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아소/합작

[2만자 마라톤 합작 / 꿈의 저편으로 ] 토토사유 - Fatalité [파탈리테]

サユラ (사유라) 2020. 3. 31. 01:33

드림 [2만자 마라톤 합작 / 꿈의 저편으로 ]에 참여한 카미아소(신들의 악희)의 >토트 카도케우스< 드림글입니다

* 오리주(드림주)/오너이입有

* 원래의 표기와 발음은 "토트"이지만 오너에겐 "토토"로 굳어져 글에서는 토토라 적습니다.

* 유혈표현이 있습니다. 직접적인 단어로는 나오지 않으며, 자극적이지도 않습니다. 다만 비유한 단어나 문장이 있습니다.





아주아주 멋지고 훌륭하신 존잘님들의 작품이 모인 홈페이지는 여기입니다!

주소 클릭이 되지 않게 설정을 해서 배너형식 같이 올리는점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사진클릭하면 홈피에 가집니다. 출처는 저작권없는 사이트.)




 

 



 

Fatalité

 

 

 

 

 어둠 속이었다. 그것이 막 깨어난 존재에게 보여 온 세계였다. 아니, 자신이 정말로 깨어난 것인지에 대해 몰랐던 여성의 귓가에 소리의 파도가 덮쳐온다. 여러 가지 소리가 들려왔다. 하나는 세찬 바람소리였다. 그 소리는 분명 귀를 막고 싶어질 만큼 커다랗고도 날카로웠다. 또 하나의 소리는 타닥타닥, 박자감이 있는 소리였다. 특이했다면 희미한 메케한 냄새가 섞여 있었다. 다른 하나는 쏴아아- 하고 무언가가 쓸려가는 소리. 그것은 박자감도 날카로움도 없었지만 묘한 서늘함이 느껴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소리들은 모두 선명하고도 거슬렸을 터인데도, 기이할 정도로 머나먼 감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소리는 그 소리들과는 틀렸다. 먼저의 것들보다 확실히 작을 터인데도 가장 가까웠다. 거리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은 소리는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여성은 몰랐다. 거대한 동굴 속에 있는 듯한, 아니면 생물의 뱃속에 있는 듯한, 그것도 아니라면 양손으로 귀를 막은 듯한 소리. 묘하게 일정하면서도 일정하지 않은 소리가 귀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소리의 정체를 특정할 수 없을 때, 새로운 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여성은 그게 물보라 소리란 것을 어째서인지 알 수 있었다. 더불어 무언가의 존재가 있다는 것도 포함해서. 물보라와 소리의 주인은 그녀의 주위를 몇 번 맴돌더니 어딘가로 가버린다. 다시 고요하면서도 소리로 가득 찬 세상이 되었다고 그녀가 생각한 순간. 밑에서 올리는 무언가에 의해 여성은 억지로 위로 향하게 된다. 

 촤앗! 하는 소리와 함께 어둠이 옅어진다. 투둑, 툭, 물방울이 눈앞에서 낙하하는 소리. 퐁퐁- 수면으로 물방울이 부딪히는 소리. 소리를 감상하며 고개를 숙인 그녀는 알게 된다. 자신이 방금까지 있던 곳의 이름을. 그곳은 물속이었다. 더불어 자신을 수면 위로 밀어 올린 존재의 이름도...

 그 존재는 거대한 동물이었다. 빛이 희미하여 정확한 색은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여성은 알게 된 존재의 이름을 떠올린다. 어째서였을까. 그녀는 움직이지 않던 입을 굳이 움직이며, 중얼거린다. 이미 물속으로 모습을 감춘 존재를 떠올리며.

  

 "아아, 돌고래였어."

 

 그랬다. 수면 위로 올린 그건 거대한 돌고래였다. 어떠한 작은 감정이든 반응이 보인 듯한 문장을 읊조린 여성. 허나 그 짧은 문장을 중얼거린 그녀는 마치 타인의 일인 양 감흥이 없었다. 그 목소리는 따스함이 없었으며 그녀가 방금까지 있던 물속의 온도와 같이 차가웠다. 그래서였을까, 누구에게 말하는지 모를, 무엇을 위해서 말하는지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이었다.

 

 

 

***

 

 

 

 꿈에서 깨어난다. 어째서 일까, 막 깨어난 여성은 확신한다. 허나 그와 상관없이 정신은, 마음은 완벽한 각성을 이루지 못한다. 꿈의 끝자락에 잡힌 듯이 몽롱하고도 흐릿했다. 그런 상태에서 그녀는 귓가에 닿는 존재를 알아챈다. 그것은 자그마한 소리들이었다. 누군가의 자그마한 노크 소리와 노랫소리였다. 낯선 것 같으면서도 익숙한 소리들이었다. 허나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 수 없었다. 그걸 알아내기도 전, 알아내려 마음을 먹기도 전에 무엇도 시작하지 못한다. 저항할 여력도, 기회도 없이 그녀는 꿈의 끝자락에 의해 끌려간다. 

 

 

 

***

 

 

 

 밤이었다. 해가 없다고 인식한 세상 속에 그녀는 홀로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자신만이 존재함을 여성은 인지한다. 무엇도 보이지 않음에 절로 고개를 올리니 보인 존재는 당연한 거였을까. 달이 홀로 있었다. 그 크기는 무척 작았지만, 만월인 동그란 그 작지만 동시에 커다란 돌은 자리 잡고 있었다. 허나, 어쩔 수 없었던 걸까. 마치 막 태어난 듯 자그마한 달은 그 빛이 약하여 밤하늘도, 그 아래의 세상도 그리 비추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 존재는 확실히 자신을 나타내고 있었다. 빛이 없는 세상이기에 희미한 빛의 그는 눈에 띄었다.

 별도 없는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바라보던 그녀가 무심코 발을 움직인다. 찰박, 기묘한 발소리가 귓가에 닿아왔다. 동시에 발에도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다. 비록 희미한 감각이었더라도 말이다. 발가락과 발바닥을 무언가가 감싼 촉감에 그녀는 자신의 아래를 살펴본다. 그제야 떠올린다. 여성은 자신이 바닷속에서 떠올랐던 일을. 툭툭-, 물방울이 고요한 바다 위로 떨어져 노크하는 소리가 그제야 들려왔다. 아직 자신의 몸에서 물기가 떨이지고 있음을 인식하며, 그녀는 보게 된다.  달이 있지만, 그 희미한 빛으로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세계 속에서 어둠을 두른 자신이 간신히 수면에 비쳐지고 있는 모습을. 짙고도 짙은 남색의 거울에 검은 어둠을 두른 자신의 모습을. 여성은 지긋이 내려다본다. 비록 그게 제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음에도 말이다. 

