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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합작] 보로사유 - 약속, 그리고 너의 곁으로

サユラ (사유라) 2017. 7. 15. 23:50

드림 [죽음합작] 에 참여한 원펀맨의 >보로스< 드림글입니다

* 오리주(드림주)/오너이입有

* 캐릭에 대한 개인적인 성격파악이나 구성된 부분이 있어 원작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드림커플이 아닌 다른 캐릭터의 원작에 없던 설정(미래의 모습)이 있습니다. 혹시라도 불편하실지도 모르기에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아주아주 멋지고 훌륭하신 존잘님들의 작품이 모인 홈페이지는 여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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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도 선명한 푸른 하늘, 그 푸름과 다른 푸름을 지닌 바다가 보이는 언덕이자 절벽. 그곳의 유일한 커다란 나무의 옆엔 누군가가 서 있다. 언덕은 이름 모를 꽃들로 덮여 꽃향기로 가득하였고, 절벽에 선 누군가는 그 향과 바다의 소금기 섞인 바람을 함께 마신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생각보다 괜찮은 조합이라고 일순 생각하면서 입을 연다.

 

 

"잘 지냈나?"

 

 

누구도 없을 터인데 누군가는 질문을 건낸다. 누군가의 외모는 인간으로 보기에는 힘들었다. 허나 지금의 인류에게 있어 하나뿐인 눈이라거나 푸른 피부, 뾰족한 귀 등은 그리 낯선 외모가 아니었다. 오히려 남자는 사람들과 다른 존재들에게 있어 꽤나 유명한 인물이다. 아니, 인외의 존재다. '보로스'란 이름은 일반 시민이든 아니든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힘이 있는 자다. 그런 그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안부를 묻는다. 부드러움이 짙은 시선과 목소리로 다정하게 묻는다.

 

 

"일주일 만인가... 너무 오래 오지 않아서 혹시 씁쓸하지 않았나?"

 

 

답변이 없음에도 그는 계속 질문을 건낸다. 들려오는 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의 소리뿐... 하지만 왠지 그 소리에 희미한 미소를 짓는 보로스다. 그리고는 자리에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잠시 풍경을 본 그는 다시 입을 연다.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현재 지구에는 외계인 녀석들이 많이 이주했다. 물론 우주로도... 이제야 내가 태어난 별도 발견했다더군."

 

 

담담한 듯 하면서 어딘지 들뜬 목소리가 보고하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향해 그는 다른 이에게 하지 않는 행동을 한다. 정말 듣고 있는지도 확인할 수 없음에도 혼자인 그는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히어로들도 많이 바뀌었지만, 역시 사이타마 같은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뭐, 얼마 전까지 제자인 사이보그가... 아, 너에게 보고할 때는 제대로 이름을 부르기로 했지. 그러니까 제노스가 있었지만... 5일 전에 타계했다. 쉬고 싶다더군. 하긴 300년 넘게 살았으니, 인간치고는 오래 산 녀석이다. 쉬고 싶은게 당연한건가."

 

 

보로스는 5일 전, 사이타마의 제자로서 오랜 시간을 히어로로 활약한 제노스와 얘기를 나누었다. 별거 아닌 얘기들만 나누었더라도 다시 생각해보면 나름 즐거운 대화였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보고하는 인물이 기억하는 히어로들 중 마지막이었다. 생전에 만난 히어로들 중 마지막으로 죽은 인물이다.

 

 

"네 얘기도 나누었다. 그 녀석 영상까지 보여주더군.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지만, 새삼 영상으로 본... 우리가 결혼하기 전의 네 모습은 아름다웠다. 로라와 스유는 그걸 보고 아주 흥분하면서 자료를 달라고 난리를 쳤었다. 다 큰 녀석들이 한 순간 아이처럼 보이더군."

 

 

그날의 일들을 떠올린 그는 자연스럽게 코웃음 소리를 내면서 웃는다. 척 보아도 즐거움이 가득한 그 표정은 누군가가 보았다면 흐뭇하게 바라보았을 모습이었다. 허나 그 인물은 그 자리에 없었으며, 이미 오래 전부터 그의 옆에 없었다. 그렇기에 즐거움 뒤에 쓸쓸함이 드리워진다.

 

 

"녀석들은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 지내고 있다. 네가 바라던 것과 완벽하게 비슷하지는 않지만... 네가 본다면 분명 웃을 수 있을 만큼 말이지."

