. 방해하지 마라."

"토토! 아누비스가 찾았어! 네코!"

"뭐?"

 

 

혼란스러운 가운데 학원장실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누비스와 쿠사나기. 얘기에 방해가 되기에 내쫓을려고 했으나 들려온 아누비스의 천진난만한 목소리. 그 목소리에 기대감을 갖고 시선을 옮긴다. 허나 거기엔 그녀가 없다. 있는 것은 고양이 한 마리다.

 

 

"뭐냐, 그건."

"네코!"

"보면 안다."

"에? 토토 기쁘지 않아? 이 네코 토토가 찾는 네코가 틀림없는걸."

"아니다. 어떻게 들었길래 그런 동물이 내가 찾는 네코(ねこ)라고 생각한 거냐."

"에~ 이 애가 맞아! 검은 털에 연갈색의 눈동자!"

"아니다. 내가 찾는 건 네코란 말이다."

"그~러~니~까~ 고양이(ねこ)를 데려온 거야! 토토가 말한 생김새에 고양이! 아누비스 잘했지? 헤헤."

 

 

이 녀석은 조금 바보 같은 구석이 있지만, 그건 순수함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바보인건가. 아니, 잠깐... 아무리 이 녀석이라도 진짜 바보는 아니다. 그렇다면 설마... 설마...

 

 

"아누비스, 시와가리 사유라라는 이름 아는 거냐."

"시와..가리 사유라? 그거 누구야?"

"...... 장난치지 마라."

"토토, 이상해! 그거 여기 오기 전에도 말했잖아! 아누비스 장난치지 않았어! 아누비스 그런 이름 몰라!"

 

 

내가 여기 오기 전에 말했다? 무슨 소리지. 나는 기억에 없는데... 나는 아누비스에게 이런 질문을 한 기억이 없단 말이다. 하지만 이 녀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녀석이다. 그렇다면...

 

 

"토토님, 고양이를 찾는 거라면 도와드릴게요. 모두가 도와줄 거예요."

"쿠사나기. 너도 모르는거냐. 기억하지 못하는 거냐. 사유라에 대해..."

"언제 만난건지 모르지만, 죄송합니다. 기억나지 않아요."

"......"

 

 

이 녀석도 거짓말을 하는 성격은 아니다. 이 눈도 거짓을 고하는 눈이 아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나만이 기억하고 있다? 아니, 제우스의 얘기까지 더해진다면 나는 잊어 버린게 있다는 거다. 그건...

 

 

「죄송해요. 토토씨... 저를 원망해도 좋아요. 저를 미워해도 좋아요.」

「이별이에요. 토토씨.」

 

 

아... 아아 그렇군. 그런 거군. 이미 늦어버린 거였군. 이미 그때부터 네코 너는.... 그리고 나도 그때부터....

 

 

"이제 됐다. 찾지 않아도 된다."

"네? 토토님, 그게 무슨."

"찾을 필요가 없어졌다. 그런고로 네 녀석들 전부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 주마."

"정말인가요?"

"그래. 내 연극에 휘말리게 해서 미안하다."

"토토님?"

 

 

쿠사나기는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눈에 띄도록 기뻐한다. 아아, 네코가 봤다면 귀엽다고 말할 미소다. 허나 이제 상관없지. 답지 않은 사과를 하는 내게 의아해하는 쿠사나기 앞을 살며시 손을 스친다. 그러자 사라진 그녀에 아누비스는 놀란다. 정말이지, 하나하나에 반응이 커다란 녀석이다.

 

 

"에? 토토! 유이가 없어졌어!"

"소란 떨지마라. 원래 있던 신의 세계로 보낸거다."

"그런거야?"

"너도 이집트 세계로 돌려보내주마."

"토토는?"

 

 

소란스러운 녀석. 그리고 이럴 때 묘하게 감이 좋은 녀석. 귀찮은 애 돌보기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이 녀석 덕분에 즐거운 일들도 꽤 있었지. 그리고 네코랑 다른 녀석들을 만나 이 녀석도 나름 성장했었지.