 

 

 

***

 

 

 

 깨어난 자각은 없었다. 그럼에도 눈은 절로 빛을 원했다. 허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보여 온 세상은 어둠으로 감싸여져 있었기에. 빛 하나 없는 세상은 이상하리만치 두렵지 않은 그녀다. 어쩔 수 없던 걸까. 마음도, 사고도 전부 닫혀 있었기에. 어떠한들 상관없다는 듯이.

 그러할 터인데도, 그러한 상태인데도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사고가 살짝 깨어난 것일까, 노크 소리가 묘한 박자를 지닌 것을 인지한다. 인식으로 넘어가려는 순간 허전함이 깨어난다. 들려오지 않았다. 노크 소리와 함께 들렸던 노랫소리가 사라져 있었다. 그게 언제의 기억인지 떠올리지 못한 채, 소리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속에서 여성은 존재했다. 소리 이외에는 무엇이 무엇인지 모를 세상에서 어둠을 응시하다가 눈을 감는다. 허전함도 함께 눈을 감게 된다. 

 

 

 

***

 

 

 

 볼을 스치는 바람에 정신을 차린다. 아니, 깨어난 것일까. 어느 쪽이 맞는지 모른 채 앞을 응시한다. 이번에도 바다 위에 자신만이 서 있음을 인지한 그녀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차박차박, 바닷물이 맨발에 감겼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상관 않고 나아가던 여성은 달로도 밝혀지지 않던 어둠 속에서 붉은색을 발견한다. 커다란 붉은 커튼이 일렁여, 마치 살아있는 듯이 보여 왔다. 그 일렁임이 손짓과도 비슷하여 다가가려던 순간 들린 다른 소리와 감각.

 쏴아아-, 이란 소리와 동시에 다리를 감싸는 차가움. 아니, 어쩌면 따가움이었을까. 어떠한 감각이었는지 정하지 않은 채, 그녀는 자신을 지나친 정체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허나 그 존재는 이미 어둠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이상하리만치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 이름을 떠올리며, 여성은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본다. 거기엔 붉은색의 무늬가 생긴 자신의 다리가 보여 왔다. 선으로 이루어진 무늬는 흘러내려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남색의 바다에 닿는다. 수면에 퍼져가는 붉은 무늬, 아니, 검붉은 색이 된 무늬에 손을 뻗으려 했다. 하지만 이마를 간지럽히는 작은 바람에 고개를 들어 올린다. 곧 보여 온 존재의 이름을 그녀는 떠올리지 못한다. 

 

 

 

***

 

 

 

 의심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들려온 2개의 노랫소리. 아아, 틀리다. 어쩌면 누군가가 읊는 시일지도. 그녀는 눈을 뜨려 했다. 허나 윤곽도, 감각도 잡히지 않는 몸은 의지를 잃어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다. 그저 노래인지 시인지 모를 소리가 귓가에 걸릴 뿐인 여성이다. 그저 그뿐이었다. 응시하던 어둠마저 보지 않게 될 때까지. 다시 그들을 인지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 올 때까지. 단지 소리들의 속삭임만이 형태와 윤곽을 잃은 귓가에 걸렸다. 

 

 

 

***

 

 

 

 광활한 바다를 바라보았다. 착각일까, 바뀌었다는 인상을 받은 것은. 그 정체를 모른 채 그녀는 눈꺼풀을 내리지 않는다. 그때 이마에 닿은 약하고도 힘없는 바람. 그에 따라 시선을 약간 올리자  보여 온 존재. 작고도 작아 연약한 존재가 눈앞에서 날고 있었다. 

 그 존재는 제 작은 몸보다 커다랗고도 얇은 날개로 날고 있었다. 가진 색이라고는 흑과 백뿐인 존재는 그 색들로 날개에 무늬를 새기고 있었다. 허나 그 무늬는 그리 눈에 띄거나 예쁘지도 않았다. 더불어 어디서 다친 건지 태생적인지 한쪽 날개가 망가진 모습은 더욱 그 존재의 외견을 볼품없도록 느끼게 했다. 나비... 그 볼품없고도 초라한, 망가진 날개를 가진 존재의 이름을 여성은 떠올린다. 

 

 헌데 어째서 나비의 모습이 그녀에게 보여 왔을까. 분명 달빛도 희미하여 어둠에 가까운 세상이었을 터인데...

 

 

 

 ***

 

 

 

 어째서일까. 눈이 떠지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뜨지 않았던 것일지도. 그렇게 그녀는 그 자리에 존재했다. 눈을 뜨지 않아 생긴 어둠 속에서도 여전히 노크 소리가 들린다. 윤곽이 잡히지 않은 세계에서 톡, 토독, 툭 하는 소리만이 형태를 가진 듯한 감각이 텅 빈 존재를 채워갔다. 아아, 이대로도 괜찮아. 라는 마음이 여성의 안에 퍼져 나간다. 노곤함과 미미한 평온함으로 만족하려 했다. 무엇을 더 원한다는 자그마한 바람조차 떠올리지 못한 채 말이다. 

 그때 따스함이 닿아왔다. 존재를 잊고 있던, 형태를 잃었던 것만 같던 볼에 말이다. 따스함이 천천히, 조심히 볼을 따라 훑어갔다. 그에 따라 자신의 볼의 형태를 느낀, 알아가게 된 그녀는 숨을 내쉰다. 마치 처음으로 숨을 쉰 것 같은 착각을 느끼며 벼랑으로 추락한다. 따스함이 추락함에 따라 멀어지는 감각이 추위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추락하는 그녀다. 그에 따른 바람 하나 떠올리지 못한 채 말이다. 

 

 

 

***

 

 

 

 나비가 힘없이 날아다니고 있다. 그것이 처음 보여 온 광경이었다. 그 존재는 바다와 하늘의 사이에 끼인 채, 겁 없이 유영하고 있다. 조금은 비틀 거리는 듯해도 용케 두 어둠 사이에서 유영하고 있다. 그리고는 제멋대로 어디론 가를 향해 흘러간다. 그녀는 이기적인 나비를 따라간다. 어디로 향해야 할지도, 무엇 때문에 움직이는지도 모른 채 그저 작은 존재를 따라 간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와 하늘, 그리고 밤이자 어둠 속을 여성은 볼품없는 존재와 헤매기 시작한다. 종착점에 대한 걱정이나 어둠에 대한 두려움도 없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헤매기 시작한다.

 그녀는 알았을까. 본인의 다리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무늬로 인해 짙은 남색의 바다에 검붉은 길이 생겨가고 있었음을... 또 그 모습이 한쪽 날개가 망가져 비틀거리며 유영하는 존재와 닮아있음을...