 

 

보로스는 자식인 로라와 스유에 대해 떠올린다.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는 로라, 이미 한번 연인을 떠나보냈지만 새로운 사랑을 하고 있는 스유. 두 아이가 힘들거나 괴로움보다는 나름의 행복한 삶을 살고 있어, 두 아이의 아버지인 그는 안심하고 있다. 그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기만 했다. 하지만 간절히 보고 싶은 존재는 곁에 없다. 설령 볼 수 없는 모습이더라도 있는지에 대해 알 수가 없다.

 

 

"네가 죽은지 이제 200년이 넘었다. 사유라... 보고 싶다. 네가 너무도 보고 싶다."

 

 

현재 지구의 어느 누구보다 강한 존재는 애절한 목소리로 애원한다. 그에게 새로운 삶을 준, 그의 삶의 이유를 준, 그가 유일하게 이성으로 사랑한 존재를... 사유라를 부른다. 기억 속과 사진 속등에 남은 그녀를 그리워한다. 200년 전의 깨어날 수 없는 잠에 빠져, 새하얀 가루가 되어 그가 서 있는 절벽에 흩뿌려진 이를 보로스는 부른다.

 

 

"200년... 나는 그날의 약속을 지켜왔다."

 

 

그의 커다란 눈이 감겨진다. 어두워지는 시야 속에서 선명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것은 그가 절대로 잊지 않은 날의 기억이자, 추억, 약속이었다.

 

 

 

 

***

 

 

 

 

익숙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보로스를 방 안에 있던 누군가가 반긴다. 자신을 보자, 그녀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에 보로스는 안도감과 기쁨을 느낀다. 그는 그녀가 앉아있는 침대의 옆에 앉았고, 자연스레 손을 꼬옥 잡아준다.

 

 

"불렀나?"

"네."

"애들과는 더 얘기하지 않아도 되는건가?"

"당신과 얘기하고 싶어졌어요."

"사실 나도 너와 더 얘기하고 싶었다."

 

 

보로스는 변함없는 연갈색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질문은 건낸다. 그것에 답하는 사유라의 입 주변에는 옛날에는 없던 주름이 자리잡고 있었다. 나즉한 목소리 또한 예전과는 미묘하게 달라졌다. 푸른 눈동자에 비친 모습은 세월을 지내 나이가 든 아내의 모습이다. 허나 그녀가 지녔던 특유의 분위기는 변화가 없었다. 부드러움도, 따스함도... 사유라란 그녀 그대로였다.

 

 

"너는 정말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구나."

"저 이제 100살은 거뜬히 넘는 할머니인데요?"

"네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내게는 아름답다."

"보로스도 그대로세요."

"그리고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하고 있지."

 

 

자신을 향한 그의 말에 사유라는 질문으로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누군가가 들었다면 놀랐을 그녀의 질문. 사유라의 모습은 아무리 많아도 7,80정도의 연세로 보였다. 허나 보로스는 그저 100년동안 변함없던 말을 건낸다. 그것에 작은 웃음소리를 흘리는 아내에 남편은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 눈은 거의 깜박이지도 않았다. 마치 그 깜박이는 시간마저 아까운 듯 하다는 모습에 오히려 여유를 부리는 쪽은 그녀다.

 

 

"정말이지. 우리 남편은 절 너무 사랑한다니까요."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잖나. "

"잘 알죠. 그래서 당신을 만난 후, 이제까지 행복하게 살아왔어요."

 

 

그녀는 일부러 언제나 보다 밝은 톤으로 누군가가 들었으면 배 아플 소리를 한다. 거기다 상대방은 맞장구까지 쳐주어 사유라의 미소는 더욱 짙어진다. 행복함이 가득한 미소에 보로스는 그제야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보인다. 그렇게 한동안 부부 사이엔 실없지만 둘만의 즐거운 대화가 오고 간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잠시 창밖을 말없이 보는 아내를 보로스는 말없이 바라본다. 그는 두려워하던 각오하던 순간이 다가옴을 느껴,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손을 더욱 꼭하고 쥔다. 자신의 손을 꼭 쥐는 큰손에 창밖으로부터 시선을 뗀 연갈색의 눈동자가 푸른 눈동자와 마주본다.

 

 

"보로스... 할 말이 있어요. 들어주실래요?"

"당연하다. 다 들어주마."

"고마워요."

 

 

자신에게 부탁하는 목소리가 한없이 부드럽지만, 그만큼이나 조심스러워 보로스는 불안함을 느낀다. 허나 흔들림이 없는 그녀의 눈동자에 각오를 다진다. 사랑하는 아내가 자신에게 전할 얘기와 다가올 순간을 각오하여,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그에 사유라는 아까와 달리 조금은 힘이 없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연다.

 

 

"저희가 만난지 이제 100년이 넘었네요."

"정확하게는 111년이다."

