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작

[SF합작] 보로사유

サユラ (사유라) 2017. 11. 5. 20:33



* [SF합작]에 참여한 원펀맨 <보로스> 드림글 입니다.

* 본래 드림글의 스토리가 아닌 패러렐 월드 비슷한 배경이라고 생각해주세요

* 드림캐인 보로스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본인의 해석과 틀릴 수 있습니다.



 

 

 


 

 

 

창밖이라고 해야할까, 투명한 벽 너머로 보이는 광경은 언제나 보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다. 엄밀히 말하자면 비슷한 광경을 봤지만, 그것은 내 눈이 직접 보는 것이 아닌 기계로 통해 본 영상이었다. 허나 지금은 기계가 아닌 내 눈으로 직접보고 있는 광경은 우주다. 검은 세계 속에 간간히 있는 색색의 행성과 별과 같은 빛나는 점들도 보인다. 막상 본 우주는 아름답지만, 고요한 세상이다. 그런 부분이 좋아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지켜보고 있던 거대한 소행성들 중 하나에 금이 생긴다. 우주이기에 아무런 소리도 없이, 점점 금이 아닌 균열이 생기는 소행성이다. 원하지 않던 무음의 장면에 나는 알아서 어디선가 들었던 효과음을 덧씌워 지켜본다. 그리고 곧 커다란 돌덩어리는 조각조각으로 부서져버린다.

 

 

"또 꽝인가 보네."

 

 

죄 없는 소행성이 부서진 것으로부터 추려낸, 아닌 명확한 원인에 중얼거린다. 실패와 꽝이 섞여 있었을 어느 장면을 상상하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조금 있으면 찾아올 존재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뭐, 그래봐야... 간단한 방 정리나 간신을 준비하는 정도지만. 그럼에도 나름 즐거운 기분으로 준비한다.

준비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자, 열려지는 문. 일반 사람들이 사용한다고 보기에는 너무도 큰 문을 통해 들어온 방문자를 나는 바라본다. 푸른 피부, 선명한 분홍색의 머리카락, 뾰족하고 긴 귀 그리고 얼굴과 가슴에 있는 1개씩의 눈. 대충의 설명만으로도 인간의 모습이 아닌 존재의 등장. 허나 나는 놀라지 않고, 그에게 시선을 건냄으로 맞이한다. 나를 바라보는 커다란 푸른 눈동자는 몇 번을 봐도 예쁘다.

 

 

"또 꽝이었다."

"그런 것 같더라고요. 여기서도 소행성이 부서지는 모습을 봤어요."

 

 

처음 들려온 말에 '역시나'라고 생각한다. 맞장구를 쳐주는 내게로 그는 다가온다. 한 걸음씩 움직일 때마다 굽소리와 함께 철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겹쳐 들려온다. 그것은 날카롭기보다는 조금은 둔탁한 느낌이었다. 가까이 다가온 황금색의 갑주는 빛에 반짝였다. 또륵또륵하고 가슴에 달린 눈의 눈동자가 좌우로 움직이며 방 안을 살핀다. 그에 비해 얼굴에 달린 커다란 눈은 나를 바라본 채 그대로다. 몇 번이나 봐도 꽤나 신기한 신체구조다.

 

 

"딱히 아무런 일도 없었나 보군."

"너무 일이 없어서 제 입장을 잊어버릴 참이에요."

"인질이라는 입장 말이냐."

"그래요. 그리고 당신은 저를 데려온 우주도적단의 보스죠."

 

 

아무런 문제도 없었던 것 같았지만, 제대로 된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내가 있는 이곳의 장소와 입장이란 거다. 나는 지금 우주 도적에게 잡힌 인질이며, 눈앞의 존재는 지구인들 기준의 외계인이란 존재다. 더불어 내가 탔던 우주선을 습격했던 우주 도적단의 보스다. 보통이라면 이렇게 간식을 준비해 맞이하거나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얘기를 할 만한 사이는 아니다. 보통의 소설이나 실제 역사를 생각해도 이런 상황이 얼마나 있었을까. 분명 그리 없었을 것이다. 허나 분명 지금 일어나고 있다. 참으로 현실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고 하더니, 딱 그 꼴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름 자신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는 나와 달리 눈앞의 외계인은 태평한 얼굴이다.

