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데레 드림 합작

*원펀맨의 보로스 드림

*오리주(드림주) 

*생각보다 길어요.. 중간 포기 가능합니다. ^^

*역얀데레 있습니다.



 

 

 

 

 

 

 

 

 

 

 

날씨가 화창한 어느날, 평소보다 조금은 신경을 쓴 듯한 복장으로 외출 준비를 하는 사유라의 모습을 보로스는 곁에서 지켜본다. 그의 시선에도 시계의 바늘들의 움직임을 중간중간 확인하며, 빠진 물건이 없는지 체크하는데에 집중하는 그녀다.

 

 

"이번에도 만나러 가는거냐."

"약속을 했으니까요."

"굳이 만나야하는 녀석이라고 생각하는거냐."

"만나야 해요. 꼭..."

 

 

자신의 질문을 가장한 설득에도 약속을 물리지를 않는 연인의 대답에 보로스는 탐탁지 않은 시선을 지은다. 그 시선을 느낀 것인지, 계속 눈을 마주치지 않던 사유라가 고개를 들어 푸른 눈동자와 시선을 맞춘다. 잠시간의 정적이 흐르는 사이 세계의 초침의 소리가 묘하게 컸지만, 둘 다 딱히 신경쓰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고작 몇 초의 정적이 흘렀을까, 작게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척보아도 인간과 다른 얼굴에 불만이 가득한 외계인에게 다가가는 인간 여성이다.

 

 

"그렇게 불만이세요?"

"물론이다. 모처럼의 둘만의 시간도 줄어드는게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다. 거기다 네가 만나러 가는 녀석은..."

"한 때 당신을 사모했던 외계인 분이시죠."

"......"

 

 

질문을 했으면서 자신의 말을 중간에 짜르고 대신 답한 그녀를 말 없이 바라보는 눈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생각을 전한다. 그것을 잘 알아차린 사유라는 팔을 뻗더니 그의 허리에 둘러안는다. 생각지 못한 평소 그리 애정 표현이 많다고는 할 수 없는 연인의 포옹에 놀란 그였지만 이내 맞포옹을 한다.

 

 

"보로스는 걱정이 많으세요. 그분은 생각보다 좋은 분이시고, 덕분에 보로스의 옛날 모습도 알 수 있어서 저는 좋은걸요."

"옛날 일이라면 나한테 물어보면 된다고 생각한다만."

"본인도 기억하지 못하는 일을 타인이 기억하는 일이 많은걸요. 그리고 당신을 한때 좋아했던 그녀이기에 기억하는 당신이 있는거에요."

"...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군. 흠- 어차피 내 얘기라면 내가 가도 문제가 없을거라 여기는데..."

"안돼요. 여자끼리의 수다이고, 더더욱 중심인물이 보로스인데 본인이 있으시면 마음껏 얘기할 수 없잖아요."

"뒷담이라도 하는거냐. 나는 가면 안된다니..."

 

 

언제나 자신에 대해 과보호적인 그에 가끔 난감할 때도 있지만, 자신을 아껴주는 것을 알기에 사유라는 기쁨을 느낀다. 그에 반해 보로스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말에 의아해하면서도 여전히 속으로는 연인 혼자 보내는 것에 걱정이 들어 저번에도 거절 당했던 동행을 다시 한번 요청한다. 허나 이번에도 거절당해버려 삐진 것인지 평소보다 아주 약간 낮아진 톤에 그녀는 웃으면서 아니라고 답한다.

 

잠깐의 알콩달콩한 대화를 마친 둘. 외출 준비를 마친 그녀는 현관문에서 낮은 웨지힐의 샌들을 신으며 나서려고 한다. 그때, 무언가를 내미는 보로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사유라가 좋아하는 파스텔 계열의 하늘색의 심플한 둥글고도 납작한 물건이었다.

 

 

"잊은 물건이다."

"아, 손거울. 죄송해요. 모처럼 보로스가 선물해준 것인데 놓고 갈 뻔 했네요."

"원래 들고 다니지 않았던 물건이니 어쩔 수 없는 거지. 다만 저번에도 놓고 갔는데 또 반복하니 조금은 씁쓸하다."

 

 

그것은 며칠 전 그녀가 그에게 선물 받은 작은 손거울이었다. 되도록이면 외출 할때는 들고 다니려고 노력하는 사유라였지만, 원래 들고 다니지 않았던 물건이기에 자주 깜박하였다. 그리고 이번에도 깜박한 그녀에게 일부러 자신의 심정을 얘기하는 보로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기에 어쩔 수 없다는 미소를 지은 손거울의 주인은 숙여오는 상대방을 향해 살짝 뒷꿈치를 들더니 가까워진 입술에 쪽하고 입맞춤을 한다. 붉어지는 볼을 의식하며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말하며 집을 나서는 연인을 귀엽다고 생각하며 마중한 그는 잠시 현관에서 있다가 집을 나간다.

 

보로스의 발이 멈춘 곳은 그들의 집과 걸어서 5분정도 걸리는 어느 3층짜리 빌라였다. 너무 새 것 같지도, 낡은 것 같지도 않은 건물은 그리 사람의 흔적이 많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없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은 정리된 몇몇개의 화분과 좁지만 잔디를 깎아놓은 정원은 사람이 사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허나 그 어느 것에도 시선을 주지 않은 외계인의 발이 멈춘 곳은 1층의 문 앞이었고, 마치 올 것을 알았다는 듯이 꽤나 두꺼운 철문이 끼익하고 열린다.

 

 

"오셨습니까, 보로스님."

"실례 좀 하지."

