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작

[Deemo합작] 보로사유 - Moon without The Stars

サユラ (사유라) 2017. 12. 18. 03:00

* 드림 [디모합작]에 참여한 원펀맨 <보로스> 드림글 입니다.

* 드림캐인 보로스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본인의 해석과 틀릴 수 있습니다.

* 가사출처 - 나무위키





아주아주 멋지고 훌륭하신 존잘님들의 작품이 모인 홈페이지는 여기입니다!

주소 클릭이 되지 않게 설정을 해서 배너형식 같이 올리는점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사진클릭하면 홈피에 가집니다. 출처는 저작권없는 사이트)


 

 

 

 

 


   곡 -  Moon without The Stars



 

 





 

인간의 기준으로 말하자면 날씨가 무척 좋다. 몇 개의 흰 구름들이 떠다니는 푸른 하늘은 깨끗하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다만 이것은 인간들의 기준일 뿐 내게는 사실 상관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은 마당에서 담장 너머의 어느 인간과 얘기를 나누는 내 연인 때문이다. 인간인 그녀는 오늘의 하늘을 보면 날씨가 좋다면서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을거다. 하지만 둘만의 시간이어야 할 지금을 방해한 어느 인간 때문에 거실엔 나 혼자 뿐이다.

 

 

"여기도 요즘 괴인이나 괴물 발생율이 줄어서 사람들이 늘었더라고요."

"그런가요. 그러고 보니 최근 동네에서 사람들을 예전보다 자주 보게 되었네요."

"아가씨는 여기서 오래 지냈지? 무섭지 않았어?"

"글쎄요. 예전엔 주위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보니 느끼지는 못했어요."

"그래도 지금은 듬직한 그이가 있어서 안심이지?"

"...... 네."

 

 

집중해서 엿들은 내용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아니, 저 정도면 나중에 한번쯤 구해줘도 괜찮겠지. 저번의 어느 인간처럼 나에 대해 헌담 비슷한 얘기를 하지 않으니. 나는 상관없지만, 사유라가 기운이 없어졌었지.

 

 

"만약 그때 사유라가 울었다면 이 동네에서 살지 못하게 했을텐데."

 

 

그녀가 싫어할게 분명하기에 되도록 인간에게 피해를 줄만한 일은 하지 않는다. 한다면 들키지 않을 방법으로 하겠지만... 죽이는건 귀찮은 일이 많아질테니 피하고, 간단하게 집을 절반정도 파괴했으면 됐을거다. 아아, 정말이지. 나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이야. 옛날에는 그저 제거하는 것으로 쉽게 끝냈었는데... 복수를 해온다면 그건 그것대로 처리하면 끝이었는데... 몇몇 부분이 확실하게 바뀌어버렸군. 단 한명에 의해서...

 

 

 

(▶)

 

 

 

그녀와의 첫 만남을 떠올린다.

몇 번이고 떠올린 그날의 일을 또 떠올린다.

죽음을 택하려던 자신에게 다가온 그녀가 말했었다.

 

[죽으셨나요?]

[외로움은, 고독은 어느 존재에게도 괴로운 것이니까요]

 

그녀에게서 낯선 미소와 손길을 받았다.

자신에게 주어질리 없었을 상냥함을 줬다.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하게 만들어버렸다.

 

 

 

(▶)

 

 

 

이렇게 떠올리면 심한 변덕이었다. 허나 그 변덕은 결국 내가 사유라에게 '한눈에 반했다'는 말과 같았다. 나는 그날, 다시 태어나면서 사랑을 가져버렸던 것이다. 본래라면 내가 가질리 없었을 감정을...

 

 

"뭐, 그걸 깨달은 건 조금 후지만..."

 

 

그런 감정이 있거나 누군가의 모습들을 봤지만, 한 번도 가진 적도 공감한 적도 없는 감정을 스스로 깨달을 수는 없었다. 사랑이라 몰랐을 때는 그저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라 생각했다. 약해졌던 내게 건내져 온 부드러운 목소리와 미소, 손길들을 온전하고도 완벽하게 가지고 싶었다. 내게 만을 향하길 바랬고, 위태로움이 가득하던 그녀를 내가 웃게 만들고 싶었다. 허나 자신의 감정에 대해 제대로 모른 것이 문제였을까. 내 것이 되어달라는 부탁에 사유라는 끝내 울었었다. 살려달라는 애원과는 비슷하지만 틀린 애원을 내게 말했었다.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지 말아 달라는, 자신이 다시 기대감을 갖게 하지 말라는 울음 섞인 목소리였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때의 그녀의 말에 의해 나는 내 감정이 사랑이란걸 알게 되었다.

그 후는 나는 계속 사유라에게 고백하고, 그녀는 거절하기의 반복이었다. 그리고 내 몸이 완전히 돌아왔을 때엔 일이 터져버렸다. 사유라는 내게 자신의 소망을 말했고, 나는 그것을 거절했다. 다음은... 사실 떠올리기 싫지만 잊지 말아야할 일이다. 사유라가 새로운 내 부탁에 무너져 자살을 시도하려 했다. 그때의 그녀의 얼굴을 잊지 못한다. 그 색색의 알약들을 잊지 못한다. 만약 내가 그 독약들을 전부 먹지 않았다면 처음이자 유일한 사랑을 가지게 한 사유라가...

