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작/장기합작 시즌 2

[장기합작 시즌2 - 4분기] 토토사유

サユラ (사유라) 2019. 12. 31. 00:29

드림 [ 장기합작 시즌2 4분기]에 참여한 카미아소(신들의 악희)의 >토트 카도케우스< 드림글입니다

* 오리주(드림주)/오너이입有

* 원래의 표기와 발음은 "토트"이지만 오너에겐 "토토"로 굳어져 글에서는 토토라 적습니다

* 드림주와 최애는 연인이 아닙니다.

*드림주, 등장인물의 사고나 성격이 과도하게 어둡고도 부정적입니다. 이러한 성격이 거북하신 분은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어느 분에게는 ‘트리거워닝‘일지도 모를 삶의 끝을 바라는 단어의 일부분이 나옵니다.




아주아주 멋지고 훌륭하신 존잘님들의 작품이 모인 홈페이지는 여기입니다!

주소 클릭이 되지 않게 설정을 해서 배너형식 같이 올리는점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사진클릭하면 홈피에 가집니다. 출처는 저작권없는 사이트.)





 

 

 

 

 

 



 얼마나 된 걸까? 란 질문이 내 안에 퍼져 나갔다. 지나쳤던 계절을 떠올려 본다. 허나 그건 잘못된 선택임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이곳 모형정원에서는 그 방법은 시간을 세기엔 적합하지 않은 수단이다. 내가 지금 있는 이 아름다운 세계의 계절은 신의 변덕이기에. 내가 살았던 세계이자 장소와는 틀린 곳이기에. 

 

 

 "음, 대략적인 달의 수는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습관적으로 혼잣말을 중얼 거린다. 아직 고쳐지지 않은 이 버릇은 지독하도록 바보 같다. 그럼에도 고쳐지지 않는 건, 아마, 정적을 참지 못해서 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곁에 누군가가 없는 게 당연해서 일지도 모른다. 이 바보 같은 습관은 어쩌면 내가 죽을 때까지 고쳐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소가 흘러나온다.

 

 아아, 어찌할 수 없구나. 이 버릇도 고쳐지지 않는 구나. 언제까지 이렇게... 

 

 순간 가슴의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공허함과 답답함. 아아, 안 된다. 어찌할 수 없는, 막을 수 없는 무언가의 범람이 나를 덮치려 한다. 그 정체를 무언가에 빗대려 했다. 하지만 아직도 찾아내지 못한 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슴 안쪽부터 퍼지는, 참을 수 없는 감각은 나를 도망치도록 만들기에. 그대로 잠식되어 버릴 듯한 두려움에 작은 안식처에서의 출구를 바라본다. 

 조심조심, 그러면서도 서두르면서 창문에 손을 댄다. 평범하게 도서관의 문으로 가다간 이곳의 주인에게 걸릴 거다. 그럼 그분에게 붙잡힐 것이 분명하다. 일을 받는다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 외의 일이라면, 그저 그의 곁에 있으라는 명령이라면... 나는 견딜 수가 없을 거다. 믿고만 싶은 신의 곁이 익숙해지면서도, 낯설어져 감에 나는 날이 갈수록 힘들어진다. 선명해져 가는 감정과 흐릿해지는 벽에  '나'를 유지하지 못하게 되어만 간다. 

 

 이러면 마치 내 안의 그것들과 다를 바가 없네.

 

 드륵, 창문을 제법 당당하게 열었다. 그러자 얼굴을 지나치는 바람은 냉기로 가득했다.  차가운 감상이, 심드렁한 결론이 입 안에 퍼진다. 바람에 대한 감상과 결론에 대한 시시함이 섞인다. 일순 가슴 속의 답답함이 사라졌다. 바람 때문일까, 아니면 결론을 내린 덕분일까... 눈은 창밖의 풍경을 보고 있을 터인데도, 나는 무엇도 보지 못한다. 멍하니, 멍하니, 멍하니. 텅 비어진 마음이란 보이지 않는 그릇 속을 휘저어 볼 뿐이다. 마치 가치 있는 무언가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우물 안 존재 같다. 

 

 바보 같기는, 이렇게 소설 같이 문장을 만든다 해도 무엇 하나 가치는 없잖아.

 

 언제나의 냉혈한 감시관이 내게 비수를 꽂는다. 감사하게도 말이다. 다시 나를 현실로 되돌려 준다. 그래봐야 현실에 순응한 적이 얼마나 있었는지... 돌이켜 보면 나는 매번...