 

 

문이 열리자 마중하는 존재는 인간이 아니었다. 흡사 문어와 닮은 그 모습은 괴물이나 괴인이라 착각할만한 모습이지만, 존재는 그 어느 것도 아닌 그와 같은 외계인이며 부하인 게르간슈프였다. 익숙한 듯 집안으로 들어오는 그가 자신에게 건낸 실례한다는 말이 아직도 어색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게르간슈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상사의 뒤를 따른다. 보로스는 집안의 거실 쪽으로 가더니 벽을 장식하는 인테리어 소품을 만진다. 그러자 책장이 움직이면서 비밀의 통로가 드러나고, 어두운 통로로 둘은 자연스럽게 들어간다.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를 내려간 끝에는 넓은 공간이 있었고, 그 안은 무수한 기계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현재 위치는 어디 쯤이지?"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요. 아직은 번화가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군."

 

 

커다란 방에 놓여진 꽤나 큰 의자에 앉은 그의 말에 게르간슈프는 기계를 살짝 만지더니 화면에 뜬 지도와 어떠한 점의 위치를 확인한 후 보고한다. 들려온 말에 뭔가를 생각하는 보로스를 보는 부하의 머릿속에는 부디 이번에도 큰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빌면서 푸른 점의 실시간 위치를 확인한다.

 

 

 

그 시각, 이제는 식어진 흰 볼을 손거울로 한번 확인한 사유라는 어딘가로 향해 걸음을 옮긴다.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을까... 그녀의 다리가 멈춘 곳은 어느 깔끔한 분위기의 카페였다. 번화가 한복판에 있고, 넓으면서도 시설도 좋아 사람들이 붐볐다. 많은 사람들을 쭉 둘러보던 연브란운색의 눈동자가 어느 자리에 시선을 고정한다. 거기엔 흔하게 볼 수 없는 색의 머리카락을 지닌 여성이 어떤 남자와 애기를 나누고 있었다. 천천히 그들에게로 향한 그녀. 조금은 소란스러운 카페 안은 그녀의 발소리는 묻혀져 지워져 버린다. 두걸음 정도의 거리가 남았을까, 자신을 눈치 챈 것인지 여성이 남자에게 '일행이 왔어. 시간 종료.'라고 말하였고 남자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생각보다 미련없이 자리를 떠나준다.

 

 

"아는 분인가요?"

"아니, 여기서 만난 인간. 나한테 작업을 걸길래 잠시 상대해줬을 뿐이야."

"... 리하르샤인씨는 인기가 많으시군요."

"그냥 리하라고 불러. 어차피 우리 꽤나 친하잖아?"

 

 

여성은 조금은 날카로운 느낌이지만 매력적인 미인이었다. 앞 머리를 4:6으로 가른 긴 녹색의 긴 생머리, 볼륨과 가녀림이 잘 어우러진 몸매, 눈꼬리가 날카롭지만 짙은 붉은색의 눈동자, 갸름한 턱선, 그리고 꽤나 화려하고도 노출도가 조금 높은 옷은 눈에 띄었다. 자신에게 친근감이 어린 말투로 얘기하는 여성, 리하르샤인을 그녀는 잠시 아무런 말 없이 바라보다가 작게 웃으면서 자리에 앉는다.

 

 

"그럼 리하씨로 부를게요."

"그래 좋아좋아~ 이제야 가까워진 기분이 드네."

"풀네임으로 부르는게 그렇게 거슬렸나요?"

"짧게 애칭으로 불러야 친하다는 느낌이니까."

"하긴 그렇죠. 우주에서도 그런게 있었나요?"

"없다고는 아닌데, 워낙 그분의 곁은 다른 의미로 경쟁이 심했으니까. 특히 그분에게 마음에 들려는 암컷 개체들은 장난이 아니었지."

 

 

자신의 말에 만족한 것인지 아까보다 밝아진 톤으로 얘기하는 리하에 사유라는 계속 옅은 미소를 지은체 대화를 이어간다. 누군가가 지나가며 보았을 때는 꽤나 친한 느낌의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정반대의 타입이더라도 두 여성은 각자의 스타일 대로의 미소를 짓고 있는다.

 

 

"보로스는 그 시절에 인기가 그렇게 많았나요?"

"당연하지! 그분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어. 그분은 누가 뭐래도 우주에서 가장 강한 분이었으니까."

"인기가 많았던 이유는 그것 뿐인가요?"

"물론 외모도 있지! 우주에선 이족보행과 심플한 외모 일수록 인기가 많거든."

"...심플한 외모?"

"예를 들자면 인간에 가까운 외모일 수록 인기가 많아."

 

 

생각지도 못한 기준이었다. 우주에서 인기가 많은 외형이 인간에 가까운 자라는 것을 그 누가 알았을까. 적어도 왠만한 지구의 인간들은 생각하지 못하였을 거다. 자그맣게 놀라고 있는 사유라에 붉은 눈동자의 눈꼬리가 휘며 남자를 홀릴만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허나 그 미소는 어딘지 날카로운 느낌이 풍겼다.마치 먹잇감을 찾은 듯한 포식자의 눈빛과도 비슷했다.

 

 

"하지만 약하니까 그저 눈호강이지만..."

"즉, 외모랑 강함으로 인해 보로스가 인기가 많으셨다 이 얘기라는거죠?"

"응. 그리고 그런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혹은 유전자를 노리고 많은 여자들이 경쟁을 벌인거야."

"흐음 그렇군요."

"질투하지 않아?"

"과거인걸요. 그리고 보로스는 지금 제 곁에 계시니까요."

"아주 러브러브네."

 

 

인간이라면 거슬렸을 자신의 말에도 부드럽게 웃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한, 오히려 여유가 넘치는 상대방의 모습에 리하는 조금은 맥이 빠지는 모습을 보인다. 그것을 보았음에도 사유라는 아무런 말도,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한편 그 시각 다른 곳에선...

 

 

"......"

"아직까지는 쓸데없는 얘기는 하지 않는군."

 

 

기계 너머에서 들리는 두 여성의 대화에 조용하던 보로스가 나즉히 중얼거린다. 아무런 감흥도 없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게르간슈프는 그가 지금 조금 실망한 기분일거라 예상을 한다. 그 이유는 언제 한번 자신에 비해 연인은 너무도 질투를 하지 않는다고 불평한 것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엔 무척 놀랐지만, 옆에서 보는 평소 보이는 둘의 모습이나 방금의 대화를 들으면 자신의 두목이 그러한 불평을 하는 것도 납득하게 된다.