 

 

"제길..."

 

 

나도 모르게 나온 욕지거리. 그만큼 그날의 일과 막지 못 했다면의 일을 생각한다면 가슴이 얼어붙는 감각을 느껴버린다. 사유라가 죽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끔찍하다. 몇 번이고 꾼 악몽들은 지독했다. 차라리 내가 죽고 싶었을 정도로... 아아, 그래. 나는 그때 독약을 먹었을 때,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죽지 않는다면 그걸로 됐다면서, 내 곁에 그녀가 없을거라면 차라리 죽는게 나을거라고... 나는 이기적인 생각을 했다. 그녀가 그것으로 후에 아파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모른채 말이다.

지금은 알게 되었지만, 결국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사유라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가 없다. 나는 그날 그녀를 만난 순간부터 사유라란 존재에게 구속되어져 버린거다. 삶의 이유도, 기쁨도, 슬픔도, 행복도, 괴로움도 모든게 그녀와 연결되어져 버렸다. 이것은 어쩌면 미친 것이 아닐까.

 

 

"그래도 상관없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다른 것들은 어찌돼든 상관없다. 나는 사유라만 있다면 족하다. 설령 그걸 위해서 어떠한 댓가를 치러야 하더라도. 필요하다면 누군가의 목숨, 한 국가, 더 나아가 별을 부술 것이다. 그걸로 사유라에게 미움을 받더라도, 내 곁에 그녀를 둘 수 있다면 상관없다. 하지만 이건 최후의 수단이니 지금은 머릿속 한 구석에 밀어두자. 아직은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

 

 

 

생각이 너무 깊어졌군. 사유라는 지금쯤 수다를 끝냈을까. 어느새 눈을 감았던 눈을 떠 창밖을 보니 때 마침 대화를 마친 듯, 그녀와 대화를 나누던 인간이 자리를 뜬다. 드디어 둘만의 시간이 될거란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려던 찰나 다른 인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은 어린 남자 인간의 목소리였고, 엄마라는 단어를 외친다. 허나 나와는 상관이 없어, 사유라를 본다. 거기엔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는 그녀가 있다. 우주에서 본 어느 별보다 예쁜 눈동자엔 몇 번이나 봐온 슬픔이 담겨지고 있었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그녀가 보는 방향을 살펴본다.

 

 

"엄마, 나 오늘 학교에서 체육시간에 달리기 했어!"

"그래?"

"거기다 1등이었다!"

"대단하네~ 우리 아들! 좋아, 오늘은 저녁은 우리 아들이 좋아하는 계란말이 해줄게."

"와아~!!"

 

 

그곳엔 평소 조용한 이곳과는 다른 풍경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단 둘 뿐인데도 어딘지 시끌벅적하다는 느낌이 드는 두 인간. 다시 사유라를 본다. 점점 멀어지고 있는 두 인간을 바라보는 그 표정은 잔잔하다. 허나 그럼에도 내게는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으로 다가온다. 나는 알고 있다. 사유라는 저 표정으로 언제나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왔던 것을. 그리고는 혼자가 되면 무너지던 모습도 알고 있다.

저 때의 사유라는 항상 무언가에 짓눌려 있다. 그녀가 말하기로는 후회와 그리움, 미안함 등의 여러가지 감정이라고 한다. 나는 모른다. 나는 아직 그녀가 몇 년이란 시간동안 벗어나지 못하는 만큼의 아픈 감정을 모른다. 겪은 적이 없는 감정에 대해 공감하기 힘들다. 이것이 어쩌면 어쩔 수 없는 차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필사적으로 이해하려 한다. 허나 그럼에도 나는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지금의 내게는 커다란 슬픔도 괴로움도 없다. 사유라가 내 곁에 있기에 나는 아직 절망을 느끼지 못한다.

이런 내가 그녀를 진정으로 위로해주거나 아픔을 덜어줄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럼에도 곁에 있는다. 함께하려 한다. 나는 그녀 덕에 아직 더 행복해질 수 있는데, 그녀는 어떨까. 저렇게 짓눌리고 괴로움을 가진채 있다가 또 무너지지 않을까. 만약 사유라가 진정으로 무너져 내 곁에서 사라진다면, 나는 벗어나지 못할 슬픔에 빠지겠지. 그것이 무섭다고 느껴, 사유라를 잃고 싶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선다. 전해야 할 말을 되새기며...

 

 

 

(▶)

 

 

너는 또 과거에 붙잡혀 괴로움을 느낀다.

네게 있어 너무도 무거운 짐을 짊어진다.

나는 그런 너를 끌어안아 줄 뿐이다.

 

네가 견딜 수 없고 네 짐이 무거울 때, 네가 무너지지 않도록 곁에 있어주마.

세상이 널 어지럽게 하고 모든 것이 수수께끼인 듯 할 때, 나는 네가 단지 간단한 것만이라도 기억하길 바란다.

 

나는 언제까지고 너의 곁에서 있을거란 것을...

내가 영원히 너만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

 

 

 

"보로스, 혼자 있게 해서 쓸쓸하셨어요?"

"이제는 그런 말로 얼버무리는 법도 배웠군."

"보로스도 말이 느셨어요."