 

 

"너에게 있어 아무런 일도 없다면 그걸로 된거라 생각한다만."

"그렇긴 하지만... 보통 납치한 도적단의 두목과 인질이 평화롭게 간식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눈다고 생각하세요?"

"아마 아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일단 한번 얘기해본 거지만 역시나 소용이 없다. 하긴 이제와서 이 관계나 익숙해진 이곳 생활을 바꾸기도 힘들겠지. 거기다 소설에나 봤던 최악의 일들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그걸로 만족하자. 그리고 이렇게 악당에게 나름의 교육을 주려던 내 시도는 실패가 되는거지. 라고 속으로 작은 한숨을 쉰 나는 때 마침 물이 다 끓었다고 알리는 전기포트의 딱 소리에 다리를 움직인다. 그런 나를 따라 두 개의 눈동자가 쫓는게 느껴진다.

 

 

"앉아 계세요. 차를 가져올테니. 이번에도 커피를 드실건가요?"

"응."

"마음에 드신건가요?"

"흠, 어느 의미로는 마음에 든거다라고 할 수 있지."

 

 

살짝의 거리는 있지만, 너무도 노골적으로 옆에서 보내지는 시선에도 태연하게 차를 준비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건낸 질문에 그는 조금은 귀여운 대답을 해왔다. 나도 모르게 생각한 감상을 속에 담아둔채 다른 질문을 건낸다. 그러자 이번에는 애매한 대답이 왔다. 하지만 내게 있어 그정도면 충분했기에 질문을 추가하지 않는다. 짧은 대화로 주문을 받은 나는 조금은 독특한 외관이지만, 찻장에서 익숙한 물건을 꺼낸다. 정확하게는 기호품이라고 해야하나, 지구에서 보던 커피제품이다. 그것 말고도 티스푼이나 머그컵 등 원산지가 지구로 밖에 보이지 않는 물건들이 제법 갖쳐줘 있다. 덕분에 나는 헤매임 없이 커피를 타낸다. 쪼르르하고 김이 나는 물을 컵에 부어, 은색의 티스푼으로 저은다. 그러자 맡아져 오는 커피향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린다.

 

 

"너는 그 커피란 차를 정말 좋아하는군"

"뭐, 따지자면 좋아하긴 해요."

"그것 말고도 필요하거나 좋아하는게 있나? 지구에서 가져오마."

"설마 약탈이나 강탈은 아니죠?"

"그렇게 하다간 너무 눈에 띈다. 굳이 따지자면 거래로 가져오는거지. 생각보다 지구엔 숨어 지내는 외계인들이 있거든."

 

 

뜬금없는 관찰의견에 나는 놀라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기에 있는 동안 몇 번이나 있었기에. 그는 다른 외계인이 침략하거나 나를 구한답시고 오는 히어로들이 없는 이상 할 일이 없나보다. 그래서 시간이 남으면 나한테 와서는 심심함을 때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내 곁에 있다한들 재밌는 일은 없겠지만, 그는 나를 관찰함으로 일단은 심심함을 달래는 듯싶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나 횟수가 늘어감에 우리는 서로에게 익숙해져간다. 우주의 패자라고 하는 '보로스님'의 즐거움 수준은 낮은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방 안의 테이블로 돌아와 커피 두 잔을 내려놓고, 그의 맞은편에 앉는다.

 

 

"나름 지구도 이제는 SF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옛날부터 SF적인 요소는 강했다는 거군요."

"그렇게 말하는 것치곤 너는 매번 놀라는 기색이 없군."

"저한테는 어찌돼든 상관없는 이야기니까요."

"너희 지구인들은 다 그런 느낌인가?"

