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작

[인어합작] 보로사유 - 인공호흡

サユラ (사유라) 2016. 11. 1. 03:51






* <지인합작 ~Under the sea~> 인어합작에 참여한 원펀맨의 >보로스< 드림글입니다

* 오리주(드림주)/오너이입有





아주아주 멋지고 훌륭하신 존잘님들의 작품이 모인 홈페이지는 여기입니다!

주소 클릭이 되지 않게 설정을 해서 배너형식 같이 올리는점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오랜만에 창고를 정리하던 중이었다. 조금은 깊은 곳에서 기억에 없는 상자를 발견한다. 꽤나 낡은 느낌인지라 안의 내용물에 대해서도 기대심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묘한 호기심은 있어 상자의 뚜껑을 열어보았다. 살짝의 퀘퀘한 먼지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히는 가운데 상자 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하늘색이었다.

 

 

 

 

 

"......"

 

 

팔락하고 한장의 종이가 넘겨진다. 내 손에 의해 넘겨진 다음 페이지엔 달빛으로 희미하게 밝혀진 바다 속에서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여성이 그려져있다. 이야기로는 읽은 적이 있으나 그림으론 처음보는 장면이다. 내가 알고 있는 이 이야기의 세가지의 결말 중 하나다. 아련한 사랑의 결말이다. 조금은 멍하니 물거품의 그림을 보고 있었을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펼쳐진 책을 덮고 일어서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내 귓가에 철문이 닫히는 소리도 들려왔다.

 

 

"보로스, 다녀오셨어요?"

"아아 다녀왔다."

 

 

거실을 벗어나기도 전에 보여온 그의 모습에 이제는 익숙한 마중인사를 건낸다. 보로스는 그런 내게 작게 웃으면서 답변을 해준다. 소소한 행복에 나도 웃으니, 어느새 다가온 커다란 몸이 팔을 뻗어온다. 가볍게도 나를 안아올려 내 볼에 입맞춤한다. 간지럽고도 부드러운, 따스한 감각에 목 부근의 체온이 오르는 것을 느낀다. 허나 동시에 또 행복해서 웃어버린다. 예전이었다면 상상하지도 못했을, 바라지도 않았을 이 달콤한 인사도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뭐하고 있었지?"

"창고 정리와 독서요."

 

 

나를 내려준 그와 함께 거실로 돌아가는 동안 둘의 발소리가 엇갈리면서도 겹치며 묘한 박자를 만들어낸다. 그 소리가 좋다고 생각하면서 질문에 답하는 내게 보로스는 살짝 불만이 담긴 시선을 지어보인다. 곧 그것이 자신이 없는 틈에 나 혼자 창고 정리를 한 것에 대한 불만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대체 보로스는 날 어디까지 약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물론 내가 체력이 평균치가 아닌 것도, 힘도 쎈 것도 아닌 것을 자각하고 있다. 그렇다 해도 보로스는 정말 과보호다.

 

 

"이거 보세요. 창고에서 찾아낸 책이에요."

"....."

"전 집 주인분이 놓고 가신 것 같아요. 아이가 있었다는데 그 아이의 책이었나봐요."

 

 

뻔히 보이는 불평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그에게 하늘색의 표지를 가진 책을 보여준다. 책에는 전혀 흥미가 없고, 여전한 푸른 눈동자에 애써 작게 웃으면서 책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자 작게 한숨을 내쉰 보로스는 '그래서 무슨 책이지?'하고 물어온다. 그것이 일종에 이번엔 넘어가 준다는 의미이기에 안심하고 입을 다시 움직였다.

 

 

"<인어공주>에요."

 

 

내가 다시 책을 펼친 것은 그의 품 안에서다. 평범하게 옆에 앉아달라고 하고 싶었으나, 아까의 넘어가 준 일도 있기에 얌전히 안겨 있는다. 배쪽에 놓인 큰 손이나 등에 닿는 온기에 조금, 아니 꽤나 부끄럽지만 인간은 역시 적응하는 생물이다. 이제는 익숙하고도 마음이 놓이는 보로스의 품안은 오히려 내가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어버린다. 물론 아직 이 부끄러운 대사는 온기의 주인에겐 전해준 적은 없다.