 

 

"토토가 머리 쓰담쓰담 해주는거 오랜만~ 아누비스 기분 좋아."

"아누비스 건강해라. 조금 더 지식도 쌓고, 너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토토?"

"지금까지 고마웠다."

"토..!"

 

 

아누비스의 부름을 끝까지 듣지 않고 나는 이집트 세계로 돌려보낸다. 새삼이지만 많이도 컸군. 예전에는 작았는데... 다른 녀석들은 이미 돌려보냈으니 남은건...

 

 

"모든걸 떠올린 건가. 토토."

"그래, 네 추측이 맞았다. 제우스. 이미 모든게 끝나 있었던 거다."

"...... 이제 어떡할거지?"

"걱정마라. 세계소멸은 하지 않을 거다."

"내가 묻는 건 그게 아니다. 너는 어떡할거냐 라는 소리다."

"네 녀석이 알려줄 의무도, 필요성도 없다."

"까탈스러운 녀석."

"남이사다. 헌데 묻고 싶은게 있다. 너라면 크로노스랑 짜서 이곳으로부터 나갈 수 있었을 텐데. 왜 하지 않은 거지?"

"죄책감이다. 너에게가 아닌 그 누군가에게 느끼는 죄책감으로 남아 있었다."

"천하의 제우스가 죄책감인가. 웃긴 일이군."

"동감이다."

 

 

 






 

(8)

 

제우스 녀석도 갔군. 조용하디. 하긴 이제 나 밖에 없는 상자 안이니...

 

 

"너는 마지막에 혼자였나? 네코..."

 

 

아니, 녀석은 혼자가 아니었겠군. 그 녀석을 선택한 '모형정원'과 함께였겠지. 허나 소멸한건 아마 네코 뿐이겠지. 모형정원은 소멸이나 아니라 붕괴. 모형정원 자체에 대한 기억도 일들도 다른 녀석들 모두 기억하고 있었으니...

 

 

"이제서야 파악해봐야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그래,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다. 무엇이 소용 있나. 네가 없는데...

 

 

"네코, 너는 정말 잔인한 녀석이다. 그리고 정말로 신을 미치게 만들었구나."

 

 

그렇게도 너를 사랑한다고, 놓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도... 너는 나를 뿌리치고 사라졌다. 하하하, 정말이지. 뭐가 사랑이냐, 뭐가 영원이냐. 뭐가 기대하고 있겠다는 거냐. 너는 내게 거짓말을 한 거잖냐. 그리고 나도 구제할 길이 없는 바보였다. 너를 잃은 현실이 싫어, 너를 기억하면서도 잊고 있었다. 찾을 수 없는 너를 찾아다녔다. 그 모형정원과 똑같은 상자를 만들어 내어, 다른 녀석들까지 끌여 들어서 너를 찾아다녔다. 그게 미친게 아니면 무엇일까.

 

 

"그리고 꿈속에서도 너만을 생각했지. 너의 웃는 얼굴을 보았지."

 

 

나는 모형정원을 느긋하게 걸어 다닌다. 고요한 상자 속은 그저 모형이다. 생명력도, 감정도, 온기도 무엇 하나 없다. 그저 모형일 뿐이다. 그저 겉만 같은 모형의 세계다. 지금 보이는 밤하늘조차 결국은 모형이다.

 

 

"그래도 너는 이런 모형이더라도, 예쁘다고 바라보며 웃었겠지."

 

 

너는 그런 녀석이지. 만들어진 세계더라도 아름답다며 웃었었지. 그리고 나는 너를 떠올리며 이렇게 눈물을 흘리고 있다. 네가 없어 괴로워 울어버린다. 왜 너는 여기 없는 거냐. 왜 그렇게 혼자 사라진 거냐. 나를 두고 간 거냐. 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외롭고도 안타깝고도 애틋해서 눈물이 멈추지 않는 밤은 없었겠지. 허나 늦어버린 거지. 늦어버린 거다. 모든 게 다...