 

 

"이대로 계속 도청할까요?"

"아아... 만약 저 녀석이 사유라에게 쓸데없는 정보를 주면 안되니까 말이지."

"옛날의 일들이 그녀에게 알려지는 것이 싫습니까?"

"당연하지 않나.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사유라에게 만큼은 최악의 상황이 아닌한 미움이나 두려움이란 감정을 갖게하고 싶지는 않다."

 

 

들려온 그의 말에 게르간슈프는 조금은 두려움을 느껴버린다. 사유라를 향한 두목의 마음은 진심이다. 하지만 그가 진심이기에 더욱 위험한 것이다. 강자와의 싸움 외에는 집착도 관심도 없었던 존재가, 생에도 집착이 없었던 존재가 유일한 관심이던 강자에 대한 싸움으로 만족을 얻었을 때에 만난 새로운 유일한 존재. 그 유일하고도 단 하나의 존재에게 반하여 그는 강자를 향하였던 때보다 더욱 깊은 흥미와 헤어나올 수 없는 감각을 느껴버렸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가 처음으로 얻게 된 보물과 그리고 그것에 대한 애정과 독점욕과 집착과도 비슷하다고 게르간슈프는 생각한다. 그렇기에 얼핏 텅비었다고 느낀 적이 있던 보로스가 사유라에 대해 가지는 집착의 깊이는 짐작할 수 없다. 방금의 최악의 상황이 아닌한 이라고 말한 것만 해도 알 수 있다. 그는 정말 최악의 상황엔 그녀에게 미움과 두려움을 사더라도 자신의 독점욕과 욕심을 채울거란 말이다.

 

 

"주로 어떠한 이야기를 숨기고 싶은 것인지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이상한 질문이군. 너라면 알고 있지 않나. 다크매터의 전 구역을 관리했으며, 참모장이었던 게르간슈프."

"죄송합니다. 얕은 생각에 필요없는 질문을 해버렸습니다."

"사과는 됐다. 그것보다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도록."

"네."

 

 

뇌리에 떠오르는 과거에 게르간슈프는 그가 숨기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사유라가 모르는 잔인하였던 모습이나, 그의 손에 죽은 수 많은 외계인들, 파괴된 행성들... 강자 외에는 무엇에도 무관심이었기에 더욱이 잔인했었던 자신의 두목을 게르간슈프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의 가까이에 있었으며, 오랜 시간을 다크매터에 있었기에... 어쩌면 그는 필요하다면 자신을 비롯한 다른 삼대장도 없앨지도 모른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단 하나의 존재 외에는 잔인하고도 무관심한 이제는 우주에서 2번째로 최강의 존재는 존경스러우면서도 한없이 두려운 게르간슈프였다.

 

 

 

 

 

 

 

달칵-

 

사유라는 한번 손거울을 꺼내 흘낏 얼굴을 살핀 뒤에 탁하고 덮는다. 그 행동을 본 리하는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거울을 바라보았고, 그 시선에 가방 속에 넣으려던 거울이 잘 보이도록 살짝 내미는 사유라다.

 

 

"이게 궁금하신가요?"

"응. 네가 손거울이라니 신기한 일이다 싶어서."

"그런가요?"

"너 여자라지만, 그리 꾸미지도 않고 화장도 하지 않고 향수도 뿌리지도 않고... 남자에게 잘 보이려는 몸가짐이 없잖아."

"모든 여자가 그러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그렇긴 해도 너 나랑 지금까지 만난 날들 중에서 거울을 가져온 적도, 보지도 않았잖아. 그랬던 네가 손거울을 가져온 것 자체가 신기해."

"이 거울 보로스가 주신거에요. 사실 받은 것은 좀 더 되었지만, 매번 챙기는 것을 깜박했거든요."

 

 

악의를 가진 것인지 모르겠으나 어찌보면 자신에 대해 무시하는 듯한 리하의 말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넘어간 것인지 사유라는 언제나와 같은 모습이었다. 허나 리하의 눈은 한 순간이지만 전에없이 날카로워졌고, 그녀는 보지 못한 듯 웃을 뿐이다. 웃는 그녀의 모습을 보던 붉은 눈동자의 주인은 싱긋하고 웃더니 보여달라고 요청하였고, 사유라는 흔쾌히 거울을 건내준다. 이리저리 거울을 보던 여성의 손가락엔 조심성이 없어 보였다. 허나 거울의 주인은 그것을 알아차리는 모습은 없었다.

 

 

"너에게 잘 어울리는 아무런 무늬도 없는 거울이네."

"저는 너무 화려한 물건은 어색해서요. 보로스가 그걸 신경 써준거죠."

"흐음- 잘 봤어. 돌려줄게."

 

 

가녀리지만 왠지 보통의 손가락보다 기다란 듯한 붉은색으로 칠한 손톱이 눈에 띄는 흰 손가락이 조금은 허술하게 거울을 쥔 체 주인에게 돌려주려 한다. 그리고 사유라의 손끝이 거울에 닿은 순간이었다. 하늘의 색이 옅게 베인 거울은 거의 손을 대지 않았던, 어느새 반쯤 녹아버린 빙수 속으로 빠진다. 차가운 얼음 호수에 빠진 가여운 거울은 주인의 손에 의해 구해진다.

 

 

"미안~ 네가 잡은 줄 알고 손을 놓았는데, 설마 빠질 줄이야."

"괜찮아요. 물이 들어간다고 고장이 나는 물건도 아니니까요. 잠시 화장실에 가서 씻어와도 될까요?"

"물론~ 다녀와."

 

 

양해를 구한 사유라는 가게의 한 쪽에 자리잡은 화장실로 향한다. 세안대에서 거울에 묻은 빙수의 흔적들을 물로 씻어내는 그녀의 얼굴엔 미소가 없었다. 그저 조금은 지친 눈빛을 지으며 묵묵히 소중히 거울을 씻어낼 뿐이다.

