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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로사유 - 1000일을 행복하며.

サユラ (사유라) 2018. 9. 17. 03:36

원펀맨의 >보로스< 드림글입니다

* 오리주(드림주)/오너이입有

* 캐릭에 대한 개인적인 성격파악이나 구성된 부분이 있어 원작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일어났다는 자각도, 정신이 꿈에서 현실로 돌아왔다는 인식도 하지 못한채 사유라는 눈을 떴다. 투명한 눈동자에 들어온 풍경은 익숙한 방의 한 구석. 자신이 누구인지 떠오르기도 전에 손을 움직여 본다. 그러자 느껴져온 시트의 부드러움은 언제나라면 좋았을 거다. 허나 어째서인지 가슴 안 쪽이 긁히는 감각이 들었다. 그게 어떠한 감정에 따른 감각인지 떠올린건 꿈의 한 조각을 떠올린 후다.



 "보로스?"



 여전히 흐릿한 의식 속에서도 입에서 흘러나온 누군가의 이름. 꿈의 잔재를 털어버리듯이, 어딘지 메달리는 듯한 목소리로 그녀는 누군가를 찾는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 꼭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에 가까울 정도로 눈을 뜨면 곁에 있던 존재의 부재는 예전에는 없던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아니, 가지고 있었지만, 같은 감정인데도 다른 감정과도 같이 다가왔다. 

 연갈색을 띤 눈동자가 눈커풀에 천천히 가려졌다가 모습을 드러낸다. 사라락하고 시트가 무언가에 쓸리는, 스치는 소리가 희미하게 울린다. 이어 끼익하고 침대의 스프링이 일순 쏠린 무게를 알린다. 다음은... 아무런 소리도 방에 울리지 않는다. 정적이 방을 맴돌아 그 자체가 소리라고 할 수 있는 느낌이 된다.



 "......."



 침대의 가장자리에 걸터 앉은 채, 사유라는 침묵을 두른다. 아래를 향해 숙인 고개, 그에 맞추어 시선도 아래를 향했다. 자신의 무릎이나 바닥을 볼거라 여긴 눈동자는 무엇에도 초점을 잡고 있지 않았다. 

 누군가, 시와가리 사유라란 사람을 아는 존재라면 모를 모습. 어쩌면 누군가는 어슴프레 알았을지도 모를 모습. 허나 어느쪽도 그녀를 구해내지 못한다. 유일하게 가장 구원에 가까움의 손길을 줄 수 있는 존재도 곁에 없었다. 

 그렇기에 사유라는... 홀로이기에 잔재를 꺼낸 것이다. 완벽하게 버리지 못한, 이겨내지 못하여 생긴 잔재를 꺼내어 그녀는 들여다 본다. 살아있는 한 답변이 없을 질문을 다시 떠올린다. 살아있는 누군가들이 답해줄 수 없는 질문을...



 "나아지지 않았나 보네."



 얼만큼의 침묵을 지켰을까. 겨우 작은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엔 웃음기가 담겨있었다. 조소어린 그 목소리로 중얼거린 사유라는 미소까지 지어보인다. 오랜만이란 감상이 그녀의 안에 퍼졌다. 

 꼬옥, 무엇 하나 쥐지 못한 두 손이 서로를 잡는다. 꾸우욱, 잡는다에서 힘을 더해 서로를 강하게 짓누른다. 눌린 부분과 마디들은 하얗게 변하고, 그 주위는 짙은 붉은색을 띠게 된다. 너무도 강하게 쥔 손을 누군가가 본다면 말렸을 거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주위엔 누구도 없었다. 아픔을 호소할 손엔 누군가의 손길 하나 닿지 못한다. 

 '추워.'

 입밖으로 꺼내지 않은 감상. 사유라는 강하게 쥔 자신의 손끝이 차갑게 느껴졌다. 여름이 지난지 얼마되지 않았을 터인데, 그녀는 몸 곳곳이 차가워 추위를 느낀다. 몸 안에 따뜻한 피가 흐르는걸, 심장이 뛰고 있음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똑똑.]


