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작

2022년 크리스마스 합작 - 우류사유

サユラ (사유라) 2022. 12. 25. 00:25

* 드림 [ 2022년 크리스마스합작 ]에 참여한 영원한 7일의 도시 의 >우류< 드림글입니다

* 오리주(드림주)/오너이입有

* 캐릭에 대한 개인적인 성격파악이나 구성된 부분이 있어 원작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드림주 ≠ 지휘자 (플레이어 캐릭터) 이며, 별개의 인물입니다.

 

 

아주아주 멋지고 훌륭하신 존잘님들의 작품이 모인 홈페이지는 여기입니다!

주소 클릭이 되지 않게 설정을 해서 배너형식 같이 올리는점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사진클릭하면 홈피에 가집니다. 출처는 저작권없는 사이트)

 

 

 



 나이프의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주어 강하게 찌른다. 그러자 전해지는 제법 익숙해진 몬스터의 살이 칼날에 저항하는 묘한 압박감. 허나 그것을 무시하고 파고드는 날붙이는 온전한 나의 의지다.  천천히 칼을 빼내어 고정하던 힘을 풀어내니 괴물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나의 목을 물어뜯기 위해 벌렸던 입 안으로 날카로운 이빨들이 보여 왔고, 광기인지 아니면 본능인지 모를 빛을 띤 눈동자 또한 보여 왔다. 
 하지만 내 목을 쉬이 물어뜯을 수 있을 괴물은 멈추더니 파들파들 떤다. 이내 그 자리에 털썩하고 쓰러져 자신을 내려다보는 나를 올려다 볼 뿐이다. 아마 영문을 모르겠다 거나 분노가 있을 눈동자는 이내 빛을 잃어 그 생명이 끝났음을 알린다. 이러한 괴물들이 이미 내 주위에 일곱 체가 누워있다. 


 "이런 분위기가 싫은 건가. 이 녀석들은."


 작고도 내 기준으로 제법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시선을 가볍게 올린다. 그러자 시야를 채우는 빛의 구슬들이 일순 눈부시다는 감상을 줬으나 곧 생각보다 밝지는 않구나 라는 감상으로 바뀐다. 그것들은 그저 어두운 공원 중앙에 세워진 생각보다 큰 나무에 적당하게 둘러진 작은 전구들이었을 뿐이다. 더불어 일부러 인지 아니면 낡은 것인지 아까 지나친 거리의 전구들 보다 밝기가 어둡다. 한 술 더 떠서는 색도 하나뿐이다. 좋게 말하면 은은하면서 심플하다, 솔직하게 말하면 어둡고 성의가 없다.  이렇게 불만인 듯이 말하고는 있지만, 제법 이 공원에서 여러 번 사건을 겪었던 나로서는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한 거다.


 "그래도 이 정도면 애쓴 거지."


 이 공원은 조연 장소다. 주연이라 볼 수 있는 어느 공원과 달리 내가 서 있는 이 공원은 잘 알려지지 않은 장소다. 지금 이 순간에도 커다란 운명을 반복할 어느 누구에게는 관련이 그리 없을 작은 공간이다. 아아, 정정해야겠다. 조연도 되지 못하는 엑스트라 수준의 약간 낡은 공공장소다. 
 그런 주제에 생각보다 빈번하게 괴물들이 출현한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이곳은 번화가와는 조금 거리가 있고 동시에 폐허와도 제법 가깝다. 정확하게 어디인지는 굳이 얘기하지 않지만 이러한 장소의 특징은 대부분 공통적이다. 사람의 손이 자주 닿지 않는다 란 사실이 말이다. 그로인해 생기는 공백은 자연이 메꾸지만 이 세계는, 아니 이 도시는 다른 것에게도 그 공백을 메꾸도록 하게 만든다. 이계와 연결된 도시에선 사람도 하물며 신기사의 관리가 없다면 늦든 빠르든 이질적인 존재들이 자리 잡기 쉬워진다. 


 "그리고 더욱 사람들이 오지 않게 되는 거지."