 

 

뒤에서 끌어안자 들려온 목소리는 언제나와 같다. 아니, 미미하게 밝은 느낌이다. 허나 그것이 일종에 숨기는 행위임을 알고 있다. 아직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사유라의 면모는 내 마음을 조금 무겁게 만들어 버린다. 아아, 이 가녀린 존재는 왜 아직도 내게 완벽하게 기대지 않는걸까. 나는 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데...

 

 

"내가 곁에 있어주마. 언제까지나..."

"......"

"나는 너를 혼자 두지 않을거다. 너만을 사랑할거다."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저는 괜찮을 수 있어요."

"... 그렇다면 왜 방금까지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던거냐."

"아직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에요."

 

 

괜찮다고 했으면서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부분에 여전히 괴로워한다. 언제면 그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나아질까라고 생각하며, 작은 턱을 올리게 한다. 그러자 나를 올려다 보는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다. 예전에는 부서질 듯 흔들렸던 눈동자는 나를 똑바로 바라봐, 미약하게 안도한다. 정말이지, 한 시도 혼자 내버려둘 수 없는 존재다. 이렇게 몇 번이고 확인하지 않으면 내가 불안함에 먹혀버릴 것 같으니까. 그렇게 늘어가는 나약함을 자각하는 내게 사유라는 미소를 보인다. 그저 미소뿐인데도 너무도 사랑스럽다.

 

 

"보로스, 슬슬 목이 아파오는데..."

"이 정도로 아파오는거냐."

"그러게요. 저도 몰랐어요."

"집 안으로 들어가자."

"네네."

 

 

여유로운 모습. 예전이었다면 내 질문에 미안하다고 사과했을 사유라는 지금 사과하지 않았다. 사과하던 그녀는 대부분 슬퍼보였기에 들려온 대답이 내게 있어 더 좋은 반응이다. 또 다시 방해가 들어올까 작은 손을 잡고 집 안으로 돌아간다. 이제야 둘만의 시간이 돌아 왔다고 들뜨는 찰나 내 손안에 있던 온기가 스르르하고 빠져나간다.

 

 

"어디 가는거냐."

"이제 이불을 빨래해야 해서요."

"나중에 해라. 아니, 내일 해라."

"그치만..."

"꼭 지금 해야만 하는거냐."

 

 

한 순간 허전해진 손 안이었다. 그 감각이 너무도 싫어, 재빨리 사유라의 손을 잡았다. 내 미약한 불안함이 담긴 질문에 사유라는 태연하게 답한다. 내일로 미루라는 내 말에 조금은 당황한 시선이 건내져 온다. 참 바보같은 억지다. 어리광이라는 행위다. 결국 집 안에 함께인데도 잠시라도 떨어지기 싫음에 붙잡는다. 허나 어쩔 수 없다. 평소에 그녀의 사정이라는게 있어 참지만, 사실은 한 순간이라도 떨어지기 싫다. 품 안에 가두어 어디로도 못 가도록 하고 싶다. 내가 생각해도 심각한 집착을, 나보다 감정에 더욱 잘 아는 사유라도 알 것이다. 아아, 지금은 참았어야 했을 순간이었던건가...

 

 

"그럼 내일로 미루죠."

"괜찮은거냐?"

"네. 대신 커피 좀 끓여 올거니까, 이 손은 놓아주세요."

"...... 알았다."

 

 

내 부탁을 들어준 그녀지만, 결국 어디론가 가려고 한다. 사실은 놓기 싫은 손을 놓아준다. 사유라가 내 부탁을 들어줬으니, 나도 들어줘야 한다. 그것이 그녀와의 관계를 오래 유지하고도 사랑받을 수 있는 방법이기에. 지금은 내가 참아내야 할 순간이다. 물론 손을 잡고 싶다는 욕심만...

 

 

 

(▶)

 

 

 

귓가에 달그락달그락 이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거기에 천이 서로 쓸리는 소리와 아주 작지만 물이 보글거리는 소리도 들려온다.

 

 

"보로스, 겨우 커피 끓이는 몇 분인데 거실에서 기다려도..."

"이 상태로도 끓일 수 있지 않나."

"그렇긴 한데..."

"그럼 문제 없는거다."

 

 

사유라는 전기포트란 기계로 물을 끓이는 동안 두 컵에 커피를 담아낸다. 작고도 하얀 두 손을 계속 움직이면서도 뒤에 있는 내게 말을 거는 그녀. 그런 사랑스러운 존재를 나는 또 다시 뒤에서 끌어안고 있다. 이러면 떨어질 필요도 없고, 사유라는 제 할일을 할 수 있다. 아아, 작은 손이 귀엽다. 만지고 싶지만, 방해하면 안되니 참아야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 끓은 물을 컵 안에 붓는 손. 몇 번이고 본 장면은 지겹지 않다. 다음에는 내가 해야겠다. 그러면 분명 내 연인은 웃어 줄 테니까. 고맙다며 나만을 향한 미소를 지어주겠지. 나는 지금처럼 사유라를 독점할 수 있겠지.

 

 

"보로스."

"응?"

"이제 거실로 갈거니까, 팔 풀어주세요."

"그럴 필요는 없다."

"네?"