 

 

 "아, 안녕하세요. 사유라씨."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만으로 성별을 따지는 건 좀 그런가에 대해 의문을 품으면서도 여자아이의 목소리라 판단한다. 기억 속 목소리들 중 누구의 것임을 떠올린다.  아아, 그 아이구나. 하는 생각보다 건조한 감상이 내 안에 퍼진다. 그 감상에 눈을 감으며, 좀 닥치고 있어봐 라고 소리 없이 속삭인 후 눈을 뜬다. 이어 고개를 돌리니 거기엔 어김없이 내가 기억해낸 아이가 서 있었다.

 

 

 "안녕, 유이."

 "혹시 제가 생각하시는 데에 방해한 건가요?"

 "아니, 괜찮아. 그냥 멍하니 있었던 거니까."

 

 

 걱정이 어린 모습임에도 아이는 생기가 넘쳤다. 어째서 일까, 그저 그곳에 있을 뿐인데도 온기가 전해져 오는 착각이 든다. 아아, 당연한 거다. 살아있다는 것은 그런 것이기도 하니까. 특히 이 아이라면 더더욱 그 온기가 생생하다. 신들에게 닿을 정도로, 내가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사랑스러운 인간의 아이. 인류의 대표로 선택된 아이. 그녀가 이 모형정원에 온 사실이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너무하다고 비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인류는, 인간은, 그리고 나는 이 아이 한 명에게 무거운 무언가를 떠넘겨 버린거 나 마찬가지기에. 

 

 

 "사유라씨는 어른스럽네요."

 "......"

 

 

 갑작스런 말에 사고가 일순 멈췄다. 내가 미소를 짓고 있는지도 모르게 된다. 어른스럽다. 아아, 이렇게도 어색한 단어가 있을까.  이 아이의 비친 '내'가 보여 온다. 정말로.... 어른스럽지 못한 면상이다.

 

 

 "유이, 나는 단 한 번도 어른이 된 적이 없어."

 "네?"

 

 

 아직은 앳된 아이의 눈이 커진다. 그 안에 깃든 의문을 나는 보았음에도 모른 척 한다. 대신 풍경 속에서 아이를 부르는 이를 바라본다. 푸른색, 노란색, 보라색, 붉은색, 금색, 녹색, 흑색 등등. 아아- 많기도 하지. 다행이다. 저걸 보아하니 졸업은 문제없을 것 같네. 절로 상상이 되는 풍경에 나는 입가를 움직인다. 비틀어짐을 감춘 미소를 만들어 낸다. 

 

 

 "다들 부르고 있어. 얼른 가봐."

 "저기..."

 "응?"

 "...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럼 나중에 또 봬요. 선생님!"

 

 

 가볍고도 빠른 뜀박질이 들리다 점점 멀어진다. 내 표정이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져서야 나는 표정을 풀어낸다. 그 아이라도 이번에는 눈치챘을려나. 내가 일부러 화제를 돌린 것을, 모른 척 했다는 것을. 상관없나. 어차피 저 아이와의 인연은 이곳에서 끝일 터인데. 우리의 관계는 깊지 않은 게 제일일 터이니, 이게 좋은 거다. 

 나를 어른이라고 생각해주는 아이. 나를 선생님으로 불러주는 아이. 절대로 행복한 길을,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고르기를 바라는 아이. 좀 더 느긋이 어른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미래를 가진 존재. 

 또 바보 같은 연기를 하고  있네.

 

 

 "......"

 

 

 가차 없구먼. 어울리지 않는 말투를 속에 툭 던져 넣은 후, 나는 능숙하게 창문을 넘어간다. 얘기에 집중하느라 잊고 있었던 냉기가 온 몸을 감싼다. 숨을 한 번 내뱉으니 보이는 흰 입김이 새삼 지금의 계절을 알려준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은 짙고도 짙은 회색이라 곧 무엇을 할지 알려준다. 곧 내가 좋아할 풍경이 펼쳐질 기대감에 입김을 일부러 길게 내뱉는다. 

 그리고 나아가려 했다. 추위를 잊을 만큼, 가슴의 시끄러움을 억누를 수 있는 고요한 곳을 찾기 위해. 하지만 내 발은 결국 멈춰버린다. 누군가가 나를 막지고, 잡지도 않았다. 그저.. 그저... 내가 멈춰선 것뿐이었다.