 

 

"그림이 잔뜩이군."

"어린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이니까요."

"그럼 네가 읽을게 아니지 않나."

"어른은 읽지 말라는 법은 없는걸요. 그리고 왠지 보고 싶어져서..."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엔 여전히 책 자체에 대한 흥미는 담겨있지 않다. 아마 그는 그저 내가 어떠한 책을 읽은 것인지에 대한 흥미만이 조금 있을 것이다. 확신에 가까운 생각을 하면서 그저 아무 생각없이 페이지를 넘겼다. 거기엔 바다에 빠진 왕자를 보게 된 인어공주가 그려져 있었다.

 

 

"왠지 너와의 첫만남 같군."

"그런가요? 제가 볼 때는 다른 것 같은데."

"나는 너에게 그날 구해졌고, 주워졌었지."

 

 

첫만남 때. 내 기준에서는 아무리 보아도 다른 것만 같은데 보로스에게는 비슷하다고 느껴지나 보다. 거기다 내가 그날 그를 데려온 것은 내 이기심으로 인한 결정이었다. 아직도 미안하다고 여기는 그때의 내 소망을 위해 나는 보로스를 이 집으로 데려왔었다. 오직 구한다는 순수한 의도였던 주인공과는 엄연히 틀렸던 과거의 나다. 다시 페이지를 넘기니 거기엔 마녀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댓가로 인간의 다리를 얻는 인어공주가 그려져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자신의 자랑이던 아름다운 목소리를 바친 인어공주는 필사적이며, 로맨틱 하다. 허나 동시에 어리석다고 생각해버린다. 그녀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도 말이다.

 

 

"어리석군."

"보로스?"

"하지만 이 여자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렇네요. 저도에요."

 

 

놀랐다. 보로스가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에... 인어공주가 어리석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리 없었으니까. 댓가를 치룬 것이나, 그녀의 결말에 대해서도 어리석다고 말한 사람들은 그리 보지 못했다. 애초에 인어공주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그리 본적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다음은 어떻게 되는거지?"

"궁금하세요?"

"댓가를 지불하여 과연 왕자를 차지했는지가 조금 궁금하군."

 

 

작지만 보로스가 이야기에 흥미를 가진 모양이다. 나는 손으로 조심히 남은 몇장의 페이지를 넘겨갔다. 그리고 이윽고 펼쳐진 마지막 페이지. 인어공주의 최후, 그녀의 사랑의 결말. 내가 아까 멍하니 바라보았던 그림에 우리 둘 모두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감상을 기다리며, 조심히 물거품의 부분을 손 끝으로 훑어본다. 코팅처리라고 해야하나, 종이의 재질의 차이라고 해야하나, 아니면 둘 다 일까... 소설책과는 틀린 조금은 두꺼운 종이는 몇 년의 시간동안 방치되었던 것에 비해 멀쩡하다. 하지만 부드러운 느낌의 채색과 그림체는 종이가 두꺼운 것을 느끼게 해주지 않았다. 그래도 종이의 차가움은 어찌할 수 없었고, 그것은 마치 인어공주가 거품이 되어 사라진 바다의 차가움 같이 느껴졌다.

 

 

"옛날이었다면 절대 이해할 수 없었을 판단이지만, 지금은 아주 조금은 이해가 가는군."

"......"

"하지만 나라면 다른 수단을 써서라도 사랑하는 존재를 손에 넣으려고 했을거다."

"예를 들면요?"

"목소리가 없어도 전할 수 있는 수단은 있지 않나. 글이라던가, 아니면 몸으로 라던가."