 

 

기분 좋은 생각 중 들려온 나를 부르는 목소리. 다만 언제 들어도 좋은 부름에 비해 뒤에 들려온 부탁은 조금 아쉽다. 뭐, 사유라는 원래부터 나만큼이나 함께 한다는 것에 집착하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는건가. 라고 생각하며 나는 연인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 가녀린 몸을 한 손으로 별 힘 없이 안아들고, 나머지 한 손으로 두 컵을 쥔다. 그대로 나는 거실로 향한다. 이제는 이런 일이 꽤나 익숙해진 것인지, 거실에 도착할 때까지 사유라는 얌전히 있는다. 거실에 도착하자, 낮은 탁상에 컵을 내려놓고, 바닥에 앉는다. 물론 품 안의 소중한 존재는 여전히 내 팔 안에 가둬둔채다.

 

 

"커피 마시지 않을거냐?"

"보로스에겐 저는 아직 너무 약한건가요?"

"갑자기 무슨 소리냐."

"그게 컵 두 잔 정도는 혼자 잘 들 수 있는데..."

 

 

바로 마실거라 여긴 커피에 손을 대지 않는 그녀에 물어본다. 들려온 것은 대답이 아닌 질문. 그런건가. 나는 그저 떨어지고 싶지 않음에 한 행동인데, 사유라에겐 그렇게 전달되어 버린건가. 뭐, 내 무의식 중엔 힘들게하지 말자는 생각도 있었겠지만, 이번은 아니니 제대로 얘기해야겠군. 냅두면 사유라는 깊게 생각해서 혼자 끙끙거릴 수 있으니.

 

 

"그게 아니다. 나는 그저 너와 떨어지기 싫었던거다."

"과보호가 아니고요?"

"아니다. 그리고 내 기준에선 적당한 정도로 너를 위해 주는건데, 너나 다른 녀석들은 과보호라고 하는군."

"그럼 과보호가 아니지만, 그만큼 제가 위태해 보이는 건가요?"

 

 

조금은 힘없는, 떨림이 담긴 목소리. 또 사유라는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 왜 너는 곧 잘 이렇게 기운이 없어지는걸까. 내가 곁에 있어 느낄 필요가 없을 불안함을 느끼는걸까. 네가 자신이 나약하다는 사실에 이렇게도 아파하는 이유를 나는 아직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 그저 네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며, 조심히 말을 건낸다.

 

 

"나는 아직 너희 종족의 기준을 정확하게 모른다. 네가 말하는 위태함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른다."

"......"

"하지만 나는 너에게서 위태함을 느끼긴 한다. 너는 나와 비교 했을 때, 한없이 힘이 적기에. 몸도 약하고, 가녀리기에. 그런 너를 나는 걱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너를 잃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거다. 내게 있어 가장 큰 두려움은 네가 내 곁에서 사라지는 것이니까."

"그건 제가 민폐가 된다는 말이 아닌가요?"

 

 

또 이 패턴이다. 몇 번이고 반복 되어 온 대화다. 사유라는 또 복잡하게 생각하려 하며, 자기 자신을 아프게 하려 한다. 그것은 불필요할 행동이다. 살아있는 존재가 굳이 할 필요성이 없는 행위다. 그럼에도 내가 소중히 여기는 이 존재는 종종 이런 행동패턴을 보인다. 과거에서 겪은 일로 그녀는 아직도 자신을 미워하고 있다.

한 순간 과거를 바꾸면 사유라가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품는다. 과거에 묶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소중히 하고, 삶에 대해 집착이 강해져서 나를 향해 환하게 웃는 그녀를 상상한다. 허나 곧 그만둔다. 이것은 그저 망상이며, 굳이 과거를 바꿔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설령 내게 시간을 조작할 수 있는 힘이 있었더라도, 그것이 손바닥을 뒤집는 것만큼 쉬웠더라도 나는 바꾸지 않을거다. 바꾼다면 지금의 그녀도, 나와의 만남도 없어질지도 모르니까.

 

 

"나는 몇 번이고 답하마. 그게 아니다. 너는 내게 있어 민폐가 된다거나 짐이 되는 일은 없을거다."

"....."

"아까도 말했듯 나는 네 곁에 있을 것이고, 너만을 사랑할거다. 그런 너를 아끼며, 걱정할거다. 네가 말하는 과보호적인 행동으로 너를 지켜낼거다."

"그럼 보로스가 있는한 전 쭉 과보호 속에 있겠네요."

"혹시 싫은거냐."

 

 

진심만을 담아 얘기한다. 애초에 빙 돌려 얘기할 생각도 없지만, 분명 사유라에겐 이렇게 전하지 않는 이상 전해지지 않을거다. 아, 예전에는 전해지기는 커녕 부정당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건 정말 낯설고도 극심한 아픔이었다. 그건 사유라는 아직 모르는 비밀이다. 아직은 말하면 안될 비밀을 삼키며, 답변을 기다린다.

하얀 두 손이 뻗더니 잔을 감싸쥔다. 하얀 잔은 그녀의 손과 잘 어울린다. 갈색의 커피에 무언가 떨어져 파문이 퍼진다. 나는 떨어진 무언가의 이름을 알고 있지만, 일부러 말하지 않는다. 그저 중요한 대답을 기다린다.

 

 

"싫지 않아요. 아니, 보로스이기에 이제는 기쁨을 느껴버려요."

"다행이군. 혹시나의 대답일까, 조금 걱정이었다."