 더욱 깊은 과거에 잠기려던 순간 들려온 소리. 나무로 된 문에 누군가가 무언가로 가볍게 두드린 소리. 그것이 노크소리임을 인식한 사유라는 노크의 주인도 누구인지 알았다. 다만 약간의 위화감이 들었다. 그라면 평소 노크는 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럼에도 '그' 말고는 떠올리지 않은 그녀다. 오직 그이기를 바랬다. 

 끼익, 다시 침대의 스프링이 제 할일을 했다는 울음소리를 방의 주인은 흘러 들은 채 걸어간다. 무엇도 신지 않은 맨발에 닿는 바닥의 감촉은 제법 부드럽다. 전 주인이 어디서 구한 것인지 모르나 매끄러움보단 묘하게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지는 바닥을 깔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갑지 않다고 할 수 없었다. 걸으며 마지막 발가락 끝에서 떨어지는 바닥의 감촉이 이상하리만치 차가움으로 다가왔다. 그 감각이 거슬린 추위를 호소하는 여성이다.



 "보로스...?"



 달칵, 끼익. 익숙해진 문고릴 잡아 연 사유라는 찾던 이의 이름을 부른다. 노골적인 기대와 미미한 두려움을 담은 목소리를 본인은 애써 모른척 하며... 하지만 문을 연 그곳에는 누구도 없었다. 일순 연갈색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의아함보다 실망감이 그녀의 가슴을 긁어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뒤를 살펴보는 그녀. 사실 그의 체격을 생각하면 문뒤에 숨는게 살짝 힘들어 바로 보였을 거다. 그럼에도 있을지 모른다는 마음에 슬쩍 본다. 하지만 찾는 이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한다. 대신 다른 무언가를 발견한다. 

 문앞에 있었는데, 열 때 밀려간 것인지 문에 딱 붙어있는 작디작은 꽃다발. 아니, 꽃다발은 아니었다. 그렇게 보일만큼 가지하나에 꽃들이 여러송이 피어있던 거다. 사유라는 조심히 꽃을 들어 제 손 위에 올린다. 작은 꽃은 붉은색을 지녔다. 그러면서도 가운데로 갈수록 흰색으로 바뀌고 있다.



 "무슨 꽃이지?"



 기억에 없는 꽃. 아마 본적도 없으리라. 사유라는 나름 열심히 자신의 기억 속을 뒤져보지만, 역시나 떠오르지 않는다. 살짝 고개를 숙이며, 꽃을 든 손을 올리며 숨을 들이킨다. 그러자 맡아지는 향은 그녀에게 익숙하고도 낯설다. 희미한 달콤함, 꽃잎에서 나는 특유의 향. 싫지 않았다. 사유라는 제 손에 올려진 작은 꽃다발을 연상케하는 꽃이 마음에 들었다. 

 꽃을 준비했을 인물을 떠올리며 그녀는 발을 움직인다. 발은 계단 앞에서 멈춘다. 거기엔 하얀색의 꽃이 놓여 있었다. 제법 굵은 줄기에 세 송이 정도의 꽃이 달려있었다. 꽃잎은 생각보다 넑고, 마치 프릴을 떠올리도록 얇고도 부드러웠다. 사뿐히 주워 손에 올리니 은은한 향이 코끝에 닿았다. 그 향에 절로 입꼬리를 올린 사유라는 조심히 꽃을 품고 계단을 내려간다. 



 "해바라기."



 계단을 내려오자 보인 커다랗고도 노란색의 꽃은 사유라가 알고 있는 꽃이었다. 여름하면 떠올리는 요소중 하나로 꼽힐만큼 대중들에게 익숙하고도 나름 유명한 꽃. 허나 여름은 이미 지났다. 이제는 가을이란 계절이다. 그럼에도 눈앞에 놓인 꽃엔 시들어졌거나 그 조짐조차 없었다. 오히려 생기가 돌아 그 노란색을 자랑스럽게 자랑하는 것만 같았다. 

 꽃의 이름을 중얼거린 사유라는 아무말 없이 꽃을 든다. 어떻게 구한 것인지는 모르나 그녀의 키만큼 커다란 해바라기는 그 품에 안긴다. 저벅저벅, 세번째의 꽃을 안고 사유라는 거실로 향한다. 해바라기의 크지는 않지만 작은 노란색의 꽃잎들이 그녀의 발걸음에 맞추어 흔들렸다.


