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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합작] 보로사유 - 다른 세계의 두 사신 <타임리스타임>

サユラ (사유라) 2017. 1. 29. 00:21

* 지인드림 [책합작]에 참여한 원펀맨의 >보로스< 드림글입니다

* 오리주(드림주)/오너이입有

* 캐릭에 대한 개인적인 성격파악이나 구성된 부분이 있어 원작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원펀맨>과 <타임리스타임>의 크로스오버라고 봐도 괜찮습니다.

*<타임리스타임>의 인물들의 시점은 원작책의 3권까지 입니다.

*등장인물의 성격,말투는 작가의 개인적인 해석이 있기에 독자님들과의 해석과 다를 수 있습니다.

 

*공미포 약 1700자의 글입니다. 중간 탈주 괜찮습니다.





아주아주 멋지고 훌륭하신 존잘님들의 작품이 모인 홈페이지는 여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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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와 같은 날이라고, 유진은 생각했다. 자신은 적당히 책을 읽고, 집주인이자 사신인 이안은 또 창가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계약자가 올지는 알 수 없었지만, 왠지 오지않을거란 확신이 드는 날이었다. 그렇게 느릿느릿 시간이 가던 중. 창가에서 움직이지 않을 것만 같던 이안이 일어선다. 그리고는 느긋히 마시던 맥주를 단숨에 마셔버리는 모습에 유진은 위화감을 느낀다. 거기다 어느새 3병이 넘은 빈캔들과 담배꽁초가 쌓인 재털이도 치운다.

 

 

"뭐하시는거에요?"

"보면 모르냐, 치우잖아."

"아는데 갑작스러워서요."

"누가 올테니까 얼른 치워야 돼."

"...... 네?"

 

 

이 무슨 소리일까. 유진은 어리둥절하고도 놀라울 따름이다. 이안은 그리 어지럽히고 내버려두는 성격은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온다고 맥주캔과 재털이를 깨끗히 치우기까지는 하지 않는다. 물론 계약자와의 대화를 위해 테이블 위를 치우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눈가림 용으로 대충 치울 뿐이다. 지금처럼 빠르고 아주 깔끔하게 치우는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어떻게 안 것인지 누가 온다는 말도 신기하다. 아무리 저승사자라도 누군가가 온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차린 걸까. 유진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이안은 어디론가로 향한다.

 

 

"손님이 오시는데 어디 가세요?"

"양치질."

"......."

"멍하니 있지 말고 커피 준비해. 참고로 믹스같이 조금 달게가 취향이다."

"아, 네."

 

 

유진은 또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들어 상황파악이 힘들었다. 이안이 손님이 온다고 양치질을 할 인물이었던가? 적어도 자신의 기억 중에서 그가 누가 올거란 예정이 있어 시간에 맞추어 다시 한번 양치지를 한 모습을 본 적은 없다. 거기다 미리 커피의 취향까지 말해주다니... 이 무슨 해가 서쪽에서 뜰만한 일일까. 맑은 하늘에서 갑자기 벼락이라도 내리지 않을까. 하고 유진은 한번 열려진 창문 너머 하늘을 본다. 허나 하늘은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푸른색을 뽐내고 있을 뿐이다.

 

 

"높은 사람이 오는건가."

 

 

일단은 부엌으로 가서 아침에 비워졌던 커피메이커를 작동시킨다. 커피가 내려지는 동안 유진은 설탕과 크림을 미리 준비한다. 한번 추측한 내용을 입에 담아 보지만, 아닐거란 답을 스스로 떠올린다. 이안은 높은 사람이 온다고 방금과도 같은 태도를 할만한 인물은 아닌 것 같았다. 궁금증과 걱정이 섞이는 가운데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생각보다 빨리 온 손님에 놀라 꺼내던 과자를 떨어뜨릴 뻔한 유진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과자봉지를 다시 잡아냈고, 무엇하나 사고도 치지 않았다. 허나 놀란 심장은 유진도 어찌할 수 없었다.

 

 

"애 떨어... 아니, 과자 떨어지는 줄 알았네."

 

 

빠르게 쿵쾅거리며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유진은 중얼거린다. 중간에 바꾼 말에 예전 이안이 조금은 저질스런 반응을 보였을 때를 떠올린다. 허나 그 회상도 다시 한번 울린 초인종으로 인해 정지되어진다. 과자를 적당히 놓은 뒤, 현관으로 빠른 걸음으로 간 유진. 현관문을 열기 전 한번 자신의 용모를 정리한다. 그리고 조심히 문을 여는데...

 

 

"어라? 이안씨가 아니시네."

"......"

 

 

문을 열자 보인 여성이 자신을 놀란 눈을 지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사실 놀란 것은 아주 약간 커진 눈으로 알 수 있었지만, 표정은 그리 변화가 없었다. 유진은 여성을 살펴본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생머리, 흰피부, 쌍커풀이 없는 눈, 살짝 옅은 분홍색의 입술. 특출날 만큼의 미인도, 몸매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옷도 화려함보다는 캐주얼에 가까웠다. 어찌보면 흔한 느낌이었지만, 묘한 매력이 있었다. 웃으면 이쁠 것 같다고 생각해버린다. 유진이 잠시 찾아온 여성을 스캔하는 동안 관찰 대상은 입을 연다.

 

 

"저기... 혹시 이안씨는 계시지 않은건가요?"

"아,아니요. 있어요. 혹시 소원을..."

"아니에요. 저는 이안씨에게 볼 일이 있어 온거랍니다."

 

 

정중한 말투와 침착한 목소리는 유진에게 묘한 편안함을 주었다. 순간 도유를 떠올렸지만, 도유와 비교하면 눈앞의 그녀가 더욱 부드러운 분위기였다. 허나 동시에 어딘지 위화감을 느낀다. 그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고 생각한 순간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관에서 뭘 죽치고 있는거냐."

"무슨 말이 그래요."

"안녕하세요. 이안씨."

"우리 망량 아가씨가 뭔 실례를 범하지 않았겠지?"

"전혀요. 좋은 분이신 것 같아요."

"너 못 본 사이에 눈이 나빠진 것 같다."

 

 

계약으로 온 것은 아니더라도, 손님 앞에서 조금은 예의가 부족한 말에 유진이 무어라 한다. 하지만 여성은 익숙한 것인지, 아니면 강심장인 것인지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거기다 태연하게 인사를 건낸 후에 이안과 얘기를 나누는 모습은 확실히 지금까지 보아온 반응들과 틀렸다. 이안도 계약하러 온 사람들에게 보이던 때보다 누그러진 반응이었다. 도유 이외에 인물에게 그리 그는 지금과 같은 태도를 보이지 않았었다.

 

 

"그것보다 그 외눈박이는 어쨌냐? 맨날 옆에 찰떡처럼 붙어있던 녀석이 이렇게 널 혼자 방치하다니 이상하군."

"아, 그라면 곧 올거에요. 이쪽으로 오기 전에 시비가 걸려와서..."

"망령이든 아니든 겁도 없는 녀석들이군."

"그러게 말이에요."