 

 

「괜찮을 거예요. 당신과 제가 함께 한 시간은, 당신에게 있어 몇 초도 안 되는 희미한 세계니까. 그러니까 부디 행복해지세요.」

 

"뭐가 괜찮다는 거냐. 뭐가 행복지세요 냐. 그래, 너와 함께 한 시간은 신으로 살아온 긴 시간동안 몇 초도 안 될 만큼 짧은 세계였다."

 

 

하지만 희미하지 않았다. 오히려 찬란하고도 따스한 세계였다. 그 어느 시간보다 행복한 시간이었단 말이다. 마치 너와의 행복한 시간은 한여름에 내린 눈처럼 덧없는 기적 같았다. 그래, 기적이지. 너는 내 운명이자 기적이었던 거다. 허나 그 기적도 녹아서 사라져 버린거다. 나는 너와의 그 시간이자 기적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희생할 각오도 있었는데, 너는 네 이기심으로 혼자 가버렸다. 그리고 네가 없는데 어떻게 행복해지라는 거냐.

 

 

"나는 너의 뭐였던 거냐. 너는 내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는데, 나는 너의 뭐였던 거냐."

 

「아니요. 사랑하기에, 너무도 사랑하기에... 저는 당신에게 있어 잔인하고도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거예요.」

 

 

......아아, 이제 기억 따위 필요 없다. 이대로 영원히 잠들고 싶다. 이렇게 괴로운데도 너만 떠오르다니... 정말로 미친 거다. 그리고 잠들어도 너는 계속 보이겠지. 너는 꿈속에서도 웃고 있겠지. 나는 꿈에서도 너를 잊지 못할 거다.

 

 

"나는 너와 연인이 되어 그저 함께 침대에서 누워 잠들었던 밤. 처음일 정도로 행복해서 웃었다. 너는 어땠냐."

 

 

그리고 아침에 깨어나 내 품안에서 햇살을 받으며 잠든 너를 보았을 때, 처음으로 태어나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었다. 너는 어땠지? 네코... 너는 나를 만나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는 거냐? 태어난 사실에 괴로워하던 너는...

 

 

"바보 같군. 없는 존재에게 계속 대화를 건내고 있으니."

 

 

이제 됐다. 겨울의 눈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이제는 봄이든, 여름이든 계절 따위 필요 없다.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다. 네가 없는 계절은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을 테니까. 여름에 피는 그 꽃의 이름은 잊어버려도 괜찮다. 네가 웃어준 그 노란 꽃의 이름 따위 이제 잊어버린다 해도 상관없다. 너와의 기억은 지금, 한겨울에 핀 꽃처럼 덧없는 거다. 네가 내 곁에 영원히 돌아올 수 없다면 덧없고도 필요 없는 것이다.

 

 

"끝을 내야겠군. 이제 모든 게 다 필요 없으니."

 

 

서서히, 그러면서도 빠르게 만들어진 세계가 붕괴되어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무엇도 없는 세계가 무너진다. 네가 없는 세계가 무너져 소멸로 이어진다. 아아- 너는 이런 감각을 느끼며 눈을 감았던 거냐. 울면서 내게 사과하면서 너도 이렇게 사라져 갔던 거냐.

 

 

"... 만약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다시 너를 느껴보고 싶다. 너에게 닿고 싶다. 너를 보고 싶다."

 

 

사라지는 이 순간에도 너만을 떠올린다. 그렇게도 신으로서 오랜 시간을 지내 왔는데, 끝이란 순간까지 너만을 떠올리고 있다. 눈을 감고 있는 그곳에 네가 있다. 이제 어디에도 없을 네가 있다. 네코, 너는 정말 죄인이다. 위대한 신을 이렇게 사랑으로 인해 사라지게 만드는 죄인이다. 허나 나는 그런 너라도... 오직 너만을 영원히, 언제까지라도...

 

 

「사랑해요, 토토씨...」

 

"사랑한다. 사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