 

 

 

***

 

 

 간신히 눈을 떴다. 뜨고 싶지 않던 눈꺼풀을 움직였기 때문일까, 살짝 들어 올리는 게 한계였다. 그녀는 힘겹게 앞을 응시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보여 온 세계는 어둠이 아니었다. 이상하다고 멍한 머릿속에 울린다. 다시 어둠을 여성은 응시한다. 그제야 어둠 속이 맞음을 인식한다. 정확하게는 어둠이지만, 희미하고도 희미한 빛이 그 안에서 일렁이고 있다. 다 뜨지 못한 눈이더라도, 세계의 윤곽을 비추지 못하는 망막이더라도... 흑백의 세계만큼은 보였다. 

 어째서였을까. 연기와도 비슷할 정도로 희미한 빛이 따스해 보인 건, 온기가 있어 보인 건. 그녀는 윤곽을 떠올리며 손과 팔을 움직인다. 손끝부터 손가락, 손바닥, 손등, 손목, 팔목의 형태를 흐릿하지만 떠올린다. 희미한 윤곽과 둔한 감각을 두른 채 손을 뻗었다. 허나 간신히 떠올리던 감각이 부서진다. 손끝부터 윤곽이 사라지며, 나른함과 다르면서 거북한 무건가가 그녀를 덮여온다. 저항할 여력도 없이, 저항할 이유도 떠올리지 못한 채 여성은 의지를 잃는다. 손을 뻗으려던 이유와 그 안의 바람도 모른 채, 동시에 모르기에 쉬이 힘을 잃는다.

 헌데 그 순간 그녀는 보았다. 하얀 연기 덩어리와도 같은 빛이 강하게 일렁이는 모습을. 그리고 윤곽이 지워진 손에 따스함이 닿아왔다. 온기를 인식한 순간 짧은 노랫소리가 들린 듯 했다. 하지만 거북하고도 묵직한 무언가가 귀를 막은 듯이 가사를 알 수가 없었다. 알 수 있었던 건 그 소리가 싫지 않았다는 것 뿐. 그렇기에 희미한 아쉽다는 감정을 닿은 온기와 함께 새기며, 그녀는 빛을 잃어버린다. 익숙한 어둠 속으로 돌아간다.

 

 

 

***

 

 

 

 바다 위를 걸어가고 있었다. 아무런 걱정도, 불안도, 두려움도 없이 수면 위를 그녀는 걸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어떠한 감정도, 마음도 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걸어가는 이유도, 멈춰 있어야 할 이유도 없는 여성은 걸어가고 있었다. 자신보다 한 없이 작아 힘이 없을 터인데, 의지가 느껴지는 존재의 뒤를 따라서 말이다. 볼품이 없다고, 나약하다고 여기면서도 광활한 세계에서 유일한 안내인을 따라간다. 방랑자는 몇 번을 나아가던 몸을 멈췄다.

 그 첫 번째는 붉은 불꽃의 앞이다. 어둠 속에서 제 색을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는 불꽃. 어디선가 보았던 듯한 위화감을 느끼며 그녀는 빛을 가진 존재를 바라보았다. 바다 위일 텐데도 불꽃은 무엇을 원료로 하는지 알려주지 않고 타올랐다. 자신의 키보다 높고도 넓은 불꽃은 그 크기를 자랑하며 일렁이고 휘청였다. 이따금 더욱 강하게 타오르며 일렁일 때, 마치 살아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허나 이상했다. 거대한 불꽃에서는 어떠한 냄새도, 소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눈에 새겨질 정도로 강렬했지만, 꺼림칙하도록 불꽃의 모습은 생생했지만, 동시에 소름 끼치도록 고요했다. 존재함에도, 선명하도록 존재함에도 기이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어떠한 이유였을까. 호기심? 자포자기? 확인? 어떠한 사고의 흐름이었을까, 그녀는 불꽃으로 손을 뻗었다. 비록 소리도, 냄새도 없다 하더라도 그 붉은 존재는 위험해 보였다. 사람의 손이라면 금방이라도 재로 만들기엔 충분한 화력이었다. 그걸 모를 리가 없을 터인데도, 자신의 손이 타오를 게 뻔할 장면을 알고 있을 터인데도, 그 하얀 손엔 망설임이 없었다. 그리고 불꽃의 닿다를 넘어 안으로 들어간 손은 그대로... 타지 않았다. 그것뿐일까, 뜨겁지도 않았다. 오히려 손끝부터 서늘해져 갔다. 마치 그 적(積)의 존재에게 있었는지 모르지만, 열기를 빼앗기는 듯이 말이다.

 누군가가 알려 준... 갸웃-. 각도의 변화가 없던 고개가 살짝 옆으로 기울어진다. 여성은 불꽃에 감싸인 손을 지긋이 바라본다. 목구멍에 뭔가가 걸리는 듯한 감각. 허나 입은 꼼짝하지 않는다. 대신 문구가 스쳐 지나간다. 흔한 상식일 뿐이야. 누군가가 속삭여 준 문구에 그제야 고개가 원래 각도로 돌아온다. 그 짧은 순간에도 그녀의 표정은 미미한 변함도 없었다. 

 환상은 아닐 터인데 뜨겁지도 않은, 오히려 차가워지는 손. 기이한 상황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할까. 눈앞의 불꽃은 정말 기이한 존재이기에. 여성은 감흥 없는 표정인 채로 손을 빼내기로 한다. 그러나 무언가가 손목을 붙잡았다. 분명 아무런 감각도 없었는데 잡힌 느낌에 손의 주인은 그게 무엇인지 홍(紅)의 존재 몸속을 보려 했다. 허나 그건 이루어지지 못한다. 잠시, 한참 잊혔던 나비가 어둠에 색을 알 수 없는 눈동자 앞으로 달려.. 아니, 날아 들어왔다. 반사적으로 그녀는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같이 당겨진 손은 불꽃에서 빠져 나온다. 붙잡혔을 터인 손이 너무도 쉬이 빠져 무어라 할 수 없는 허무함이 가슴을 훑으며 스쳐 지나간다. 불꽃에 감싸이지 않았던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쓸어내린 존재는 그제야 자신의 가슴의 형태를 떠올리게 된다. 