 

 

나름 화기애애한 분위기이지만 유진은 들려온 어느 단어에 신경이 쓰였다. 외눈박이. 한쪽 눈이 다쳤다는 뜻일까? 하고 옅은 궁금증을 느끼는 가운데 엘리베이터가 도착한 소리가 들려왔다. 절로 3명의 시선이 소리의 근원지쪽으로 향했고, 그안에서 나온 누군가에 유진은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척보아도 180은 가뿐히 넘는 키에 건장한 체격의 남자인 듯한 누군가. 그 외모가 너무도 특이했다. 멀리서도 눈에 띄일듯이 선명한 분홍색의 머리카락, 길고도 뾰족한 귀, 푸른색의 피부. 그리고 보통이라면 두개여야 할 눈이 한개뿐인 모습은 적어도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외모였다.

 

 

"보로스, 전부 해결하고 오셨나요?"

"아아. 전부 때려눕히고 지나가던 녀석에게 맡겼다."

"거기서 몇 명이 살아있었냐. 외눈박이."

"내가 너에게 그걸 말할 이유는 없다."

"여전히 이녀석 이외에는 차가운 녀석이구만."

"당연하지. 나는 사유라 이외엔 어찌되든 상관이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3명에 유진은 쉽사리 끼어들 수 없었다. 아무리 여러가지 보아온 이안이라지만, 명백히 인외적인 존재랑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거기다 외눈박이의 남자는 명백할 정도로 태도가 나뉘어져 있었다. 대화를 통해 이름을 알게 된 사유라란 여성에겐 다정한데, 이안에게는 따가운 반응이다. 거기다 왠지 듣는 사람이 조금은 낯간지러워지는 말까지. 설마설마하고 오늘의 방문객 둘의 사이를 추측해본다. 그러는 동안 들어가자는 이안의 말에 그제야 집 안으로 들어가는 4명이었다.

 

 

 

 

 

 

***

 

 

 

 

 

 

"그쪽은 별일 없냐?"

"저희 쪽이야 언제나랑 같아요."

"하긴 이 외눈박이가 있으니 쉽게 위험하지는 않겠지."

"그에 비해 네녀석은 변화가 있군."

 

 

평범한 대화를 나누는 도중 그들의 시선이 커피를 가져온 자신에게로 향한 것을 유진은 느낀다. 5개의 눈동자가 자신을 보는 것에 조금 어색했지만, 애써 모르는 척 소파에 앉는다. 슬쩍 시선을 올리니 연브라운색의 눈동자와 딱 부딪힌다. 속으로 당황하는 자신과 달리 상대방은 옅은 미소를 지어보인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귀여움과 어른스러움이 섞인 미소는 매력적이었다. 미인은 아니더라도 호감적이거나 매력적이란 사람은 눈앞의 사람을 일컫는다고 생각하는데...

 

 

"자기소개가 늦어졌네요. 저는 시와가리 사유라. 여기 이 사람, 아니 외계인은 보로스에요."

"안녕하세요. 저는 유진이라고 하고, 이곳에 신세지는 종속망량...외계인?"

"더불어 저 둘도 사신이야."

"네에?"

 

 

유진은 자기소개를 하다가 목소리를 높여버린다. 이안을 만나 망량이다, 귀신이다, 사신이다 믿지 않았던 존재들을 만나봤으나 외계인이라니. 무슨 SF적인 요소냐고 혼란스러운 가운데 이상한 점을 알아차린다. 자신이 들었던 설명과는 틀린 점을 조심히 꺼내본다.

 

 

"저기... 사신이 외계인으로 태어날 수도 있나요?"

"지구 밖에서 태어나면 그렇지 않겠냐."

"아 그런가."

"이안씨,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저희는 그 경우가 아니잖아요."

"네? 다른 경우인가요?"

"네. 저희는 원래 사신이 아닌 인간과 외계인이었답니다."

 

 

이 무슨 소리일까? 유진은 자신이 뭔가 터무니 없는 사실을 알아버린 느낌을 느낀다. 허나 상대방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듯 커피를 한모금 마신다. 그리고 마음에 든 것인지 한번 더 옅은 미소를 짓는 그녀에게 이안이 입을 연다.

 

 

"그런거 말해봐야 이 녀석 더 혼란스러울걸."

"설마 이안씨, 설명하지 않으신거에요?"

"너희들에 대한거? 아니면 너희들 세계 사정?"

"둘다요. 이안씨의 종속망령이 되었으니 저희랑 만날텐데..."

"너희들이 언제 올 줄 알고 설명하겠냐. 이번에도 오랜만에 불쑥 찾아온거면서."

 

 

자신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둘은 어딘지 태평한 대화를 나눈다. 다시 어찌할지 몰라 힐끗 보로스를 본 유진은 자신의 시선을 알아차린 것인지 움직인 눈동자에 움찔해버린다. 눈이 하나뿐이라서 일까, 생각보다 얼굴에서 꽤 자리를 차지한 눈. 커다란 푸른 눈동자는 무심했다. 자신을 보지만 그 안에서 어떠한 관심도 담기지 않은 눈동자는 머쓱하게 만들었다.

 

 

"어이 우리 망령에게 겁주지마."

"난 그냥 본거다."

"네가 멀쩡한 생김새가 아닌거 잊은거냐."

"네 녀석의 망량치고는 담력이 없군."

"아니아니 그건 아냐. 이래보여도 꽤나 행동력이랑 담력은 있다고. 네가 규격외인거라고."

"그럼 사전에 설명하지 않은 네 책임이군."

"너 은근 지기 싫어하는 것 같다."

 

 

두 남자가 왠지 조금은 유치한 말싸움을 하는 사이, 사유라가 유진을 향해 설명을 시작한다. 사신이기에 정확하게는 나이를 가늠할 수는 없었으나, 보이는 외견으로는 20대 중,후반 많으면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그래서일까, 유진은 나긋한 목소리로 설명을 하는 그녀가 어른스럽게 다가왔다. 잠시 후, 대강의 설명이 끝난 유진은 정리겸 그녀에게 묻는다.

 

 

"그러니까 두분은 사신으로 태어난게 아니었다라는거죠?"

"네."

"죽은 후에 높은 존재와의 계약으로 사신이 되었고, 이쪽이 아니라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요?"

"맞아요."

"그런 두분이 이안에게 온건 일종의 두 세계의 교류와 비슷한거란거죠?"

"네. 유진씨는 이해가 빠르시네요."

 

 

사신의 일로도 그랬지만, 눈 앞의 여성이 하는 말은 더더욱 와닿지 않았다. 귀신이나 사신은 믿게 되었지만, 다른 세계라던가 외계인이라던가... 20년 남짓 인생에서 알지 못했던 것들을 단기간에 습득한 자신이 어느 의미로 운이 좋다고 여긴다. 복잡스런 기분을 느끼는 자신에게 미소는 짓지 않지만, 호감이 담긴 시선을 건내는 사유라에 유진은 뭔가 부끄러움을 느낀다. 더불어 그녀는 가녀리고도 부드러운 인상이 들어 정말 사신이 맞는지 의문이 들어버린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시와가리씨는 어느쪽 사신인가요?"

"아 저와 보로스는 둘 다 강력계에요."

"... 네?"

"더불어 그녀석이 사육사, 이쪽은 맹수."

"아니 설명이 왜 그런식이에요."

"난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하는데. 너도 동의하지 않냐? 외눈박이."