 거실에 도착한 사유라. 두리번 두리번, 이번에도 꽃이 있을까 하며 살펴본다. 그리고 곧 거실의 탁상 위에 있는 꽃송이들을 발견한다. 얼핏보아도 붉은색으로 가득한 꽃들에 미미한 기대감을 가지고 다가간다. 

 가까이 다가가니 꽃만이 있는게 아니었다. 꽃 두 송이와 가지 채 딴 작은 열매. 그 세가지는 모두 붉은색으로 물들여져 있었다. 마치 의도적으로 색까지 맞춘 듯한 모습에 작게 미소지은 사유라는 이번에도 이름을 아는 꽃들을 바라본다. 

 장미와 튤립. 흔히 보며, 흔히 선물도 하는 꽃. 또한 그 꽃말과 그에 따른 쓰임새도 그녀는 알고 있다. 비록 옆에 있는 붉은 과실의 뜻은 모르겠으나 두 송이의 꽃과 별 다르지 않은 꽃말을 지녔을거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꽃들의 꽃말과 이들을 준비한 인물의 성격이나 의도를 생각하면 당연한 결론이다. 



 "보로스, 슬슬 나오세요."



 나긋한 음성으로 찾던 인물이자 지금의 이벤트를 준비한 인물을 부른다. 허나 인물의 목소리 대신 똑똑하고 또 다시 노크소리가 답변을 한다. 탁상 위의 꽃들도 안은 그녀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곧 정원에 연결된 창문 쪽임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투명한 유리창이 아니었다. 비친 것은 하얀색의 커튼 뿐. 바로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을거라 여겼던 사유라는 또 실망감과 허전함을 느낀다. 눈을 떴을 때, 문을 열었을 때의 느낀 감정이 다시 가슴 속을 긁어냈다. 그 감각이 너무도 싫어 그녀치고는 커튼을 강하게 제낀다. 그리고 보여온 풍경에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

 "마음에 드나? 사유라."

 "이게 무슨..."

 "전부 너에게 바치는 꽃이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서 사유라의 귓가에 닿은 목소리. 곧 그 목소리가 자신이 찾던 인물의 것임을 안 그녀였지만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렇게도 보고싶던 자인데도 연갈색의 눈동자는 밑기지 않는 풍경에 고정된 채다. 작은 입만이 질문에 답한다. 그러자 목소리의 주인은 부드럽지만 의기양양한 톤으로 알려준다. 정원을 채워넣은 꽃들의 정체를...

 사유라는 보로스의 대답에 무어라 반응하지 못한다. 그도 그럴게 그가 말한 전부란 꽃의 양은 어마어마 했기 때문이다. 본래의 정원의 모습을 떠올리지 못하게 할만큼 가득 채운 꽃들. 하얀색, 붉은색, 노란색, 푸른색, 분홍색등 색색의 꽃들이 조화롭게 이루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그 크기나 모양도 다양했고, 그 다양함만큼 아름다움이 가득했다.

 꽃을 받은 그녀는 자신의 시야를 가득 채운 꽃들의 색에 눈을 감을 수 없었다. 또한 코끝에 닿다 못해 몸 주위를 맴도는 꽃의 향해 취해버릴 것만 같았다. 꽃집에 갔어도, 어릴적 갔던 놀이동산의 꽃이 가득한 테마파크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감각. 그리고 그에 이끌려 부풀어 오르는 감정에 결국 사유라는 눈을 감아버린다.



 "예상했지만 또 우는군."

 "어쩔 수 없어요."



 어두운 시야속에서 몸을 감싸는 무언가를 느낀 사유라. 곧 따스함이 느껴지며 들려온 목소리에 작게 웃는다. 눈가에 흐르는 물방울의 존재를 신경쓰지 않고 말이다. 허나 자신의 품에 있던 꽃들이 떠올라 눈을 뜬다. 다행스럽게도 자신도, 그도 강하게 끌어안지 않아 꽃들은 무사했다. 안도의 숨을 내쉬자, 푸른색이 시야에 들어오더니 눈가를 부드럽게 쓸어준다. 



 "안다. 그리고 이 눈물에 나는 기쁘다."

 "왜 우는지 아시나요?"