"네, 그렇죠. 제게 있어 긴 시간이면서도 짧은 시간이었어요."

"... 내겐 짧기만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알고 있어요. 보로스에게는 짧기만한 시간이었다는걸... 그래도 많은 일이 있었잖아요?"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도 잘 아는 사실이었다. 자신이 그녀의 말을 정정하고, 반박하듯 주장하자 들려온 방금보다 밝은 목소리.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리고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정말로 많은 일들이 있었기에... 그녀가 슬픔보다는 행복이 짙은 시선을 보낸다. 그것에 한 순간 각오를 했음에도 두려움에 질 뻔한 그는 정신을 차린다. 자신보다 분명 두렵고도 아플 그녀를 앞에 두고 더 약해질 뻔 했었단 사실에 한심함을 느낀다.

 

 

"그래, 많은 일이 있었다."

"너무 많아서 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에요. 그래도... 행복이 가득했어요."

"나도 행복했다. 너와 함께 한 시간들은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

 

 

팔을 뻗어 더욱 가녀려진 어깨에 두름에도 얌전히 있는 그녀. 이윽고 팔 안으로 끌어들이자, 자신의 가슴에 몸을 기대는 그녀. 자연스럽고도 그 사소한 행동이 사랑스러워 보로스는 저도 모르게 웃는다. 잠깐의 정적의 시간 동안 많은 일들이 머릿속에서 흘러 지나간다. 첫만남의 날, 서로가 이어지던 날, 처음으로 데이트를 한 날, 첫눈을 본 날, 기념일을 챙긴날, 생일 축하한 날, 반대로 받은 날 등... 의미가 가득한 날들 뿐만 아니라 일상이며 사소한 일들이 있던 순간들도 스쳐지나간다. 밥을 먹거나 산책을 나가고, 장을 보고, 집안일도 함께하는 그런 나날 또한 또렷히 떠올리는 그다.

 

 

"분명 슬프고도 아픈 순간들이 있었을 텐데... 행복한 순간들이 더 많이 떠올라요."

"나도다."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어요. 슬픈 일만이 뚜렷했어요. 근데 당신과 만나 바뀌었어요. 많은게 바뀌었어요."

"알고 있다. 너는 내게 주기적으로 얘기해주었으니까."

"아, 그렇네요. 저도 참... 이제 습관이라도 해야할 정도네요."

"덕분에 나는 매번 행복했다만? 자신감도 넘쳐나고. 나는 정말 아내에게 사랑받는다고 말이지."

"... 주책이세요."

"또 부끄럽다고 그런 말인거냐."

 

 

둘은 함께 코웃음을 흘린다. 전혀 다른 웃음소리가 함께 허공에 섞여 퍼진다. 이 행복한 시간이 영원하길 바라는 보로스다. 허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랑하는 그녀가 알려줬으며, 그녀가 정한 일이었다. 거기에 자신도 동의했으며, 이해하기로 정했다. 그럼에도 어찌할 수 없는 괴로움은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정신을 놓으면 사랑하는 존재를 곤란하게 할 말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더더욱 언제나와 같이 행동한다.

 

 

"보로스, 당신은 제 여러가지의 처음과 마지막이 되어준 존재에요."

"예를 들면?"

"알면서 묻는거죠?"

"몰라서 묻는거다."

"시치미 떼시긴..."

"언제나의 일이다만."

"거기다 뻔뻔하세요."

"그게 나라는걸 너는 잘 알거다."

 

 

그녀의 말에 일부러 조금은 장난스럽게, 능글스럽게 묻는다. 적어도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반복 되어온 패턴의 대화. 불평 아닌 그녀의 불평에 뻔뻔하고도 당당한 태도로 답하는 그. 자신의 말에 다른 이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 째려보는 표정을 짓는 아내. 그 모습이 너무도 귀엽기만 해서 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아내 바보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에게 있어 사유라가 제일이다. 몇 초동안 서로 바라 봤을까, 먼저 입이 움직인건 더 어른스러운 아내다.

 

 

"연인, 반려자요."

"더 없는거냐?"

"네네. 그럼 데이트, 키스."

"다른건?"

"나이든 할머니에게 뭘 말하게 싶은 건가요."

"전부."

"그럼 사랑하는 존재와 할 수 있는 일들은 전부 보로스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했어요. 됐나요?"

"세세하지 않아 부족하지만... 뭐, 된건가. 만족했다."

 

 

예상했지만 이런 대화에선 결국 져주는 쪽은 사유라다. 아니, 사실은 어느 쪽도 져주는게 아니다. 그저 그렇게 보일 뿐, 둘은 그저 행복하기만 하다. 즉, 누군가가 보면 애정행각이라고 부를 뿐인 모습이었다. 뭐, 보로스 입장에선 오히려 그렇게 봐주는게 더 좋은 쪽이다.