"내가 동의해야하는거냐."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 유진은 의외라고 생각해버린다. 거기에 이안의 추가 설명에 조금은 납득하면서도 뭐라 한마디 해버린다. 한마디 들은 사신이 본인에게 동의를 구하지만, 돌아온건 차가운 반응이었다. 흐름에 타지 않는 상대방에 이안은 어깨를 한번 들썩인다. 대신 사유라가 조용히 웃는다. 무어라 반박하지 않는 것에 대해 무슨 뜻일까. 거기다 둘은 그런 사이가 아닐까 하고 궁금증을 부풀리는 유진. 그런 유진의 궁금증을 해소시킨건 예상 외의 인물이었다.

 

 

"뭐,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연인, 아니 부부라고 말하는게 좋다."

"너 용케도 그런 진지한 얼굴로 그걸 말하네. 부끄럽지도 않은거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거기다 우리가 부부인 것도 사실이니까. 그러니 부끄러워할..."

"너의 아내분은 부끄러워하는데?"

 

 

부끄럼이나 쑥쓰러움을 1도 없는 진지한 표정으로 답한 보로스 덕에 유진은 궁금증을 해결시킨다. 이안은 그런 그에게 뭐라하였고, 외계인은 여전히 진지한 표정을 유지한다. 오히려 자신이 조금 부끄럽다고 느끼던 유진은 이안의 말에 시선을 돌린다. 거기엔 두손으로 얼굴을 가린 사유라가 있었다. 얼굴은 가려져 있었으나, 슬쩍 보이는 귀와 목이 붉게 물들여져 있어 그녀가 부끄러워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이안이나 도유보다 더욱 감정적이다라고 생각한 유진은 보았다. 부끄러워하는 그녀를 보고 미소를 짓는 보로스를. 너무도 다정하며, 사랑스럽다는 감정이 절실히 드러나는 그 모습은 사신이나 외계인 이전에 사랑에 단단히 빠진 존재일 뿐이었다.

 

 

"사유라, 너 이자식이랑 결혼한지 얼마나 지났는데 아직도 그런 반응인거냐."

"시비인거냐."

"아니 너희 이미 할건 다하고, 최소 몇 십년 부부로 지냈잖아. 근데도 용케 그런 반응이 나온다 싶어서."

"이게 사유라의 좋은 점이다."

 

 

아직 만난지 1시간도 되지 않았는데도 유진은 적어도 보로스가 사유라에게 얼마나 단단히 빠졌는지 알 수 있었다. 거기에 아내분의 알듯말듯한 고생도 말이다.

 

 

"아 예, 콩깍지 씌인 외계인의 의견 감사하네요. 그럼 이제 진짜로 서로 보고할건 보고하자고. 그런고로 대화가 통하는 우리 둘이 일하는 동안 외계인이랑 망량 아가씨는 술들을 사오도록."

"잠깐만요. 왜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건데요."

"어쩔 수 없잖아. 너 최근 10년 동안의 일들을 설명할 수 있겠냐?"

"그럼 혼자 다녀올게요."

"안돼요. 여성 혼자서는 위험하니까, 보로스랑 같이 가세요. 보로스, 유진씨를 도와주세요."

 

 

생각지 못한 심부름에 따지던 유진은 이안의 말에 반박하지 못한다. 그래도 처음 만난 남자와 둘이서 장보러 가는 것은 너무 어색할 것 같아 혼자 가려고 했다. 허나 들려온 호의에 차마 거절 할 수 없었다. 결국 유진은 처음 만난 외계인과 마트를 가게 되었다.

 

 

 

 

 

 

***

 

 

 

 

 

 

"아 저기 모습은 괜찮으세요?"

"문제없다."

 

 

건물을 나서기 직전 떠오른 보로스의 외견에 물어본 유진은 놀란다. 언제 바꾼 것인지 거기엔 푸른 피부와 외눈박이의 외계인이 아닌 멀쩡한 남성이 서 있었다. 보통의 피부색과 두개의 눈동자, 둥근 귀. 물론 분홍색의 머리카락은 그대로였지만, 미남이었다. 무뚝뚝함과 조금은 날카로움이 느껴지는 외모는 여성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엔 충분해보였다. 거기다 커다란 키에 다부진 몸은 강함까지 내보이고 있어 더욱 매력을 높였다.

 

 

"가지 않는거냐."

"가,갈게요."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멍하니 보고 있었나 보다. 움직이지 않는 자신을 부른 그에 유진은 서둘러 쫓아간다. 길거리로 나오자 단번에 사람들의 시선을 받게 된다. 일단 키와 머리카락으로 1차적으로 눈에 띠었으며, 2차적으로 그 외모로 사람들의 시선을 머물게 했다. 특히나 여성들의 시선이 따가운 유진이었다. 이안과 나왔을 때도 주목받은 적이 있었으나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었다. 문득 아내인 사유라는 이런 상황에 익숙해졌을까 궁금해졌다. 허나 그 궁금증이 이어지기도 전에 낮은 목소리가 의식을 건드린다.

 

 

"어이, 마트는 어디지?"

"이,이쪽이에요."

"빨리 돌아가고 싶으니 멍때리지마라."

"죄송합니다."

 

 

결국 꾸중을 들은 유진은 조금은 기죽은체 마트로 향한다. 마트로 오자 시선은 확실히 줄었지만, 마트 안의 사람들의 시선이 추가된다. 그 시선들에 전혀 신경쓰이지 않는지 보로스는 바구니를 들어올린다. 그 모습이 어울리지 않아, 유진은 하마터면 웃을 뻔 했다. 장신의 건장한 조금은 무서워 보이는 남자가 빨간색의 플라스틱 바구니를 든 모습은 어울리지 않았다. 웃으면 실례일거란 생각에 꾹 참는 그녀를 모른체, 시선들의 주인공은 어디론가로 향할 뿐이다. 그덕에 유진은 급히 따라간다.

 

 

"술은 저쪽인데..."

"안주부터 고르려는거다."

"아 그런가요."

 

 

그가 멈춘 곳은 과자코너였다. 술이 있는 코너가 아니길래 조심히 말하자, 들려온 말에 유진도 자신이 먹을 과자를 고른다. 2개를 골라 바구니에 넣으면서 이미 넣어진 종류들을 살펴본다. 거기엔 달달한 맛의 과자가 3봉지가 담겨져 있었다. 안주라고 하기엔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맛에 의아해하는 순간 바구니를 든 인물이 움직인다. 일단은 뒤를 따라가자 이번엔 제대로 주류 코너였다. 알아서 담으란 그의 말에 유진은 평소 이안이 잘 마시는 맥주들을 담는다. 10캔 정도를 담았을까, 충분히 무거울텐데도 보로스의 팔이 떨림은 커녕 미동도 없어 감탄해버린다.

 

 

"무겁지 않으세요?"

"괜찮다. 이걸로 충분한거냐?"

"음- 더 넣어도 괜찮으세요?"

"난 상관없다."

 

 

그 말에 유진은 10캔을 더 넣는다. 그럼에도 힘든 기색이 없는 상대방에 대체 얼마나 힘이 좋은거야?하고 궁금증과 함께 납득해버린다. 아무리 인간으로 보이는 외모라지만, 그가 인외라는 것을... 한편 유진의 그런 생각을 전혀 모른체, 보로스는 진열된 술들을 쭉 둘러본다. 거기서 골라낸 캔은 알코올 도수가 겨우 3%인 과일주였다. 술보다는 음료수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술을 고른 그가 의외였다.

 

 

"끝인거냐."

"아 네."

 

 

무뚝뚝함보다는 관심이 전혀 담기지 않은 목소리에 유진은 어색함을 느낄 뿐이다.