 "물론. 나는 너만 바라보니까."



절로 고개를 들자 시야에 들어온 분홍색과 푸른색. 그 두가지는 꽃들과 다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그 두가지 색을 지닌 존재가 기쁘다고 했다. 알고 있다고 했다. 그 말에 사유라는 묻는다. 예전과 달리 얼버무리기 위함이 아닌 질문인 걸 알았을까. 두 색의 주인이자 그녀의 연인은 당당함을 담은 목소리로 답하며 미소를 짓는다.



 "기쁘고도 미안한 거겠지."

 "맞아요. 정말로 기쁜데, 한편으로는 죄송해요."

 "괜찮다. 그럼에도 너는 이렇게 내 곁에 있고, 웃어주고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채 준 그에 사유라는 솔직하게 얘기한다. 가슴을 부풀리고 짓누르는 각각의 감정을 담아 미소를 짓는다. 사과하는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며 괜찮다고 해주는 연인. 쭈욱 같은 대답 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어떠한 자신이라도 괜찮다고 해준 그. 무너져도 자신을 놓지 않아준 그에 사유라는 코끝이 살짝 찡해진다. 동시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감각이 떠오르고, 그걸 따라 질문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나아지지 않았어도요?"

 "너는 그렇게 생각하나?"

 "........"



 질문에 질문으로 답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대부분 확실한 답을 해줬었다. 헌데 지금 그는 평소와 다르게 반응했다. 그렇다해도 사유라는 딱히 놀라거나 당혹스럽지 않았다. 그 자체가 이미 대답이나 마찬가지이기에. 

 툭, 이마를 그의 가슴에 기댄 사유라. 천천히 눈을 감더니 가만히 있는다. 방에서 있을 무렵 추위를 호소하던 몸은 더 이상 춥지 않았다. 무언가로 가슴이 흘러넘쳐 무너질 것만 같던 감각도 잠잠해졌다. 그저 한 존재로 인해 자신이 진정되었다는 현실이 꿈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아주 조금 나아진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 더 나아질 거다."

 "얼만큼 시간이 걸릴까요."

 "글쎄. 다만 나는 언제까지고 너의 곁에 있을 거다. 설령 낫지 않아도, 네가 무너져 내려도."



 변함이 없다. 그에 대해 사유라는 속으로 웃으며 생각한다. 처음 만난 날, 연인이 되기 전, 연인이 된 후, 눈이 내린 날, 생일 등... 아직 자신들은 만난지 오래라고 할 수 없는 시간들을 지냈다. 그럼에도 왜인지 여러 기념일들이나 해프닝들이 있었다는 감상이 든다. 사실은 짧은 축에 드는 시간을 지냈 것인데도 말이다. 

 그의 인생에서도, 자신의 인생에서도 길지 않은 시간일 거다. 사유라는 그렇게 확신하며 지난 날들을 돌이켜 본다. 행복한 일들만 있었다... 라고 할 수 없다.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살아있는 한 완벽한 천국이나 행복만 있는 나날들은 있을 수 없기에. 어리숙한 어른인 그녀라도 알고 있는 현실의 진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보로스."

 "응."

 "보로스."

 "응."

 "보로스."

 "아아."



 어리광인듯 아니면 절실함인듯한,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는 목소리로 사유라는 연인의 이름을 부른다. 보로스는 부름 하나하나마다 전부 답한다. 그는 자신의 부름이 이어지는 와중에 조심히 그녀를 안은 팔을 움직여 안아 올린다. 사유라는 그 움직임에 저항없이 그저 유일한 자의 이름을 부른다. 이윽고 둘의 눈높이가 비슷해진다. 라고 해도 사실 꽤 차이가 있다. 보로스의 입술이 고개를 숙이지 않고 그녀의 이마에 입맞춤 할 수 있는 정도의 차이. 그래서일까, 아니면 습관인지 연인의 머리에 눈을 감고 얼굴을 살풋 묻는다. 



 "벌써 1000일이네요."

 "나는 이제야 1000일이라 생각한다만."

 "아아, 역시 보로스는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당연하지. 너와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으니까."