 악순환이네~ 라고 소리도 없는 생각을 읊은 나는 나이프를 허리에 찬 칼집에 넣는다. 작은 공원 중앙의 세워진 나무를 어떠한 기념일이랄까, 탄생일을 대표하는 상징에 가깝게 꾸며 놓은 인물에 대해 한 번 추리해보나 그만둔다. 짐작이 가는 인물들이 있다면 있지만 내가 굳이 알아낼 필요성도, 이유도 없기에. 그저 내가 생각보다 많은 횟수를 찾아왔던 장소를 꾸며준 이에게 희미하게 고마움을 느낀다. 이 적막한 밤의 공원이 제법 운치가 있게 느껴졌기에. 비록 내 주위와 내가 걸어 왔던 길에는 피와 시체가 있더라도 말이다. 
 만약 그가 이곳에 나타난다면 내게 무어라 할까. 이러한 질문이 입안에 맴돈다. 그 날의 그는 이러한 나를 몰랐고, 나 또한 이러한 내가 될 거란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이 손으로 모기나 작은 벌레가 아닌 더욱 큰 생명의 숨을 끊는 행위가 가능하게 될 줄은 몰랐다. 주제에 어울리지 않는 힘을 얻어 나는 무기를 휘두르고, 결과를 만들어 냈다. 당신은 이런 나를 본다면 무어라 할까. 
 어둡고 사람이 없는 공원에서 괴물들의 시체들 사이에 서서 어중간하게 꾸며진 나무를 바라보는 저를 본다면 당신은 무어라 할까요.


 "하하-."


 우습다. 성스럽다고들 하는 어느 분의 탄생일이, 많은 이들이 행복할 시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오늘 같은 날 죽음이 가까이 있다니. 그것도 자진해서 나는 죽음을 가까이 두고, 죽음을 주는 입장이 되었다. 다행이라면 죽음을 줄 존재가 인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했던 몇 번의 7일들은 끔찍했으니 그나마 이런 날들은 평화로운 편이다. 아아, 그래 평화롭다. 나를 향해 겨눠지는 총구도, 칼날도, 외침도, 분노도, 슬픔도 없는 이 순간은 제법 평화롭다. 또한 그의 눈물을 보지 않을 듯한 이번의 7일도 평화롭다면 평화롭다. 그들은 무엇도 기억하지 못하고 파티를 준비할 터이니, 무엇도 알지 못한 채 내일의 아침을 기대하며 꿈에 빠져 있을 터이니, 무엇도 모르고 또 오늘을 반복할 테니까. 누군가 말하지 않았나. 망각은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이라고. 맞는 소리면서 뭣 같은 소리지만.


 "근데 그 축복이 나한테는 불확실하니 역시 저주인가."


 오늘 같은 날에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지금도 번화가에 거리는 화려하게 등불이나 꽃, 갖가지의 장식들로 꾸며져 퍽이나 예쁠 것이다. 아니, 예뻤다. 그 사이 퍼지는 음악은 밝고도 미묘하게 성스럽거나 로맨스적이었다. 성당에서 합창은 확실하게 성스럽겠지만, 역시 거리에서 듣는 곡들은 귀여웠다.
 처음이다. 내가 이 날에 나오던 곡들을 듣고 귀엽다는 감상을 내리다니. 잠이 부족한가? 어제랑 오늘 잔 기억이 없기는 한데. 생각보다 피로가 더 쌓였나. 낮에 안화의 직무실에서 보고할 겸 디저트 먹을 때 좀 더 제대로 쉬었으면 좋았던 걸까. 그때 졸리지 않았다고 간과했나... 하지만 이미 지나갔으니 어쩔 수 없나. 오늘로 이틀 째 잠을 못 잤지만 졸리지 않은 걸. 저번 루트는 너무 실패여서 자고 싶지가 않아. 잔다면 또 보일 테니까, 잔다면 그 사람이 나타날 테니까. 돌아갈 수 없는 나날들 속의 그가 나타나서 나에게...


 "이런 장소랑 시간에 혼자 있는 건 위험하지 않니?"


 아, 억지다. 누군가가 꾸민 음모나 다름이 없다. 이 순간, 이 장소에 그가 나타날 일은 없다. 그는 이곳이 아닌 그가 사랑하는 아이들이 있는 그곳에서 있어야 할 터다. 내 앞의 나무보다 작더라도 여러 가지 장식들로 꾸며지고 꼭대기에 별을 세운 시들지 않는 나무 아래 선물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하며 기대하고 있었을 터다. 아이들의 다정하고도 듬직한 나무 아저씨로서 즐거운 내일을 빌며 웃고 있었을 터다. 그런데 이곳에 나타났다니 말도 안된다. 나는 그 사이 잠에 든 것일까? 그리고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아니면 처음부터 이번 7일이, 더 나아가 지금까지 모든 것이 꿈이었을까? 아득해져 가는 나날들의 반복이 꿈이었던 걸까? 눈이 내리던 그날의 광경 또한 꿈이었던 걸까?
 자신이 미쳐버리고 있다고 느끼는 이 감각이 역겹다.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를 의심해야만 하는 이 상황도, 익숙해진 내 자신도 진저리가 날 지경이다. 습관처럼, 아니 이미 습관적으로 올라간 내 입꼬리가 추악하다. 돌아갈 수 없는 아득한 지난날들의 내가 우는 소리가 저주스럽다. 하지만 가장 미운 것은 이 상황을 기뻐할 수가 없을 터인데도 마음의 끝자락에서 기뻐한 사실이다.