 

 

 

 

 

 

***

 

 

 

 

 

 

그렇게 장보기를 끝내고 돌아온 둘. 거실로 향하자 거기엔 막 이야기를 끝낸 듯한 이안과 사유라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리 반응을 보이지 않는 집주인 대신 손님이 "수고했어요"라고 말을 걸어준 것이 묘한 기분인 유진이었다.

 

 

"어느정도 사왔냐."

"술이라면 22병이요."

"여전히 바보같은 힘이네, 외눈박이는."

 

 

이안은 테이블에 올려놓은 봉투 안을 이리저리 뒤적인다. 그리고는 과일주 1병을 꺼내 보더니 사유라 앞에 놓아둔다. 유진은 그제서야 그것이 그녀의 것임을 알아차린다. 21병의 똑같은 술들 사이에 껴진 다른 한병은 그녀만을 위한 술이었다. 어울린다면 어울렸다. 유진은 다른 안주를 챙기러 부엌에 향하며 아까의 일을 하나 떠올린다. 술을 다 고른 후, 바로 계산을 할줄 알았는데 다른 곳으로 향하였던 보로스. 그가 향한 곳은 유제품 코너였고, 거기서 밀크푸딩 하나를 집었었다. 그 모습은 바구니 이후로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갑자기 왠 푸딩일까하고 의아해하는 자신의 시선을 알아차렸던걸까, 닫혀있던 입을 열어 그가 말했었다. '사유라가 좋아하는 거다.'

 

 

"진짜 좋아하나봐."

 

 

많은 연인들이나 부부에게 실례지만, 유진은 이안과 함께하면서 사람들 사이에 사랑에 대한 이미지가 약간 바뀌었다. 물론 아직 대부분의 연인들이 서로가 사랑해서 사귄다라고 생각한다. 허나 부부로 오래 함께 살아왔지만 돈으로 인해 아내와 가족을 의심한 어느 남자, 연예인이 되어 사랑한 남자를 냉혈하게 차버린 어느 여성을 봤었다. 그로인해 좋아함이나 사랑이 쉽게도 깨질 수 있다는 것과 그 감정이 한없이 얕을 수도 있다는 것을 유진은 자신의 눈으로 봤었다. 그렇기에 보로스가 말하면서 지었던 미소를 보았을 때, 뭔가 찡했다. 사랑하는 아내를 떠올리며 웃던 그 미소는 진심이 가득하고도 따스했었기에...

 

 

"뭘 멍하니 있는거냐."

"갑자기 뒤에서 말걸지 말아요!"

"네가 멋대로 정신 놓고 있다가 놀란걸 왜 나한테 따지는건데."

"... 근데 왜 온거에요?"

"잠시 부부의 감동의 재회의 순간을 위해 빠져준거다."

"그냥 피신이네요."

"오 눈치가 늘었네."

 

 

언제 온것인지 부엌으로 온 이안으로 인해 놀란 유진. 자신이 말한 피신에 동의한 그지만, 손님의 둘을 위한 그 나름의 배려였다. 그릇에 오징어나 땅콩등 수수한 안주거리들을 담던 유진은 이안에게 무언가 물어보고 싶어졌다. 허나 궁금증의 중심인 인물들이 듣지 못하는 곳에서 묻는 것은 실례가 아닐까하고 고민한다. 그것을 알아차린걸까, 이안이 입을 연다.

 

 

"종족이 다른데도 저렇게 사랑이 빠지는게 진짜로 가능한지 궁금한거냐?"

"...."

"아니면 저 둘이 왜 사신으로 살아갈 것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한거냐."

"둘다요."

 

 

잠시 침묵을 지키던 이안은 주머니로 손이 움직였다. 습관과도 같이 담배를 입에 물지만, 손님이 있다는 사실에 불을 붙이지 않는다. 그냥 입에 물어 까닥이더니 휴지통에 던져버린다. 포물선을 그리며 휴지통에 골인한 담배를 본 유진은 다시 이안에게로 시선을 고정시킨다.

 

"일단 서로가 종족이 달라도 사랑이 가능한건 당연한거야."

"네?"

"아니 너도 잠시 사랑에 대해 로망이나 꿈이 있었더라면, 아니면 드라마를 봤으면 알거 아냐. 소설이나 애니에서 나오는 종족이 다른 두 남녀의 사랑이라거나, 신분이 다르거나 부잣집과 평범한 집에서 각각 자란 남녀가 사랑을 이루는 모습."

"일단은요. 근데 그거 결국은..."

"그래, 픽션이지. 사람들의 상상이지. 하지만 한편으로 가능하기에 나온 망상이지. 뭐 일단 종족이 다른 둘의 사랑은 둘째치더라도 후반의 경우는 진짜로 있잖아. 어디 나라의 왕자님이 평범한 여성과 결혼했다는 뉴스도 있었지. 이렇게 보면 적어도 가능성이 1도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

"그렇네요."

"그럼 종족이 다른 둘이 사랑에 빠지는 일도 같은거야. 사랑에 빠질 수 있지. 서로가 친구가 된다거나 연인과 부부도 될 수 있지. 종족의 차이나 신분의 차이, 가정의 쌓인 돈의 차이 따윈 결국 같은거야. 그리고 어쩌면 사사한 문제야. 물론 당사자들에게는 커다란 문제일 수도 있지만."

 

 

이안은 어찌보면 진지하지 않은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언제나의 설명보다 꽤나 진지하다고 유진은 알 수 있었다. 격함도, 애잔함도 담기지 않은 일정한 톤의 목소리가 그의 논리를 와닿게 만들었다.

 

 

"뭐 그중에서 자신들의 감정을 진짜 사랑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저지르는 녀석들도 있기 마련이지만. 사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폭도 넓어서 나도 정확하게 정의하기도 그게 사랑이다라고 말해줄 수 없어."

"......."

"다만 저 녀석들은 서로를 향한 감정이 사랑이었고, 그렇게 믿고 확신해서 연인이 되었던거지. 그리고 부부도 된거야."

"조금 신기하네요."

"나도 저 둘은 꽤나 신기하긴 해. 암튼 방금도 말했지만 아무리 달라도 사랑에 빠질 수 있어. 종족, 성별, 자란 곳 등이 달라도 사랑을 가질 수 있지. 단 문제는 그 이후야."

"그 이후?""

"사랑에 빠져 콩깍지가 끼었다고 해도 둘이 다르단건 변함이 없어. 사랑하며, 함께하며 알게되는 차이는 어쩔 수 없지. 그걸로 마법에서 깨어나 헤어지는 연인이나 부부는 많아."

 

 

유진은 이안의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TV에서 정말 사사로운 차이로 인해 헤어진 어느 부부가 나왔던 일을 떠올린다. 그때 같이 본 엄마와 함께 너무 오버다라고 했지만, 정말로 가능한 일이었다. 수 억원의 복권정도가 되어서야 갈라지는 것만은 아닌게 현실이었다.

 

 

"서로가 각자의 자아를 가졌기에 드러나는 차이는 커. 거기다 뭐라해도 살았던 곳이 다르니 상식의 차이도 심하겠지. 아 참고로 이건 연애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관계에도 관련되어 있다."

"그정도는 알아요."

"호오- 그럼 이 뒤를 이을 내 말이 뭔지 알겠어?"

"...... 차이점 극복과 이해인가요?"

"왠일로 정답을 맞췄네."

