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펀맨/일상

보로사유 - 그녀의 미소, 그의 눈물

サユラ (사유라) 2016. 2. 9. 15:21












잿빛으로 물들여진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얀 알갱이들, 눈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하늘하늘 흩날린다. 그 눈을 방안 작은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보로스는 왜인지 불만어린 시선이었다. 아마 그 이유는 같이 잠을 잤을터인 자신의 여성이 곁에 없는 것이 원인일 것이다.



"추운데 또 보러 간건가.."



혼잣말을 중얼거린 그는 방에서 벗어나 어디론가로 향한다. 1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며 그는 떠올린다. 하늘이나 작은 꽃, 사람이 없는 길의 끝, 어디선가 날라온 풀잎 한장, 비어버린 유리컵 등등.. 사소한 여러가지에 시선을 멈추어 한없이 바라보던 그녀의 모습을... 자신과 연인이 되기 전, 마음 속 슬픔을 털어 놓기 전에 그것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엔 슬픔이 섞여있었다. 허나 그것은 금방 감추어져 순수함과 공허함이 공존하게 되었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지켜보거나, 방해를 하는거지만..'



그녀, 사유라는 한때 죽음을 원했었다. 사실 보로스가 죽음을 원하던 사람들을 본 적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자들이 죽음을 원했던 것은 절망적인 자신의 상황을 도망치기 위해서이거나, 수많은 자신의 종족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려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자들과 틀린 이유에서였다.. 과거에 대해 전부 알려준 것은 아니지만, 과거 어떠한 일들로 그녀는 스스로에 대한 애정을 잊어버린체 절망하여 죽음이란 것으로 해방을 얻고자 했던 것이다. 이기적인 도망으로 말이다.. 허나 그것은 자신과 연인이 되어, 두려워하던 사랑을 받아들이며 사유라는 바뀌었다. 적어도 죽음을 바라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연브라운색의 눈동자에서 이따금 자신에게 알려주지 않은 슬픔이 남아있어, 보로스는 불안하다.



"우습군. 부하 녀석들이 이런 날 보면 웃을지도 모르겠군."



아무런 힘도 없고, 도적단의 최하위 단원 하나 조차 이기지도 못했을.. 단 한명의 여성으로 인해 불안함을 느끼는 '전'우주의 패자의 모습에 보로스는 스스로도 웃음이 나왔다. 많이 바뀐 자신의 모습에 죽었을거라 추측되는 부하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너무도 뻔했다. 허나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이제 보로스, 자신에게 있어 소중한 것이자 유일하게 집착하는 존재는 사유라.. 그녀 뿐이기에.. 다른 것은 어찌되든 상관없을 정도로, 마치 미친 것처럼 오직 그녀만이 그의 중심이 되어버린 것이다.



"20년의 지루한 항해의 보답치고는 너무도 훌륭한 것이지."



지겹고도 길고도 길었던 20년의 항해. 지루한 삶의 자극을 원해 강자를 만나기 위해 견딘 20년.. 대등한 싸움을 할 수 없었지만 전력을 다했기에 후회가 없고도 오히려 만족스러웠던 싸움이었다. 그것만으로 20년의 댓가로는, 죽음의 댓가로는 충분했었다. 그렇기에 보로스는 죽으려 했었다. 살아날 수 있는데도 그는 죽음을 택하려 했었다. 허나 그녀와의 만남으로 만족을 얻어버린 패배자는 처음으로 삶을 원하게 되었고, 사랑을 가지게 되어 행복을 알아버렸다. 그리고 평생 누군가에게 배운 적도, 가진 적도 없던 욕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단하나의 사랑을 바친 존재와 함께 오래도록 행복히 살고 싶다는 욕심을....



'그저 정복과 약탈, 부수는 것만을 하던 내게 이런 감정이나 욕심이 생길 줄은 몰랐었다. 아니, 생각조차도 안 했었지..'



흥미도, 관심도 없던 감정을 가지게 해준 그녀를 찾아 거실로 가니 딱하고 그녀의 모습이 보여옴에 보로스는 내심 안심한다. 소중한 존재가 시야안에 들어오는 것에 안심을 느낀다. 사유라와 만나기 전까지 느낀 적 없는 감정 중에 하나를 느끼며 보로스는 그녀에게 다가간다. 



"사유라."

"...."



언제나와 같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보로스에, 사유라는 바라보던 눈과 하늘에서 시선을 떼어 고개를 돌린다. 보로스는 언제나의 무표정이거나 살짝 놀란 표정, 아니면 옅은 미소가 보일거라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보여온 것은 지워지지 않는 슬픔을 감추는 미소가 아닌, 부드럽고도 그저 기쁨에 짓는 미소였다. 생각하지도 못한 미소에 그가 그녀의 앞에까지 다가간체 멈춘체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그런 보로스를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은체 사유라는 팔을 위로 뻗어 고개를 숙여달라는 제스처를 보인다. 그것에 보로스는 마치 홀린듯이 자연스레 허리와 고개를 숙이는데..