 

 

'옛날이었다면' 이라는 말에 내심 기뻤다. '지금은' 이라는 말에도 기뻤다. 그 말은 이제는 옛날과 다르며, 그 이유가 나로 인한 것이기에... 이렇게 당당히 이유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예전이라면 무리였겠지만, 그가 지금까지 내게 준 애정들을 생각한다면 바뀐게 오히려 당연하기도 하다. 나도 모르게 살짝 들떠버린 기분에 물어보는데, 방금까지 머리 위에서 들려오던 목소리가 귓가 가까이서 들려왔다. 동시에 온기가 담긴 숨결에 나도 모르게 움찔해버리자, 머리 위에서 그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보로스."

"나는 너의 질문에 답한 것 밖에 없다만, 왜 또 불만스런 목소리인거지?"

"....."

"삐진건가?"

"......"

"미안하다. 해달라는 것을 해줄테니 풀어라."

"그럼 손 잡아주세요."

 

 

싫은 것이 아니지만, 내가 놀림받았다는 사실에 조금은 어린아이 같이 삐져버린다. 그런 내게 보로스는 어딘지 어른의 여유와도 비슷한 느낌으로 달래주려 하였고, 나는 그것에 응해버린다. 답지않은 어리광을 부린다. 책을 잡고 있던 왼손을 살짝 들어올리자 그의 커다란 손이 겹쳐온다. 손가락 사이로 얽혀오는 푸른 손가락은 내 손을 꼭 잡는다. 손에 전해지는 힘과 온기에 그 몰래 작게 웃어본다. 나도 참 단순하다.

 

 

"보로스, 저 예전에 인어공주가 부러웠어요."

"어느 부분이 말이지?"

"어디일까요?"

"심술인거냐."

"보로스라면 아실거에요."

 

 

심술이라면 심술일까, 아니면 그가 알아주길 바라는 걸까. 일부러 답지않은 행동을 한다. 보로스와 함께하면서 정말 없을거라, 잊었던 부분들이 튀어나와서 난감하면서도 즐겁다. 비록 해답은 내 아픔과 연결되어 있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아아 이 버릇은 아직도 남아있다. 일부러 자신이 아픈 부분을 꺼내는 버릇은...

 

잠시 자조적인 기분에 빠져있을 때, 턱이 잡혀 약간 위를 향해 돌려더니 볼에 따스함이 닿아왔다. 곧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버린 내 어깨를 듬직한 팔이 둘러 안아준다.

 

 

"아직도 부럽나?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조금은요. 그렇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해요. 제가 바랬던 그 형태에는 못 미치는 최후니까요."

 

 

알아차린 것일까, 보로스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아주 미미하게 낮아졌다. 걱정이 담긴 질문에 나는 솔직하게 답한다. 다른 사람에게였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지 않았을 것이었고, 인어공주가 부러웠다는 말도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은, 어쩌면 앞으로도 나를 안아주는 이 존재에게만 내 자신을 보일거다.

 

 

"...... 그 최후에 대해 물으면 답해줄거냐?"

"이 이야기에 마녀는 이루어줄 수 없고, 신만이 이루어줄 수 있는 최후라고 답해드릴게요."

"아직도 바라는거냐."

 

 

이번에는 모르겠다. 내가 일부러 돌려 말한 대답에 대한 최후에 대해 그는 알아차린 것인지, 아닌지를... 어느쪽이든 보로스는 내게 묻는다. 내가 정말로 간절히 바랬던, 그러면서도 이루어질리 없을거라 여긴 최후에 대해 바라는지를... 저울질을 해본다. 보고 싶은 두 개의 미래를.

 

 

"지금은 보로스와의 미래쪽에 더 기울어지네요."

"바라지 않는다고 답하지는 않는군."

"어쩔 수 없어요. 그 최후는 제가 오랜 시간 바랬었고, 조건이 너무 좋거든요."

"그래도 그 쪽보다는 내 쪽이 더 좋다는 말을 한 것인가."

