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작

[잔혹동화 합작] 보로사유 - 이중으로 걷는 자 (도플갱어)

サユラ (사유라) 2018. 2. 20. 01:11

드림 [잔혹동화 합작] 에 참여한 원펀맨의 >보로스< 드림글입니다

* 오리주(드림주)/오너이입有

* 캐릭에 대한 개인적인 성격파악이나 구성된 부분이 있어 원작과 다를 수 있습니다.


*드림주가 등장하면서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



아주아주 멋지고 훌륭하신 존잘님들의 작품이 모인 홈페이지는 여기입니다!

주소 클릭이 되지 않게 설정을 해서 배너형식 같이 올리는점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사진클릭하면 홈피에 가집니다. 출처는 저작권없는 사이트)














황혼의 끝이 보이는 시간. 부엌이 짙은 주황색으로 덮였다. 그 부엌에서 나는 요리를 하고 있다. 한켠에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냄비, 다른 한켠에는 손질된 재료가 담긴 그릇이 있다. 탁, 탁, 타악. 나무도마에 칼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린다. 내가 흥얼거리는 콧노래에 섞이는데, 그게 너무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아아, 생각해보니 이게 평화로운 한 때라고 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닐까, 하고 꽤나 평화에 물들여진 생각을 해버렸다.



"그것도 전부 보로스 덕분이지만."



입에서 나온 누군가의 이름. 절로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언제나 내게 상냥한 그를 떠올리니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듯한 감각을 느낀다. 곧 있으면 돌아올 그는 마중나간 내게 '다녀왔다'고 얘기할 거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다녀오셨어요.' 라며 맞이할 거다. 언제나의 인사를 나누면 사랑스런 내 연인은 누구에게도 지어주지 않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을 거다. 나도 그 미소에 끌려 진짜 미소를 지을 거다. 



"그가 있어서 나는 구원을 받았으니까. 이제 가면은 필요 없어."



구원자. 그는 나의 구원자이자, 연인. 나만을 사랑해주고 나를 아껴주는 존재. 그러니까 이렇게 행복한 기분으로 기다릴 수 있는 거야. 가면을 준비하지 않아도 돼. 보로스의 앞에선 나는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될테니까. 아아, 그는 언제 돌아올까. 얼른, 얼른... 돌아오셨으면 좋겠다. 인사를 나누면 그 듬직한 팔로 끌어 안아주고, 언제나의 입맞춤을 주면 좋겠다. 나도 참, 주책이지. 계속 그에게 사랑받아 왔는데, 얼른이라니. 이것도 보로스 때문에 바뀐 거겠지.



"아, 맞다. 바보같이 잊어버릴 뻔 했다. 미쨩의 밥을 챙겨줘야지."



너무 보로스만을 생각하다가 귀여운 미쨩의 밥을 깜빡할 뻔 했네. 안되지, 안돼. 그 아이도 소중한 가족인데 챙겨야지. 언제나처럼 주지 않으면 안되지. 사료는 어디였더라. 아, 맞다. 거실의 있는 소파 옆에 두었지. 



"미쨩~ 미쨩~."



툇마루로 나가 미쨩을 부른다. 허나 미쨩은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다. 이 시간이면 오고도 남을 텐데. 두리번, 두리번.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마당을 살펴본다. 그리고 찾아낸 미쨩. 노을빛의 색과 비슷한 털을 지닌 미쨩은 그 빛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 겨울이 되어 이미 낙엽을 모두 떨어트린, 앙상한 가지만이 남은 나무의 그림자 속에서 미쨩은 내쪽을 바라보고 있다. 고양이 특유의 날카로운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미쨩, 밥 가지고 왔어. 추우니까, 거실에서 먹으면 어떨까?"



상냥하게 미쨩에게 말을 건다. 언제나처럼... 마치 미쨩과 대화가 가능하다는 듯이. 허나 오늘 미쨩에게 무슨 일이 있던걸까? 평소라면 꼬리를 세운 채 냐앙하고 울며 들어왔을 고양이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나를 바라본다. 강렬한 붉은 색의 세상이기에 더욱 부각되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눈동자는 나를 노려보는 것만 같았다. 새삼... 동물들은 날카롭다는걸 느낀다. 아아, 물론 눈빛 얘기다. 어쩔 수 없나, 오늘은 툇마루에 놓아둘까.



"미쨩, 여기에 둘게. 나중에 꼭 먹어.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



아직도 그림자 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미쨩에게 부드럽게 얘기한다. 툇마루에 먹이그릇을 놓은 뒤, 집안으로 돌아오는 와중에도 느껴지는 시선. 그 날카로운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는 것이 잘 느껴졌다. 당분간은 미쨩의 기분이 좋지 않을까 싶다. 어쩔 수 없지.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그럼 슬슬 카레가루를 넣어 볼까나."