"....."

"....."



사유라는 자신에게 가까워진 보로스의 양볼을 양손으로 감싸더니 뒷꿈치를 들어 입술에 살포시 입맞춤한다. 짧은 입맞춤이더라도 보로스는 그녀의 입술이 평소보다 살짝 체온이 낮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볼을 감싸는 손도 차갑지는 않지만 조금은 서늘한 것도.. 하지만 곧 입술을 떼어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따스하다고 보로스는 생각했다. 그때..



"당신과 만나 다행이에요.."

"..!!!"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보여온 것은 사유라의 환한 미소.. 많은 미소를 봐왔던 보로스도 처음 보는 너무도 환하고도 부드러운 미소였다.. 그 안에는 그녀가 품고있을 어둠도, 슬픔도, 고민도 없었다. 한때 죽음을 바라던, 괴로워하던, 울며 애원하던 그녀가 아닌듯이.. 스스로가 살아있음에 괴로워하던 그녀가 없었다... 그리고 눈부신 미소는 오직 자신만을 향한체, 행복에 물들어 있었다. 



"........."

"보로스.."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마지막 사랑일 존재가 자신으로 인해 진정으로 행복에 웃는 모습에 보로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것은 벅찬 기쁨과 안도감에 의한 눈물이었다. 사유라가 죽고싶어하던 것을 그만두게 되었어도, 보로스에게는 불안감이 남아있었다. 그녀에게는 여전히 흐릿함이 존재했기에, 그래서 더욱 집착하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긴 시간의 끝에 손에 넣은 유일한 사랑이, 그녀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공포가 그의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렇기에 보로스는 사유라의 미소에 눈물을 흘린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에 그녀는 놀란듯 바라보다가 뭔가를 알아차린 것인지 다시 미소를 띄운다.



"보로스.. 보로스.."

"......"



여전히 보로스의 양볼을 두손으로 감싼체 사유라는 흩날리는 눈들보다 더욱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른다.. 연브라운색의 두 눈동자는 하나뿐인 커다란 푸른 눈동자를 흔들림없이 바라본다. 



"저는 여기있고, 이제는 죽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

"저는 살아있어 다행이다..라고 생각해요.. 당신을 만나 저는 살아있음의 기쁨을 느껴요.."

"......"



보로스는 그녀의 나긋한 목소리에 온기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낀다. 숨결도 아닌 목소리가 따스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 따스함은 그의 가슴을 채워갔다. 그에게 따스함을 주는 그녀는 다시 발꿈치를 들어 키스한다. 아까보다 더 오래 사랑하는 존재의 입술에 머문다.. 이윽고 떨어진 두 존재의 입술.. 다시 그녀가 입을 연다.



"전부 당신 덕분이에요.. 사랑하는 당신 덕분이에요.."

"......."

"고마워요.. 제게 이런 기쁨과 행복을 줘서.. 느낄 수 있도록 해줘서..."

"......"

"욕심을 부릴게요.. 당신의 곁에서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어요.."

"......"

"당신과 만나 정말 다행이에요.. "

"......."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보로스... "

"......."



다시 그녀의 미소.. 사유라의 미소에 보로스는 생각한다. 만약 신이란게 있어 그녀와 만날 운명을 주었다면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대신할 수도 없는... 유일한 존재를 만나게 해주어 사랑과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주어 감사하다고...



"사유라.."

"....."



보로스는 계속 움직이지 않던 팔을 뻗어 사랑스런 연인을 끌어안았다. 가녀리고 연약한 몸이 품안으로 쏙 들어왔다.. 그리고 평소보다 옅지만 느껴지는 온기에 가슴이 떨리는 것을 느낀다.. 가슴이 아릴정도 그녀가 사랑스러웠다.



"사유라.. 사유라.."

"....."

"나도 고맙다.. 내가 사랑을 가질 수 있게 해주어, 내가 널 사랑할 수 있도록 해줘서.."

"....."

"너를 만나 생각하지도 않던 따스한 시간과 행복을 알게 되었다.."

"....."

"너의 온기에, 목소리에, 미소에 나는 눈물을 흘렸다.. 존재하지도 않을거라 여긴 눈물을.."

"....."

"나도 너와 만나 다행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유라.. "



살짝 떨림이 담긴 그의 목소리.. 그 목소리와 몸을 감싸는 커다란 품과 사람과는 다른 온기에 사유라는 웃는다. 모든 것을 얻은 듯이 행복하게.. 

이미 새하얗게 물든 세상 속에서 둘은 다시 서로의 입술을 포갠다. 조용한 세상 속에서 둘은 사랑하는 존재의 온기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