 

 

 

 

"저 보로스님, 기계가 망가진 듯 합니다. 수신이 되지 않습니다."

"이유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액체나 이물질로 인한 문제로 생각됩니다. 죄송합니다. 방수처리를 하지 못해 이런 일이...!"

"됐다. 상황을 보아하니 너의 잘못도 사유라의 잘못도 아니었던 것 같고, 사고이니 넘어가주마."

"가,감사합니다!"

 

 

보로스 치지직 거리며 귀에 거슬리는 소리만을 내는 기계에서 시선을 떼며, 생각에 잠긴다. 이번으로 도청에 실패한 것은 5번이다. 정확히는 5번의 시도 중에서 5번 전부 다 실패하였다. 그 이유는 사유라가 도청기와 위치 추적기를 심어둔 물건을 깜박하여 놓고 가거나, 실수로 떨어뜨리거나 일을 벌여 고장이 났었다. 신기할 정도로 매번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보호는 그가 초조함을 느끼게 만든다.

 

 

"헌데 보로스님."

"뭐냐."

"이제와서지만... 사유라에게 말하지 않고 이렇게 감시해도 괜찮은지요?"

"보호다. 감시는 사유라와 만나는 녀석쪽이다."

"그,그렇군요."

 

 

두목의 말에 게르간슈프는 속으로 생각한다. 아무리 보호라는 목적 아래 행해지는 것이라지만, 보통의 경우 도청과 위치추적을 받는 상대방의 입장에선 그리 달가워하지 않을 행동이다. 동의없이 행해지는 행동엔 그의 과보호와 집착이 깃들어 있다. 물론 과거 도적단이었던 자신들이기에 이러한 행동은 그리 커다란 죄악감을 느끼지는 않다. 다만 자신은 약간의 미안함은 느꼈다.

 

 

"만약 리하르샤인이 사유라에게 무언가를 하거나 얘기를 한다면..."

"처리한다. 사유라가 알지 못하도록 존재를 없앤다. 당연하지 않나."

"정말입니까? 리하르샤인은 한때 저희 다크매터에 많은 자원과 물자를 공급해준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자를.."

"그게 어쨌다는거냐."

"......"

 

 

그것은 정말 무심한 말이었다. 아무런 죄책감도, 정도 담기지 않은 말이었다. 그의 푸른 눈은 흔들림이 없고도, 문제점을 느끼지 않는다. 게르간슈프는 기억하고 있다. 리하르샤인이라는 여성이 보로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거의 모든 것을 바치고, 애타는 사랑을 외쳤던 모습을... 허나 그는 그 무엇도 기억하는 듯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설령 기억을 한다해도 그에게는 고맙다거나 조금의 인정이라도 베풀 마음이 없다. 자신의 두목은 그저 자신이 사랑하는 단 한 존재만을, 자신의 욕망을 위해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아닙니다. 당신의 선택이라면 따르겠습니다."

"이곳에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이만 물러나지. 다음엔 성능이 더욱 좋은 물건을 준비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게르간슈프는 어두운 방안에서 나가는 자신의 두목의 뒷모습을 그저 말없이 지켜보았고, 이내 혼자만이 남겨지니 숨을 크게 한번 들이켜 내쉰다. 온 몸을 압박하던 긴장감이 풀리자, 굳어질 것만 같던 다리들을 이리저리 움직여 풀어준다. 그리고 속으로 제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빌 뿐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고요한 집에서 기다리던 보로스는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소파에서 일어나 현관쪽으로 빠르게 걸어간다. 현관에 다다르자 거기엔 한발을 뒤로 들어올리며 샌들을 벗고 있는 사유라가 있었다. 자신의 발걸음 소리를 들은 것인지 발에 향하였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해지는 것에 보로스는 사소한 기쁨을 느껴버린다.

 

 

"아 보로.."

 

 

보로스의 마중에 말을 하려던 사유라였지만 말끝이 끊어진다. 그 이유는 정신을 그에게로 향하면서 한발로 중심을 잡던 밸러스가 무너지더니 발을 든 쪽으로 몸이 기울어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이 벽에 부딪힐거라 그 짧은 순간 생각한 그녀지만, 아무런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놀라 눈도 깜박이지 못했기에 자신의 몸을 한팔로 받아준 그를 보는 연브라운색의 눈동자는 아주 미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을 본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보로스는 그대로 그녀를 한팔로 안아올리더니 다른 한손으로 샌들을 벗겨준다.

 

 

"보로스, 저 혼자 할 수 있었어요."

"다칠뻔한 주제에 그런 말이 나오는거냐."

"실수 정도는 할 수 있는거죠."

"흐음- 그것보다 다른 말이 있지 않냐."

"...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하나 더."

 

 

자신을 어린아이 취급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조금은 불평이 담긴 목소리로 얘기하는 사유라. 구해줬는데도 불평을 듣는 것에 보로스는 생각보다 신경쓰는 듯 하지 않았다. 다만 그래도 듣고 싶은 말이 있는 것인지 묻는 그에 구해준 것에 감사의 말을 전하는 그녀다. 허나 또 무엇을 듣고 싶은 것인지 요구하는 연인에 갸웃하는 작은 머리. 자신이 무언가를 더 말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던 사유라는 넘어지기 직전에 하려했던 말을 떠올린다. 혼자가 아니게 되면서 다시 말하게 된 단어를 입에 담는다.

 

 

"다녀왔어요."

"어서와라."

 

 

약간의 부끄러움과 행복이 담긴 그녀의 목소리도, 연인을 맞이하는 그의 목소리도 부드러웠다. 인사를 마쳤으니 자신을 내려줄거라 여긴 사유라였지만, 자신을 안은체 거실로 걸어가는 커다란 몸에 의해 보기좋게 빗나간다. 거실로 간 보로스는 그녀의 가방을 적당히 테이블 위에 올려둔 후, 소파에 앉아버린다. 물론 그녀를 놓아주지 않은체 말이다. 덕분에 사유라는 그를 마주본 채로 무릎 위에 앉게 된다. 익숙하다면 익숙한 자세이기는 하지만 조금은 갑작스럽기도한 상황에 그를 올려보는 순간 입술에 닿은 따스함과 말랑함에 굳어져 버린다.