 "문제없습니다. 저 또한 신기사니까요.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이 시간, 이 장소에 나타나다니 신기한 일이군요."
 "......"


 입에서 반사적으로 나온 목소리에 내 스스로가 질책한다. 누가 들어도 차갑고도 관여 따위 바라지 않는 의사가 담긴 목소리에 상대방의 반응이 늦어진다. 도저히 뒤를 돌아볼 수 없어 붉은색 장식이 하나도 없는 나무를 올려다본다. 허나 내 심장은 뛰는지 알 수 없게 되었고, 내가 제대로 나무를 보는지 알 수 없게 된다. 그를 볼 자신이 없는 내게 목을 조이는 이 정적이 밉고도,  어둠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희미한 작은 전구들의 빛이 고맙다. 그를 그 반짝이던 거리에서 보지 않은 것에 감사를 가지게 된다. 
 그는 모를 거다.  몇 번, 내 뒤에 아직도 서 있을 '그'가 나를 기억하더라도 진정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때마다 괴로웠던 감각이 사라지지 않는다 란 사실을. 어느 계절에 있어도 그를 떠올리며, 누구와 있어도 그를 떠올리며, 어떠한 풍경을 보아도 그를 떠올리고 만다는 사실을. 내가 미쳐가고 있다는 사실 또한 상냥한 고아원의 원장은 모르실 거다. 


 "꼭 너를 만나고 싶었거든."
 "모르겠군요. 당신이 저를 만나고 싶은 이유가 있다는 사실이. 그럴만한 접점 또한 기억이 없습니다만."


 그렇다. 이번의 루트에선 저번의 루트들과 같이 그와의 접점을 만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만나고 싶지 않았으니까. 본다면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족하였다. 축하할 일이 있다면 먼 곳에서 축하했고, 할 수 있다면 물자를 보내어 그와 아이들이 덜 힘들도록 했다. 그와의 접촉이 좋지 못하다는 판단을 가진 후, 신의 장난이 아닌 이상 그가 나를 인식하시지 못하도록 노력했다. 가짜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도록 하면서 까지 사계절의 어느 계절도 마주치지 않도록 도망쳤다. 특히 겨울은 어림잡아 50번이 넘는 반복 중에 더욱 조심했다. 흐릿해져야 할 그날의 풍경이 더욱 선명해지고 그리워지고 원하게 되어 이 겨울을 피해왔다. 
 그럴 터인데 내 뒤에 나타난 자의 목소리는 분명 그의 것이다. 정말 그인지 확인하지 않았으나 정말 그라 할지언정 나에겐 상관이 없다. 설령 그가 어떠한 방식으로 나에 대해 알았다 해도 만날 이유도, 마음도, 자격도 나에겐 없다. 그러니 뒤의 인물이 가짜라면 퇴치하든 심문을 하면 되며, 진짜라면 요령껏 도망치면 될 일이다. 내 능력이라면 그것은 쉬우니까. 결국 나와 그의 관계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어째서 저를 아는지 모르겠으나, 저를 만났다는 용건이 끝났으니 돌아가세요. 저는 아직 일이 남아..."
 "왜 나를 피하는 거니? 사유라."


 하! 누구의 음모인지, 아니면 신의 개입인지 모르나 이번엔 나를 기억하는 루트였던 건가. 하필 오늘 같은 날, 그가 오지 않을 장소와 시간에 나타나서 나를 기억하다니. 영화나 다름없네. 우스운 건 이건 영화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고, 꿈도 아니란 사실이고. 하하, 정말 이 세계는 내게 많은 걸 바라는 것 같아. 아니면 주인공도 아닌 내가 그리도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이렇게 무력한 기분으로 만들잖아. 
 노력을 해도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 세계, 타인에게 알리려 해도 억제되는 제한, 지금은 좀 불안정 해졌지만 누적되는 기억, 그리고 내가 가까이 하면 더욱 괴로운 결말을 맞이하는 지키고픈 사람. 점점 어둠에 손을 대는 나와 달리 그만은 계속 빛 속에 있기를 바라기에 생기는 거리. 스스로가 정한 룰에도 괴로운 마음을 조금씩 죽이고 있는데 방해하는 요소들. 정말이지, 자기 나름 내게 주는 선물이라고 할 생각인가? 신이란 작자는. 앞으로 2시간 남짓이면 맞이할 날의 선물이라고 주장할 생각일까.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네요. 그 이름도 모르겠으며, 당신을 피한다는 말씀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는 단지 당신을 만날 이유가 없었던 것뿐이니까요."
 "사유라, 나를 잊은 거니?"