 

 

자신의 말에 마치 칭찬인듯 가볍게 손뼉을 치는 이안에 바보취급을 또 받아 짜증이 날뻔한 유진이었다. 허나 이제 꽤나 익숙해져서 인지 흘러넘긴다. 생각보다 반응이 없는 그녀를 신경쓰지 않고 사신은 말을 이은다.

 

 

"관계를 이어간다라는건 어느 정도의 선을 지키고, 받아들이고, 이해하는거지. 물론 정말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건 관철하는게 좋아. 너무 양보만 하고 참는 관계는 그리 오래 가지 못하니까."

"그럼 저 두분은..."

"서로의 왠만한건 다 알건 아는 사이지. 아직 말하지 못한 부분도 있을 수 있지만, 전부 안다해도 과언이 아닌 관계지. 서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아직도 노력하고, 감정을 주고 받고 있어. 달라도 상관없이. 서로가 서로를 필요하고, 사랑하기에 끊임없이 애쓰고 있어. 그러니까 저녀석들이 저렇게 꽤나 긴 시간동안 아직도 저렇게 닭살스런 사이인거지."

"그럼 이상적인 사랑이지 않을까요?"

"글쎄다. 내가 볼 땐 조금 틀리단 말이지. 비슷하면서도 틀려. 아 이건 나도 뭐라 설명해야할지 모르니까 패스."

"그게 뭐에요."

"애초에 이상적인 사랑은 또 뭔데. 알고보니 너도 낭만을 꿈꾸던 아가씨였구만."

 

 

다시 자신을 놀리는 말투.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점점 익숙해지는 자신도 자신이라고 유진은 생각한다. 슬쩍 거실 쪽을 본다. 물론 벽이 있어 거실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귀를 귀울이면 희미하게 목소리는 들렸다. 사유라의 목소리가 희미하다고 해도 나긋하였다. 왠지 만약 지금가면 무척이나 알콩달콩할 분위기일 것만 같았다.

 

 

"저들의 과거를 내가 말하는건 멋도 없는 행동이지만, 처음의 관계는 꽤나 비틀려져 있었다고 하더군."

"비틀려져 있었다?"

"참고로 이건 사유라의 말. 외눈박이 시점에선 달랐다고 했지만. 자세한건 네가 물어보든 저녀석들이 얘기해주길 기다려라."

"당신이 그렇게 말해서 전자는 차마 못하게 되었어요."

"그럼 후자를 기대해야겠네. 아 근데 그건 많은 시간이 들겠지만."

 

 

비틀린 관계. 자신이 기억하는 관계들을 끄집어 내본다. 드라마, 영화 등에서 보았던 관계들을... 허나 유진은 적당한 예를 찾아내지 못한다. 결국 언젠가의 순간을 기다리는 것만이 방법이다 라고 포기하며 이안을 바라본다. 첫 번째의 궁금증을 대충 풀렸다. 그럼 이제 두 번째의 궁금증의 대한 정답을 원하게 된다.

 

 

"두 번째 잊지 않았나 보군."

"단기 기억 상실증이 아니라서요."

"두 번째는 사실 쉽지 않아?"

"네?"

"힌트. 일, 원래는 사신이 아니었다. 이, 사유라의 외견으로 추정되는 나이. 삼, 서로가 너무 러브러브다."

 

 

다시 장난 섞인 말에 반박해버리는 유진. 그러나 곧 주어진 힌트에 정답을 유추해본다. 하나하나 힌트를 대입하며 풀어나간다. 원래 사신이 아닌 살아있던 인간과 외계인이었던 둘. 그렇다면 그들을 어떠한 계기로 목숨이 끝났다. 그리고 사유라의 외견으로 볼 때의 나이는 20대 중반 정도. 자신 못지 않게 젊은 나이에 죽은거다. 이때 유진은 씁쓸함을 꾸역 삼킨다. 떠오르는 자신이 죽었을 때의 순간은 아직도 두렵고, 악몽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하지만 지금 딱히 떠올릴 필요는 없기에 애써 의식을 다시 풀이과정에 집중한다. 마지막 세 번째 힌트, 서로가 너무도 사랑한다. 그러자 떠오른 정답의 끝자락. 단숨에 그것을 끌어낸다.

 

 

"혹시 생전 오래 함께하지 못해서... 계속 함께하기 위해서인가요?"

"정답."

"다른 세계는 뭔가 더 판타지랄까, 신기하네요. 근데 그게 정말 가능한건가요?"

"가능하니까 저렇게 떡하니 예시가 있는거지. 나도 아는 세계가 저 녀석들이 온 세계뿐이라서 다른 세계는 몰라. 하지만 기본적인 사신 시스템은 비슷해. 단지 저쪽은 꽤나 위대한 존재가 재활용이라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 같더라."

"재활용이라니... 다른 단어는 없나요?"

"아니 이게 제일 적절한 단어야. 생전 강했던 존재들을 사신으로서 다시 써먹는다. 물론 원래 사신이었던 존재들에 비해 감정과 멘탈의 불안점은 있지만, 그 부분은 엄선해서 골라내고 있겠지. 그리고 필요하다면 더 일하기 쉽도록 다른 존재도 함께 하는거지. 일종의 조건을 단 계약. 저 둘이 한 것은 그런거지. 자신들의 부족했던 시간과 행복을 더 채우기 위해, 힘들고 잔인한 일을 받아들인다. 죽은 후, 영혼이 인도되어진 후에 함께 할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어. 그렇기에 선택한거야. 참으로 애틋한 선택이지. 이런 직업을 해가면서 사랑을 이어가고 싶다니."

"그런식으로 말하는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 둘은 그걸로 됐다고 생각하고, 후회하고 싶지않아서 선택한거잖아요. 더 오래 함께하고 싶기에 사신이 된거잖아요."

"그래, 안타까운 연애스토리지. 하지만 내가 볼 때는 세계가 그 안타까운 사랑을 이용한 것 같아 보일 때도 있지만."

 

 

이안의 말은 사실 틀리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선택의 주어진 순간은 분명 희망이었을 테지만, 반대로 그 앞엔 어쩌면 생전보다 더욱 괴로움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둘에겐 괴로움이었을지 모른다. 그래도 함께하기 위해 사신이란 힘든 일을 선택한 둘이 유진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만큼 서로가 서로를 원하고 사랑한다고 감탄한다. 정말 소설에서나 등장할법한 사랑이라고도 말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 이제 돌아가도 되겠지."

"도와주지 않을거에요?"

"수고~"

"으휴-."

 

 

얄밉스럽게 빈손으로 돌아가는 이안의 뒷태에 유진은 몰래 작게 혀를 내민다. 그리고는 부지런히 준비한 것들을 거실로 옮긴다.

 

 

 

 

 

 

***

 

 

 

 

 

 

이윽고 이어진 술판은 대단했다. 보로스와 이안은 점점 술을 비워가는데 표정 변화가 거의 없다. 5캔이 넘어가는데도 멀쩡하게 혀가 꼬이는 기색 없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그에 비해 사유라는.....

 

 

"저기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아직 취하지 않았어요."

"얼굴 많이 붉어지셨는데..."

"제가 원래 술을 조금만 마셔도 붉어지는 체질인지라."