"아니요. 그냥 제가 이런 것뿐이죠. 거기다 당신의 기준에서는 특이하다고 했었죠?"

"그랬다. 너는 자진해서 인질이 되지 않았나, 내 계획을 선뜻 받아들였잖나. 인간이 아닌 존재들도 보통 그렇지 않다."

 

 

최근 몇 년 동안 늘어난 괴인이나 능력이 있는 히어로들의 등장으로 소설이나 영화에서만 있던 SF적인 요소가 짙어져 왔다. 거기다 기술의 발전으로 일반인들의 우주로의 관광이 가능해졌다. 누군가들이 외계인을 만나지 않을까란 농담과 기대, 걱정이 섞인 말들을 했었다. 그리고 운이 좋았던 것인지, 그냥 참여한 첫 관광 우주선 손님에 당첨이 되었던 나. 그리고 나를 비롯한 우주선의 사람들은 SF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외계인을 조우했었다. 물론 그 형태는 나름 최악의 형태로 말이다. 우호적인 외계인 이전에 도적이라고 자칭하는 외계인과 만났던 거다. 뭐, 그 후는 이렇다.

미지의 악의 외계인들의 등장에 공포에 떨던 사람들. 일부의 물품을 약탈한 도적들. 다들 죽을거라 여기던 사람들에게 들려온 보스의 제안. 누군가가 인질이 된다면 나머지 전원은 무사히 지구로 돌려보내겠다. 그 제안에 사람들은 눈치를 살피거나 시선을 피했었다. 어느 누구도 인질이 된다면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지 못했다. 아무도 섣불리 나서지도, 말도 꺼내지도 못하던 때였다. 한 여성이 외계인들의 보스 앞으로 나온거다. 그녀는 말했다. '제가 인질이 되겠습니다. 그러니 약속을 지켜주세요.' 라고 말이다. 그리고 외계인은 정말로 약속을 지켜줬다. 한 여성의 희생으로 인해 다른 이들은 모두 안전하게 지구로 돌아갔다. 참으로 좋은 결말이다.

 

 

"그런 특이한 성격인데, 놀라지 않을 수도 있는 거죠."

"흠, 뭔가 틀린 듯한데."

"뭐, 어때요. 차나 마셔요. 거기다 당신의 계획이라고 해도 딱히 별거 없잖아요."

"꽤나 가차 없는 감상이군."

 

 

내게 일어난 일을 타인에게 일어났던 것처럼, 어느 책에 나온 문단같이 머릿속에서 써냈다. 그런 나 자신에 속으로 비웃어 주고, 그와의 대화로 다시 정신을 돌린다. 진짜 이유를 감추기 위해, 우주 도적단의 두목의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끔 한다. 나도 참 번거로운 일들을 하고 있다. 원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라고는 어울리지도 않는 행동을 한다. 아직은 들키면 안 되는 내 계획을 숨기고, 그의 계획에 어울린다. 그리고 그는 내 감상에 대해 불만을 표한다. 나는 그 허술하고도 성공률이 낮은 계획을 떠올린다.

 

 

"그럼... 인질을 잡아, 그 인질을 구하기 위해 온 히어로들과 싸운다. 이런 비효율적인 계획에 어떻게하면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 같아요?"

"......."

"인질을 잡는다고 해서 모든 히어로가 오는 것도 아니에요. 하물며 진정한 강자가 히어로들 사이에 있다는 보장도 없고요. 거기다 당신이 찾으러 온 존재가 히어로가 아니면 인질을 구하러 오지도 않을거에요."

"......"

"히어로가 정의를 위해 온다고 하더라도, 만약 그것도 아닌 입장의 누군가가 온다면 그는 그냥 괴짜죠. 누가 패널티를 갖고 우주까지 와서 싸우겠어요. 그나마 오는 히어로들은 히어로 협회의 도움으로 간신히 오는 거죠. 근데 그럼 뭐해요. 당신들의 우주선이나 만들어 놓은 공간이 없으면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죠. "

"......."