 떠올린 형태를 금방 내팽겨 치고, 나비에게 방해를 받은 그녀는 다시 붉은 존재를 응시하려 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신경 쓰지 않고, 눈앞을 지나치더니 다시 어디론 가로 날아간다. 따라갈 이유는 없다. 동시에 따라가지 않아야 할 이유도 없다. 무엇도 아니기에 헤매는 자는 방랑자는 시선으로 먼저 따라간다. 여전히 비틀거리는 날갯짓에 여성은 곧 바로 뒤따라간다.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이 이유였을까, 그에 따라 솔직하게 다시 걸어 나간다. 그럴 터인데도 딱 한 번 뒤돌아 기이하고도 아름다웠던 존재를 보았다. 허나 그 자리엔 그 존재는 이미 없었다. 불꽃은 파도 소리와 함께 이미 어둠 속 어디론 가로 밀려가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붉은 빛은 선명하였다. 하지만 그 주위는 여전히 밤이었다. 무엇 하나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그제야 여성은 눈치 챈다. 저 존재는 무엇 하나 밝히지 못하고 있는 사실을. 세계를 비추는 달과는 달리 무엇 하나 보이게 해주지 않은 사실을.

 

 

 그때 강하게 불꽃이 흔들리며 일렁여서 일까, 일순 그녀에게 그 모습이 사람의 형태 같았다.

 

 

 

***

 

 

 눈을 뜨기 전부터 느껴져 온 것은 뜨겁다는 갑갑함이었다. 움직이기 전부터 느껴져 온 것은 무겁다는 괴로움이었다. 그 덕에 눈꺼풀을 뜰 기력과 의욕은커녕 본능조차도 생겨나지 않는 그녀다. 호흡이란 자연스럽고도 필수적인 몸짓을 행하였으나 그것마저 답답하고도 버겁다고 몸이 호소한다. 마치 몸이 자신만의 의지를 가진 듯이 힘겨움을 토해낸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빙글빙글 어지러웠다. 허나 그러한 상황인데도 어둠의 세계는 지독하도록 고요했다.

 그럼에도 현재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다. 허나 몸을 채우며 태우는 열기는 한기를 데려왔고, 묵직함은 나태를 불러 일으켰다. 어지러움 뿐만 아니라 머리가 울리는 아픔에 절로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그 순간에도 살아 있다는 상태를 이으려는 폐로 인해 숨을 들이쉰다. 그때 의식하지 않던 근육들과 뼈가 삐걱거리며 이상한 소리를 냈다. 호흡이란 자그마한 움직임일 뿐이었는데도, 살아있기에 당연한 행동이었을 뿐인데도 몸은 고통을 겪는다. 마치 호흡을, 생을 거부하듯이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그녀의 세계는 제멋대로 시끄러웠다.

 어디인지도, 언제인지도 모른 채... 몇 초였는지, 아니면 몇 분이었는지, 어쩌면 몇 시간이었는지 모를 정적과 소음이 지나갔다. 이제는 시끄러움에도, 고요에도 익숙해지고도 포기한 여성이다. 그때 달칵 이란 소리가 정적과 시끄러움 속에서도 들려왔다. 뒤이어 같지만 더 작은 달칵하는 소리가 소음과 고요 속에서도 들려왔다. 어디선가 들은 것인지 익숙한 그 소리가 무엇인지 알아내려, 떠올려 내려던 찰나 노래이자 시가 들려온다. 어지럽고도 침묵의 세계에서 그 소리만은 잔잔하고도 부드럽게 닿아왔다. 나쁘지 않다고, 좋다고 여기려는 순간 이마에 차가움과 미미한 무게가 닿는다. 곧 차가움은 시원함으로 변하여 열기를 진정시켜 준다. 짧고도 길었던 열기가 가라앉아 조금은 편해진 그녀가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열기 때문에 눈동자가 녹아내렸던 걸까, 계속 빙글빙글 돌면서 굴렀기 때문인 걸까. 간신히 보여 온 세계는 선명함이 없는 모자이크의 세상이었다. 그게 아쉽다고 누군가가 속삭였다. 여성은 그 누군가를 알 수가 없었다. 동시에 그 이유도 알 수가 없었다.

 귓가에 다시 들려오는 노래이자 시. 방금보다 일순 큰 톤이었던 것 같지만, 곧 원래의 톤으로 돌아오더니 잔잔한 박자로 이어간다. 비록 그 내용이자 가사는 알 수가 없었으나 분명한 건 상냥했다. 정적과 소음, 열기와 한기로 바스러져 가던 몸과 마음엔 다정했다. 그래서 여성은 눈앞의 존재가 달이라 생각했다. 비록 시야가 흐려 하얀 빛이 흐리게 보여 왔지만, 달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어느 때에도 믿을 수 있었던, 가장 상냥한 존재였기에. 그렇기에 힘이 없어도 미소를 지었다. 겨우 힘겨움의 눈물을 흘리고 눈을 감는다. 조금씩 노래와 시가 멀어져 갔다. 

  아, 그런 거구나. 하고 여성은 알게 된다. 왜 누군가가 아쉽다고 한 것인지,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모든 게 그저 달을 바라보고 싶었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노래와 시, 빛이 닿지 않는 세계로 떨어지는 순간이 되어서야 안식과 깨달음을 얻은 그녀이다.

 

 

 

***

 

 

 

 부름이 들려왔다.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 그녀. 눈앞에는 여전히 나비가 날고 있었다. 장난을 치고 있었던 것인지 볼 쪽으로 흘러내린 몇 가닥의 머리카락에 닿을 듯 말 듯 아슬하도록 날고 있었다. 그에 비해 장난의 대상인 자신은 마네킹과도 같이 서 있었다. 그런 그녀의 시선 때문인지 아니면 질려버린 것인지 나비는 허공의 한 곳에 머물며 날개를 파닥였다. 용케도 망가진 날개를 지닌 채 날고 있다고 생각하던 찰나, 나비는 그 생각을 비웃듯이 원을 그리며 빙그르르 날았다. 비록 그 마저도 여성의 눈앞에서 작은 원이었지만, 어쩐지 나비는 의기양양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몇 번을 원을 그렸을까. 제 몸 상태에 걸맞지 않도록 곡예를 보인 작은 존재는 비틀비틀 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이내 그녀의 뒤 쪽으로 힘없이 날아간다. 그 모습이 마치 꾸깃꾸깃한 종이비행기가 날리자마자 금방 추락하는 모습과 흡사했다. 절로 그려지는 영화를 끄며, 여성은 자연스레 나비를 쫓아 몸을 돌린다. 차박,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움직인 발을 수면 위에 내린다. 수면 위에 불시착 했을 나비를 상상했던 장난감이자 마네킹이었던 존재는 예상외의 장면을 보게 된다. 