 

 

"아무튼 보로스는 제게 너무도 고마운 존재에요."

"그리고 나도다."

"당신은 저를 구원 해줬고, 저를 살아갈 수 있게 해주셨어요. 살아갈 이유를 줬어요"

"......"

"그리고 포기했던 행복들을 느꼈어요."

 

 

몇 번이고 들었던 말들이 들려왔다. 허나 이번만큼은 언제나와는 틀렸다. 앞으로의 일에 대해 서로 알기에... 그렇기에 보로스는 아주 잠시 시선을 돌린 현실로 돌아온다. 언제나 언젠가의 일이라며, 아직은 아닌 일이라며... 각오했지만, 마음 한켠으로는 먼 날로 봤던 순간이 코앞까지 다가온 사실에 그는 미소를 지을 수 없었다. 그런 자신을 알았을까, 주름이 많이 늘었지만 여전히 부드러운 손이 제 손 위로 살며시 겹쳐진다. 더해지는 온기가 그녀가 살아있음을 알려준다.

 

 

"당신과 만나서 사랑을 하고, 행복도 느끼고... 하고 싶던 일들도 많이 했어요."

"나는 너에게 많은 것을 해주었나?"

"물론이죠. 당신은 제게 있어 최고의 연인이며, 남편이에요."

"다행이군."

"이제와서 왜 갑자기 자신감이 낮아지세요. 보로스는 지금까지 저와의 약속을 모두 지켜줬잖아요."

 

 

나즉한 목소리에 안도한다. 자신을 치켜 세워주는 아내에 그는 안심한다. 기억 속의 약속들은 될 수 있는 한 지켜왔다. 그럼에도 불안함이나 혹시나란 생각이 떠나지 않았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무엇을 말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보로스는 긴 시간 해온 각오와는 다른 각오를 다진다.

 

 

"연인이 된 후에도, 당신과 결혼을 해 부부가 된 후에도... 보로스는 절 지켜줬고, 행복하게 해줬어요."

"당연한거다."

"그 당연한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게 세상이에요. 그러니까 보로스는 굉장한 거에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난 그걸로 충분하다."

"거기에 아이들도 포함되어 있겠죠."

"부정하지 못하겠군."

 

 

둘만이 등장하던 얘기 속에 새로운 인물이 추가된다. 그녀와 더불어 그에게 있어 소중한 존재들이다. 자신과 그녀 사이에서 태어난 로라와 스유를 떠올린 그는 남편의 얼굴에서 아빠의 얼굴로 바뀐다. 스스로도 자각하고 있지만,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아내가 더욱 잘 알고 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그저 기쁠 뿐이다. 또한 그녀도 아내에서 두 아이의 엄마의 얼굴이 되어 무어라 설명해야할지 모를 행복을 느낀다.

 

 

"로라와 스유... 정말 잘 자라줬어요. 저희 둘 다 부모가 되기엔 부족했는데..."

"녀석들은 너와 나를 훌륭한 부모라고 말한다."

"네, 알아요. 아까도 제게 최고의 엄마라고 해주던걸요. 그걸 듣고 울 뻔했어요."

"왜 내게는 최고의 아빠라고 해주지 않는거지?"

 

 

자신이 없던 사이에 있던 얘기. 보로스는 그것에 나름 진지하게 의문을 갖는데,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사유라가 웃으면서 자신에게 '조만간 들을 수 있을거에요.'라고 말해주는 것에 의심하지 않는다. 누구도 아닌 자신이 가장 믿고도 사랑하는 존재의 말이다. 의심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렇기에 앞으로 들려올 말들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거다. 누구도 아닌 자신이 가장 그녀를 믿어주어 들어줄거다.

 

 

"보로스, 기억하죠? 제게 있어 첫눈에 의미가 담겼던 날."

"당연하지. 그 날은 특별하니까."

"...... 보로스, 그 날의 약속을, 다짐을 지켜주지 말아주세요. 부서주세요."

 

 

조심스럽고도 간절함이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갈색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은 생각보다 놀란 모습이 아니다.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고 있었지만, 결국 들어버린 부탁. 그는 100년도 더 된 추억과 다짐을 떠올린다. 유일한 사랑이자 소중한 존재에게 일방적으로 건냈던 다짐. 그걸 어길 생각도, 부술 생각도 없다. 절대로 지키겠다고 마음 먹었던 약속이다. 다만 그것은 그에게 소중한 존재가 더 늘어나 그 소중함과 애정이 커지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지금은 달라져 버린거다.