 


 그의 언제나의 스킨쉽이 신호였을까. 사유라는 부름이 아닌 말을 꺼낸다. 그것은 감상이자 미약한 감탄. 그리고 보로스는 그녀의 감상과는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얘기한다. 너무도 그다운 감상에 그녀는 후후 하고 웃어버린다. 그 감상 또한 말하자 들려온 부끄러움없는 연인의 말. 몇 번이고 들은 그의 소망에 일순 미소가 지워졌던 사유라. 허나 곧 미소가 돌아온다. 아직도 버리지 못한 흐릿한 미소로 말이다.



 "저는 아직 그 소망에 맞춰드릴 수 없어요. 함께 바랄 수는 없어요."

 "괜찮다. 그렇게 만드는게 내가 해야할 일이니까."

 "......"

 "내가 노력하마. 네가 좀 더 웃도록, 행복하도록. 그리고 나와 조금이라도 오래 함께 하고 싶도록 내가 노력하마."

 "......"

 "만약... 네가 나아지지 않아도, 아까 말했다시피 함께 하마. 함께 숨도 멈추마. 널 혼자 두지 않고, 나도 혼자가 되지 않으마."

 "......"

 "그러니 사유라. 너는 조금씩 편안하게 숨을 쉬고, 편안히 웃어가면 된다. 아주 조금씩 나아지며, 욕심을 내면 된다."

 "...!!"



 비겁하다. 사유라는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자신은 그의 소망을 반드시 이뤄주겠다는 약속을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개의치 않는다. 무어라 불평하거나 몰아붙여도 반박하지 못할 자신에게 그는 너무도 상냥하고도 달콤한 말을 속삭인다. 어찌보면 무거운 맹새이며, 조금 더 파고들면 협박이다.

 악마의 속삭임도 이렇게 심장을 유혹하고 옭매게 할까. 용서가 내리면 안되는 죄를 용서하게 만드는걸까. 나태하게 만들까. 욕심을 만들게 만들까.

 한 때 지배자였기 때문일까. 그는 교묘하게 도망칠 길을 막아내고, 달콤한 보상을 내보인다. 보로스는 알까. 소리내지 못한 중얼거림과 함께 사유라는 생각한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외계인의 의도를, 계획을. 그것은 맹목적인 사랑이며, 동시에 서로만을 위한 단절된 세계였다. 본인은 모를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녀에게는 그렇게도 보였다. 그럼에도 사유라는...



 "저는 그 말씀에 동의도, 노력하겠다는 말은 못해요. 아직 나은 부분은 작으니까."

 "....."

 "그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에요."

 "......"

 "나약한 제가 당신에게 거짓없이 전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에요."



 솔직하도록, 거짓이 없도록. 그렇게 답하자고 사유라는 다짐한다. 그는 유일한 존재이기에. 본래의 자신을 바라봐주고, 끌어 안아주고, 속박한다. 누구 하나 다가오지 못한 구역까지 침투한 정복자이자 구원자.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은 아프고도 다정한 말들을 속삭여주는 존재. 사랑을 포기한 자신에게 눈길을 돌릴 수 없도록 커다란 사랑을 주는 유일한 자. 누구도 해내지 못한 내일을 보고 싶다는 마음을 들도록 만든 소중한 연인.



 "사랑해요.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요."

 "나도 사랑한다. 진심으로, 내 전부를 바쳐..."

 "1000일을 함께 해줘서 고마워요."

 "1000일을 살아줘서 고맙다."



 무엇 하나 거짓이 없는 진심을 서로에게 속삭인 둘. 그리고 자연스레 눈을 떠 고개를 움직여 서로를 바라본다. 연갈색과 푸른색이 서로를 비치고 비쳐진다. 그 뒤는 언제나와 다름없는 부드러운 입맞춤. 상대방이 상처입지 않도록, 흔들리지 않도록 부드럽고도 깊은 키스를 나눈다. 

 품 안의 꽃과 정원을 채운 꽃의 향이 둘을 감싼다. 바람이 불어 몇몇 꽃잎들이 휘날려 나부낀다. 분명 동네의 중간에 자리잡은 평범한 주택일 텐데도 그들만이, 그 공간만이 단절된 것만 같았다. 아무도 끼어들 수도, 방해할 수도 없는 그러한 세계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곳은 분명히 아름답고도 달콤한 세계다. 하지만 그 속에 숨겨진 속박, 도망, 소유욕, 욕망, 나태가 존재했다. 허나 그 누가 알까. 본인들조차 알아도 눈을 돌린 그 사실들을... 