 곡예꾼은 땅 위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바람에도 부서질 듯한 얇은 날개를 천천히 움직이며 섬 위에서 소리 없이 앉아 있었다. 섬? 이란 단어기 머릿속에 떠오른다. 직접 보고 있기에 그녀는 의문이 들었다. 나비를 뒤 따라 온 이는 말없이 눈앞의 광경을 다시 살펴본다. 그곳은 너무도 작았다. 그렇기에 섬이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어려웠다. 허나 그 명칭 외에는 딱히 어울릴 단어도 없었다. 적합한 이름을 그녀는 떠올릴 수 없었다. 더군다나 자그마한 점도 걸리는 가운데 그 몰골 또한 삭막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 좁은 땅 위에 뿌리를 내린 단 한 그루의 나무는 삐쩍 말라 앙상하였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부서질 듯이 말이다. 또 비좁은 섬이라도 땅이었던 것인지 자라난 풀들은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그 정도가 심한 것인지 이 사라져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 섬과 여성을 지나친다. 바람에 실려 온 걸까, 서늘함과 함께 위화감이 손끝을 건드렸다. 그녀는 다시 자그마한 섬을 바라본다. 아아, 아니었다.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음에도 마치 말한 것처럼 소리가 입혀진 문장이 입술을 다물게 했다. 여성은 그제야 눈치 챈다. 눈앞의 작은 섬은, 이 넓은 바다 위에서 간신히 발견한 육지는 태워져 있던 거다. 앙상해 보인 나무도, 검은색의 말라비틀어진 이름 모를 풀들도, 무엇도 없는 비좁은 땅도... 모두 어떠한 것에 불살라져 검게 그을려 있던 거였다. 무엇을 놓기에도 힘든, 많은 생명이 자라기도 힘든 조그만 섬은 있던 것마저 전부 태워져 있었다. 낮에는 푸른색에, 밤에는 짙은 남색과 어둠에 어울렸을 녹색은 이제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어느 의미 광활한 두 푸른 세계에서의 유일한 안식처는 망가져 있었다. 

 

 그곳이 나비가 두 번째로 멈춘 곳이었다. 

 

 

 

***

 

 

 

 이제는 정신이 깨어난 것인지 아닌지를 모른 채 그녀는 세상을 인식하려 했다. 하지만 그 전에 느껴져 온 껄끄스러운 감각에 이루어지지 못한다. 무의식적으로 숨을 들이쉬자 메마름도 추가된다. 본능적으로 해결법으로서 입안의 침을 삼키려 했으나 건조한 살덩어리엔 수분이 없어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치 무언가에 의해 목이 타버린 듯한 감각은 생각할 것도 없이 불쾌함을 선사했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불평을 호소하게 했다. 눈꺼풀보다 손이 먼저 움직인다. 손끝을 피부에 질질 끌며 배부터 가슴, 쇄골, 목으로 올라온다. 몸에 선이 그어진 감각을 무시하고 손은 제멋대로 움직인다. 곧 목에 퍼진 손끝으로 인해 다른 부위의 피부가 닿는다. 덕분에 서로의 윤곽을 알게 되지만, 그건 어찌되든 상관없었다. 꾸욱 하고 손가락의 끝이 목을 누르며 긁어간다. 그건 괴로움을 다른 괴로움으로 덮어버리는 행위였다. 비록 당사자인 그녀는 모르는 의미였지만.

 두 아픔이 비슷해지려던 순간 금속과 목재의 소리가 들려오더니 큰 목소리가 던져져 왔다. 그러더니 손이 무언가에 잡혀 끌려가 하나의 아픔이 멈추게 된다. 대신 손에 닿는 따스함을 얻게 된다. 아픔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형태를 알게 해주는 존재가 무엇인지 알아내려 했지만, 갈증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아픔으로 억누르던 갈증이 더 심해져 왔다. 원한 아픔은 견딜 수 있으나 원하지 않는 아픔은 견디기 힘든 여성이다. 그렇기에 말하려 했다. 원하는 단 하나의 것을. 하지만 벌려진 입술 밖으로 아무런 소리가도 나가지 않았다. 마치 목소리를 잃은 누군가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목소리가 내려왔다. 그 목소리로 자아낸 시가 흘러내려 왔다. 그 음색은 아름다웠으나 그렇기에 내용을 알 수가 없었다. 아쉽다는 감정의 그림자가 보이려던 찰나 몸이 둥실 하고 떠오른다. 폭하고 머리와 어깨가 어딘가에 기대어지며 감싸인다. 조금 더 자신의 몸 일부의 형태를 알게 되는 그녀다. 신기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을 감각이라 분류하려던 순간 입술에 무언가 닿는다. 딱딱하고도 차갑다고 인식하자 입 안으로 흘러 들어오는 시원함. 하지만 몸은 그걸 어찌하지 못하였고, 결국 거부당한 그들은 다시 입 밖으로 흘러 나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모른다고 몽롱한 정신이 보고서를 낸다.

 목소리가 다시 내려왔다. 이번에도 시의 의미를 알 수가 없는 그녀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미안하다는 마음이 입 안에 맴돌았다. 그때 다시 입술에 무언가가 닿는다. 아니, 닿는다를 넘어 덮여왔다. 이번에는 차가움이 아닌 따스함이,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다고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곧 입 안으로 시원하면서도 미지근한 존재가 흘러 들어왔다. 어째서일까, 아까는 반응도 못한 몸이 그들을 받아들여 목 안으로 넘긴다. 갈증이란 맹수가 잠잠해지는 것이 느껴져 왔다. 그것을 알았을까, 온기와 부드러움이 떨어져 나갔다. 아쉬움이 안도란 친구를 데려왔다. 그 둘을 목 안으로 넘기며, 여성은 몸에서 힘을 뺀다. 맹수에 견디던 몸이 겨우 안식을 얻게 된다. 시가 노래가 되어 내려왔다. 윤곽을 알게 된 목을 훑는 열기에도, 착각인지 씁쓸한 듯한 노랫소리에도 그녀는 눈꺼풀 속 눈꺼풀을 감는다. 

 

 

 

***

 

 

 

 세 번째다. 한쪽 날개가 불편한 게 맞는지 지치지 않고 나아가던 나비가 멈춘 것은. 이번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는 없는 호기심을 담아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보이는 존재가 없었다. 무언가 잘못 된 것인지에 대해 의심이 들어 작은 존재를 바라보지만, 당연하게도 그는 아무런 말도 건네주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제 자리를 유지하며 날개를 퍼득일 뿐이다. 어찌 보면 바쁘면서도 태평한 그 자태에 따지지도 못하게 된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휴식시간이 생겨, 그녀는 얼마나 오랫동안인지는 모르나 걸어 왔던 다리를 떠올린다. 언제 숙였는지 모를 허리를 숙이자, 그제야 나비가 멈춘 이유를 알게 된다.