 잊었다면 차라리 덜 괴로웠을 거다. 당신에 대한 기억과 마음 모두 잊었다면 그렇게 괴롭지도, 노력하지 않았을 터다. 모든 계절이 찬란하게 보이지 않았을 거고, 아이들의 웃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지 않았을 거고, 꽃의 부드러움과 향기에 울고 싶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전부 당신이 주었던 추억이, 온기가, 목소리가, 마음이 내게 준 변화. 전부 당신에게 가진 마음으로 인해 생긴 나의 미련이자 그리움이다. 함께 지낸 적이 없는 기념일에 마주칠까 두려움이 생길 정도로 겁쟁이가 되지 않았을 터다.
 하아- 내 사정은 어찌 되었든 그를 돌려 보내드려야 한다. 그가 내일을 위해서도, 아이들을 위해서도 이곳에 있는 것과 내게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그리 좋지 못하다. 더군다나 이곳은 언제 몬스터가 나타날지 모르는 곳이니까, 그가 혹시라도 다치면 아이들이 울 거다. 그러니 얼른...


 "사유라!"
 "아-."


 그의 다급함이 담긴 외침이 들려옴에 무엇도 생각하지 않고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엔 나를 향해 달려오며 팔을 뻗은 그가 보여 왔고, 시야 한구석으로는 나를 향해 달려드는 몬스터 또한 보여 왔다. 조금 얕게 나이프를 꽂았던 것일까, 목에 피를 흘리면서도 그 입을 벌려 날카로운 이빨을 향하고 있었다. 허나 그 뿐이다. 이미 그들은 멈추었기에 그 이상 내게 다가오지 못한다. 축복인지 저주인지 모를 힘 덕분에 그도, 괴물도 결국 그들의 의지로 내게 닿지 못한다. 
 나이프를 다시 칼집에서 꺼내어 몬스터를 향해 몸을 숙인다. 팔을 들어 칼날을 친히 아까 내가 내었던 곳에 다시 되돌려 준다. 급하지 않게 천천히 인위적으로 낸 깊이만큼 들어간 감각이 느껴지자 나는 조용한 악의로 힘을 준다. 나이프의 손잡이가 내 엄지의 한 마디 정도 들어갈 만큼 깊이 찌른 후에야 손에 힘을 푼다. 이번에는 문제없다 라는 판단을 내리고는 숙였던 몸을 일으킨다. 돌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짓밟고 고개를 돌려 시선을 향한다.


 "정말이지, 착해 빠진 사람."


 익숙해졌다 하더라도 인간의 다리보다는 이동이 불편한 몸으로 산은 아니지만 제법 높은 언덕 위 공원까지 온 사람. 지켜야 할 아이들이 자고 있을 고아원을 나란 인간 때문에 이 늦은 시간에 나온 사람. 차갑게 대한,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 나를 걱정하여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한 사람. 당신이 두려워 도망치는 나를 찾아와 준 바보 같은 사람. 희미한 전등들의 빛에 짙어졌어도 보이는 녹색의 머리카락, 나무와 같이 커다란 키, 마치 날개와도 같은 왼쪽 팔, 그리고 나를 향해 뻗은 따스할 오른쪽 손을 지닌 사람. 변함이 없어 얄밉고도 안심이 되는 사람. 그리고 결국 내가 진정으로 미워할 수 없는 사람.


 "우류씨."