 

 

"놀라지 않으시네요. 거기다 거절하지도 않으시고..."

"너는 내가 어떠한 대답을 할지 알고 있을 텐데."

"네, 잘 알고 있어요. 이제 당신과 저는 둘만의 세계를 가진 채가 아니니까요."

"...... 그래, 예전엔 너만 있었으면 충분했다. 너 하나만을 소중하게 여기면 됐다. 근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어졌다."

 

 

보로스의 세계는 작았다. 아니, 자신이란 존재에 대해 딱히 깊이 생각하지 않았었다. 태어난 직후는 살아남기 위해 강해졌고, 그 후는 강자를 찾아 따분함을 지웠다. 그리고 그녀를 만나 바뀌었다. 싸움이 아닌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고, 이해할 수 없던 사랑을 가졌다. 그리고 그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다음은 가족이 되는 기쁨과 가족을 갖는 기적을 알게 되었다. 사유라란 존재를 만나 어느 의미 텅비었던 한 때의 우주패자는 채워졌다. 자기 자신을 알고, 그 안의 세계를 알고, 그 세계의 소중한 존재를 가지고, 그 소중한 존재로 세계는 넓어졌다. 전부 한 존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일들이며, 기적이었다.

 

 

"저도 예전에는 제 끝에 당신과 함께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신을 도저히 혼자 두고 갈 수 없어서..."

"하지만 너도 바뀌었지."

"맞아요. 저도 바뀌었죠. 이제 당신을 데려갈 생각은 없어요."

"생각보다 잔인한 말이군."

"알아요. 이게 당신에게 잔인한 말이란걸... 그래도 들어주세요. 저와 새로운 약속을, 다짐을 만들어주세요."

 

 

바뀌었다. 그 말이 보로스에겐 기쁘지만 동시에 조금은 아프게 느껴졌다. 바뀜으로 인해 달라진 결말을 그는 이미 알기에. 그리고 결국 완벽하게 버리지 못한 그녀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을 어찌할 수 없기에. 두 아이에게 미안하지만, 자신의 세계에서 가장 큰 존재는 결국 사유라란 존재이기에. 그렇기에 아내의 말이 아프고도 잔인하게 들려왔다. 동시에 미약한 기쁨을 느낀다. 그 안에 담긴 믿음과 자신들 사이의 아이들을 향한 사랑을 알고 있기에, 남편이자 아버지인 그는 대답대신 작은 손을 꼭 잡아준다. 그러자 웃는 사유라다.

 

 

"보로스... 제 시간이 끝나도 저를 따라오지 말아주세요."

"알았다."

"제가 없어진 후의 아이들을 부탁드려요."

"알았다."

"아이들이, 로라와 스유가 자신들만의 행복을 찾아낼 때까지 곁에 있어주세요."

"알았다."

"그때까지 절대로 당신의 이기심으로 저를 따라오지 마세요."

"...... 알았다. 그 약속을 받아들이마. 그리고 절대로 아이들을 지키겠다고 다짐하마."

 

 

나즉하고도 부드러운 목소리임에도 그 안에는 절대로 굽히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사유라가 건낸 부탁들은 아이들을 위한 약속이다. 그것은 둘이 아이들을 정말로 사랑하기에 할 수 있는 애틋하고도 잔인한 약속이다. 동시에 자신을 누구보다 믿고도 사랑하기에 할 수 있는 부탁임을 보로스는 알고 있다. 설령 그 약속을 지킴에 따라 남편인 자신이 얼마나 아파할지도 알고 있음에도 아내인 그녀는 부탁을 한다. 그것 또한 누구보다 알기에 그는 거절하지 않는다. 함께 약속을 하여, 다짐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뻗어진 손을 거부하지 않는다. 여전히 하얀 두 손이 자신의 볼을 감싸는 걸 받아들인다.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제가 너무 이기적이라서."

"그래, 너는 이기적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네가 기쁘다. 예전에는 이런 이기심을 너는 부리지 않았으니까."

"그게 언제적 얘기에요."

"너의 기준에서는 오래 전의 이야기겠지. 내게는 바로 얼마 전의 이야기고."

 

 

함께 해온 시간동안 무수히 들은 단어가 들려온다. 자신의 아내는 결국 미안하다는 말을 버리지 못했다. 그녀에게 있어 긴 시간, 자신에게 있어 짧은 시간동안 바꾸지 않은 면모. 허나 분명히 바뀐 부분이 있다. 이기적이라는 말 속의 담긴 이유가 바뀌었다. 그 안에 담긴 감정의 색이 바뀌었다고 보로스는 확신한다. 자신의 소중한 이는 그대로이자 변했다. 그 전부가 사랑스러워서 소중해서 그는 견뎌낸다. 아름다운 눈동자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다정하게 닦아준다.