"죄송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또 그 대답이군."

"그러게요. 앞으로 전 보로스에게 몇 번이나 사과랑 감사의 말을 할까요."

"모른다. 그래도 몇 번이던 나는 상관없다. 끝까지 전부 들어주마. 너의 시간이 끝나는 때까지 함께하면서..."

 

 

우리는 결국 몇 번이고 서로에게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나도, 사유라도 앞으로 몇 번이고 반복할 말... 보통의 연인들은 이런 말을 하는지에 대해 모른다. 관심도 없다. 그저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과정이며, 표현이라는 거다. 그리고 이번에도 사랑하는 존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이제는 꽤나 편해진 다른 별의 말을 건낸다. 그러자 더 많이 들려오는 물방울 소리. 커피에 퍼지는 파문들에 의해 비쳐지지 않는 사유라의 얼굴에도 나는 말없이 조금 더 강하게 끌어안는다.

 

 

 

(▶)

 

 

 

잠깐의 시간 후, 진정이 된 사유라. 그 사이 두 잔의 커피는 밋밋한 온도로 식어졌다. 물론 우리 둘은 딱히 신경쓰지 않는다. 오히려 사유라는 음악이 듣고 싶어졌다며 핸드폰을 만지작 거린다. 아마 방금까지 울었던 것이 조금 멋쩍어져서 분위기를 바꾸려는 걸거다. 내가 그 누구보다 자신의 눈물을 봤는지 알텐데도, 서투름이 많다는 여성은 여전히 부끄러워한다. 문득 그녀가 마시려던 커피에 눈이 간다. 투명한 물방울이 몇 방울이나 들어간 커피가...

 

 

"보로스 그거 제 커피..."

"......"

"............ 왜 그걸 마셔요?!!"

"맛있군."

 

 

음악을 틀은 것인지 들려오기 시작한 소리. 허나 난 그것에 신경쓰지 않고, 내 손에는 작은 컵을 들어올린다. 내 의도를 모른채 있던 사유라는 커피를 마셔버리자 최근 듣지 못한 큰 목소리를 낸다. 나는 그 외침의 이유를 알면서도 태연하게 감상을 중얼거린다. 평소 딱히 커피가 맛있다고 느끼지 않는데, 방금의 커피는 정말 맛있게 느껴졌다. 그저 그녀의 눈물이 몇 방울 들어간 것 뿐인데도 맛이 달라질까. 마셔보길 잘한 선택이군. 이라고 생각하는데 볼이 당겨진다.

 

 

"보로스, 왜 커피를 마신거에요."

"맛있을 것 같아서."

"눈물이 들어간 커피라고요. 별 다른 맛이 날리가 없잖아요. 아니, 애초에 타인의 눈물이 들어간 커피가 뭐가 맛있어 보인다는 거에요."

"타인이라니... 너의 눈물이다. 맛있어 보이는게 당연한거다."

"그럼 제 눈물이 맛있다는 건가요?"

"맛있다."

 

 

어느새 내 쪽으로 몸을 돌려 똑바로 바라봐오는 사유라. 당겨진 볼은 전혀 아프지 않다. 물론 그녀가 살살 당기는 것도 있지만, 설령 전력으로 당겨도 내게는 아픔까지로는 느껴지지 않을거다. 거기다 이렇게 따지는 모습이 귀여워 아픔이 있더라도 별 신경 쓰이지 않을거다. 또한 들려온 질문에 떠올려 버린다. 아까의 커피 맛을... 아아, 입 안에 남은 커피의 맛에 조금이라도 안일해지면 입맛을 다실 것만 같다. 그만큼 맛있었다. 사유라의 눈물은....

진심을 담아 답하자, 예전보다 혈색이 좋아진 두 볼이 순식간에 붉은 색으로 물들어진다. 그 부드러운 붉은 색은 가는 목까지 번져버린다. 눈은 커져 연갈색의 눈동자가 훤히 보인다. 그 안에 비쳐진 내가 있다. 살짝 벌려진 입술이 너무도 무방비하기 짝이 없다. 아아, 이건 너무도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 아닌가. 아까의 커피보다 더욱 치명적인 존재가 내 이성을 뒤흔드는데 참을 수 있겠는가...

 

 

"스,스톱!"

"....."

"손가락에 키스하는 것도 안돼요."

"......"

 

 

내 입을 막는 하얀 손. 막은 것에 짜증이 났지만, 입술에 닿는 온기와 미약한 달콤한 향에 입맞춤을 하려했다. 허나 몇 번을 겪어서인지 미리 나를 제제하는 사유라에 절로 불만을 담아 바라보게 된다. 내 시선에 여전히 볼을 붉힌 채 나를 바라보는 그녀. 하지만 곧 시선을 옆으로 흘겨버리더니 슬금슬금 품 안에서 벗어나려 한다. 이 반응은 예전에도 있었다. 가벼운 입맞춤에도 부끄러워 도망치던 시절의 모습이다. 눈물이 맛있다고 한게 그렇게도 부끄러운 건가.

 

 

"어디를 가려는 거냐."

"자, 잠깐만 떨어져 있을려고요."

"왜지?"

"지금 보로스 눈빛이 엄청 위험해 보이거든요."

"어떻게 말이지?"