 거기엔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꽃들이 수면 위에 누워 있었다. 누군가가 억지로 꺾은 듯한 꽃의 줄기의 끊어진 부분은 단정하지 못했다. 처음 보는, 아마 처음 보는 몇 송이의 꽃들의 이름을 그녀는 알지 못했다. 모를 터인데 낯설지 않은 듯한 간질거림에 손을 뻗었다. 만지면 알지 않을까, 떠올리지 않을까 란 자그마한 희망인지 호기심인지 모를 감정을 품은 채 말이다. 허나 그걸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파도가 꽃과 그녀의 다리를 스쳐 지나간다. 너무도 노골적인 장난이자 방해에 여성은 눈꺼풀을 한 번 내리깔았다가 다시 들어올린다. 꽃은 용케 그리 멀리 떠내려가지 않았으나 파도에 의해 방금보다 더 엉망이 되어 떠다니는 모습이 되어 있었다. 거기다가 파도로 새로 생긴 무늬에서 흘러내린 붉은 염료가 꽃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 모습에 여성은 꽃에서 시선을 거둔다. 왠지 그 광경을 계속 보면 안 될 것만 같은 기분이었기에.

 나비는 여전히 제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아직 무언가 더 있는 걸까, 그녀는 자신의 발치를 내려다본다. 허나 거기엔 붉은 무늬가 흘러내리는 자신의 다리와 발만이 보여 왔다. 아무런 생각 없이 주저앉은 무늬에 주인은 조심히 손끝으로 수면에 퍼지는 붉은 무늬를 건드린다. 마치 아이가 땅에 낙서를 하듯 이리저리 건드리던 그녀는 나비가 멈춘 이유의 마지막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커다란 골짜기가 바닷속에서 보여 왔다.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어느 존재가 만들어 낸 것인지 모를 그 골짜기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더불어 얼마나 깊은 곳에 있는지도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또한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골짜기에 대해 이 이상 알고 싶지 않았다. 바닷속 상처를 계속 바라볼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인지, 아니면 자기 멋대로 만족한 것인지 나비가 눈앞을 지나간다. 얼른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한 몸짓에 주저앉아 있던 몸을 일으켜 세우는 여성. 망설임이나 질린감 없이 작은 존재를 따라간다. 아니면 그곳에서 벗어나고픈 간절함에 의한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어딘지 아이가 무언가에 겁을 먹은 듯한 낌새로 자신 보다 힘없는 존재의 뒤를 따른다. 

 

 아아, 그녀는 왜 의문을 품지 않았을까. 어째서 바다 깊숙이 자리 잡은 그 골짜기가 보여 온 것인지에 대해서. 

 

 

 

 ***

 

 

 

 자그맣지만 수많은 목소리가 여성을 몽환의 세계에서 끌어 올렸다. 보이지 않는 자들의 목소리는 노래나 시가 아니었다. 그건 애원과 바람이 담김 기도이자 소망이었다. 눈꺼풀을 감고 있는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구원을 바라는 목소리들을 그녀는 잠잠히 받아들인다. 

 '아아, 우리를 바라보아 주세요.'

 '당신은 상냥한 존재입니다. 그러니 우리들을 내치지 않을 테죠.'

 '신들과 인간이 저희를 붙잡아 주지 않아. 당신만이 이곳을 품어 줄 거야.'

 '진정한 아픔과 사랑을 아는 존재인 당신만큼은 저희를 필요로 해주세요.'

 '여신이여, 우리들의 자상한 여신이여. 부디 우리들을 구원해주십시오.'

 수많은 목소리들이 그녀에 대해 정의하고 있다. 구원을 바라는 기도는 여신에게 바치고 있었다. 잠든 '여신'은 그들의 그러한 간절함을 거부하지 않으며, 떠오르지 않는 자기 자신에 대해 써 내려간다. 지금 눈을 뜨지 못하는 자신은 신이자 그들을 구워해야만 하는 존재라고 새겨간다. 

 "미안해. 이렇게 다들 제멋대로라서. 하지만 너만이 나이자 우리들을 진정으로 바라봐 주시겠지. 당신만이 그 순간 우리를 바라봐 순수하게 울어 주었으니까. 그 어느 존재보다 사랑스러운 우리들의 여신이시여. 그러니 얼른 깨어나 주세요.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좀 전의 이들과 조금은 틀린, 뭔가 더 거대한 존재가 긴 기도를 올린다. 친한 듯하면서도 정중한 그 애원의 목소리는 낯설지 않았다. 아아, 돌고래다. 그녀는 언젠가의 거대한 돌고래를 떠올린다.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는 분명 그때의 돌고래였다. 그의 뒤이어 계속해서 기도가 끊임없이 여신을 하나의 형태로 만들어 간다.

  ──.

 단 한 번의 시가 퍼졌다. 그러자 애원과 기도의 비가 끊어지며, 정적이 대신 내려왔다. 곧 고요함을 밀어내며, 끊임없던 기도를 대신하여 채워주는 노래이자 시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높지 않은 음, 일정한 리듬, 낮고도 잔잔한 톤이 그녀는 듣기 좋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신자들을 떠올리게 하였다. 씁쓸함과 외로움이 느껴져 왔다. 어째서 알 수 있는 것일까, 정말로 자신이 신이기에 그런 것일까. 하는 마음이 묻어 나오지 않는 중얼거림이 여성의 안에 깔린다. 그 사이에도 노래와 시는 이어진다. 거대한 돌고래의 기도와 달리 가사도 내용도 알 수 없었지만, 유독 한 부분이 반복됨을 알아차린다.

 아아, 그렇구나. 당신도 기도하고, 애원하고 있구나.

 여신이라고 불린 여성은 깨닫게 된다. 그가 계속 부른 노래이자 시는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이었다. 그렇기에 상냥하고도 부드러운 목소리이자 노래이며, 시였다. 간절하고도 애틋한, 자상한 목소리의 주인이 노래와 시를 바치며 기다리는 존재는 누구일까. 어째서인지 그 존재가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다. 그녀는 그가 기다리고 원하는 존재가 부럽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떠올리지 않던 무언가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름을 모르는 그 무언가 때문일까, 어째서인지 가슴이 답답해지며 고통을 느낀다. 아픔 때문일까, 여신일 터인 여성은 통증에 견디지 못해 정신을 잃는다. 

 

 

 

***

 

 

 

 세찬 바람의 소리가 들려왔다. 고막을 찢을 듯한 천둥소리도 들려왔다. 천천히 눈을 뜨자 보여 온 광경은 예상한 대로의 모습이었다. 하늘은 검은색의 두터운 먹구름들로 덮여 있었고, 그로인해 달마저 없어진 세상은 어둠이 고여 있었다. 스칠 때마다 무늬를 만들어내는 강한 바람은 날카롭고도 위협적이었다. 바람에 동조한 듯 크게 흔들리며 일렁이다 못해 넘쳐나는 바다. 그 바다 위를 활개 치는 거대한 파도는 제멋대로에 거칠었다. 어둠뿐인 하늘에서 이유 모를 끊임없는 비와 외침과도 비슷한 천둥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마치 세상의 끝과도 같은 그 광경에 여성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칼날을 지닌 강풍이 몸에 상처를 입혀도, 굵은 빗방울이 볼을 때려도, 천둥이 번개로 바뀌며 위협한다 해도 그녀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 그의 곁에 나비는 평온한 모습으로 날고 있었다. 마치 그녀를 따라 하듯이, 아니면 그녀에 동화된 듯이... 그 작은 몸과 얇은 날개에 치명적인 존재들에도 나비는 도망치지도, 숨지도 않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젖고도 상처투성이가 된 여성이 작은 존재를 바라본다.