 

 

"결국 우는구나."

"늙은이가 우는 모습은 좀 그런가요?"

"설마, 너는 어느 모습이든 아름답고도 사랑스럽다."

"...... 만약 보로스가 제안했던 대로 인간에서 벗어났다면 이런 끝이 아니었을까요?"

"후회하나?"

 

 

흔들렸던 걸까. 사유라는 예전 일을 떠올린 듯하다. 과거의 자신은 그녀의 늙어가는 몸과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모르는 시간에 어떠한 것을 제안했다. 지구의 발전한 기술과 외계인들의 기술을 합하면 인간에서 벗어나, 적어도 더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렸었다. 다짐을 했다해도 그때 당시 자신은 이별이 너무도 와 닿지 않았으며, 두려웠다. 그렇기에 어렴풋이 그녀의 대답을 알았어도 제안했던 거였다. 그리고 소중한 이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오히려 부탁을 했었다. 그 일을 떠올리며 보로스는 조심히 묻는다. 잠시의 침묵 후, 작은 고개는 저은다.

 

 

"아니요. 아니, 사실 한 순간 아주 조금은 후회했지만, 역시 후회하지 않아요. 그때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새삼이지만... 고마워요. 저를 인간인 채로 끝을 맞이하게 해줘서."

"네가 바란 일이니까."

 

 

흔들림이 없는 목소리와 눈동자가 건내진다. 결국 자신은 사유라에게 무르다고 생각하며, 보로스는 작게 웃는다. 예전보다 더욱 어리광이 늘고도, 이기심을 부리는 아내를 그는 기쁘게 생각한다. 사랑하는 그녀 덕에 자신들에게 있어 최악의 선택을 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안도한다. 그렇기에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한다면 자신들이 함께 해 온 많은 순간들에 배신하는 거라고 보로스는 알게 됐다.

 

 

"그래도 보로스 덕분에 예전의 제가 생각했던 나이보다 아주 많이 살았어요."

"원래는 몇 살로 생각했던거냐."

"30살 전 후로요."

"...... 우리가 결혼하기도 전의 나이잖나."

"예전 생각이에요. 보로스와 연인이 된 직후까지의 생각이었어요."

"나랑 연인이 되기 전이 아니란게 좀 불만이다."

 

 

누군가 들으면 짚고 넘어 가야할 부분이 있는 대화지만, 둘은 웃는다. 지나간 일이며, 지금은 다르기에... 사유라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에서 열심히 살아왔다. 그녀 자신이 인간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늘리며 살아왔다. 그것이 자신과 아이들을 위해서, 또한 그녀 자신이 원해서인 것을 아는 보로스다. 어느 하나 미워할 수가 없는 존재. 어느 하나 사랑스럽지 않을 수가 없는 존재. 그렇기에 조금씩 약해지는 생명의 에네르기가 그에게 괴로움을 선사한다.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보로스..."

"뭐냐."

"미안해요."

"안다."

 

 

다시 들려온 사과의 말. 가는 몸이 품 안으로 파고 들어와 그는 끌어안는다. 미약하게 떨리는 목소리와 가슴이 적시는 눈물에 대해 보로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까지 잘 참아냈던 아내가 걱정스러웠던 그로서는 안도한다. 그녀의 전부를 알고 싶고도, 속마음을 모두 듣고 싶은 존재로서 오히려 행복하다

 

 

"사실 당신을 두고 가기 싫어요. 제가 없는 당신의 모습을 떠올리면 너무 아파서... 그래도 어쩔 수가 없어요."

"알고 있다. 네가 그 결정을 하기까지 많이 울고, 괴로워했음을... "

"그 아이들은, 로라와 스유는 적어도 자신들의 행복을 찾을 때까지 가족이 곁에 있어주길 바래요. 제 이기심이지만, 저의 자기만족일지도 모르지만... 전 우리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을 될 수 있는 한 많이 받으며 살기 바래요."

"그 바람은 네 과거의 일 때문이겠지."

"......"

"뭐, 어떠냐. 네 이기심이더라도, 자기만족일지도 모르더라도... 네가 아이들을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란걸 안다. 나는 너를 책망하지 않는다. 로라와 스유도 너를 이해할거다."