 

 

멀어지려는 허리를 잡아 세워 묻는다. 두려움이 아닌 부끄러움으로 채워진 눈동자가 나와 시선을 맞춘다. 아아, 이것조차 사랑스러워서 참기 힘들다. 왜 이렇게도 이 존재는 나를 채우는 동시에 갈증을 나게 만들까. 이런 존재는 없었는데, 이런 존재가 존재할거라 여기지 않았는데...

부드러운 몸을 만지고 싶다. 따스할 피부에 코를 부벼 향을 맡고 싶다. 심장이 두근거림에 따른 작은 진동을 느끼고 싶다. 달콤한 입술을 탐하고 싶다. 감미로울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고 싶다. 전부, 전부, 이 존재의 모든 것에 나를 새겨 넣고 싶다. 나로 인해 흐트러지는, 나를 원하는 모습이 보고싶다. 이 욕망을 전부 쏟아내고 싶다. 소중히, 소중히 부서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내 사랑으로 취하게 만들고 싶다.

 

 

"저기 보로스 진정하세요. 진짜 눈빛이 위험하다고요."

"문제가 뭐가 있지?"

"문제랄까... 으음."

"이번에도 없지 않나. 그럼 키스해도 되겠지?"

 

 

내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지 못하는 모습. 다른 인간들은 모르겠지만, 사유라의 경우 싫다는 반응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대로 키스를 해도 삐질리가 없을거다. 결국 내게 무른 사유라는...

 

 

"스톱! 스톱!"

"......"

"역시 안되겠어요. 왠지 너무 부끄러워서..."

"정말 안되는거냐?"

"...네."

 

 

아직 치우지 않은 손에 다시 힘을 주는 그녀. 두 번이나 막힌 키스에 짜증보다는 간절함만이 커진다. 허나 언제나라면 결국 허락해줬을 질문에도 안된다고 하는 모습은 정말로 안된다는 이야기다. 이런 순간의 사유라의 완고함이랄까 고집은 어찌할 수 없다. 강제로 했다가는 삐져버릴거다. 평소 삐지거나 화를 내지 않는 내 연인이다만, 한번 제대로 삐진다면... 후우, 참기는 힘들지만 어쩔 수 없겠군. 이번에는 참는 수 밖에. 결국 숙였던 고개와 상체를 원래대로 하는데, 품 안에서 따스함이 멀어진다.

 

 

"키스는 하지 않을거다."

"잠깐만 떨어져 있을게요."

"아직도 내 눈빛이 위험하다는거냐."

"그것도 있고, 방금 말했다시피 부끄러워서..."

"네 눈물이 맛있다는 얘기가 왜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저도 왜 이렇게 부끄러운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정리가 되면 다시 곁에 다가갈게요."

"알았다."

 

 

이번에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나와 그녀의 차이를 느껴버린다. 그저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그녀에게는 너무도 부끄러운 일이라고 한다. 아직 인간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걸까, 사유라에 대한 내 이해가 적은걸까. 내 소중한 존재는 부끄러움에 옆자리로 떨어진다. 어떤 녀석은 겨우라고 할지도 모르는 거리지만, 내게는 이만큼의 거리도 애가 탄다.

내게서 떨어진 사유라는 골똘히 생각하는가 싶으면 얼굴을 더 붉히거나 괜히 다른 곳을 본다. 가끔 나를 힐끗거려 봄으로 인해 굴려지는 작은 눈동자. 몇 번을 그러더니 결국 탁자 위에 엎드리며, 두 팔 속에 얼굴을 묻어버리는 그녀다.

 

'대체 이 귀여운 모습들을 보고 참아야 하다니. 차라리 내 눈이 머는게 더 나을거다.'

 

입 밖으로 내지도 못하는 내 불만이 입 안에 맴돈다. 아아- 정말 이 존재를 어찌하면 될까. 하나하나가 이렇게도 날 뒤 흔든데, 날 애타게 만드는데 왜 나는 이렇게 바라만 봐야하는걸까. 어깨에서 흘러내린 검은 머리카락이라도 만지고 싶다. 하다 못해 온기가 느껴질만큼 가까이 앉고 싶다. 그런데도 사유라는 떨어져 있겠다고 한다. 내가 이렇게도 애타는데도, 참는데도 내 연인은 떨어져 있다. 허나 욕망대로 멋대로 한다면 그녀가 상처입거나 곤란해 할거다. 그렇기에 참아야 한다. 한 순간만 참아내면 된다. 사유라가 다시 내게로 다가올 때까지. 이번에도 참아내면 된다. 정말이지, 한심하다. 예전보다 더욱 나아졌는데, 욕심은 커져 잠시 떨어지는 것도 힘들어지다니. 차라리 눈을 감자.

 

 

 

(▶)

 

 

 

Like what's a heartbeat with a heartache

가슴 아픈 박동같이

What's a hurricane without the rain

비가 없는 폭풍같이

What's the moon without the stars

별들 없는 달과 같이

 

That's how I feel when we're apart

그것이 헤어져 있을 때 느낌이야

 

 

 

(▶)

 

 

 

사유라가 아까 켜놓은 음악이 들려온다. 유독 확실하게 들려온 가사는 얼핏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왜 그런 가사인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으나 아마 이런 말일 것이다. 당연하게도 같이 있어야 할 두 존재가 없는 것에 대한 아픔이라고. 그 순간이 아프고도 공허하다는 뜻일거라고 나는 멋대로 해석한다. 정말 그런거라면 공감할 수 있다. 나에게는 사유라가 없을 때의 기분이기에.