 나직이 그의 이름을 불러본다. 허나 대답이 없고도 움직임도 없는 그에 다가가려 했지만 움직이지 못한다. 내가 내 힘으로 멈추었음에도 감히 다가가지 못하고 그를 바라볼 뿐이다. 그와 그의 뒤의 광경을 함께 시야에 담는다. 비록 공원은 어두우나 언덕 위의 놓인 공원의 저편은 도시가 내려다 보였으며, 언덕 아래의 그 곳은 아직 빛이 가득하고도 반짝이고 있다. 언제나와 같은 빛들이 무수히 많음에도 신기하게 그 사이로 붉은 색과 초록색이 섞여 어우러진 모습은 아름답다. 다른 말로 그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단을 찾지 못한 채 나는 바라본다. 
 아아, 저곳이 그가 있으셔야 할 장소인데 왜 이곳에 계실까 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쥐어뜯는다. 그래서 일까, 점점 머리가 아파와 두통이 침식해온다. 통증에 사고가 미약하게 무뎌진 걸까, 천천히 우류씨에게 향한다. 생각보다 우리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는지 고작 몇 걸음만에 그의 앞에 다다른 나는 손을 잡으려 했다. 나에게로 뻗은 손에 내 손을 맞닿게 하여 쥐고 싶었지만 고작 몇 미리를 앞두고 그만둔다. 그저 마치 그의 큰 손을 쥔 것만 같이 내 손을 살짝 형태를 지었을 뿐 닿지 않게 한다. 추운 겨울이라 그럴까, 아니 당연하게도 온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당신이 나를 쭉 기억하지 못했으면 했어요. 하지만 만약 당신이 저를 기억하고, 제가 주저앉았을 때 나타난다면..."


 저를 꾸짖어 주기를, 혼내주기를 바랐어요. 지금 당신을 묶어둔 이 힘이 생기고 많은 일들을 했으니까요. 당신에게 말하지 못할, 아이들 앞에 떳떳하게 나타날 수 없을 정도의 일들을 했으니까요. 이제는 오늘 같은 날을 즐길 수 있는 자격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나쁜 일도 했어요. 그러니 당신이 저에게 화를 내주길 바랐어요. 
 이러면서도 당신이 기억을 하지 못할 때 나를 기억해주길 바란 마음도 결국 버리지 못했어요. 그럴 때 제가 아주 조금은 도움이 되는 신기사나 지휘사가 되면 저를 알아봐 줄까 기대했죠. 일 때문에 고아원에서 하얀 원피스를 입었을 때도 당신은 저를 알아봐 주시지 않았죠. 그날의 겨울 하늘 아래 입었던 엉성한 하얀 드레스보다 제대로 된 옷임에도 예쁘지 못한 옷이었기 때문일까요. 바보 같은 변명이네요. 저를 기억 못한 루트의 당신은 끝까지 기억하시지 못할 뿐인 진실이었을 뿐인데. 그럼에도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만 같은 밤에, 모든 것이 삼켜지는 깨져 버린 검은 하늘 아래에서 당신을 만나는 상상을 했어요. 그리고 어둠 속에 떠는 아이처럼 겁을 먹어 당신에게 숨는 모습을 꿈꿨죠. 이제는 누구의 품에서도 숨을 수 없는데도 말이죠. 


 "하하, 애초에 이제는 아이도 아닌데 무슨 상상인지."


 아이였다면 내일 선물을 받을 수 있었을까? 아니다. 나는 착한 애도 아니었는걸. 모든 것이 망상이고 그저 도망이지. 내가 바라볼 꿈은 언젠가 꾸었던 그 꿈뿐이며, 바라는 것 또한 그것만 바라면 되는 거야. 그러니 가슴이 괴로워질 때까지 노래를 부르듯 숨을 쉬고, 볼이 아파질 정도로 웃자. 아이들이, 이 도시의 사람들이, 그리고 이 사람이 행복하게 웃던 그날의 꿈을 배신하지 말자. 


 "있죠, 우류씨 저는 아직도 당신을..."


 두통 때문에 입 밖으로 나오려던 말을 삼켰다. 알고 있었지만 그를 만나면 마음이 날뛰어서 이런 실수를 하고, 가슴이 아프고, 짓눌려 버릴 것만 같다. 매번 매번 이런다.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 이런다. 이제 두 번 다시 과거는 되돌릴 수 없는 걸, 두 번 다시 그날의 식을 열 수 없는 걸 잘 알고 있음에도 마음을 완전하게 죽일 수 없다. 나는 아직도 그를...
 마주 본 손을 그대로 둔 채 조심히 그에게 다가간다. 그 팔 안보다 더욱 들어가 넓은 가슴의 바로 앞까지 다가가 가만히 선다. 살짝 불편하지만 그래도 마치 그의  품 안에 있는 듯한 느낌에 눈을 감는다. 코에 닿는 싱그러운 향에 눈을 뜨며, 입을 연다. 아주 조금 이르지만 내가 그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란 생각으로...