 

 

자신도 술에 강하지는 않더라도 맥주 한캔정도에 쉽게 취하지 않는다지만, 사유라는 아니었다. 그녀가 마시는 술은 과일주. 술을 못하는 사람들도 쉽게 마실 수 있는 술보다 음료에 가까운 도수가 낮은 과일주였다. 헌데 몇번 보았을 때 홀짝 홀짝 조금씩 마시던 여성은 한캔도 다 마시지 않았는데도, 그 하얗던 얼굴엔 붉은 홍조가 자리 잡아 있었다. 더불어 그 홍조는 목에도 번져 있었으면서도, 연브라운색의 눈동자의 초점도 꽤나 흐려져 있었다. 본인은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취하기 직전이라 해도 틀리지 않아 보였다.

 

 

"여전히 술에 약하네. 술만큼은 어린애라니까. 거기다 이거 거의 음료수잖아."

"그치만 전 알코올 특유의 맛이 별로에요."

"역시 어린애."

"사유라에게 장난치지 마라."

"너도 진짜 과보호네. 뭐, 그에 비해 네가 제대로 술상대는 해주니까 괜찮지만."

 

 

이안 특유의 놀리는 말투에 본인보다 옆의 연인이 반응을 보이는게 왠지 신선한 유진이었다. 더불어 과보호란 말에 속으로 동감한다. 술기운이 올라서인지 간간히 멍하니 있는 사유라를 살펴보는 그 모습은 누가봐도 걱정이 되어 어찌할 수 없다는 팔불출이었다. 부부보다는 풋풋한 연인같이 보였다. 잠시 딴 생각을 하는 와중에 자신을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시와가리씨?"

"... 유진씨는 귀엽게 생기셨네요."

"네?"

"이안씨의 취향이 이쪽이었군요."

 

 

뜬금없는 말에 유진은 어안이 벙벙해진다. 후후하고 작은 코웃음소리가 자신의 귀를 간지럽혀서야 정신을 차리는 보는 연브라운색의 눈동자는 묘하게 초점이 뚜렷했다. 무의식적으로 슬쩍 이안을 보는데 딱히 어떠한 표정도 아니었다. 그게 왠지 아쉬운 유진인데...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다."

"틀린건가요? 하지만 이안씨는 종속망량을 둘 분이 아니시잖아요. 이유가 있어서가 타당하다고 생각하는데..."

"취했네. 이거 취했어. 야 외눈박이 부인 관리 잘해라. 얘 취하면 뭔가 말이 많아지잖아."

"정곡을 찔린거냐. 저번이랑 약간 반응이 틀리군."

"부부가 한패가 되서 멀쩡한 사신 놀리는거냐."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이안이 미약하지만 밀리고 있었다. 언제나 상대방에게 절대 밀리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 그의 처음보는 모습은 유진에게 신선하다 못해 재밌었다. 그때 자신의 손을 잡는 느낌이 들었다. 잡은 인물은 사유라였고, 잡힌 손은 멍이 남은 손이었다. 술 때문에 체온이 올라서인지 손도 조금 붉어져 있었다. 한 손은 자신의 손을 잡고, 다른 한손으로 멍을 조심히 손끝으로 살며시 만지는 상대방에 유진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예쁜 손에 어울리지 않는 멍이네요."

"....."

"새삼이라지만 세상은 잔인해요. 사신이 이런 말을 하면 안되려나."

"....."

"그래도 역시 유진씨와 같은 분들은 좀더 오래, 있었을지도 모를 행복을 더 느꼈으면 좋았을텐데 하고 생각하게 되어버려요."

"시와가리씨..."

 

 

또르륵... 반쯤 내려진 눈커풀 속 눈동자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만약 그 안에서 느껴진 감정이 동정이었다면 화냈을지도 몰랐다. 허나 아니었다. 순수한 안타까움이 담겨있어 유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그 아이도...'라고 작디작은 목소리가 들려왔었다. 너무도 작아 자신이 잘못들은거라 넘어가려던 유진이었다. 하지만 '미안해요'라고 말하며 흐릿한 미소를 짓는 그녀에 아니란 걸 눈치챈다. 자신은 모르는 그녀의 슬픔의 한조각이 보인 듯 했다.

 

 

"어이, 사유라. 이 아가씨가 궁금하다고 한건데. 넌 왜 그 외눈박이가 좋은거냐?"

"제가 언제 그랬어요?"

"사실 궁금하잖아."

"제가 보로스를 좋아하는 이유말인가요?"

 

 

잠깐의 정적이 도는 중에 불쑥 끼어든 이안의 질문. 자신은 말한 적이 없는 말인데도, 정말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얘기한 사신에 유진은 말리려 했다. 허나 이안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으며, 대답을 하려는 듯이 반응을 보인 그녀에 집중하게 된다. 누가 뭐라해도 역시 누군가의 연애이야기는 궁금한게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호기심이었다. 사유라는 기다리는 유진과 이안, 그리고 보로스를 한번씩 보더니 미소를 지어보인다. 아까와는 너무도 비교되는 행복이 물든 미소는 보는 이의 시선을 돌릴 수 없게 만들었다.

 

 

"보로스는 저의 구원자니까요."

"구원자?"

"네. 보로스는 저를 구원해준 소중한 존재에요."

 

 

생각지 못한 대답이었다. 흔한 커플들이 얘기하는 답들과는 엄연히 틀렸다. 구원자란 단어는 그리 쉽게 쓸 수 있는 단어는 아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유진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구원자란 단어를 써야한다면 그만큼의 절망이나 괴로움을 겪고 있었다는 전제가 깔린다. 그리고 눈앞의 행복한 미소를 짓는 여성은 그러한 과거를 가졌다는 뜻이다. 구원을 받았다는 말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슬픔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적어도 그녀 자신에게는...

 

 

"너 설마... 그녀석이 너를 구원해줬다고 사랑하는거냐?"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틀리다고 할 수 있어요."

"호오 그럼 뭔데."

"저는 그와 만나기 전에 제멋대로의 어둠에 깊이 빠져 있었어요. 그리고 죽고 싶었죠. 사라지고 싶었어요."

"...... 그리 좋은 소망은 아니군."

"사신들, 아니 이안씨에겐 그렇죠. 하지만 저는 그것만이 저의 구원이라고 진심으로 믿었어요. 그걸로 편해질 수 있을거라 여겼죠."

 

 

죽고 싶었다. 유진에게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말이었고, 말이다. 이미 산자라고 할 수 없는 처지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는 여전하다. 그날 느꼈던 두려움을 기억하고 있는 유진으로서는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죽어서까지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 과연 무엇일까 하고. 허나 이것까지는 절대로 물을 수 없다.

 

 

"근데 이 녀석이 무언가를 해준거냐?"

"매일 밤 침실에 침입해서 고백하고, 스킨쉽을 했답니다."

 

 

어딘지 밝은 그녀의 목소리에 싸한 공기가 거실을 감쌌다. 이안과 유진은 조용한 외계인을 바라보았고, 주목받은 인물은 조용히 맥주를 들이키고 있을 뿐이다. 거기다 유진은 무의식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아, 스킨쉽이라고 해도 볼을 만지거나 뽀뽀정도였어요."

"아니 그것도 문제라고. 너 진짜 어떻게 살았던거냐? 가끔 나사가 빠진 것 같다고 느꼈지만, 그때도 그랬으면..."

"덕분에 설득하는데 애 먹었었다."

"설득은 무슨. 그냥 세뇌시킨거 아니야?"

"그건 최후의 수단이었다만."