"저라면 차라리 어느 도시나 나라 하나를 침략하겠어요. 그게 더 빠르게 강자든 핵미사일이든 당신은 싸울 수 있었을 거에요."

 

 

솔직한 내 평가와 따짐에 그는 아무런 말도 못한다. 어쩌면 훈수라고 할 수 있는 내 말을 그는 얌전히 들어준다. 말을 끝내고 다시 그를 살펴보자, 왜일까... 그의 눈이 묘하게 기뻐 보인다. 인간의 상식으로 생각했을 때는 나올리가 없을 반응에 오히려 불안함을 느끼는 내게 그는 입을 연다.

 

 

"사유라, 이 참에 그냥 우리 도적단에 들어오는게 어떠냐."

"싫어요."

"내 계획에 어울려 주고 있잖나. 덤으로 들어와라. 불편 없이 지내게 해주마."

"싫어요. 제가 이 계획에 어울려 주는건 지구에 위협이 생각보다 없고, 저에게도 위험이 없어서 라고요."

"그걸 다 말한 뒤에 대한 일은 걱정이 없는거냐."

"우주의 패자 보로스님. 이미 저에게 위협이나 상처를 주지 않기로 약속 하신걸 잊으신건가요?"

"쯧, 그때 들어오는 것도 권유했었어야 했는데..."

 

 

아, 기쁜 이유가 인재를 발견한 사장님의 심정이었던 건가. 아니, 그전에 인재라고 할 만한 의견도 아니었다. 여기서 지내며 느낀거지만, 외계인들은 뭔가 틈이 많다. 지구의 사기꾼들에게 끔뻑하고 다 속을 것 같을 정도로 말이다. 아... 내 안의 SF 지식이 무너지는 기분이다. 진짜 이 도적단 괜찮은걸까... 라고 걱정하는 내 몸이 갑자기 공중으로 띄워진다. 아니, 정확하게는 누군가에게 안겨진거다. 누구겠느냐. 맞은편에 앉아 있었던, 나를 악당의 길로 권유하던 외계인의 짓이다.

 

 

"됐다. 권유야 나중에 계속하면 되겠지. 그리고 님은 빼라고 했다. 나는 네가 날 그대로 부르는게 마음에 든단 말이다."

"그럼 위엄을 담거나 강압적으로 하세요. 도적단 두목이시잖아요."

"왠지 너에게는 그러고 싶지 않아서 하지 않을거다. 거기다..."

 

 

아직 권유에 대해 포기하지 않는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명령보다는 투정과도 비슷한 불평에 미약하게 남아있던 긴장감이나 걱정이 사라진다. 오히려 짜증이 올라와 따지자, 상대방은 맥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 거기다 킹사이즈보다 훨씬 큰 침대에 나를 내려놓는다. 그리고는 바지를 뺀 갑옷을 모두 벗더니, 나를 자신의 품에 넣고는 누워버린다. 아마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이런 상황에 겁을 먹거나 무서워하거나 발악을 했을거다. 허나 나는 얌전히 있는다. 어차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음을 알고 있기에...

 

 

"그런 짓을 했다가는 네가 겁을 먹거나 나를 멀리 할테니까. 기껏 강자가 아니더라고 즐거운 상대를 찾았다. 그러니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을거다."

"네네, 그렇다고 쳐요. 그럼 왜 또 이렇게 같이 자려는 건가요..."

"그거야 너를 안고 자는게 좋으니까다."

"아, 그러세요. 저도 이 이상의 일이 아니라면 나름 참아드릴게요."

"그거 참 고마운 말이군."