그녀가 없을 때의 나는 지루하고도, 괴롭고도, 공허할 뿐이다. 숨을 쉬는 것도,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도, 감각을 깨우고 있는 것도 전부 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인간들과 같은 심장은 없으나, 가슴 깊숙히부터 아파온다. 아픔을 느낄리가 없을 핵이 아픔을 호소한다. 사유라가 없는 매 순간은 대부분 내게 의미가 없다. 나는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욕을 느낄 수 없게 된다. 지구에 오기 전과는 다르고도 더욱 지독해진 이 텅빈 느낌은 억누르기 까다롭다.

 

 

"한심하군."

"보로스?"

"...혼잣말이다."

 

 

결국 흘러나와 버린 감정을 당연하겠지만 사유라가 들어버렸다. 이건 그녀가 들어봐야 좋을게 없는 말이었는데, 정말 바보같이 입 밖으로 내버렸다. 걱정 많은 내 연인은 지금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겠지. 눈을 감고 있어도 시선이 느껴지며, 나는 그녀의 상냥함을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내게 다가오는 것도 알고 있다. 눈을 뜰까 했지만 떴다가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아 그만둔다. 허나 입술에 닿은 부드러움과 온기에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날 눈 뜨게 한 장본인은 옅은 미소를 지은채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이제 기운 나셨어요?"

"나는 기운이 없던 적이 없다."

"그럼 조금 괴로웠던게 아닌가요? 제게는 그렇게 보여 왔어요."

"... 점점 너에게 숨길 수 없게 되는군."

 

 

입 밖으로 꺼내버린 것도 있지만, 거기서 내가 괴로워함을 알아챈 사유라. 내 부하들은 알아차렸을까? 말도 안되는... 그 녀석들이 알아차렸을리가 없다. 나는 그들에게 있어 강하고도 두려움의 보스였다. 자신들을 이끌어 줄거라 여긴 힘의 덩어리였다. 그렇기에 그들은 내 기분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더러, 나를 제대로 보지 못 했을거다. 아니, 그 당시에 나도 감정이란 것을 그리 갖지 않았다. 그저 강자와 싸움으로 갈증을 해소하던 때의 난 힘을 쓰고 싶던 힘의 덩어리. 그런 나의 감정들이나 기분을 제대로 알아차린 녀석들이 있었을리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눈앞의 이 존재가 날 바꿔주었으며, 나를 바라봐 준다. 누구와도 다른 시점으로, 그저 나를 바라봐 준다. 그리고 나도 이 사랑스런 존재에게 단단히 빠져서 무엇이든 보려한다. 그녀의 전부를 알고 싶고, 내가 독점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나는 이 하나뿐인 존재를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내 곁에서 떠나보내지 않을거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내 곁에 둘 것이며, 어느 존재도 가져가지 못하게 할거다. 이건 그녀의 기준으로 보면... 그래, 시커멓고도 질척한 감정이다. 소유욕일거다. 아아 전하고 싶다. 내가 그녀를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거라는 이 집착을... 내 기준에선 순수한 이 가녀린 존재가 모르는 이 죄에 가까운 집착을...

 

 

"그건 서로 피차일반이에요. 저도 보로스에게 숨길 수 없는게 늘어가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아직 난 너의 대해 모르는게 많다고 생각한다."

"... 보로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저도 아직 당신에 대해 모르는게 많다고 여겨요. 그래도 하나는 알아요."

"뭘 말이지?"

 

 

사유라가 나에 대해 모르는건 어쩔 수 없다. 내가 일부러 숨기고 있는 과거가 많기에... 누가 뭐라해도 나는 도적이었으며, 그녀가 겁을 먹을지도 모르는 일도 한 적이 있다. 내 손에 파괴된 행성들 중엔 그녀가 좋아했을지도 모르는 풍경이 존재했던 곳이 있었을거다. 그녀가 아파했을지도 모르는 목숨이 있었을 수 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마음으로 내 연인은 울 수도 있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나를 멀리 할 수도 있다. 그걸 원하지 않아, 감추고 있다. 나를 미워하지 않기를 바라는 이 이기적인 마음은 사유라로 인해 생겨버렸다.

아주 잠깐이지만 생각에 빠진 입술에 한 번 더 부드러움이 닿아온다. 곧 이어 옅은 온기도... 그것은 금방 떨어져 나갔고, 또 내 입술에 겹쳐온다. 아주 잠시뿐만 맞췄다가 떨어지는 키스를 사유라는 몇 번이나 해온다. 한 번, 한 번이 전부 조심스럽고도 정성스러워 그저 사랑스러운 키스를 받는 나다.

 

 

"그래서 이건 무슨 대답이지?"

"보로스가 저와의 키스를 좋아하는 사실이요."

".................................."

 

 

그렇게 몇 번인가의 키스가 끝나자, 감았던 눈을 떠 나를 올려다 보는 사유라에게 묻는다. 내 질문에 그녀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답한다. 입꼬리를 살며시 올리면서, 눈을 살짝 접으며 살풋 미소를 짓는 그녀. 생각지 못한 대답과 미소에 여러가지가 날아가버린 기분이 된다. 그저 사유라가 너무 사랑스럽다는 감정만이 남아, 몸이 절로 움직여버린다. 정신을 차리니 이미 나는 그 가는 몸을 다시 품 안에 끌어안고, 작은 입술에 내 입술을 겹치고 있었다.