 

 

언젠가 자신의 아내가 말해준 과거의 일. 그것은 그에게 있어 생소하고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자, 감정이었다. 어쩌면 지금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자신은 부모의 얼굴도 모르며, 사랑을 받은 기억도 없기에... 그녀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채, 너무도 다른 과거를 지내왔기에... 그럼에도 아내가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에 대해서는 공감하고도 이해할 수 있다. 자신도 이제는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아이들이 행복하기 바라는 아버지이기에. 적어도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기에, 보로스는 사유라를 나무라지 않는다. 그녀의 이기심에 질책하지 않는다.

 

 

"보로스는 역시 저한테 무르세요."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지. 그러니 걱정마라. 너와의 약속, 다짐을 반드시 지키마. 네가 울지 않도록 노력하마."

"당신이 이렇게 말해 줄거라 믿고 말한 거에요. 부탁드릴게요. 우리들의 아이들을 잘 부탁드려요."

"알았다. 두 녀석의 행복을 지켜보마."

 

 

사랑하는 이가 불안하지 않도록 그는 속삭인다. 혹시라도 후회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이제는 많이 흐려진 생명의 오오라가 끝을 알려오고 있어, 그녀와 자기 자신에게 다짐하는 보로스다. 그런 자신을 알았을까, 품에서 살짝 나온 사유라가 자신을 바라보며 입을 연다. 오직 자신만을 담은 눈동자에 보로스는 홀려버린다.

 

 

"당신과 만난건 기적이었어요. 당신을 사랑하게 된 것 또한 기적이었어요."

"나도다..."

"당신을 만나 다행이에요. 당신을 사랑하게 되어서 행복해요."

"나도다."

"당신을 만나 알게 되었어요. 살아가는 기쁨을, 사랑하는 기쁨을..."

"나도다."

 

 

보로스는 그녀의 말에 같은 대답만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터질 것만 같은 이기심을 억눌러야 하기에. 붙잡고 싶은, 애원하고 싶은 마음을 참기 위해... 그녀가 웃으며 잠들 수 있게 하기 위해... 그는 짧은 대답만을 한다. 그래봐야 이미 그녀에게는 전부 들통난 것을 알지만, 그는 미소를 유지한다. 눈시울이 점점 뜨거워짐을 애써 무시한다.

 

 

"밥도 되도록이면 꼬박꼬박 드시고, 너무 집에만 있지 마세요."

"알았다."

"제가 없어도 너무 힘들어만 하지 말고 아이들과 행복해주세요."

"노력하마."

 

 

들려온 목소리는 조곤조곤하다.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만큼 작은 목소리를 보로스는 새겨둔다. 따스한 체온도, 부드러운 피부도, 두근거리는 심장박동도 그녀의 모든 것을 새겨둔다. 잊지 않기 위해, 언제든지 떠올리기 위해...

 

 

"보로스... 당신을 만나 다행이에요. 지금까지 살아와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해요."

"......"

"그리고 제가 태어났던 과거에, 당신을 사랑하는 이 마음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

 

 

2번째 겨울을 함께 했던, 그 해의 첫눈이 내리던 날. 그녀에게 듣고 싶다고 얘기한, 일부러 내용을 비밀로 한 말이 들려온다. 이미 둘의 결혼식 때 들었지만 몇 번을 들어도 너무 행복하여 보로스는 차마 무엇도 말하지 못한다. 그저 사랑하는 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에게 사유라는 미소를 지어 보인다.

 

 

"있죠, 보로스... 키스 해주세요."

"......"

"맹새이자, 이별이자, 기다림이자, 증명의 키스를 해주세요."

"어리광이 심하구나. 뭐, 나는 기쁘지만..."

 

 

들려온 어리광 섞인 부탁은 귀엽고도 사랑스러웠다. 동시에 애틋했다. 보로스는 조심히 사유라의 입술에 입맞춤한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애써 머릿속에서 지우며, 부드러움과 따스함을 느낀다. 들려오는 눈물이 흘러내리는 소리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잠깐의 입맞춤이 끝나고, 입술을 떼는 자신을 향한 여전한 아름다운 미소를 바라본다.

 

 

"보로스, 사랑해요."

"나도 사랑한다. 사유라..."

 

 

건내지는 사랑의 속삭임에 보로스도 속삭인다. 이제 힘이 거의 없는 그 가는 몸을 끌어안는다. 품 안에서 한 번 더 들려오는 속삭임에 그도 같이 한 번 더 속삭인다. 몇 번이고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인다. 그리고 마침내 그 속삭임은 멈추고, 더 이상 보로스에겐 사랑스러운 박동이 느껴지지 않는다. 천천히 사유라를 품 안에서 떼어내 내려다 본다. 그러자 거기엔 미소를 지은채 잠든 사랑하는 이가 있다. 모른채 본다면 그저 잠들었다고 착각할 만큼 평온한 모습에 보로스는 안도한다.