"이거 진짜 위험한 녀석이네. 이런 말을 들어도 식지 않는거야?"

"전혀요. 누가 뭐라해도 보로스는 그 누구보다 절 위해 주는걸요."

 

 

나름의 해명인지 들려온 말에 이안이 따진다. 그 모습에 유진도 속으로 동의한다. 그때 한참만의 입을 연 문제의 인물. 이안이 던진 말에 들려온 대답이 차마 거짓말로 들리지 않아, 집주인 사신과 종속망량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 판단한다. 그에 비해 사유라는 질색하거나 두려움이 전혀 담기지 않은, 오히려 굳건한 믿음과 애정이 담긴 미소를 지어보일 뿐이다. 그게 좋았던 것인지 무표정이던 외계인의 얼굴에 작게 미소가 그려진다.

 

 

"콩깍지가 심하군. 그래서 결국 구원자라서 좋아하게 된거야? 아닌거야?"

"사실 잘 모르겠어요."

"뭐?"

"보로스는 제가 사랑하기 전부터, 저에게 있어 구원자였어요. 비뚤어진 이유였지만. 하지만 적어도 그 이유로 좋아하게 된건 아니에요."

"그럼 지금은 다른 의미로 구원자란거야?"

"네. 그리고 그 구원자가 되기 전에 제 마음은 흔들렸고, 부정했어요. 사랑이 무서웠던 저는..."

 

 

사랑이 무섭다. 유진은 듣지 못한 문장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에 대해서 긍정적인 반응이며, 이미지를 갖고 있다. 물론 세상이 많이 삭막해진 지금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유진은 사랑이 무섭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하물며 눈앞의 여성이 사랑을 무서워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사랑하는 이에 대해 이야기를 한없이 따스한 시선을 지은체 얘기하고 있기에...

 

 

"나도 조금 오래 살았지만, 너 같이 이야기하는 인물은 그리 많이 보지 못했다. 사랑이 무섭다라... 하긴 그 감정은 위험하긴 하지."

"아니요. 그냥 제가 나약했던 거에요. 그래도 보로스가 그런 저를 사랑한다고 해줬고, 기다려줬고, 떠나지 않았어요."

"....... 그리고 그게 너에게 있어 구원이었다?"

"네. 그래서 더욱 사랑하게 되었고, 받아들인 거에요. 이 마음을..."

"본인도 있고, 오늘 처음만난 인물도 있는데 부끄러운 말들을 줄줄이도 말하는구만. 술 먹어서 그런가?"

"취하지 않았어요."

"취한 사람이 더 그러더라."

 

 

나름 진지한 대화는 이안의 놀림에 그친다. 나름 듣는 재미는 있었지만, 뭔가 슬슬 근질근질한 느낌이 들었던 유진으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그렇게 술자리는 이어졌고, 사유라는 술기운에 잠들어버렸다. 유진도 졸음에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잠이 들었다.

 

 

 

 

 

 

***

 

 

 

 

 

 

유진이 다시 눈을 뜬건 새벽이었다. 술 때문에 목이 말랐던 것인지 깨어난 그녀는 느릿느릿 방문으로 향한다. 잡은 문고리가 밤공기로 인해 차가웠다. 생각한 것보다 차가운 금속의 느낌에 부르르 살짝 떨어버린다. 다음 문을 연 순간 유진은 멈춰버린다. 어두울거라 여긴 거실은 달빛으로 은은하게 밝혀져 있었다. 달빛 덕분이었을까, 이제는 꽤나 익숙해진 거실이 신비스럽게 느껴져 왔다. 그리고 그런 공간엔 그에 걸맞는 존재가 있었다. 희미하게 들리는 음악은 알지 못하는 뉴에이지 곡이었다.

 

 

"음악 때문에 깬건가?"

"아니요. 그냥 물이 마시고 싶어서."

"그런가."

 

 

들려온 목소리가 저녁 때와는 틀렸다. 좀더 느리고도 나긋했다.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품에 안겨있는 여성 때문이었을까. 이안은 방안에서 자는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테이블 위엔 20병쯤의 빈캔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아마 두 남자가 늦게까지 술을 비웠으리라. 그중 최소 10캔을 비웠을 남자는 술에 취한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집의 주인인 사산이 자주 앉은 창가에 앉은 그의 품엔 가장 먼저 술에 취했던 여성이 안겨 잠들어 있었다.

 

 

"왜 여기에."

"... 악몽을 꾸었다. 사유라가."

"시와가리씨가?"

 

 

달빛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보로스의 말 때문이었을까. 그녀의 얼굴이 전등 아래에서 보았을 때보다 창백해 보였다.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이마를 살짝 가린 그녀의 앞머리가 미약하게 흔들렸다. 바람이 차가웠던지 작은 신음소리와 함께 잠든 몸이 뒤척였다. 추위를 느끼는 그녀를 따스하게 해주려는 것인지 보로스는 모포를 여며주며 더 가까이 끌어안아준다. 그로인해 흘러내린 앞머리를 정리해주는 그 모습은 한없이 자상하고도 조심스러웠다.

 

 

"계속 그렇게 해왔나요?"

"너도 과보호라고 말하고 싶은거냐."

"저는 성격 꼬인 사신과는 다르거든요. 그만한 사정이 있을거라 생각해요."

"그녀석에게는 아까운 망령이군."

 

 

올라가지 않을 것 같던 입꼬리가 올라갔다. 허나 시선은 여전히 품안의 여성만의 것. 유진은 어딘지 꿈 속과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달빛, 외계인, 잠든 여성. 많이 익숙해진 사신과의 일상과는 다른 눈앞의 광경은 신비스럽다. 눈커풀을 깜빡이면 사라질 듯한 광경이었다. 그럼에도 묻고 싶은게 있었다. 평소라면 쉽사리 꺼내지 않았을 궁금증을 꺼내보인다. 마치 달빛의 마법에 걸린 듯이...

 

 

"보로스씨는 왜 사유라씨를 그렇게 아끼시는거죠?"

"사랑하니까다."

"즉답이네요."

"답해줘도 불평인건가."

"아,아니요."

"화를 낸게 아니니 쩔쩔매지 마라. 너에게 겁을 주면 그녀석이랑 사유라가 화낼테니까."

"이안은 그럴리가 없겠지만. 시와가리씨가요?"

"너는 사유라의 마음에 꽤나 들었으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정말 일말의 망설임과 흔들림이 없는 대답이었다. 남들은 부끄러워서 쉽사리 말하지 못할 말에 괜시리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유진이었다. 그래서 나온 말에 상대방이 화난줄 알았으나 그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생각지 못한 사실을 들었다. 그녀와 자신은 오늘 처음 만났다. 자신이 그녀에게 호감을 줄만한 행동을 한 기억은 없다. 허나 그녀의 남편이 한 말에선 배려의 거짓말로는 들리지 않았다.

 

 

"애매한 표정이군."

"......"

"믿든 말든 네 마음이다. 나는 딱히 관심도 없지만."

"낮에도 말씀하셨는데, 시와가리씨 이외의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으신가요?"

"없다. 한 때는 한명 있었지만, 그녀석에게도 이제는 없다. 그전에 이미 죽었지만."

"왜 그렇게까지 시와가리씨에게..."

"유일하니까다. 사유라는내게 유일한 존재다. 미칠듯이 가지고 싶다고 생각한 존재도, 부서지지 않도록 소중히하고 싶다고 생각한 존재도, 가슴이 찢어질 듯한 아픔을 준 존재도. 오직 사유라만이 내게 없던 감정들을 일깨워주고, 느끼게 해준다."