방금의 그녀를 따라하듯 입술을 맞춘다. 입술을 뗄 때마다 작은 쪽소리가 울리고, 살짝 떠 있던 사유라의 눈꺼풀이 닫혀버린다. 그것은 어느새 생겨난 우리 둘만의 신호이며 허락이다. 나를 받아들인다는 그 소리없고도 어딘지 우아한 몸짓에 가슴이 미미하게 떨린다. 폭주할 듯한 욕망을 억누르고, 입술을 살며시 핥아 노크를 한다. 그러자 열린 입술 사이로 들어가 그 안을 탐한다. 무엇 하나 상처 입히지 않도록 조심히, 그러면서도 굶주린 짐승같이 탐욕스럽게 키스한다.

아아, 그 어떠한 훌륭한 음식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이 맛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아니, 그전에 내게 있어 사유라 자체가 어떠한 마약이나 아름다운 존재보다 가치 있고도 갈망하게 만드는 존재다. 음식 따위와 비교할 수 있는게 아닌거다. 어느 존재도 그녀와 비교할 수도 없고, 가치를 겨눌 수 없다. 그만큼 나는 이미 이 존재에게 미쳐버린 것이니까.

 

 

"아까까지는 부끄럽다면서 눈도 못 마주치더니... 먼저 키스하질 않나, 그런 앙큼한 말까지 하지 않나. 무슨 생각인거냐."

"저는 그냥 보로스가 기운나길 원했고, 저도 보로스를 좋아하니까..."

"...... 너란 존재는 정말..."

 

 

긴 키스가 끝나 입술을 뗀다. 나는 없는 불평을 담아 그녀에게 따진다. 그리고 조금은 뜨거운 숨을 고르며 답하는 사유라에게 격침을 당한다. 진짜 이 녀석은 자기 말로는 알건 다 아는 성인이라면서 이런 모습을 보면 순수하기 짝이 없다. 그래그래, 내가 욕망에 찌들었고 이런저런 생각을 다 하는 밝히는 존재인거군. 물론 이건 이 사랑스런 존재 한정이지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가는 어깨에 얼굴을 묻어버린다. 키스 할 때와는 조금은 다른 향이 맡아져 온다. 진하지 않은 이름 모를 옅은 향에 한 번 더 나를 부추기려 한다. 넘치려는 욕망을 억누르며, 입을 연다.

 

 

"근데 이제 부끄러운건 괜찮은거냐."

"음- 아마도요.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려고요."

"단순하게?"

"너무 부끄러울 만큼 제가 보로스를 좋아한다는 걸로요."

 

 

본인은 전혀 모르겠지만, 이 존재는 나를 인내심이란 독으로 죽일려고 하는 것 같다. 아니면 다른 녀석들이 말하던 상사병으로 말이다. 서로의 사랑을 받아 들이고, 연인이 되었어도 너무도 사랑하고 사랑해서 상사병을 가진 기분이 된다. 그리고 가끔 넘쳐나는 이 감정에 폭주하여 이 손으로 이 가녀린 몸을 꺾어버릴 것만 같다. 그러면 안되기에 언제나 참아내지만, 온 힘을 다해 끌어안지 못하는 이 애달픔은 어찌 할 수가 없다.

 

 

"정말 너는 나를 미치게 만드는군."

"칭찬인가요?"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저는 칭찬으로 생각해요."

"이유는?"

"미치게 만들 만큼 보로스가 절 좋아한다는 얘기잖아요."

 

 

언제부터 이 존재는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된 걸까. 만난지 얼마 안되었을 무렵에는 절대로 하지 않았을 얘기를 이제는 제법 당당하게 얘기한다. 부끄러워서 못했던게 아닌 자신이 내게 사랑받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누군가의 애정이 아파서 말하지 못했던 시유라. 그녀는 스스로에게 가치를 두지 않았기에 자신을 향한 누군가의 애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랬던 그녀가 지금은 내 귓가에서 읊조렸다. 자신을 사랑하는 나란 존재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그것이 기쁘고도 고마워서, 사랑스러워서 나는 작은 입술에 또 다시 키스한다.

이름 모를 그녀의 향과 따스한 온기를 느끼는 도중 노래가 들려온다. 그것은 아까처럼 내가 공감할 수 있는 가사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만든 녀석은 제법 뭔가를 아는 녀석일거다. 같은 종족도 아닌 나를 이렇게도 공감가도록 만들었으니 말이다. 나는 그 가사를 마치 내가 하는 말처럼 속으로 중얼거리며, 사유라와의 키스에 집중한다. 따스하고도 치명적인 행복에 취해간다.

 

 

 

(▶)

 

 

 

So complete, so complete

너무 완벽해, 너무 완벽해

You are all I ever need

내게 필요한 것은 오직 너 뿐이야.

 

You're here with me right now

넌 지금 내 곁에 있어

You're here in my heart now

넌 지금 내 마음 속에 있지

 

 

 

그리고 나는 너를 영원히 놓지 않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