 

 

"보로스..."

"다녀왔다는 키스 정도는 해야하지 않나."

"꼭 이 자세로 해야했던 이유가 있나요?"

"내가 이러고 싶었다."

"그럴 줄 알았어요."

 

 

입술이 떨어지고 자신의 이마에 이마를 맞댄체 얘기해오는 그에 사유라는 물었고, 들려온 대답은 예상한 그대로였다. 커다랗고도 예쁜 푸른 눈동자가 빤히 자신의 깊은 곳까지 전부 보려는 듯이 바라봐서 연브라운색의 눈동자는 그 시선을 피해버린다. 부끄러움도 있었지만, 무언가 다른 이유에서 피한 것을 그녀 자신도 느낀다. 감춘 것이 들킬 것만 같아 피해버린 자신을 알아차렸을까봐 두려워하는 작은 귀에 낮은 목소리가 전해진다.

 

 

"무슨 일이 있었던거냐."

"그런거 없었어요."

"정말이냐."

"딱히 커다란 일은 없었어요."

"내 눈을 피한체 얘기하면 믿을 것 같으냐."

"정말로 별 일 없었어요."

 

 

그의 질문에 사유라는 그저 같은 대답을 했다. 자신의 눈을 마주보며 얘기하는 연인에 보로스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다가 가녀린 몸을 품 깊숙히 끌어안는다. 평소보다 더욱 힘이 들어간 팔의 힘에 답답함을 느끼는 사유라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알아차린 그가 이번에도 자신을 이해해주어 넘어가려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럴거라 여겼다. 허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달랐다.

 

 

"그 외계인을 처리하면 되는거냐."

"네?"

"네가 기운이 없는건 그 여자 때문인걸 안다. 매번 그녀석과 만나온 넌 기운이 없었다."

"보로스..."

"사유라, 너는 나의 것이다. 동시에 나는 너의 것이다. 소중한 너를 위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너를 내 곁에 둘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

"네가 괴롭다면, 너를 괴롭게 한다면 그 여자를 네 앞에서 사라지게 해주마."

 

 

들려온 말은 진심이었다. 흔들림이 없는 푸른 눈동자에 자신이 비치는 것을 사유라는 바라본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자신을 향한 사랑과 집착, 옅게 새어나오는 광기를 느낀다. 자신을 위해, 동시에 그 자신을 위해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겠다는 말을 하는 보로스에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얼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몇분이 지난 듯하였다. 아니 어쩌면은 고작 몇 초 였을지도 모르는 시간이 지나자 작은 입이 움직인다.

 

 

"보로스, 저는 당신이 그녀를 죽이는 일을 원하지 않아요."

"정이라도 생긴거냐."

"글쎄요. 그건 미묘해요. 그래도 리하르샤인씨와 만나서 전 당신에 대해 여러가지를 들을 수 있었어요. 그건 정말로 기뻤어요."

"허나 동시에 너는 그 녀석으로 인해 지치고, 상처를 받고 왔다. 틀린가?"

"역시 들켰군요."

"내게 숨길 수 있을거라 여긴거냐."

"아니요. 늦든 빠르든 들킬거라 생각했어요."

 

 

들려오는 그녀의 말들 속에서 거짓이 없음을 느낀다. 옅은 미소를 지은체 얘기하는 사유라는 누군가를 죽여준다는 얘기에 그리 놀란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한 그녀의 볼을 어루어 만지는 큰 손은 섬세할 정도로 조심스럽다. 볼에 느껴지는 손길과 따스함에 한번 느리게 눈을 깜박인 외계인의 사랑을 독차지한 그녀는 아까 카페에서 들었던 말들을 떠올린다.

 

[그 보로스님이 힘도 없는 인간 여자에게 반했다는 말에 정말 놀랐었어. 거기다 인간은 보로스님의 종족이 사는 평균 수명보다 한없이 적게 산다고 들었어. 약한데다가 볼거라곤 외모 뿐이고, 수명도 짧고, 이렇게 작은 별에서 우주물정 하나 모른체 살아가는 종족에게 반했다니... 그를 아는 외계인들이라면 전부 놀라거나 헛소리라고 할거야. 아 물론 너도 약하고 수명도 짧고 둔하고 자신이 사는 도시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적어도 보로스님이 반한 여자니까. 아주 조금은 다르겠지? 내가 하는 말들의 의미정도는 알거라 여겨.]

 

분명 제 딴에는 나름 돌려말한거라 여기겠지만, 사유라는 그 말들이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으로 밖에 들려왔었다. 첫번째의 만남 이후로 똑같았다. 만날 때마다 리하르샤인은 자신에게 보로스와 어울리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왔었다. 예전이었다면 분명 무너졌을 자신이라고 사유라는 생각한다. 무너져서 겨우 사랑하게 된 존재의 곁에서 도망치려 했을거라 여긴다. 허나 지금은 다른 것을 안다. 믿음이 생겼다. 자신감도 생겼다. 그의 사랑을 믿고 있다. 그렇기에 무너지지 않았다.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보로스."

"뭐지."

"저는 당신의 곁에 있어도 될까요?"

"새삼스런 질문이군. 거기다 쓸데없는 질문이다."

"그런가요?"

"아아. 계속 말하지 않았나.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불안함이 서린 질문을 건내오는 연인에 보로스는 얼핏 들으면 질렸다는 감정이 담긴 듯한 목소리로 동문서답을 한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인 것인지 사유라는 옅은 미소를 다시 지으며 묻는다. 그러한 그녀에게 그는 또 제대로 된 답변을 얘기하지 않은체, 작은 입술에 키스한다. 아까와는 달리 길게 이어지는 키스에 언제나처럼 먼저 백기를 든 것은 사유라다. 옷깃을 당기는 작은 손의 힘에 입술을 떼는 외계인 꽤나 아쉬운 눈빛을 짓는다. 살짝의 현기증을 느끼며 숨을 고르는 자신의 이마에 닿는 부드러움에 연브라운색의 눈동자는 푸른 눈동자를 바라본다.