냄비에 넣은 재료들이 제법 익었을 거다. 그럼 이제 카레가루를 넣고 푹 끓이면 될 일. 음, 그가 올 때쯤이면 조금 끓이는 시간이 부족하지 않을려나. 괜찮겠지. 보로스는 내가 만들어준 음식들을 맛있게 드셔주시니까. 그러니까 정성들여 만들자. 언제나처럼 둘이서 함께 식사를 하고, 식후엔 커피도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자. 언제나의 평화로운 일상을 지내자. 누구의 방해도 받지않은 채...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냄비 안으로 카레가루를 넣는다. 그러자 퍼지는 카레 특유의 향. 조금은 매콤한 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음, 살짝 매울 것 같지만 괜찮겠지. 나도, 그도 문제없을 거다. 이 정도 매운 정도 어린아이 정도가 못 먹는 수준이니까. 보로스라면 문제없겠지.



"응?"



보글보글 끓는 카레를 국자로 젓는 도중 들려온 소리. 무언가 유리에 부딪히는 소리에 거실쪽으로 향해본다. 그러자 거기엔 유리창 너머에서 노크하는 누군가가 있다. 평범한 사람들과 확연히 다른 외관.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존재가 있다. 반가움에 아무런 의심도 없이 달려간 나는 창문을 연다.



"다녀오셨어요?"

"......"



어라? 이상하다. 그라면 지금쯤 내게 미소를 지으며 '다녀왔다.'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그는 나를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분명 모습은 보로스가 맞다. 분홍색의 머리카락, 커다랗고 예쁜 푸른색의 외눈, 푸른 피부. 이러한 특징을 지닌 자가 얼마나 있을까. 근데 어째서 나를 사랑한다고 해준 그의 눈은 이리도 날카로울까. 언제나 다정했던 눈동자는 어디 간 걸까. 차갑고도 날카로운 청안은 낯설다.



『현재 각 구역마다 도플갱어로 인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러분의 가족, 친구, 연인들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주의 하십시요. 잘 보고 진짜인지 구분 하십시요.』



일순 아침에 보았던 뉴스가 떠오른다. 여성 아나운서가 했던 말들이 생생하게 머릿속에서 재생된다. 절로 눈앞의 존재가 내가 기다리던 그가 아님을 알게 된다. 이 존재는 가짜다. 보로스는 이렇게 나를 차가운 눈으로 보지 않으니까. 마치 나를 죽이려는 듯한 눈으로 보지 않으니까. 



"당신은 보로스가 아냐."

"참으로 웃긴 상황이군."



웃기다니... 이 가짜는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아아, 이럴 때가 아니다. 일단 창문을 닫아야 한다. 그렇게 판단이 서자, 나는 빠르게 창문을 닫았다. 도플갱어는 잠금장치까지 거는 내 모습을 지켜본다. 왜 들어오지 않는 걸까에 대해 의아해하는 나를 청안이 바라본다. 여전히 차갑고도 날카로워 두렵다. 허나 너무도 내가 사랑하는 그와 똑같아 가슴이 아프다. 절대로 있을리 없을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 같아 마음에 상처를 준다. 보로스가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되는 두려운 악몽이 현실에 재현된 것만 같다.



"차라리 악몽이면 좋을 텐데."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흘러나왔다. 그런 내 중얼거림을 들은 것일까, 아까 이후로 침묵을 지키던 도플갱어의 입이 열린다. 정말 바보같이 나는 그걸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가짜의 말 따위 들을 필요도 없으며, 오히려 빨리 히어로 협회든 진짜 그에게 연락을 해야 했다. 허나 그와 같은 얼굴의 도플갱어는 내 마음을 흔들리게 했다. 아아, 이래서 도플갱어를 조심하라고 한 거구나. 가짜임을 알아도 이렇게 절로 반응해버리니까. 



"가짜 주제에 악몽이면 좋겠다니, 정말 웃긴 촌극이군."



가짜? 촌극? 도플갱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기 전에 보여 온 광경과 소리에 나는 사고가 정지되었다. 한 순간 천둥과도 같이 거대하게 들린 날카로운 소리. 그 소리와 함께 펼쳐진 많은 유리조각들의 반짝임. 황혼의 빛이 파편마다 깃들어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 속에서 그가 보여 왔다. 가짜일터인 존재가 보여 왔다. 황혼에 물들여지지 않은 청안이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마지막 기억이 되었다. 어떠한 것보다 차가운 푸른 눈이 내 마지막 기억으로 새겨졌다. 아아, 아까워라. 앞으로 조금만 더 있었으면... 언제나의 행복한 일상을 보냈을 텐데. 라고 나는 부질없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 의식은 어둠 속으로 먹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