 "보로스..."

 "응?"

 "꽃은 고마운데 정확히 몇 송이인가요?"

 "최소 10,000이란 숫자는 넘었을 거다."

 "...... 오늘은 1000일인데요?"

 "너에게 바칠 꽃이라면 최소 이정도는 되어야지. 거기다..."

 "...?"

 "겨우 1000송이론 너를 향한 사랑을 표현하는데 턱없이 부족하니까."

 "그럼 표현할려면 어느 정도 되어야 하나요?"

 


 입술을 뗀 사유라가 궁금했던 부분에 대해 묻는다. 보로스는 움직이는 작은 입술에 또 키스하고 싶음을 참으며 답한다. 들려온 숫자에 일순 가격에 대해 묻고 싶음을 참아낸 그녀는 살짝 돌려 왜 그만한 숫자인지에 대해 묻는다. 그리고 들려온 대답들은 전부 그다웠다. 자신과 관련되면 스케일이 달라지는 그다운 답변이었다. 제법 익숙해진 패턴이기에 한 번 약간의 장난으로, 호기심에 사유라는 묻는다. 허나 어느 의미로 바보같은 질문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들려올 대답은 너무도 뻔하고도 스케일이 클테니까.



 "세계를 꽃으로 가득 채워도 부족할 거다."

 "...... 그러면 부족한게 맞네요. 만송이로는..."

 "그렇지. 부족하고 부족해서 답답할 정도지."

 "그래도 제겐 충분해요."

 


 호쾌하다고 할까, 터무니 없달까, 과장이라고 할까. 어느것도 맞는 표현이 아니다. 그저 그의 진심이었다. 보로스란 존재는 언제나 사유라에 대해 그래왔다. 모든 것을 쏟아부어 주고 싶다는 느낌. 그렇기에 악몽과 죄책감, 슬픔, 미움에 짓눌려 살던 한 존재가 미약한 구원을 받아낸 거다.

 포옥, 사유라의 머리가 그의 목과 어깨 사이에 기댄다. 안도감, 기쁨, 행복에 지친 몸과 정신이 노곤해진다. 차가웠던 손끝은 이제 따스했다. 심장은 제법 편안하게 뛰고 있었다. 꿈의 잔재는 다시 수면 아래로 잠겨감을 사유라는 알 수 있었다. 



 "아침은 먹지 않을 건가?"

 "늦잠이 자고 싶어요."

 "같이 잘까?"

 "응..."



 자신의 질문에 어리광이 가득한 목소리로 답하는 연인에 보로스는 미소가 지워지지 않는다.이미 사유라의 호흡이나 고동이 잠들기 직전의 상태로 변함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무어라 해도 가장 가까이서 봐왔기에. 최대한 조심히 몸을 돌리는 도중 그의 귓가에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너무도 작으며, 잠결에 잠겨가는 목소리였다.



 "오늘 너무 행복해요. 1000일을 더 살고 싶어질 만큼."

 "사유라..."



 들려온 말에 어찌할 수 없는 감정에 이끌려 보로스는 연인의 이름을 부른다. 허나 답변은 들려오지 않았다. 들리는건 작은 숨소리, 잔잔한 바람소리, 그리고 꽃잎들이 서로 스치는 소리. 어떠한 소음도 없는 잔잔한 세계. 그 세계에서 보로스는 아주 조금, 정말 아주 자그마한 힘을 더해 그녀를 안은 팔에 힘을 준다. 분명 미소임에도 어딘지 바스러질 것만 같은 미소를 그는 짓는다. 그리고 미소와 비슷할 정도로 바스러질 듯하고도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 고맙다."



 그 후, 보로스는 잠든 연인을 안은 채 집안으로 들어간다. 드륵 탁, 정원으로 향하는 창문이 닫힌다. 정원은 누구도 있지 않게 된다. 그저 꽃들만이 그 자리를 채워 정원을 지킨다. 바람에 흔들리며, 아찔할 정도의 향과 색으로 둘의 세계를 채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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