 

 

"네가 아니면 누가 내 옆에 있겠나."

"...."

"너이기에 내 옆에 있어도 되는거다. 아니 너는 내 곁에 있어야만 한다."

 

 

이제야 들려온 제대로 된 대답 속에 담겨진 집착과 소유욕에 사유라는 불쾌하다거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저 아무런 말없이 그를 바라본다. 자신을 바라보는 연브라운색의 눈동자에 무언가를 생각한 것인지 보로스의 고개가 더욱 숙여지더니 하얀 목에 입술을 맞춘다. 부드러움은 아주 잠시였고, 간지러움과 미미한 아픔이 목덜미로부터 느낀 목의 주인은 다시 자신을 바라보는 아픔을 준 그를 바라본다.

 

 

"이걸로 너의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끝이다. 더 필요한가? 아직도 불안한가?"

"아니요. 충분해요. 충분하다 못해 과분해요."

 

 

사유라는 그제야 옅은 미소가 아닌 환하게 미소를 지어보인다. 그 미소를 본 보로스도 웃더니 다시 사랑스러운 그녀의 입술에 입맞춤하며 품안에 깊숙히 끌어안는다. 평소보다 강하게 끌어안은 팔은 절대로 놓아 줄 것 같지도, 어디로도 보내지 않을 것 같았다. 조금은 갑갑했지만 그녀는 그저 아무런 말없이 눈을 감으며 그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보로스님, 어째서...?"

"네가 한 짓을 생각해보도록. 이런 처사를 받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어느 어둡고 좁은 골목. 그곳에 보로스와 한 여성이 있다. 헌데 여성은 햇빛이 닿지 않는다해도 미지근한 아스팔트 위에 괴로운 듯한 표정을 지은체 주저 앉아있다. 자신에게 건내진 질문에 그는 아무런 감정도 담지기 않은 목소리로 답할 뿐이다. 어두운 장소일텐데도 푸른 눈동자가 미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눈동자 속에서 보여오는 낯선 감정에 여성은, 리하르샤인은 공포를 느낀다. 그것은 분노... 한번도 그가 자신에게 건낸 적 없는 감정에 리하르샤인은 억울함까지 느낀다. 흘러내리는 만들어진 가짜피부가 유독 끈적하게 느껴진다.

 

 

"제가 무엇을 했다는 것입니까?!"

"너는 내 것에게 상처를 주었다. 불안함을 주었다."

"상처..? 불안함? 그 하찮은 것이 그렇게 고하였.. 아아아악!!"

 

 

어이가 없다는 심정이 담겼던 목소리가 비명으로 바뀐다. 리하르샤인은 그의 손에 들린 자신의 팔을 바라본다. 축 늘어진 팔에선 녹색의 액체가 흘러내려 아스팔트를 적시고 있었다. 보로스는 그 팔을 아무렇게나 구석으로 던져버리더니, 그 팔을 쥐고 있었던 손을 다른 쪽 손으로 잘라내버린다. 그리고는 마치 더러운 물건을 버리듯이 자신의 손이었던 것도 던져버린다. 그 광경을 보는 붉은 눈동자는 공포에 물들어갈 뿐이다.

 

 

"사유라는 감히 네가 무어라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하찮은 것은 너다."

"어째서.. 고작 인간입니다! 고작 인간 여자입니다! 힘도 없고, 맹하고, 우주에 대해 뭣도 모르는 나약하고도 바보일 뿐인 종족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왜 당신같은 분이 그렇게 매달리는 겁니까?! 그런 가치가 어디 있다고!! 고작 그런 여자에게 당신을 빼앗겨야하다니!!!!!"

"입 다물어라."

 

 

아까와는 틀린 명백하게 낮아진, 감정이 담긴 목소리에 악에 받쳐 외치던 리하르샤인은 입을 다물어버린다. 명백하도록 전해지는 그의 분노와 불쾌함은 이제는 거의 변장이 풀려버린 외계인을 꼼짝하지 못하게 한다.

 

 

"고작 너 따위가 무얼 안다고 지껄이는거냐."

"......"

"사유라는 유일한 존재다. 유일하게 내 마음을 채우는 존재다. 아무것도 내게 주지 못했던 네 녀석보다는 아득하게 멀정도로 가치가 있다못해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헌데 그런 내 것을 너는 상처를 주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에 상응하는 죄값을 치르게 해주기 위해 내가 직접 온거다."

"하..! 하하하하하하하!!!!"

 

 

리하르샤인은 크게 웃는다. 누군가가 보았다면 미쳤다고 할 정도로 말이다. 허나 무수한 붉은 눈들이 달린 외모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모습을 본 인간들은 괴인이나 괴물이라는 말이 먼저 나올 듯하였다. 허나 그것은 상관없었다. 리하르샤인은 그저 이 상황이 정말 기가 막히고도, 억울하고, 분하였다. 동시에 해탈한 기분이 되어버린다. 결국 그에게 무엇도 되지 못한 자신과 다른 외계인들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이제 됐습니다. 결국 당신은 잔인한 존재일 뿐이군요. 그래서 저를 죽이실겁니까? 그렇다면 오히려 영광입니다. 당신의 손에 죽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멋대로 착각하지 마라. 언제 내 손으로 너를 죽인다고 했지?"

"네?"

"너의 죗값을 치르게 하러 온 것이지만, 내 손으로 너를 죽인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게 무슨..."

"사유라가 내가 너를 내 손으로 죽이는 것을 바라지 않은다고 했다. 거기다 너 따위를 내 손으로 죽이는 것은 불쾌하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택했다. 너의 남은 자존심이나 마음을 짓밟는 형태의 죽음을 주는 것으로... "

"보로스님..."