 무엇을 생각한 걸까. 무엇이 웃겼을까. 아니면 무엇이든 웃기지 않았던 것일까. 여성은,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며, 입꼬리를 한껏 올리며 미소를 만들어 낸다. 지금까지 표정의 변화가 없었던 존재는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어 보인다. 그리고는 볼품없고도 나약한 존재와 함께 거대한 파도에 먹힌다. 함께 차갑고도 깊은 바닷속으로 빠진다. 

 

 

 

***

 

 

 

 너무도 당연한 어둠 속에서 그녀는 아픔으로 인해 깨어난다. 지치지 않은 것인지 누군가들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일정하고도 작은 노크 소리는 살며시 아픔을 감싸 누른다. 마치 고통을 줄여주려는 듯이... 허나 가슴의 아픔은 누그러지기는커녕 건재하여 숨을 쉬기 힘들 만큼 괴로웠다.

 이대로 아픔이 이어질까. 하지만 이 정도라면 버틸 수 있겠지. 언제나처럼.

 익숙하면서도 낯선 목소리가 제 안에 의문과 답을 함께 만들어 낸다. 그렇다면 괜찮겠지 라며 혼자서 대화를 만들어 낸 그녀는 얕은 숨을 내쉰다. 눈꺼풀을 올릴 생각도, 그런 이유도 떠올리지 않으니 다시 잠에 들까 하는 결론을 내려 했다. 어차피 변함이 없을 거라고 누군가가 속삭여 왔다. 

 다시 잠이란 도피처로 도망치려던 순간 들려온 누군가의 당당하지만 조심스런 목소리. 낯설지 않은 노래로 이어진다. 누군가를 간절히 부르며, 무언가를 바라는 목소리. 애틋한 시가 귓가를 통해 들어와 가슴에까지 도달한다. 통증이, 아픔이 더욱 깊어지고도 강해져 갔다. 그 이유를 모르기에 아픔의 주인은 그저 손을 움직여 가슴을 쥐었다. 손끝이, 손톱이 천을 넘어 피부로 파고드는 아픔이 선객과 겹쳐져 왔다. 차라리 이게 더욱 편안하다고 여긴 순간이었다. 온기가 손에 닿아왔다. 그 온기는 꽉 쥐었을 터인 손가락을 쉽게 풀어내어 손 전체를 감싸왔다. 온기를 느낄 수 없었던 몸에 희미하게 열이 퍼져갔다. 따스함 덕분일까, 가슴 속 격한 통증이 누그러진다. 어쩌면 마비가 되었을 지도 몰랐다. 여성은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가 왜 자신의 손을 잡는지, 따스함을 주는지 알고 싶었다. 노래와 시로 애타게 부르는 존재가 있을 터인데도 왜 자신에게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

 짧은 시가 들려왔다. 동시에 자신의 손을 더욱 강하게 쥐는 온기 또한 느껴져 왔다. 귓가에 같은 시의 구절이 들려왔다. 언제나 보다 더욱 애잔하고도 간절한 노래였다. 

 그제야, 그제서야 여성은 겨우 알게 된다. 그가 계속 간절히 불러왔던 존재가 누군가가 자신임을. 그 부드럽고도 멋진 목소리로 몇 번이고 자신을 부르며, 따스함을 주었던 사실을. 그녀는 아픔 속에서 알게 된다. 또한 동시에 같지만, 가슴의 아픔이 다른 아픔으로 변하는 것을 느낀다. 누구도 줄 수 없는 아픔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벅찬 아픔에 눈을 뜨지 않고는 베길 수 없는 초조함에 무거운 눈꺼풀을 뜬다. 뿌옇고도 희미한 어둠이 깔린 세상이 펼쳐진다. 그 안에서 다시 보게 된 하얀빛. 그리고 그 곁에 있는 두 개의 작은 푸른 달을 보게 된다. 아니, 그 둘은 각각이 달이 아니었다. 그 둘이 하나의 달임을 깨닫게 된 여성은 미소를 지으며, 깊고도 잔잔한 아픔 속으로 뛰어든다. 

 

 

 

***

 

 

 

 같은 인물일까, 아니면 다른 인물이었을까. 그녀는 또 누군가의 부름으로 눈을 뜬다. 허나 보여 온 것은 흑백의 무늬였고, 곧 그 존재가 나비임을 알게 된다. 자신이 깨어난 걸 알아차린 걸까, 나비는 날개를 펄럭였다. 덕분에 그녀는 눈을 감으며, 누워있던 몸을 일으킨다. 툭- 두둑, 익숙한 물방울의 낙하 소리가 들려왔다. 거친 소리 하나 없어 주위를 둘러본다.

 폭풍은 이미 멈추고, 사라져 있었다. 세상은 밤이지만 밝았다. 바다의 지평선이 보일 만큼, 남색의 수면이 푸른색과 빛의 알갱이들로 반짝일 만큼 환하였다. 여성은 절로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그제야 한 없이 작았던 달이 밤의 세계를 전부 밝혀버릴 듯이 커다랗고도 빛이 강해진 모습을 보게 된다. 태양과는 다른 부드러운 눈부심에 표류 중인 존재는 입을 다물게 된다. 

 나비도 그런 달에 이끌린 것일까, 지평선에 바로 위에 걸린 달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한다. 여성은 나비를 따라, 달이 만들어낸 길 위를 걸어간다. 달로 향하는 여정 속에서 언젠가 마주 친 불꽃과 파도와의 재회를 겪는다. 허나 그들은 마치 예술작품처럼 얼어붙어 있었다.  그 다음은 언젠가의 꽃들과도 마주친다. 수면 위에서 정갈하고도 예쁘게 놓인 그들은 거친 파도가 없어진 바다 위에서 잔잔히 흔들려 춤을 추는 듯 했다. 