 

 

 "......"

 

 

 누가 저 모습을 보았을까. 누가 뜨거운 태양과 빛나는 모래가 생각나는 이집트의 신이 저리도 어울리는지 알았을까. 이틀 전에 내린 눈으로 덮힌 세상을 배경으로 삼은 신의 모습이 저리도 시선을 빼앗을 줄 알았을까. 신이기에 그럴까. 어디를 보는지 모를 푸른 눈동자가 아름다워서일까. 

 

 아아, 왜 하필 지금 눈이 내리기 시작한 걸까. 

 

 소리를 내지 않으며, 구름이 마치 심술을 부리듯 타이밍 좋게 눈을 내리기 시작한다. 하나, 둘 내리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셀 수 없을 만큼의 눈들이 가득 내리기 시작한다. 세상이 지워질 정도로, 신의 모습을 가리려는 듯이 눈이 내린다. 참으로 겁이 없는 걸까 싶기도 한다. 허나 눈이다. 그렇기에 괜찮은 거겠지 라며 나는 눈을 감지 못한다.

 

 그의 곁에 설려면 어른이 되어야 할까?

 

 흠칫, 떠오른 의문에 몸이 미약하게 움츠러든다. 너무도 뜬금없고도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이 상황에 어울리지도 않은 문장이었다. 헌데도 입안에 맴돌아 떨쳐내지 못한다. 나는 내가 떠올린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까 유이의 말 때문일까. 하지만 그건 지금과는 상관이 없을 터인데....

 

 

 "가야지."

 

 

 답이 나오지 않는 답답함에 나는 원래의 예정을 떠올린다. 애초에 신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선택한 탈출로인데, 지금 발이 묶이면 어쩌란 건지. 여기까지 와서 어울리지 않는 생각도 그만두자.

 그렇게 자신에게 따지며 나는 눈을 감는다. 그 상태로 뒤돌아서 눈을 뜬다. 그러자 보여 온 광경 또한 아름다웠다.  사람이 없고, 그로인해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자연만이 펼쳐진, 모형정원이란 장소에 걸맞은 신이 만들어낸 세계. 감히 인간의 눈으로 접하게 된, 눈으로 감싸이는 세계는 황홀했다. 내가 살던 곳에서, 현대에서 보기 힘들어진 아름다움에 숨이 멈춘다. 하지만.. 허전했다. 무엇이? 라는 목소리가 나를 긁어낸다.

 닥쳐.

 거친 말을 입 속에 던지며, 천천히 다리를 움직인다.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갈 때마다 부드러운 눈송이가 눈앞에 흔들려 떨어진다. 시야가 일렁이기 시작한다. 흔들리는 눈송이 때문인지, 하얀 입김 때문인지 모르겠다. 가슴이 답답해져만 간다. 아니, 가슴은 계속 답답하고도 먹먹했다. 도서관에서 나오기 전부터, 그를 보았을 때부터. 중간에 없어졌다고 착각을 느꼈을 뿐, 나는 쭈욱 쉬이 숨을 쉬지 못하고 있다.

 

 

 "아아, 얼른 주.."

 

 

 무엇도 말할 생각은 없었다. 아니, 그러한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랬을 터인데, 내 입에서 나온 문장. 허나 그것조차 끝까지 나오지도 못했다. 끝을 맺기 전에 무언가가 뻥 뚫려버렸다. 아니면 터져 버렸다.

 아아, 어쩌면 둘 다 일지도. 어라, 지금 생각은 누구의 말일까. 

 시시한 연극이 내 안에 상영된다. 허나 나는 없었다는 듯이 흘려버린 채, 온 몸에 퍼지는 탈력감에 저항하려 했다. 그럼에도 내 몸은 나아가지 못하게 된다. 몸의 감각이 멀어지는 게 생생하면서도 흐릿했다. 서서히 내 몸의 윤곽도 알 수 없게 되는 감각이 퍼진다. 눈을 뜨고 있어도 보이지 않게 되어간다. 또, 또, 또... 

 

 언제까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갈 거야?