"내가 너에게 뿌린 약은 네 종족을 미치게 만드는 일종의 마약이다. 물론 약간의 개량을 하여 효과는 극도로 끌어올렸다."

"설마... 설마..?!"

"폭주한 너를 적당히 히어로 녀석들이 죽여줄 것이다. 괴인이나 괴물의 너를..."

"아아.. 아아아...."

 

 

리하르샤인은 자신이 잘못들은거라고 믿고만 싶었다. 하다못해 끝은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의 손에 의해 죽고싶었는데, 그것조차 이룰 수 없는 결말이라니 절망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눈물이 흐르는 자신을 내려다 보는 우주의 패자였던 존재는 무표정이었다. 분노도 어느샌가 사라진 그 표정이 더욱 괴롭게 느껴져, 리하르샤인은 끊어질 것만 같은 이성을 긁어모아 그ㅔ게 묻는다.

 

 

"보로스님 제 이름을.. 한번만이라도 제 이름을..."

 

 

간절한 바램.. 기억 속에 없는 바랐던 작은 소망을 마지막 순간에 빈다. 허나 그런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잔인한 대답이었다. 그 대답을 들은 리하르샤인은 그저 괴물로 전락해버린다.

 

 

"나는 너의 이름따위 모른다."

 

 

 

 

 

 

 

 

 

번호가도 아니며, 하물며 사람도 그리 살고 있지 않은 동네의 이른 오후는 조용하였다. 그 조용함을 즐기며, 사유라는 툇마루 쪽으로 2잔의 잔이 담은 쟁반을 든체 향한다. 거기엔 인간의 모습을 변장한 게르간슈프가 있었다.

 

 

"여기선 딱히 그런 모습을 하실 필요는 없으세요."

"아니, 혹 모르니까. 괜히 일 일으키면 일이 귀찮아지니까."

"게르간슈프씨는 조심성이 많으세요."

 

 

건내져오는 찻잔을 건내받는 게르간슈프는 조금 지친듯하였다. 사유라는 그런 그의 옆자리에 앉아 후룩 차를 한모금 마신다. 언제나와 같은, 아니 평소보다 조금 더 기분이 좋은 듯한 그녀에 게르간슈프는 입을 연다.

 

 

"일이 잘 풀려 기분이 좋은거냐?"

"잘 풀리다니요?"

"리하르샤인의 일 말이야."

"아아, 그분 말씀이군요."

 

 

분명 애칭처럼 줄여부르기로 했었는데도 그대로 부르는 그녀의 모습에 게르간슈프는 위화감을 느낀다. 지금쯤 이성을 잃었을 한 존재를 생각하니, 눈앞의 존재가 정말 자신이 모시는 분이 마음 여리고 누군가를 헤칠 줄 모르는 성격이라고 자랑했던 그 여성이 맞는지 조금은 의심이 갈 정도다. 자신의 이런 생각을 모를 그녀가 느긋히 처를 마시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시선을 알아차린 사유라는 컵을 찻잔에 올려놓으며 입을 연다.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 자국 잘 보인다 싶어서."

"자국이요?"

"목이라던가 손목이라던가..."

".........!!!"

 

 

자신이 지적한 부위를 떠올린 사유라는 갑자기 얼굴을 붉히더니 두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그 모습은 영락없이 두목이 자랑하고, 두목의 곁에 있던 여성이 맞았다. 허나 그 속에 있을 다른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은 웃음이 나오지 않는 게르간슈프다. 하얀 목이나 옷으로 가려지지 않은 팔목이나 팔에 새겨진 붉은 자국들은 자신이 아는 인물의 소유욕이 형태로 남겨진 것이라고 생각하며 커피를 한모금 마신다.

 

 

"그렇게 잘 보이나요?"

"너 생각보다 피부가 하야니까. 안보이는게 이상하지. 것보다 들키지 않았어? 보로스님께..."

"무엇을 말이죠?"

"... 네가 전부 알고 있었다는 걸. 위치 추적기랑 도청장치도, 그리고 보로스님이 리하르샤인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도..."

"물론이죠. 거기다 매번 요령껏 놓고가거나 망가뜨려서 리하르샤인씨가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을 들키지 않도록 애썼는데 들키면 아깝죠. 거울 때는 설마 도와줄거라 생각도 못했고요. 거기다 게르간슈프씨도 거들어 주셨는데 들킬리가 없잖아요. 특히 제 질투에 대해선 눈치채지 못하셨어요."

 

 

볼을 붉힌 채, 슬쩍 얼굴에서 손을 떼며 묻는 사유라의 모습은 평범한 부끄러움이 조금 많은 사랑에 빠진 여성의 모습이었다. 허나 자신의 질문에 그 모습을 싹 지우더니 평소 짓지 않는 미소를 지으며 얘기하는 그녀에 게르간슈프는 미미하게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낀다. 순진함과는 정반대의 느낌으로 바뀐 미소는 그녀를 아는 이들에게 있어 낯선 미소일거라 확신하는 외계인을 보며 사유라는 계속 말을 이은다.

 

 

"보로스는 저에 대해 잘 알아차리고, 거짓말을 꿰뚫어 보시지만... 나름 요령이 잡히면 들키지 않아요. 정확하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지만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그게 가능하냐?"

"... 리하르샤인씨를 만나면서 새삼 생각한거지만, 외계인분들은 생각보다 순진하신 것 같아요. 보로스도 그렇고... 영악함이나 교활함은 인간이 더 능숙하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죠."

"뜬금없이 무슨 말이야?"

"아 죄송해요. 생각이 난대로 말해버렸네요."

"그래서 왜 그렇게 생각한거야."

 

 

거짓말을 하지 않고 보로스를 속일 수 없다 생각한 게르간슈프는 뜬금없는 그녀의 말에 불쾌감을 감추지 못한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사과한 사유라는 설명의 기회가 주어져 입을 연다. 하늘을 보며 얘기를 하는 그녀의 옆모습을 지켜보는 금색의 눈동자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진심 뒤에 진심을 알아차리지 못한 달까요."