 이윽고 여정이 끝난다. 나비는 커다랗고도 아름다운 달의 곁으로 날아올라 그의 곁에서 비틀거리면서도 춤을 춘다. 한쪽 날개가 망가졌음에도, 작은 존재는 행복하다는 듯이 꺾인 날개를 있는 힘껏 펼쳐 달의 어깨 위에서 날아다닌다. 잔잔한 바람의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춘다. 자신도, 바다도, 얼어붙은 불꽃과 파도도, 꺾인 꽃들도, 불타버린 섬도 보이지 않는 듯한 모습은... 달로 인해 눈이 먼 모습과도 같았다. 

 

 "아아, 그렇구나. 너는..."

 

 여성은 달 아래에 주저앉는다. 찬란한 달과 춤추는 나비를 올려다보며 그녀는 미소를 짓는다. 왜 몰랐을까, 아니면 모른 척을 했던 걸까. 라고 생각하며 가슴을, 심장의 위를 강하게 쥔다. 

 

 저 꺾인 날개를 가진 볼품없는 나비가 자신이었다는 웃긴 꿈이자 현실, 연극에 여성은 눈물을 바다 위로 흘린다. 

 

 

 

***

 

 

 

 어둠이라고도 생각지 못한, 인식하기도 전에 들려 온 소리에 그녀는 눈을 뜬다. 정확하게는 깨어났다 라거나 눈을 떴다 라는 인식도 못한 상태로 일어난다. 여성은 그저 창가에서 들려 온 소리에 잠에서 깨어 난거다. 유리를 두드리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누군가들의 수다에 몸만이 깨어났다. 뇌도, 마음도 제대로 반응하지 않음에도 감각만이 소리에 반응하여 창가를 바라본다.

 

 "비..."

 

 입에서 흘러나온 단 한자의 단어. 그게 그녀가 일어나 제대로 인식한 첫 번째 존재. 그리고 그 시작으로 여성의 세계는 작은 모형의 세계로 다시 돌아온다. 꿈에서 헤매던 세계는 얼굴을 바꾸고, 자신이 아닌 타 존재가 만들어 낸 세계에 눈을 돌린다. 빛이 희미한 어둠의 세계였다. 허나 두렵지 않고도 그리운 기분마저 드는 장소에 깨어난 인물은 천천히 눈을 깜박인다. 

 

"네코는..."

 

 눈꺼풀을 올린 순간 들려 온 누군가의 목소리. 익숙한 단어에 누군가를 떠올린다. 목소리는 어둠 속일 터인데도 보여 온, 닫혀진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오직 비들의 작은 수다만이 들려오는 세계 속에서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녀는 그 목소리를 따라 침대에서 내려간다. 조심조심히 발소리가 나지 않도록 문으로 다가가 문고리를 돌린다.

 

 "나는 네코를, 사유라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다. 누군가가 어리석다고 조롱할지라도, 설사 과거의 내가 비웃더라도... 나는 이 마음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잠겨있던, 닫혀있던 문의 작은 틈을 연 그녀는 보았고도 들었다. 그 목소리는 한 없이 조심스러워 마치 도둑처럼, 그 모습이 한없이 부드러워 마치 노래처럼 들려왔다. 그의, 토토 카도케우스의 시가 거부할 틈도 없이 타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는 싫어도 알게 된다.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알게 되어 버린다.

 이제는 결코 전과 같지 못할 자신을... 자신의 마음을... 그것은 춤을 추는 치맛자락 같았다. 퇴색해가는 금빛의 하늘과도 같았다. 허무하도록 찰나의 한 순간만 아름다운 것들 중 하나였다. 그것은 새벽에 핀 은빛 목련과도 같았다. 나비가 벗고 떠난 허물과도 같았다. 아름다운 것들 중에서 가장 쉽게 시든 것이었다.  그 이름은 사랑이었다. 

 사유라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덮었다. 입안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을 소리 없이 토해낸다. 떠오르는 꿈의 풍경이 선명하여 내뱉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아름답고도, 한 없이 슬펐던 달과 바다, 나비의 꿈이 너무도 선명하여 가슴이 아파왔다. 그녀는 그를 따라 어디든 갈 수 있다. 새장 속에 갇혀 노래하던 자신을 꺾인 날개를 펼쳐 달의 어깨 위를 날게 해준 그를 따라서 말이다. 그런 그만을 바라볼 수 있다면, 이젠 눈이 멀어도 좋다고 사유라는 소리 없이 절규한다. 그런 그만을 사랑할 수 있다면, 이젠 숨이 멎어도 좋다고 사유라는 끝임 없이 외친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그가 나타난다. 놀란 듯한 표정이 곧 미미하게 구겨지더니 푸른 달에 물방울이 맺혀진다. 그러더니 자신을 끌어안는 토토에 사유라는 숨을 멈춘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 눈이 먼 것만 같았다. 귓가에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야 할 많지만, 이 순간만은 이 말을 하고 싶군. "

 

 물기 어린 목소리에, 억지로 끌어올려 내뱉는 목소리에 사유라는 있을리 없을 날개가 아파오는 것만 같았다. 몸을 강하게 끌어안는 듬직하고도 따스한 팔에 있을리 없을 날개가 망가지는 것만 같았다. 가슴은 이미 무너진 것만 같아 숨이 쉬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귀를 기울인다.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랑해버린 존재의 말씀을...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하고 있다. 사유라..."

 

 한 없이 강하고도 애틋한 목소리이자 부름이었다. 그 어느 말보다 아픈 노래이자 시였다. 사유라는 다시 한 번 눈이 멀어도, 숨이 멎어도 좋다고 여기게 된다. 오랫동안 그의 입 속에 묶여있던 그 언어로 밤의 침묵이 멎을 때까지, 자신의 목소리이자 심장이 멎을 때까지 속삭여 주기를 바랄 정도였다.

 그 누가 타오르는 불꽃과 날카로운 파도를 얼어붙게 할 수 있을까. 그 누가 꺾인 꽃들이 춤을 추게 할 수 있을까. 그 누가 그만큼 자신을 설명하고도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있을까. 그 밖에 없었다. 그 밖에 없다. 그 밖에 없을 거다. 누구보다 현명하고도 완벽에 가까운 존재일 터인데도, 볼품없고도 나약한 자신을 사랑해주는 존재. 위대하고도 고고한 예지의 신, 토트 카도케우스. 오직 그만이 자신을 사랑이란 꿈을 꾸도록 해주었기에, 사유라는 하나의 단어를 떠올리며 토해낸다.

 

 "사랑해요, 저도 사랑하고 있어요... 토토씨."

 

 누군가가 그녀의 귓가에 속삭인다. 조롱어린 목소리로... 그럼에도 사유라는, '사유라'는 그의 품에서 눈물을 흘린다. 

 

 

 

 

 아아, 이게 그게 아니라면 무엇일까.

 파탈리테 (Fatalité)

 아름답고도 잔인한 단어구나.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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