 

 

"너와의 약속을 지키면 나도 따라가마. 어쩌면 조금 오래 걸릴지도 모르지만... 그때까지 기다려줘라."

"......"

"잘 자라. 그리고 영원히 사랑한다. 사유라..."

 

 

애틋하고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이는 그. 흐르는 눈물에도 미소를 짓는다. 깊은 잠에 빠진 사랑하는 이의 이마에 키스한다. 아내의 끝을 받아들이며, 보로스는 유일한 사랑하는 이를 끌어 안는다. 조금은 길지도 모를 이별의 시간 후의, 다시 만날 그녀를 떠올리면서...

 

 

 

 

***

 

 

 

 

회상을 다 마치자, 짭짤한 내음이 섞인 바람이 불어왔다. 보로스는 조금은 긴 시간만에 입을 다시 연다.

 

 

"어제 로라와 스유가... 내게 말했다. 자신들은 이제 괜찮다고. 너에게 가도 괜찮다고..."

 

 

보로스는 어젯밤의 일을 떠올린다. 성인이 되고, 너무도 의젓해진... 그럼에도 여전히 아이로 보이는 두 자식이 자신을 진지하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자신들은 이제 괜찮다고, 나름의 행복을 찾았고, 앞으로 살아갈 자신도 강함도 있다고 했다. 자신들은 충분하다 못해 과할 정도로 부모님의 사랑을 받았다며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각자 그의 손을 한쪽씩 잡아 얘기했다. '아빠는 정말 최고의 아빠세요. 이제 충분해요. 그러니 이제 엄마에게로 가셔도 괜찮아요.' 라고 말이다.

 

 

"정말이지. 아이같이 보이면서도 제대로 어른이 되어줬다. 우리들의 아이는 너무도 잘 자라줬다."

 

 

그는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흘린다. 자식들의 성장이, 상냥함이 너무도 기쁜 그다. 분명 아내도 기뻐할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보로스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그것은 붉은색의 구슬이었다. 유리하고 하기엔 조금은 신비한 빛을 띄는 그 구슬을 바라보며 그는 말한다.

 

 

"긴 시간이었다. 200년... 너와 지낸 시간의 약 2배가 되는 시간을 지냈다. 네가 없다는 현실에 괴로웠지만, 나름 행복했다. 그리고 나는 정말 노력했다. 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내 다짐을 헛것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사유라, 너를 다시 만나면 부끄러지 않기 위해. 너의 미소를 보기 위해..."

 

 

보로스는 200년 동안 있었던 일들을 되짚어 본다. 로라가 연인을 데려온 날, 그 연인과 결혼한 날, 그 둘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난 날. 그리고 스유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 울던 날, 그 이후 시간이 지나 새로운 사랑을 만나 소개하며 웃던 날. 대부분이 아이들에 관한 기억이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아내와의 약속에 너무 열심히였기에 한 번 더 웃는다. 허나 그것도 이제는 끝이다. 약속을 지킨 그는 이제 떠날 수 있는 몸이 되었다.

 

 

"이제야, 너를 만나러 갈 수 있다. 너의 곁으로 갈 수 있다...... 너무도 그리웠던 너의 곁으로 말이다."

 

 

첫만남부터 특별했던 존재, 자신을 행복하게 해준 존재, 사랑을 알게 해주고 품게 해준 존재, 살아갈 이유가 되어준 존재. 보로스는 사유라를 떠올리며 구슬을 손 안에 쥐어 힘을 주기 시작한다. 손 안에서는 쩌적 거리며 금이 가는 구슬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내 구슬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는 소리가 허공에 퍼진다. 보로스는 제 몸이 부서지는 소리를 속으로 환호하며 미소를 짓는다. 모래가 흘러내리는 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들려옴에도 그 미소는 지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기대에 찬 눈동자를 지어 보인다.

 

 

"만나러 가마. 사랑하는 너의 곁으로..."

 

 

정말 기쁨이 가득찬 목소리로 중얼거린 보로스는 눈을 감는다.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도 기분이 좋았다. 마치 그것이 자신을 그녀의 곁으로 보내줄 것만 같은, 그런 바보같은 생각을 해본다. 감겨진 눈커풀 속은 분명 어둠일 텐데도, 그에게는 이상하리만치 선명하도록 사랑하는 이의 모습이 보인다. 너무도 사랑하여, 매 순간을 그리워한 사랑하는 이. 보로스는 입을 움직인다. 살아있는 마지막 순간, 이별의 시간이 끝나는 순간... 그는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부른다. 다시 만날 사유라의 이름을 부르고, 그렇게 그는 죽음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