"진심 뒤의 진심?"

"상대방을 속인다랄까,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얘기를 하는데 꼭 거짓말이 필요한게 아니에요. 최소한의 대화를 한다거나, 거짓은 아니지만 옅은 진심으로 얘기를 해도 가능해요."

"...... 그럼 너는 보로스님에게..."

"진심이지만 옅은 진심이죠. 그리고 나약한 쪽의 '저'를 보였고요."

 

 

게르간슈프는 눈 앞의 그녀가 평소의 모습과 틀린 것을 확연하게 느낀다. 순진함보다는 영악함을, 누군가를 향한 배려보다 욕심을 두른 모습은 언제나 자신의 두목 옆에서 웃던 모습과는 달랐다. 부드러운 색이었던 연브라운색의 눈동자가 왜인지 평소보다 짙은 착각을 일으켰다. 그러한 게르간슈프를 마치 알아차린 듯 사유라는 한번 더 미소를 지어보인다.

 

 

"보,보로스님에게 너의 이런 모습을 언제 알려줄거지?"

"되도록이면 감출 수 있을 때까지 감추고 싶어요. 제가 리하르샤인씨의 말을 들으면서 무척 질투를 했다는 것도, 그녀가 무척 방해가 된다고 느낀 것도..."

"왜 감추려는 건데?"

"보로스에게 있어 저는 힘이 없어서, 과거의 상처가 낫지 않아서, 마음이 조금 불안정해서 지켜야만 하는 느낌이 강하죠. 뭐 전부 진실이지만요. 근데 그런 제가 질투는 둘째치더라도, 다른 여성이 방해라고 느끼고, 어떻게 그에게서 떨어뜨릴까 생각하는지 들키는 것은 그렇잖아요?"

"미움 받을까 그런거냐?"

"설마요~"

 

 

생각지 못한 대답에 게르간슈프는 놀란 심정을 감추지 못한다. 사람의 모습을 해서 원래의 동그란 형태가 아닌데도 동그랗게 커진 금안에 사유라는 작게 코웃음을 지은 후, 입을 움직인다.

 

 

"사실 미움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보로스에요. 그는 제게 저만을 사랑해준다고 약속해줬어요. 그러니까 두려움보다 믿음이 더욱 커요.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그를 질리게 하고 싶지 않아요."

"질리다?"

"제 질투나 욕심은 그가 혹시라도 저에게 조금이라도 질림이나 감흥이 없어질 때 드러낼거에요. 보로스는 분명 이런 저도 사랑해줄거에요."

"너..."

"저는 보로스를 쭉 사랑할 수 있어요. 유일한 존재니까요. 보로스는... 그러니까 저는 노력할거에요. 그가 저를 더욱 사랑하도록, 계속 사랑하도록..."

 

 

게르간슈프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어찌보면 사랑받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거라는 듯한 말투였다. 그리고 짓는 미소는 너무도 순수하지만 이기적인 느낌이었다. 만약 평소 그녀의 색이 투명한 하늘색이면, 지금은 투명하지만 검은색의 가까운 블루블랙이었다. 유일한 사랑하는 존재가 계속 자신만을 사랑하기를 바라고, 더더욱 사랑을 받고 싶은 모습은 분명 예전 그녀였다면 없었을 모습이라고 게르간슈프는 확신한다. 눈앞의 모습은 한 남자로 인해 욕심이 없었던 존재가 너무도 이기적이고 조금은 비뚤어진 애정을 가져버린 모습이라 확신한다. 그때였다. 거실너머 현관 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차를 마시던 둘이 반응한다.

 

 

"아, 보로스가 돌아오셨나봐요."

"사유라."

"네?"

"너 리하르샤인이 어떻게 된 줄 아는거냐?"

"... 보로스니까 분명 저와 만날 수 없는 먼 곳으로 보냈겠죠. 그렇죠?"

"그래. 아주 먼 곳으로 보냈지."

 

 

자신의 질문에 답하는 그녀는 알고 있다고 게르간슈프는 확신한다. 리하르샤인이 간 곳이 어디이며, 세세한 상황을 모르더라도 보로스가 자신의 말대로 그의 손으로는 아니더라도 죽였을 거라는 것도 말이다. 그럼에도 언제나와 같은 미소를 지은체, 언제나의 마중의 인사를 건내며 연인에게 다가가는 모습은 질투와 시기를 가졌다라는 것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든다. 또한 그러한 그녀의 인사에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외계인이 연인을 몰래 위치추적하거나 도청을 하고, 한때 자신을 바라보며 전부 바친 여성을 잔인하게 죽음의 길로 이끈 것을 누구도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마중 키스는 없는거냐."

"게르간슈프씨도 계신데 무슨..."

"뭐 어떠냐. 부끄러우면 내가 하도록 하지. 딥키스로."

"알았어요. 할게요. 고개 숙여주세요."

 

 

자신이 있음에도 아주 눈꼴시려울 정도로 꽁냥이는 둘에 게르간슈프는 알아서 눈을 돌려준다. 분명 평소 둘은 서로만 바라보고 알콩달콩한 커플이다. 허나 그 뒷면에 그만큼 깊고도 어딘지 비뚤어진 사랑의 방식이 서로에게 딱 맞게 맞물려 있어, 진실을 알고 있는 자신으로서는 조금은 두렵다고 느낀다. 서로가 만나기 전에 소중한 것도, 집착할 것도 딱히 없었던 둘이었기에 저러한 관계가 된 것일까하고 게르간슈프는 조금은 멍하니 생각해본다. 그리고 부디 앞으로 리하르샤인 같은 존재가 나타나지 않기를 바래본다. 평온한 일상이 또 깨지지 않기를 바라는 게르간슈프의 귓가에 아까부터 켜놓고 있던 텔레비전에서 어느 여성의 괴인이 히어로들에 의해 처치되었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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サユラ (사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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