 

 

고개를 들어 보자 거기엔 웃고 있는 외계인의 얼굴이 보여온다. 몇 시간 만에 보는 미소는 무력으로 얻은 패자의 호칭에 어울리지 않는 미소다. 나를 보는 눈동자가 왜인지 부드러워 보인다. 나는 애써 그걸 보지 않은 듯이 행동한다. 일부러 조금은 틱틱거리는 행동을 취한다. 그럼에도 이 외계인은 만족스러워 한다. 그 모습은 어린아이가 원하는걸 품에 넣고 좋아하는 모습과도 같았다. 묘한 순수함이 보여, 가슴이 짓눌린다. 그걸 꾹 참고 나는 눈을 감는다. 더 이상 보지 않기 위해 잠을 청한다.

얼만큼의 시간이 지난지 모르겠다. 문득 눈을 뜨자, 눈앞에는 고이 잠든 외계인의 얼굴만이 보여온다. 아무리 내가 힘이 없다고는 하나 너무도 위기감 없이 잠든 모습은 기가 막힐 따름이다. 정말이지, 처음 만났을 때나 다른 외계인들에게 보이는 패자다운 모습은 어디로 간걸까. 왜 나와 있을 때는 이러는걸까. 내가 죄책감이 남지 않도록 더 나쁘게 굴어도 되는데... 내가 자신에게 이미 나쁜 짓을 하고 있음을 이 외계인은 모르겠지.

 

 

"내가 당신의 계획에 어울리는게 결국 나를 위한걸 당신은 알까요."

"......."

 

 

작은 목소리로 물어본다. 당연하게도 답변은 들려오지 않는다. 깊이 잠든 것인지 그는 일어나지 않는다. 뭐, 알고서 한 질문이지만... 나는 내 비겁함에 코웃음을 흘린다. 그는 모른다. 인질로 자진한 순간부터 내가 어떠한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아, 그러고 보니 아까의 커피 마셨어야 했는데. 거기에 하루분의 약을 타 놓았는데... 상관없나, 나중에 그가 일어나 풀려나면 마시면 되니까.

 

 

"당신이 아무리 권유를 해도 저는 도적단에 들어가지 않아요. 뭐, 그전에 당신에게 필요 없어지겠지만요..."

"......"

"어딘지 모자란 악당. 당신이 어중간하게 나빠서, 느낄 필요가 없던 즐거움을 얻었네요."

 

 

비웃음이 담긴 목소리를 내려 했다. 허나 입 밖으로 나온 내 목소리는 조심스럽고도 떨리고 있다. 허나 만약 그가 내가 생각하는 정도의 순수함을 가졌다면, 나는 나쁘고도 잔인한 존재가 될거다. 그렇기에 억지로 미소를 지어낸다. 내 자신이 나쁜 짓을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이상하리만치 강하게 죄어오는 심장의 아픔을 참아낸다. 얼마 남지 않았다. 앞으로 열 번도 남지 않는 횟수의 약을 먹으면 될거다. 과연 그때까지 보로스가 바라던 존재가 나타날까. 기왕이면 나타났으면 좋겠다. 그럼 내 필요성도, 내 죄책감도 없어질 테니까. 나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나쁜 아이인 채로 잠들 수 있을 테니까. 혹시라도 그가 슬퍼할 일도 없을지도 모르니까...

 

 

"정말이지. 이제 와서 후회가 드네요. 인질이 된 날. 약을 전부 먹어 잠들었다면... 저도, 당신도 함께하는 즐거움을 몰랐을 텐데..."

"......"

"잘자요. 제게 있어 어리숙한 악당님."

 

 

나는 그에게 아까 하지 못한 잠들기 전의 인사를 한다. 감겨지는 눈꺼풀 사이로 흘러내린 한 방울의 눈물이 차갑다. 얼마 남지 않은 인질과 악당의 시시한 일상을 그린다. 그 광경이 바보 같을 정도로 아무런 일도 없어, 나는 웃는다. 한 순간, 만약 우리 둘이 다른 형태로 만났다면 이러지 않았을까 란, 덧없는 상상을 해버린다. 허나 그것은 너무도 흐릿하고도 무의미한 상상이기에 나는 어둠으로 덧칠한다. 그리고 겨우 되찾은 어둠 속에서 다시 잠을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