 

 텅 빈 것 같으면서도 꽉 채워진 머릿속에 목소리가 퍼진다. 질린다는 감정이 질척하도록 짙게 베인 목소리를 만들어 냈다. 알고 있다. 이것 또한 좋지 못한 습관이다. 아니면 병이라고 할려나. 어라? 결국 좋지 못한 거네. 어라, 나 언제부터 이랬더라. 언제부터 이렇게 인간 이전의 문제를 가지게 된 걸까. 슬슬 인간의 나약함이라고 덮을 수 없게 되어 가잖아.

 유치원 때는 노는 걸 좋아했지. 초등학생 때는 착한 아이로 있으려 했지. 중학생 때는 아- 그때는 모험이 싫어졌던가. 고등학생 때는 평범으로 있으려 했던 것 같아. 어느 의미 대 실패 했지만. 그럼 그 후는... 지금은? 어른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나이가 된 지금의 나는 무슨 인간이지?

 

 [사유라씨는 어른스럽네요.]

 

 아니야. 나는 그런 인간도, 성격도, 성품도 가지지 못했어. 네가, 그 아이가 본 모습은 가짜라고. 나는 어른스럽지 못하고, 무책임하고, 용기도 없어. 나는 그 고고한 신의 곁에 있을 수 없는 글러먹은 인간이라고.

 

 

 '어?'

 "어?"

 

 

  두 목소리가 겹쳤다. 같은 목소리가 두 개가 겹쳤다. 놀란 건 어느 쪽? 어이없어 한 건 어느 쪽? 그리고 왜 나는 그분의 곁을 운운한 거지? 어라...? 어라? 어? 그는 상관없잖아. 내가 아이라던가 어른이라든가 이전에 그분은, 토토씨는 상관없잖아. 기다려, 왜 명확한 고유명사를 떠올린 거야. 이러면 마치 내가 토토씨의 곁에 ...

 

 

 "......"

 

 

 ....... 아, 그랬구나. 황홀한 풍경이라고 감탄하면서 부족하다고 느낀 건 오롯이 내 개인적인 소망이었구나. 나는 좀 더 그분의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던 거야. 내가 보는 풍경 속에 그분이 계시면 좋겠다고 느낀 거야. 점점 그분이 있는 세계가 당연해져만 가고 있는 거야.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떤 계절 속에서도 그 분이 계셨어. 이 모형정원의 인간과 신들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내 주위에 계셨지. 아이부터 지금까지의 내 겉모습만큼은 아시는 신님. 이러니 그분이 계신 풍경이 당연하고도 찾게 되는 거겠지. 그리고... 이 마음도 착각과 어리광에 물들여 버리는 거겠지. 그리고 알아버린 온기가 그리워지게 되는 거겠지. 이 겨울이기에 더더욱 그 온기를 떠올려 버리고 마는 거겠지. 

 겨울이 아니었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이 추위가 없었다면 타인의 온기를 떠올릴 수 있었을까. 아, 이 질문들이자 의문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이렇게 내가 여기서 고민한들 무엇에 변화를 줄 수 있을까.

 

 

 "없지. 없지. 있을 리가 없지."

 

 

 절망이 나를 덮친다. 변하지 않기 위한 발버둥을 친다. 나를 살리기 위해 이성을 잡는다. 육체도, 마음도 삐걱거리며 고통을 호소함에도 나는 무시한다. 아직도 배드엔딩을 고르자는 외침을 뭉개 버린다. 그가 떠오르는 감각이자 환상을 하나하나 필사적으로 지워간다. 

 일순 깨달음 하나를 얻게 된다. 가슴의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공허함과 답답함. 어찌할 수 없는, 막을 수 없는 무언가의 범람. 그 정체를 무엇에 빗댈 수 있는지 떠올랐다. 그건 연기다. 그것도 무척이나 더럽고도 유해한 연기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나 속을 가득 채울 수 있으며, 그 그을음이 벽에 붙어 쌓여가는 거다. 아아, 왜 이런 타이밍에 시시한 깨달음을 얻은 걸까. 참으로 기가 막힌다. 이런 순간에 떠오르다니. 아닌가, 아닌가. 그를 향한 마음은 비슷하다고 했으니, 완전히 상관없는 것은 아니겠구나. 

 

 가자, 가는 거야. 이번에야말로.

 

 깨달음을 뒷전으로 미루고, 목소리가 울린다. 나 자신임에도 마치 타인이 얘기하는 듯한 착각이 뇌리를 찌른다. 겨우 보이게 된, 아니면 아직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시야인 채로 나는 다리를 움직인다. 다시 냉기가 나를 덮치기 전에, 눈의 감촉에 다시 무너지기 전에 도망친다. 나는 살기 위해 또 도망을 택했다.