 

 

내 대답을 들은 보로스는 고개와 허리를 숙여 내 어깨에 얼굴을 묻는다. 그의 머리카락이 볼과 목을 간지럽힌다. 물 속이 아니란 것을 알려주는 감각에 살짝 멍해진다. 그러면서도 또 보로스에게 미안한 일을 해버렸다고 생각한다. 혼자만 아프면 되는 것인데, 나로 인해 그를 끌어들인다. 잊지 못하는, 잊으면 안되는 과거에 묶인 나로 인해 보로스마저 심해로 데려가버리지 않을까. 착하고 아름다운 인어공주와 달리 그의 목을 조르는 괴물이 되어 버리는게 아닐까. 아 그만. 기껏 좋은 시간이 망쳐지게 되어버리는데...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또 참는군."

 

 

들려온 목소리와 함께 고개가 돌려지더니 입술을 덮는 감각. 시야 안에는 그의 눈동자로 가득찬다. 입술의 틈으로 온기로 데워진 공기가 들어오고 그의 입술이 살짝 떨어진다. 내가 숨을 내쉬자 다시 한번 입술을 맞추어 숨을 불어넣더니 또 입술을 뗀다. 폐에서 공기를 빼내면 마치 산소 호흡기처럼 그는 내게 또 숨을 불어넣어준다. 아아 마치 인공호흡과도 비슷한 것 같은 행동을 몇번을 반복했을까, 보로스는 가만히 입술을 맞댄다. 숨을 불어넣지도, 혀를 얽는 깊은 키스도 아닌 그저 입술을 맞댄 키스에 옮은 것인지 내가 숨을 불어 넣어버렸다. 생각지도 못한 것인지 내 왼손을 쥔 손이 미미하게 움찔하더니 더욱 강하게 쥐어온다.

 

 

"나를 시험하는거냐."

"그저 인공호흡이었어요. 보로스도 그랬잖아요?"

 

 

입술이 떼어져 나를 보는 푸른 눈동자엔 열기가 담겨져 있다. 그런 그에게 난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알아도 나름의 태연함을 끼고 답한다. 잠시 말없이 나를 보던 보로스는 스치듯 키스하더니 다시 내 어깨에 고개를 묻어버린다. 여러가지로 참는 중인가보다. 그래도 그 덕에 다시 숨을 쉬는 나다.

 

 

"너의 그 버릇은 고쳐지질 않는군."

"고치지 못해도 보로스가 숨을 넣어주실거잖아요."

"뭐 그렇긴 하지."

 

 

심적으로 몰려지거나 몇개의 기분에 따라 나는 숨을 참는 모양이다. 슬쩍 자각은 하고 있었으나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나를 보로스는 신경써준다. 내 심장이 걱정이라던가... 그 정도로는 죽지는 않을텐데도 이 버릇이 나오면 보로스는 인공호흡하듯 내게 숨을 넣어준다. 이렇게 보면 오히려 보로스 쪽이 인어공주 같기도 한데... 그는 몇번이나 나를 구해주고 있으니까. 아아 그러면 나는 사랑하는 이를 알아보지 못한 바보같은 왕자님일까. 진정한 사랑을 놓쳐버린 왕자님. 설령 알아차렸어도 때는 늦어, 사랑하는 이는 이미 거품으로 변해버려 슬픔에 잠기게 됐을지도 모르는 왕자님.

 

 

"숨."

"아.. 쉴게요."

"사유라."

"네?"

"고맙다. 네가 바랬던 최후보다 내 쪽을 더 중요시 여겨줘서."

 

 

또 숨을 쉬지 않고 있었나보다. 보로스의 말에 숨을 한번 쉬어본다. 허나 그의 말에 다시 숨을 쉬지 못한다. 이번에는 기뻐서 숨을 잊어버린다. 그런 내 입술에 다시 온기가 닿아와 숨을 불어넣어준다. 아아 정말이지, 나는 평생 이 버릇을 고치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역시 나는 인어공주는 되지 못하나 보다. 물 속에서 숨도 못 쉴뿐더러, 이제는 이 존재를 놔두고 물거품이 될 수 없기에... 


나중에 책을 책장에 꽂아두자고 생각하며 나는 눈을 감아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