 

 

자신의 애매한 믿음이 얼굴에 드러났었을까. 그가 한말에 차마 아무런 말도 못하는 유진이다. 살짝 분위기를 바꿔보자고 건낸 질문에 이번에도 상대방은 답해줬다. 달빛에 밝혀지는 푸른 눈동자는 부드러웠고, 푸르게 물들여진 공간에 퍼지는 목소리는 한없이 애틋하고도 자상했다. 순간 유진은 자신이 뭔가 아주 희귀한 장면을 보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이안도 모르는 모습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대화가 길어졌군. 하려던 일이나 해라."

"아, 네."

 

 

보로스의 말에 유진은 정신을 차린다. 분위기에 삼켜져 멍해졌던 머리가 원래대로 돌아온다. 본래 하려던 일을 수행하기 위해 부엌으로 간 유진은 물 한 컵을 마시고 나온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봐버린다. 언제 깨어난 것인지 사유라가 보로스의 목에 팔을 두른체, 둘이 키스하는 모습을... 부부이기에 당연한 모습일지라도, 생각지도 못한 장면이기에 그녀는 급히, 조용히 방안으로 들어간다. 놀라 빨라진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면서 침대에 누운 유진은 묘하게 더운 얼굴을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키스장면을 봐버린 아가씨는 아까보다 더 맑아진 정신으로 자기 위해 조금은 오래 뒤척였다고 한다.

 

 

 

 

 

 

***

 

 

 

 

 

 

 

다음 날 아침. 조금은 잠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일어난 유진이 먼저 본 것은 깔끔해진 거실이었다. 20개의 캔들은 다 사라진 테이블 위에는 잘 구워진 빵들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가 놓여져 있었다. 이안이 준비했을까하고 의아해하는 그녀에게 들려온 목소리.

 

 

"유진씨, 좋은 아침이에요."

".... 아 네. 좋은 아침이요."

"죄송해요. 시간이 더 됐다면 밥으로 준비했을텐데, 저쪽에서 연락이 와서 예정보다 일찍 돌아가게 되었거든요."

"아,아니에요. 손님이신데 오히려 제가 했었어야..."

"맞아. 우리집 가정부가 있는데 굳이 네가 할 필요는 없었어."

 

 

새벽에 보았던 창백함이 없는 사유라의 인사에 유진도 오랜만에 멀쩡한 아침인사를 한다. 오히려 자신이 했었어야할 식사준비를 해준 그녀가 사과함에 미안함을 느낀 유진이었지만, 그 뒤에 들려온 이안의 말이 얄미웠다. 장담컨대 그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을거라고 여긴다. 암튼 4명이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친 후, 손님으로 온 사신 두 명은 왔던 때와 같은 복장으로 현관에 서 있는다. 이안과 유진은 그런 둘을 마중한다.

 

 

"즐겁게 지내고 가요."

"실례했었다."

"외눈박이, 겉치례라지만 기왕이면 좀 더 마음을 담아 말해봐라."

"바랄걸 바래라."

"다음에 언제 또 오실건가요?"

"글쎄요. 본래 다른 두 세계의 존재가 만나는건 그리 좋다고만은 할 수 없어서요. 위쪽에서 언제 명령을 내릴지는 저도 모른답니다."

 

 

묘하게 튀격태격하는 두 남자를 냅두고 여성 둘이서 이야기를 나눈다. 꽤나 갑자기 왔던 그들이었지만, 유진은 아쉬웠다. 하루도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둘에 대한 호감도는 생각보다 높았다. 함께하기 위해 사신의 길을 선택한 둘이 유진은 어딘지 빛나보였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도 사랑하는 둘이 조금은 부러웠다.

 

 

"아 맞다. 저 두분 응원할게요."

"네?"

"넌 또 뭔소리냐. 나사 빠진 사신 아가씨."

"흠- 유진씨는 아직 자각이 없으신 것 같고, 이안씨는... 나름 애쓰시고 계시군요."

 

 

방금과는 이어진다고 볼 수 없는 말에 유진은 고개를 갸웃한다. 이안만이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은 것인지 미간을 조금 좁힌다. 보통은 그런 이안에 대부분의 상대방들은 압도 되었는데, 사유라는 후훗하며 웃는다. 어쩌면 그녀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인물이라 생각한 유진은 보로스가 말없이 문을 여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그 너머의 광경에 절로 입이 벌어진다. 거기엔 언제나의 통로가 아닌 번화가의 모습이 있었다. 또한 언젠가 영화로 나왔었던 고질라와 똑닮은 커다란 공룡이 날뛰는 모습까지...

 

 

"너희 쪽 세계도 참 난리가 아니구만."

"언제나의 일이죠. 그럼 두분 다음에 또 뵈요."

"조,조심히 가세요."

"힘내봐라. 골초."

"네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한다. 외눈박이."

 

 

문 너머에서 괴물과 싸우는 몇명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중에 사유라들을 발견한 것인지,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까지... 보로스를 보고 꽤나 SF적인 세계라고 예상은 했지만, 상상보다 더한 광경에 유진은 그저 안녕을 빌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안은 보로스의 말에 지지 않는다. 이제는 그것이 그들의 나름 친하기에 가능한 대화라 여기는 망령 아가씨다. 그렇게 둘은 문너머로 가버렸고, 문은 닫힌다. 조용해진 현관에서 잠시 있는 둘. 유진은 조심히 문을 다시 한번 열어본다. 거기엔 언제나의 통로가 있었다.

 

 

"방금건 뭐죠?"

"특수한 사이즈를 이용한 차원 이동."

"사이즈는 가끔 너무 만능으로 보여요."

"만능이 아니거든. 필요하기에 추가한 시스템인거야."

 

 

자신의 질문에 언제나와 같이 부족한 설명을 하는 이안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이해한 유진이었다. 쭈욱 기지개를 피며 터벅터벅 거실로 향하는 이안을 따라 들어간다. 들어선 거실은 분명 언제나랑 같을텐데도 뭔가 허전했다. 겨우 하루도 안되는 시간, 거기다 소란스럽다보다는 얌전했던 두 손님이 돌아간 거실은 넓게 느껴졌다.

 

 

"둘이 간 게 아쉽냐?"

"... 조금은요."

"언젠가 올거야."

"언제일지 모르잖아요."

"그래도 꼭 만나게 될거다. 네가 계속 내 종속망령으로 있으면."

"그럼 제가 10년 이상을 이안씨랑 지낼거란 말인가요?"

"생각보다 가능성이 있다고 느끼는데... 나는 나름 우리 둘이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런고로 맥주 좀 다시 채워줘~"

"마시고 싶으면 본인이 사오세요!"

 

 

아쉬워하는 자신을 달래는가 싶더니 결국 심부름을 시키는 이안에 유진은 속으로 씩씩거린다. 허나 다시 생각해보니 그게 그 나름의 기운을 차리게 해준거라 알아차린다. 외출 준비를 나서면서 한번 상상해본다. 10년 뒤에 자신과 이안을... 사실 상상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10년 후에 다른 세계의 사신 둘을 다시 만난다면, 그 둘은 그대로일 것 같았다. 그 모습만은 묘하게 선명하게 상상이 되어서, 작게 웃으면서 유진은 현관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