 

 

 "네코."

 

 아.    

 

 

 

 

 

 

 

 

 

 

 바람의 소리도, 눈이 내리는 소리도 들려오지 않던 귓가에 들어온 목소리. 무엇이 있는지 모르던 내 시야가 부셔져 내려간다. 보일 리 없을 유리가 깨져 휘날리는 환상이 반짝인다. 들릴 리 없을 그 유리 파편을 밟는 소리가 박혀 온다. 살려 달라는 외침이 내 목을 조여 온다. 평소대로 돌아왔다는 착각이 가차 없이 바스러져 간다. 돌아왔다고 믿은 감각이 다시 멀어져 간다. 

 그럼에도 내 안에서 목소리가 떨어져 내린다. 그렇게 무언가 있다는 듯이 얘기해도 너는 불쌍한 게 아닌 그런 척이다. 라고 차가운 숨결이 가슴에 서리를 만들어 낸다. 

 

 

 "괜찮은 거냐. 내가 제대로 보이나?"

 "......"

 

 

 다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아, 그렇게도 피하려던 존재가 내 앞에 있다. 부서진 시야이기에 고고한 존재가 보여 온다. 그가 나를 보고 있다. 무너진 나를 바라보는 푸른 눈동자가 이 순간에도 청아하다. 그렇기에 버티기가 힘들어져만 간다. 어째서 이 분일까 하는 소리 없는 절규가 내 머리를 때려 울리게 한다. 

 무어라 말하려고 했다. 아니, 어쩌면 그것도 착각일지도 몰랐다. 결국에는 나는 무엇도 말하지 못한 채, 감각이 사라진 팔을 움직였다. 감각이 없는데도 움직인 결과를 아는 게 뭔가 이상하지만, 보았으니 그랬다 라는 사실을 아는 느낌이다. 나는 내가 움직이고 있음에도 마치 타인의 시점이 된 느낌이 되어 간다. 마치 꿈속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감각과 비슷하다. 그러니 모르겠다. 내 의지대로 움직인 것인지에 대해 나는 확신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내 팔은 움직였고, 내 손은 감히 신의 옷깃을 쥔다. 내 고개는 숙여져 그의 눈동자로부터 도망친다. 아아, 이 모습은 신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은혜나 관대함을 바라는 신자다.

 

 

 "사유라?"

 "......"

 

 

 부디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아주십시오. 신이시여, 당신이 걱정스럽다는 듯한 목소리로 어느 책에도 실리지 못할 자를 부르지 말아 주십시오. 그 자는 이기적인 구원을 위해 연기하는 자이며, 거짓을 입에 담는 죄인입니다. 당신 같은 고고한 존재가 걱정할 만한 존재가 아닙니다. 부디 그 자를, 저를 부정해 주십시오. 저와 그녀를 긍정해 주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저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녀는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아아- 허나 이 말들은, 이 기도는, 이 부탁은 당신에게 말할 수 없군요. 제가 아는 신들 중 가장 완벽에 가까운 존재여, 이 애틋한 모형의 세계에서도 빛나는 존재여, 세상을 가리는 눈 속에서도 그 고귀함이 가려지지 않는 존재여. 당신은 제가 기도의 일부를 말한다면 모든 것을 꿰뚫어 보이시겠죠. 당신은 저의 과거와 현재를 보았으며, 보고 계신 분이니... 비록 진심을 말하지 않는 자였다 할지라도.

 봄, 여름, 가을. 다른 계절은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겨울은 힘듭니다. 이 처연하고도 아리따운 계절의 당신은 너무도 찬연하여 무심코 원하게 됩니다. 정해진 희극이 아닌 비극을 택할 것만 같습니다. 그러니 부디.. 부디... 눈이 내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세계에 저를 떨어뜨려 주십시오. 이 온기가 사라져 가는 몸을 끌어안은 팔에 의미를 담지 말아주십시오. 이 어리석은 자에게 눈물을 허용하는 관대함을 내리지 말아주십시오. 

 

 아아, 겨울이 한 없이 좋았습니다. 이 세계의 겨울이 저는 좋습니다. 헌데 당신의 곁에 서는 저를 상상하게 되는, 만들어진 이곳의 겨울이... 저는 야속합니다. 

 

 


1 2 3 4 5 6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