 "메리 크리스마스."


 언제 입에 담아 본지 모를 말을 끝낸 나는 그의 곁에서 떨어져 그대로 스쳐 지난다. 점점 멀어지는 풀의 향을 애써 외면하며 손목의 통신기기를 켠다. 곧 내가 통신을 원한 상대방과 연결된 음이 들리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이지? 모멘트."
 "늦은 밤에 미안, 안화. 1분 뒤에 어떤 사람에게 네가 연락 좀 해줬으면..."
 "지금 네 능력으로 멈춰있을 공원의 그 말인가?"
 "... 네 짓이구나."
 "나는 그저 그의 부탁이자 거래를 들어줬을 뿐이야."


 상대방의 대화를 통해 오늘의 만남의 전말을 알게 된다. 내 능력도, 내 위치도 제대로 알거나 짐작할 수 있는 인물은 한 명 뿐인데 이제야 눈치 챈 내가 멍청하다. 안화라면 그에게 모두 가르쳐 줄 수 있는 인물인데 떠올리지 못하다니. 아니, 정신이 없어서 그럴 겨를도 없었고, 안화도 딱히 악의나 다른 의도는 없었을 거다. 그저 이 무서운 공무원씨의 말대로 그러했던 상황이며, 결과였을 뿐일 거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내 정신건강에 더 좋은 편이다.


 "그래, 암튼 네가 알아서 그를 고아원으로 돌려 보내줘."
 "너는 그대로 복귀인가?"
 "피곤해서 잘 거야."
 "그래야지. 오늘로 닷새째 수면을 취하고 있지 않으니 뒤늦은 현명한 판단이다."
 "닷새?"
 "또 대가로 잊었군. 그래, 닷새다. 그리고 혹시 몰라 말하지만 이미 크리스마스다."


 안화의 말에 시계 속 시간을 살펴본다. 정말로 25일이자 약 30초가 지난 시점이다. 나는 한숨을 쉬고 안화와 조금 더 얘기를 나눈 후 통화를 끊는다. 그리고 적당히 근처 나무에 기대어 앉는다. 두통이 심해지고, 들었던 얘기들이 어이없어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어차피 내 환력을 감추고 흔적을 끊어 놓아 우류씨가 찾아낼 걱정도 없다. 더불어 안화가 그를 잘 구슬릴 거다. 
 멍하니 도시를 바라보았다. 공원의 외각이라 더욱 잘 보이는 도시는 여전히 밝고도 아름답다. 곧 우류씨는 저곳으로 내려가 아이들이 있는 고아원으로 돌아가실 거다. 그리고 아침 해가 뜨면 깨어난 아이들에게 그는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줄 것이다. 거기에 내가 했던 말을 아이들에게도 해줄 거다. 그 광경이 너무도 자연스럽고도 선명하게 떠올려져 미소가 지어진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광경인데도 말이다.


 "흥흥흥~ 흥흥흥~"


 작은 콧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거리에서 들었던 캐럴송을 따라 해본다. 아이들도 이 노래를 부를까, 내가 기부한 선물들을 좋아해줄까 상상하며 눈을 감는다. 선물로 고른 외투를 입은 그의 모습을 그려보다가 꿈을 또 떠올린다. 모두가 행복한 꿈은 말 그대로 행복했다. 비록 그곳에 내가 없더라도 말이다. 대신 소원을 빈다. 산타 할아버지에게 빌어본다.
 모든 게 끝나 꿈이 이루어지기 직전 그가 곁에 있다면 나를 말없이 안아주길 바라본다. 아직도 좋아하는, 사랑하고 있는 그가 그 커다랗고도 따스한 품속에 나를 안아주길 빌어본다.  그러면 나는 그 뒤 내가 어찌 되어도 상관없기에. 설령 어떤 미래가 그와 나를 갈라놓아도 말이다. 그럼에도 분명 나는 만족할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의식이 점점 흐려진다. 닷새 동안 수면을 취하지 않고 능력도 팍팍 썼으니 당연한 걸까. 뭐 상관없나. 곧 이 루트도 끝날 테니까. 그래도... 그래도... 부디 이번에도 모두가 행복한 사이 되돌아가기를. 적어도 괴로운 결말을 맞이하며 되돌아가지 않기를. 그 생각을 끝으로 나는 왜인지 아까의 수수한 크리스마스 트리를 떠올리며 잠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